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행복해
성석제 지음 / 창비 / 2008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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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석제는 웃을 수 있는 책을 쓰는 작가였다. 언젠가 라디오에서 성석제가 나와 새 책 소개를 하기에 사야겠다고 마음을 먹었었는데, 라디오에서 오정희 씨와 얘기할 때의 성석제는 내가 알던 유머감각이 넘치는 바로 그 작가였다. 하지만 이번에 그의 책을 집어들며 약간 망설인 건, 내가 읽었던 그의 전작 <참말로 좋은 날>이 처연한 삶을 유머도 가미하지 않고 적나라하게 그렸기 때문이었다. ‘어, 이거 성석제 맞아?’라고 고개를 갸웃하며 끝까지 읽었던 기억이 난다.




이번 책은 어땠을까? 이전 작품이 ‘처연한 삶’이었다면, <지금 행복해>에 나오는 인물들은 하나같이 찌질한 인생들이다. 처연함과 찌질함은 어떻게 다를까. 사전을 찾아보니 더 모르겠기에, 난 내 마음대로 그 둘을 이렇게 구분하련다. ‘처연’이 먹고 사는 문제를 해결 못하는 데서 오는 비극이라면, ‘찌질’은 먹고는 사는 사람이 의식주 이외의 쾌락을 위해 다른 사람을 괴롭히는 것이라고. 그의 전작들에도 찌질한 주인공이 안나오는 건 아니지만, 이 책에서처럼 유머를 전혀 가미하지 않고 그리는 찌질함은 내게 안쓰러움만 줬다. 예컨대 이런 식. 능력 없는 남자 둘이 산에 가서 줄기차게 여자만 추구하는데, 잘 되는 건 하나도 없다. 이 때 부잣집 애들이 그들에게 친절을 베풀지만, 그 친절을 받다보니 배알이 꼴려 그네들을 두들겨 팬다. 이 소설들에서 성석제가 말하고자 하는 건 도대체 뭘까?




잠시 생각을 해보니 그는 “찌질함은 못가진 자들의 숙명이다”라고 걸 말하고 싶은 듯하다. 부자에 능력도 좋으면 걸어서 무전여행을 하는 대신 붉은 스포츠카를 탈 수가 있고, 매사에 여유가 있다. 김치도 없이 라면을 먹는 남자들에게 다가가 “불고기가 남았다”며 대접하는 여유라니. 그런 여유는 또한 여자들에게 어필하는 무기가 된다. 반면 능력이 없는 남자들이 여자와 놀려면 어떻게 해야 하나. 찌질해질 수밖에 없다. 여자가 다가올 리가 없으니 먼저 접근해야 하고, 그래서 구박을 받는다. 내가 잘가는 사이트에 이런 글귀가 올라온 기억이 난다.

“크리스마스날 여자와 보내려면 어떻게 해야 하나요? 참고로 저 나이 서른이고, 한번도 그날 여자를 만난 적이 없습니다.”




내 생각이 맞던 틀리던, 성석제는 변한 게 틀림없다. 그는 더 이상 유머를 쓰지 않기로 한 것 같다. 유머가 없는 성석제는 공선옥과 비슷한 느낌이다. 그가 왜 그렇게 됐을까. 경제불황 때문일까? 모르겠다. 그럼 성석제가 다음에 또 책을 내면 내가 살까? 이건 답을 안다. ‘산다’다. 유머가 없더라도 그의 책은 내게 묘한 여운을 남기니까. 아무래도 내가 성석제에게 인이 박힌 모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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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돌이 2008-12-22 01:1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전 유머감각이 펄펄 살아뛰는 성석제가 좋은데요. ㅠ.ㅠ

마태우스 2008-12-22 01:2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바람돌이님/어 저도 그렇습니다. 근데 아무래도 제가 그의 팬인가봐용^^

순오기 2008-12-22 09:3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성석제는 잘 몰라요~ 하지만 공선옥과 비슷한 느낌이라니 책은 감이 잡힐것 같아요.
한때는 공선옥이 지지리궁상스런 신산한 삶만 그려내서 멀리 했거든요.
나 살기도 힘들어 죽겠는데 굳이 책에서까지 그런 삶을 들여다 보고 싶지 않더라고요.ㅜㅜ

무해한모리군 2008-12-22 12:3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성석제님의 새 책이 나왔군요..
오 이 궁상맞은 시절에 유머가 시들다니..

마태우스 2008-12-27 02:4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휘모리님/글게 말입니다...사놓고 안읽은 성석제의 소풍을 좀 읽었어요. 그때만 해도 유머가 싱싱하게 살아있더군요.
순오기님/지지리궁상스런 삶, 굳이 책으로까지 읽긴 싫겠지요... 동의합니다. 하지만 제가 그런 책을 좋아하는 건, 제가 너무 받은 게 많아서 그렇게라도 미안함을 풀고픈 것 같습니다.

은비령 2010-05-18 11:2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웃을수 있는 책을 쓰는 작가 .. 훈훈한 작가죠
인간적이다 보면서 빵 터졌습니다 ..

마태우스 2010-05-18 11:4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은비령님, 대개 어떤 작가를 알아가면서 실망도 하고 그러는데, 성석제는 어찌된 게 갈수록 좋아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