우리들의 행복한 시간
공지영 지음 / 푸른숲 / 2005년 4월
평점 :
구판절판



책을 선물받아 놓고 오래도록 읽지 않은 이유는 이미 영화로 본 탓이었다. 4년이 지나 그 책을 집어든 건, 지하철을 오래 타야 하는데 마땅히 손에 잡히는 책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결말도 알기에 크게 기대하지 않았건만, 그게 아니었다. 초반부터 난 이 책에 빨려들어갔고, 다 읽을 때까지 헤어나오지 못했다. 영화가 그리 재미없던 건 아니었지만, 책에 비할 바는 못됐다. 그건 영화를 볼 때 유치하게 생각했던 '조벵이꽃'이 책에는 나오지 않은 덕분이기도 하지만, 정윤수가 <블루노트>에 쓴 어린 시절의 사연은 영화로 봤던 것보다 훨씬 절절했다.


물론 영화를 먼저 본 영향도 지대했다. 문유정이 나올 때마다 난 커다란 눈망울을 가진 이나영을 떠올렸고, 정윤수를 묘사할 땐 어쩔 수 없이 강동원을 생각했다. 정윤수의 키가 175센티라는 대목에선 "강동원은 그보다 큰데.."란 생각을 하기도 했다. 어찌되었건 주인공의 얼굴이 상상이 된 탓에 책이 더 잘 읽혔던 것 같다. 마지막 장을 읽을 땐, 그때도 지하철이었는데, 영화볼 땐 나오지 않던 눈물이 흘렀다. 책으로 얼굴을 가리면서 난 참 눈물이 많구나 싶었다. <도전 골든벨>에서 마지막 참가자가 탈락할 때, 그리고 친구들이 "괜찮아"를 외칠 때, 난 매번 눈물을 흘려댔다. 눈이 큰 사람이 울면 참 그럴듯한데, 눈이 작은 사람이 울면 없어 보인다. "저 놈 또 차였구나"라는 생각을 남들이 할까봐 걱정이다. 내 얼굴이 딱 차이기 좋게 생겼지 않은가?


<하루가 소중한 사람들>이라는 책을 읽었던 기억이 난다. 저자가 어머니 친구다보니 책을 받아서 읽었는데, 그분도 이 책에 나오는 모니카 수녀님처럼 사형수들을 찾아다니는 분이다. 훌륭한 분이란 생각은 들지만, 사형제에 대해 묻는다면 난 여전히 유지하는 게 낫다고 생각한다. 이게 다 유영철 때문인데, 하여간 이런 걸 보면 책 몇 권을 읽는다고 해서 그 사람이 기존에 가진 생각이 바뀌기는 어려운 듯하다. 이 책을 내게 선물해 주신, 지금은 연락이 끊긴 존경하는 그분께 감사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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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로그인 2009-01-24 10:2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사형제에 대해서는 많은 이들이 사형수의 인권 운운을 하는데, 문제는 사형수에 희생된 피해자의 인권입니다. 이미 인권 운운조차 할 수 없는 사람의 인권은 어쩐답니까?

마태우스 2009-01-24 10:3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앗 주드님 무플방지위원회에서 나오셨군요^^ 감사합니다 꾸벅. 정말 그래요. 사형수의 인권을 생각해야 인권의식이 한차원 높아진다는데, 그럴 때면 억울하게 죽은 피해자 생각이 나지요. 예컨대 예슬이를 죽인 그놈, 그에게 인권은 좀 사치가 아닐까 싶기도 하답니다.

순오기 2009-01-24 12:2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책은 영화보다 훨 낫지요~ 화면으로 다 보여줄 수 없는 절절함을 글로 보여줄 수 있는 작가에게 경배를!!^^
사형수의 인권보다 피해자의 인권을 먼저 생각하는 나라가 돼야 해요. 가해자 얼굴은 가리면서 피해자는 모든 걸 적나라하게 보여줄때마다 진저리를 칩니다.ㅜㅜ

새우범생 2009-02-09 04:1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안녕하세요. 그간 건강하셨죠? 종종 들러 눈팅을 했습니다만 정말 오랜만에 댓글 남깁니다. 사형제 존폐 문제는 제 오랜 고민거리 중에 하나였는데 최근에 다시 사형제 존치론에 힘을 실어주는 여론 분위기에 당혹스럽습니다. 연쇄살인범에 대한 들끓는 대중의 분노를 사형제 부활에만 쏟는다면 한 때의 분풀이에 지나지 않을 것 같아요. 물론 그 분풀이는 (마땅히) 불가피하고 나쁘다고 할 수도 없지만요. 다만 좀 더 생산적으로 활용될 방안을 모색했으면 좋겠습니다. 문득 조지 오웰의 「교수형」의 한 구절인 “한 정신이 줄어들면 그만큼 한 세상이 좁아진다”가 떠오릅니다. 죽어 마땅한, 죽여 마땅하다고 느껴지는 악한에게도 어떤 선한 정신이 있을 것이라는 마지막 믿음은 너무 사치스러운 것일지 고심스럽네요.

사형 존치론을 지지하는 이명박 정부의 태도와 적잖은 여론에도 불구하고 18대 국회에서도 사형제 폐지를 위한 입법적 노력이 이어져 반갑스럽습니다. 사형을 폐지하는 대신 사면이나 가석방·감형이 불가능한 종신징역형으로 대체하도록 한 사형 폐지에 관한 특별법 제정안의 문제점도 있지만 국민적 불안감을 눅이기 위한 과도기적 조치로 본다면 수긍할 만하고요. 또한 사형제에 대한 헌법재판소의 위헌법률심판도 올해 진행된다는 것도 주목할 일입니다. 이러한 사형제 존폐 논란과는 별개로 대법원 확정 선고를 받은 사형수의 형 집행을 미루는 것은 직무유기라는 항변은 설득력 있습니다. 법은 집행되어야 한다는 것이 법치주의의 기초이기 때문에 지금의 직무유기가 아무리 아름답더라도 서둘러 매듭지어야 할 것 같아요. 사법부의 손에 맡기기보다 입법부가 용단을 내리기를 희망하지만 쉽진 않겠죠.

영화 <데드맨 워킹>은 사형수의 참회만 묘사하지 않고 피해자 가족의 고통을 대비시켰습니다. 이 정도의 균형감각이 필요하다고 생각해요. 미국에서는 살인 피해자 유가족들과 가해자인 사형수 가족들이 모여 함께 교감을 나누는 “희망여행”이라는 행사가 열린다는데 우리는 이런 움직임이 드물고요. 흉악 범죄가 터질 때마다 범죄자의 응징에만 관심을 쏟을 뿐 범죄 피해자들의 괴로움을 다독이려는 사회적 노력을 별로 기울이지 않았음을 반성해야 할 듯싶습니다. 범죄피해자구조법에 따른 범죄피해구조금이 범죄 피해자와 가족들에게 실질적인 도움이 되지 못하고 있는 현실을 개선하려는 움직임이 나타나고 있어 그나마 다행입니다. 슬픈 일에 함께 화를 내는 것도 큰 위안이 되겠지만 국민이 낸 세금으로 연대한다면 고통을 더 나눌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을 해봅니다.

사형 존치론과 폐지론은 몇 가지 통계 수치로 결판날 사안은 아닌 모양입니다. 사형제는 상대적 찬반보다 절대적 찬반의 비율이 여느 사회적 다툼보다 크다는 점도 사안의 해결을 어렵게 만들죠. 사형의 범죄 억지효과가 너무 작다고 해도 존치론자들의 정의감과 피해자 보호에 대한 열망을 쉽게 눅이지는 못할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억지효과가 무척 크다고 해도 폐지론자들의 인간 존엄성과 불완전한 인간에 대한 연민을 헝클어뜨리기는 힘들겠죠. 양측의 화해할 수 없는 가치관의 차이는 사회적 합의를 더디게 만들지만 계속 논쟁이 이어지는 수밖에 없나 봅니다. 뜬금없이 횡설수설해서 죄송합니다. 조금 늦었지만 새해 복 많이 만드시고 나누시길 바라겠습니다. 건승, 건필하세요!

추신 - 『우리들의 행복한 시간』도 너무 훌륭한 이야기지만 마태우스님께서 일전에 리뷰 쓰신 적도 있는 다카노 가즈아키의 『13계단』 역시 사형제를 소재로 한 소설 가운데 앞 자리에 두어야 할 작품인 것 같아요. 또 읽고 싶어지네요.^^

마태우스 2009-02-10 10:3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새우범생님/안녕하셨어요 제 페이퍼보다 훨씬 수준높은 님의 댓글, 잘 읽었습니다. 님이 하신 말씀이 더 옳은 방향이겠지요. 하지만 제 마음이 그렇게 움직이지가 않네요. 잠잠해질만 하면 터져나오는 흉악범, 특히 여성을 상대로 한 범죄들을 보면서 사형제 폐지가 옳은 게 아닐까, 하는 마음이 일순간에 사라지네요.... 그리고 13계단은 잘못된 판결에 기인하지만, 유영철 같은 이는 그런 게 아닌지라. 글구 그네들이 감옥에서 반성을 하느냐면 그런 것도 아니고, 대접받으며 살고 있는 것 같아서 더더욱 얄밉습니다. 이거야 뭐, 계속적인 토론이 필요하겠지요
순오기님/네 맞습니다. 피해자의 고통에 대해서도 좀 신경을 썼으면 좋겠습니다. 자기 딸을 죽인 자가 살아 있다는 것, 그것만으로도 고통을 받을 수도 있는 일이잖아요...

생각하는 너부리 2009-06-30 11:3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책 정말 슬프지요. 저두 얼마나 울었는지 몰라요. 특히 마지막부분 윤수가 남긴 돈을 스탠드 지붕을 만드는데 쓰자던 그 부분이요. 형을 따라 학교와서 비가 오면 비를 맞고, 추우면 덜덜 떨며 그저 형을 기다리던 불쌍한 동생이 가슴아파 정말 많이 울었어요. 얼마전에 읽었는데 리뷰를 보니 반가워서 글 남깁니다.

은비령 2010-05-18 11:1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영화가 그리 재미 없는건 아니지만 책에 비할봐는 아니었다 ..백배동감입니다
지나가다가 들려 항상 서평만 읽고 갔는되
알라딘에서 그 유명하신 마태우스님의 서재에 첫 발자국을 남깁니다 ..

마태우스 2010-05-18 11:4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은비령님/안녕하세요. 첫 발자국 남겨주셔서 감사합니다. 제가 예전에나 그랬지, 지금은 별로 안유명합니다. 평범한 서재인끼리 친하게 지내요!
너부리님/세상에 1년 전의 댓글에 이제야 답을 드리다니요. 반갑습니다. 그간 안녕하셨는지요
 
속죄
이언 매큐언 지음, 한정아 옮김 / 문학동네 / 2003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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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가끔씩 조교선생이 내방에 와서 책을 빌려간다. 책을 빌려주는 건 무지 신경 쓰이는 일이지만, 그에겐 예외다. 한번도 책을 떼인 적이 없었으니까. 늘상 “선생님은 왜 재미없는 책만 사나요?”라고 하던 그가 이언 매큐언의 <속죄>를 갖다주면서는 이렇게 말한다.

“이건 좀 재밌네요.”

<속죄>가 다른 수많은 책들을 제치고 올해 안에 읽히게 된 건 순전히 그 조교선생 덕분이다.




소설은 매우 잔잔하고, 이렇다할 사건이 없는 것처럼 진행된다. 그러다 벌어진 사건, 이기심에 눈이 멀어있던 소녀 브리오니의 착각은 자신을 포함한 많은 사람의 인생을 불행하게 만든다. 결국 브리오니가 택한 길은 그로부터 수십년 후, 그날의 사건을 진실에 입각한 소설로 씀으로써 속죄를 하는 것이다 (이건 책 초반부에 나오는 얘기라 스포일러는 아닐 듯하다).




종교를 안믿어서 그런지 몰라도, 난 사후세계에 잘되는 것보다 살아생전 잘 사는 게 더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나쁜 놈이 현실에서 계속 잘되는 걸 보면, 비록 그가 지옥에 갈 확률이 100%라 해도, 속이 좀 상한다. 브리오니가 뒤늦게 진실을 밝힌다고 그게 속죄가 될까? 꼬여버린 남들의 인생은 되돌릴 수 없는데? 브리오니의 속죄는 그래서 부질없으며, 그 스스로에게만 위안이 될 뿐이다.




나중에 알고보니 이 책이 <어톤먼트>의 원작이란다. 영화로 만들기엔 뭔가 볼거리가 부족하지 않을까 싶었는데 네이버 평점이 무려 8.13이다. ‘끝나고 나서 가슴이 먹먹한 영화’ ‘묘한 여운에 휩싸인다’라는 평이라니, 갑자기 보고 싶어진다. 게다가 키라 나이틀리가 나온다니, 흠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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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로그인 2008-12-22 07:5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브리오니가 답답해서 미칠 것 같다는 평을 읽은지라 이 책을 피하리라 다짐했지만 마태님의 리뷰를 보니 구매 욕구가 급상승합니다. 소설 속 주인공의 착각만큼 괴롭게 만드는 것도 없어 피하려 했었더랬지요. 모든 속죄는, 혼자 흘리는 눈물같기도 해요. 자기 위안과 이제 끝났다, 하는 그런 마음. 하지만 속죄를 듣는 누군가에 대한 배려는 어떻게 해야하는 걸까요.

다락방 2008-12-22 08:2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윽. 저는 책을 읽고 너무 먹먹해서 영화로 나온다고 했을 때 또 조금 화가 났었어요. 제대로 풀어내지 못하면 어쩔테냣, 하고 말이죠. 게다가 포스터의 카피는 사랑만 얘기하잖아요. 이것은 엄연히 속죄에 대한 이야기인데! (그리고 전 키이라 나이틀리가 별로예요!)

저도 그래서 아직 영화로는 보지 않았답니다. 영화도 책처럼 좋을까요? 갸웃.

BRINY 2008-12-22 12:1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너무 답답할까봐 안봤는데, 오늘 영화라도 볼까봐요

무해한모리군 2008-12-22 12:3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너무 답답할까봐 영화부터 피하는 중입니다..
순진무구한 표정으로 남의 인생을 꼬이게 하는 주인공 생각만 해도 ㅠ.ㅠ

마태우스 2008-12-27 02:4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휘모리님/호호, 순진무구한 표정으로 남인생을 꼬이게 하다니, 표현 캡 멋집니다
브리니님/아 영화본지 오래됐군요 과속스캔들 보고픈데....
다락방님/키라 나이틀리가 별루군요 역시 사람은 자기 닮은 사람은 싫어한다니깐요^^
주드님/모든 속죄는 혼자 흘리는 눈물이라는 표현, 멋지십니다. 그래요 정말 그런 건지도 모르겠군요. 자기 위안과 끝났다는 마음, 그게 상대방의 마음을 풀어줄지는 모르지만 말입니다.
 
지금 행복해
성석제 지음 / 창비 / 2008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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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석제는 웃을 수 있는 책을 쓰는 작가였다. 언젠가 라디오에서 성석제가 나와 새 책 소개를 하기에 사야겠다고 마음을 먹었었는데, 라디오에서 오정희 씨와 얘기할 때의 성석제는 내가 알던 유머감각이 넘치는 바로 그 작가였다. 하지만 이번에 그의 책을 집어들며 약간 망설인 건, 내가 읽었던 그의 전작 <참말로 좋은 날>이 처연한 삶을 유머도 가미하지 않고 적나라하게 그렸기 때문이었다. ‘어, 이거 성석제 맞아?’라고 고개를 갸웃하며 끝까지 읽었던 기억이 난다.




이번 책은 어땠을까? 이전 작품이 ‘처연한 삶’이었다면, <지금 행복해>에 나오는 인물들은 하나같이 찌질한 인생들이다. 처연함과 찌질함은 어떻게 다를까. 사전을 찾아보니 더 모르겠기에, 난 내 마음대로 그 둘을 이렇게 구분하련다. ‘처연’이 먹고 사는 문제를 해결 못하는 데서 오는 비극이라면, ‘찌질’은 먹고는 사는 사람이 의식주 이외의 쾌락을 위해 다른 사람을 괴롭히는 것이라고. 그의 전작들에도 찌질한 주인공이 안나오는 건 아니지만, 이 책에서처럼 유머를 전혀 가미하지 않고 그리는 찌질함은 내게 안쓰러움만 줬다. 예컨대 이런 식. 능력 없는 남자 둘이 산에 가서 줄기차게 여자만 추구하는데, 잘 되는 건 하나도 없다. 이 때 부잣집 애들이 그들에게 친절을 베풀지만, 그 친절을 받다보니 배알이 꼴려 그네들을 두들겨 팬다. 이 소설들에서 성석제가 말하고자 하는 건 도대체 뭘까?




잠시 생각을 해보니 그는 “찌질함은 못가진 자들의 숙명이다”라고 걸 말하고 싶은 듯하다. 부자에 능력도 좋으면 걸어서 무전여행을 하는 대신 붉은 스포츠카를 탈 수가 있고, 매사에 여유가 있다. 김치도 없이 라면을 먹는 남자들에게 다가가 “불고기가 남았다”며 대접하는 여유라니. 그런 여유는 또한 여자들에게 어필하는 무기가 된다. 반면 능력이 없는 남자들이 여자와 놀려면 어떻게 해야 하나. 찌질해질 수밖에 없다. 여자가 다가올 리가 없으니 먼저 접근해야 하고, 그래서 구박을 받는다. 내가 잘가는 사이트에 이런 글귀가 올라온 기억이 난다.

“크리스마스날 여자와 보내려면 어떻게 해야 하나요? 참고로 저 나이 서른이고, 한번도 그날 여자를 만난 적이 없습니다.”




내 생각이 맞던 틀리던, 성석제는 변한 게 틀림없다. 그는 더 이상 유머를 쓰지 않기로 한 것 같다. 유머가 없는 성석제는 공선옥과 비슷한 느낌이다. 그가 왜 그렇게 됐을까. 경제불황 때문일까? 모르겠다. 그럼 성석제가 다음에 또 책을 내면 내가 살까? 이건 답을 안다. ‘산다’다. 유머가 없더라도 그의 책은 내게 묘한 여운을 남기니까. 아무래도 내가 성석제에게 인이 박힌 모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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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돌이 2008-12-22 01:1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전 유머감각이 펄펄 살아뛰는 성석제가 좋은데요. ㅠ.ㅠ

마태우스 2008-12-22 01:2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바람돌이님/어 저도 그렇습니다. 근데 아무래도 제가 그의 팬인가봐용^^

순오기 2008-12-22 09:3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성석제는 잘 몰라요~ 하지만 공선옥과 비슷한 느낌이라니 책은 감이 잡힐것 같아요.
한때는 공선옥이 지지리궁상스런 신산한 삶만 그려내서 멀리 했거든요.
나 살기도 힘들어 죽겠는데 굳이 책에서까지 그런 삶을 들여다 보고 싶지 않더라고요.ㅜㅜ

무해한모리군 2008-12-22 12:3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성석제님의 새 책이 나왔군요..
오 이 궁상맞은 시절에 유머가 시들다니..

마태우스 2008-12-27 02:4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휘모리님/글게 말입니다...사놓고 안읽은 성석제의 소풍을 좀 읽었어요. 그때만 해도 유머가 싱싱하게 살아있더군요.
순오기님/지지리궁상스런 삶, 굳이 책으로까지 읽긴 싫겠지요... 동의합니다. 하지만 제가 그런 책을 좋아하는 건, 제가 너무 받은 게 많아서 그렇게라도 미안함을 풀고픈 것 같습니다.

은비령 2010-05-18 11:2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웃을수 있는 책을 쓰는 작가 .. 훈훈한 작가죠
인간적이다 보면서 빵 터졌습니다 ..

마태우스 2010-05-18 11:4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은비령님, 대개 어떤 작가를 알아가면서 실망도 하고 그러는데, 성석제는 어찌된 게 갈수록 좋아집니다.^^
 
엄마를 부탁해
신경숙 지음 / 창비 / 2008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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십년쯤 전, 경제가 지금보다 더 어려웠던 그 시절, 김정현이란 작가가 <아버지>라는 책을 썼다. 내가 보기에 그 소설은 의문투성이였다. 아버지가 암에 걸린 걸 왜 아내와 자식들에게 숨기면서 술집 여자에게 털어놓을까? 더 희한한 건, 그게 어떻게 독자들의 공감을 얻으며 100만부가 넘게 팔렸는지 하는 점이었다. 그걸 보면 아버지라면 그래야 한다는 데 다들 동의한 모양이다. 하지만 자신의 남편이, 자신의 아버지가 암이라는 걸 숨겼다면 배신감을 느끼지 않을 사람이 과연 있을까? 어찌되었건 내 기억이 맞다면 김정현 씨는 그 이후 <어머니>라는 소설을 썼지만, 나를 포함해 그 소설에 관심을 갖는 사람은 없었던 모양이다. 그 소설마저 히트했다면 김정현 씨는 <이모>, <큰아버지>, <할아버지> 등의 시리즈를 냈을 테니, <어머니>가 망한 건 다행스런 일이다.


내가 <엄마를 부탁해>를 고르는 데 있어서 망설였다면, 그건 신경숙에 대한 개인의 선호도 때문이 아니라 어머니에 대한 소설은 <아버지>처럼 신파로 빠질 가능성이 높다고 봤기 때문이다. 신파의 정의를 찾아보면 '가식적이고 과장된 연기'라고 하는데, 신파가 무조건 나쁜 건 아니겠지만 신파로 점철된 소설을 읽는 건 고역일 테니까. 하지만 그건 내가 신경숙의 역량을 과소평가한 거였다. 소설은 화자를 바꿔가며 담담하게 어머니의 삶을 그리는데, 소설적 재미가 워낙 쏠쏠해 시종 스피디하게 읽을 수 있었다. 그게 내가 이 책에 별 다섯 개를 주는 이유다.


읽는 동안 어쩔 수 없이 우리 어머니에게 감정이입을 했다. 시종 무뚝뚝한 아버지를 보면서 "어쩜 우리 아버지랑 저리도 닮았을까?"는 생각을 했고, "당신 장례 치러줘야 하니 당신이 나보다 하루라도 먼저 죽으쇼"라고 하는 장면에선 나도 모르게 고개가 끄덕여졌다. 그래, 남자란 종족은 도무지 제대로 하는 게 하나도 없으니까. 그 어머니가 장남에게 모든 기대를 걸고 온갖 정성을 다 바치는 장면에선 내게 많은 기대를 하신 어머니가 생각나 죄송스런 마음이 들었다. 그 집의 아들, 딸들은 내가 보기에 더없이 효자, 효녀들이다. 일을 팽개치고 그렇게 오래도록 어머니를 찾으러 다니는 그네들, 과연 내 어머니가 실종되었다면 나도 그럴 수 있을지 생각을 해보게 된다. 다 읽고 난 뒤엔 갑자기 어머니한테 잘해야겠다 결심해 보지만, 이게 과연 얼마나 갈지 모르겠다.


요즘 사람들 치고 바쁘지 않은 사람이 없다. 나 또한 그렇다. 평소 안하던 연구를 하느라 아내로부터 "왜 결혼하니까 갑자기 연구하냐"는 핀잔도 듣지만, 이것저것 할 일들이 산적해 그 일들만 생각해도 머리가 아프고 마음이 떨려온다. 한가지 확실한 건 이렇게 살다간 10년쯤 뒤, 난 어머니께 평소 못했다며 가슴을 쥐어뜯고 있을 거다. 내 이름으로 된 논문이 50편이 있으면 뭐하나? 그래봤자 난 불효자식이란 레떼르를 달고 살아야 할텐데. 그러니 작심삼일일지라도 결심을 하나 하자. 그 바쁜 일들의 목록 1호에 어머니를 넣자. 아무리 바빠도 아침에 문자 한통씩은 넣어 드리자. 가끔 영화도 보여드리고, 컴퓨터도 가르쳐 드리자. 연말이니 송대관 디너 쇼 티켓을 끊어 드리는 것도 그리 어려운 일...이지만 할 수 없는 건 아니잖나? 작심삼일도 좋다. 삼일이라도 어머니께 잘하면 아무것도 안한 것보다 낫다. 이게 내가 이 책을 읽고 든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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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오기 2008-12-17 06:3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좋은 영화나 좋은 책은 그걸 보고 난 후 내 삶에 어떻게 작용했느냐? 물론 긍정적으로~ 그런 면에서 이 책은 이땅의 모든 자식들을 효자 효녀로 만드는 데 성공한 듯해요. 다들 눈물로 동감하고 효의 대열에 합류하겠노라 불끈 다짐하잖아요.^^ 이 책 읽고 부모님께 특히 엄마에게 전화 한 통 안 한 사람 없겠죠?

마태우스 2008-12-22 00:3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순오기님 안녕하세요 답이 넘 늦었지요? 후후, 그 뒤로 매일 문자 날리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 정도 가지고 효자라면 많이 부족하죠... 하여간 잘해야겠다는 마음이 지금도 변하진 않고 잇습니다 역시 책 속에 길이 있네요

순오기 2008-12-22 09:29   좋아요 0 | URL
아하~ 문자를 날리는군요. 저는 전화를 더 자주 하고요, 소설로 쓰면 몇 권은 될듯한 엄마의 지난 얘기를 들어드립니다.^^
사실은 이 책을 읽고도 리뷰를 어떻게 써야 될지 막막해서 엄마랑 얘기하다 보면 답이 나올거 같아서요.ㅜㅜ
 
자기만의 방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130
버지니아 울프 지음, 이미애 옮김 / 민음사 / 2006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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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끔씩, "진작 읽었으면 좋았을 걸"이란 탄식이 나오는 책을 만난다. 버지니아 울프가 쓴 <자기만의 방>도 그런 책 중 하나다. "여성에게 연 500파운드의 수입과 자기만의 방이 있다면 여성 중에서도 세익스피어가 나올 것"이라는 주장이 실린 <자기만의 방>도 설득력과 재미를 갖춘 명작이라고 생각하지만, 그보다 더 좋았던 건 두 번째 소설인 <3기니>였다.


'3기니'는 "전쟁을 방지하기 위해 자기 단체에 1기니를 기증해 달라"는 부탁에 대한 울프의 답신이다 (근데 제목이 왜 3기니일까?). 울프는 전쟁방지에 여성들이 나서야 한다는 말에는 동의한다. 하지만 여성은 돈을 벌지 않기 때문에 특정 사안에 대해 영향력을 미치기가 어렵다. 특히 여성 중에는 거액을 쾌척할 만큼 돈을 버는 전문직 종사자가 드물지 않는가? 그래서 울프는 1기니를 기증하기 위해 다음의 조건이 충족되어야 한다고 말한다.

"여성이 전문직에서 생계비를 벌도록 도와줌으로써... 독자적 견해라는 무기를 소유하도록 도우려는 것이니까요."

여성이 전문직에 많이 진출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울프는 그 시절 여성에게 열려 있지 않았던 교육의 기회를 여성에게 제공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울프는 염려한다. 심한 경쟁이 이루어지는 전문직의 생리상 여성이 전문직에 들어간다면 이런 사태가 벌어질지도 모른다는 것을.

"우리가 억제하고자 하는 바로 그 자질들을 고무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의문이 수표를 보내기 전에 일어나는 것이지요."

대체 어떤 자질들이기에?

"전문직에 종사하는 사람은 소유욕이 강해지고, 자기 권리가 조금만 침해당해도 몹시 신경을 곤두세우며...대단히 전투적이 됩니다. 그런 자질이 바로 전쟁을 유발하는 것이 아닌가요?"


울프가 이 책을 쓴 지 60여년이 지난 지금, 미흡하긴 해도 여성은 교육을 받을 기회를 얻었고, 전문직에도 제법 많은 여성들이 근무하고 있다. 하지만 울프의 우려는 괜한 것이 아니었다. 그 전문직에 종사하는 여성 중 남성 못지않게 전투적인 여성들을 어렵지 않게 관찰할 수 있으니 말이다. 대표적인 예가 전여옥 씨, 가끔씩 인터넷에 뜨는 그녀의 발언들을 보고 있노라면 정말이지 기가 차서 말이 안나올 때가 많다. 최근 화제가 됐던 "지금 매우 어렵지만 노무현 정권 때를 생각하면 그래도 견딜만 하다"는 그녀의 말은 혹시 그녀가 개그맨이 되려는 게 아닌가 의심을 품게 만든다. 국회에 간 여성이 남성보다 청렴하고 의정활동도 잘한다는 평가가 내려지면 뭐하는가? 전여옥 한명이 모든 물을 다 흐리고 있는데 말이다. 영등포 갑에 살면서 이런 얘기를 하는 게 누워서 침뱉기 같지만, 전쟁을 방지하기는커녕 없던 전쟁도 억지로 만드는 전여옥을 보면서 버지니아 울프의 말을 다시금 되새겨 본다.

"우리가 억제하고자 하는 바로 그 자질들을 고무한 것이 아닌가..."
전여옥 씨, 이제 우리 울프를 좀 쉬게 해줍시다. 전문직에 가있는 님을 보면서 울프 씨가 얼마나 슬프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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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여성 전문직
    from 내가 사귀는 이들, 翰林山房에서 2008-12-05 09:28 
     * 마태우스님의 <자기만의 방>의 서평 '울프를 읽으며 전여옥을 생각한다'에서 발췌  “여성이 전문직에서 생계비를 벌도록 도와줌으로써... 독자적 견해라는 무기를 소유하도록 도우려는 것이니까요.”  여성이 전문직에 많이 진출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울프는 그 시절 여성에게 열려 있지 않았던 교육의 기회를 여성에게 제공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울프는 염려한다. 심한 경쟁이 이루어지는 전
 
 
릴케 현상 2008-12-05 01:4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1등^^울프를 안 키우기 위해 저는 계속 백수로 살아야 할까 봐요

마립간 2008-12-05 09:2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서평의 일부를 저의 서재로 옮깁니다.

2008-12-05 09:49   URL
비밀 댓글입니다.

마태우스 2008-12-05 12:2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속삭님/안그래도 ㅊ연대를 그만두고 다른 데로 가야겠다 싶었는데, 그렇게 하겠습니다. 내년 1월부터 회비내겠습니다 꾸벅.
마립간님/오... 안녕하셨어요? 그러셔도 상관없습니다. 그때 오프에서 뵜던 님의 인자한 모습이 생각나네요. 날이 추워서 그런가봐요 홋홋.
자명한산책님/아...네? 네.... 그, 그게 무슨 말이온지...

2008-12-06 02:35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8-12-06 02:35   URL
비밀 댓글입니다.

다락방 2008-12-05 13:0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그러니까 별 다섯개짜리인가요? 버지니아 울프는 [댈러웨이 부인]을 읽고 너무 지루해서 신경 안쓰는 작가였는데 말이지요. 흐음. (읽어볼까...)

제목을 보고 혹시 버지니아 울프와 전여옥이 닮았다는 건가 하고 흠칫 놀라서 달려왔어요. ㅎㅎ

순오기 2008-12-06 19:4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이렇게 울프와 전여옥이 연결되는군요.ㅜㅜ

마태우스 2008-12-22 00:3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순오기님/헤헤 억지로 연결시켰죠
다락방님/댈러웨이 부인, 전 영화로 봤답니다. 당췌 뭘 말하려는 건지 보자고 한 사람이랑 싸웠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