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를 부탁해
신경숙 지음 / 창비 / 2008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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십년쯤 전, 경제가 지금보다 더 어려웠던 그 시절, 김정현이란 작가가 <아버지>라는 책을 썼다. 내가 보기에 그 소설은 의문투성이였다. 아버지가 암에 걸린 걸 왜 아내와 자식들에게 숨기면서 술집 여자에게 털어놓을까? 더 희한한 건, 그게 어떻게 독자들의 공감을 얻으며 100만부가 넘게 팔렸는지 하는 점이었다. 그걸 보면 아버지라면 그래야 한다는 데 다들 동의한 모양이다. 하지만 자신의 남편이, 자신의 아버지가 암이라는 걸 숨겼다면 배신감을 느끼지 않을 사람이 과연 있을까? 어찌되었건 내 기억이 맞다면 김정현 씨는 그 이후 <어머니>라는 소설을 썼지만, 나를 포함해 그 소설에 관심을 갖는 사람은 없었던 모양이다. 그 소설마저 히트했다면 김정현 씨는 <이모>, <큰아버지>, <할아버지> 등의 시리즈를 냈을 테니, <어머니>가 망한 건 다행스런 일이다.


내가 <엄마를 부탁해>를 고르는 데 있어서 망설였다면, 그건 신경숙에 대한 개인의 선호도 때문이 아니라 어머니에 대한 소설은 <아버지>처럼 신파로 빠질 가능성이 높다고 봤기 때문이다. 신파의 정의를 찾아보면 '가식적이고 과장된 연기'라고 하는데, 신파가 무조건 나쁜 건 아니겠지만 신파로 점철된 소설을 읽는 건 고역일 테니까. 하지만 그건 내가 신경숙의 역량을 과소평가한 거였다. 소설은 화자를 바꿔가며 담담하게 어머니의 삶을 그리는데, 소설적 재미가 워낙 쏠쏠해 시종 스피디하게 읽을 수 있었다. 그게 내가 이 책에 별 다섯 개를 주는 이유다.


읽는 동안 어쩔 수 없이 우리 어머니에게 감정이입을 했다. 시종 무뚝뚝한 아버지를 보면서 "어쩜 우리 아버지랑 저리도 닮았을까?"는 생각을 했고, "당신 장례 치러줘야 하니 당신이 나보다 하루라도 먼저 죽으쇼"라고 하는 장면에선 나도 모르게 고개가 끄덕여졌다. 그래, 남자란 종족은 도무지 제대로 하는 게 하나도 없으니까. 그 어머니가 장남에게 모든 기대를 걸고 온갖 정성을 다 바치는 장면에선 내게 많은 기대를 하신 어머니가 생각나 죄송스런 마음이 들었다. 그 집의 아들, 딸들은 내가 보기에 더없이 효자, 효녀들이다. 일을 팽개치고 그렇게 오래도록 어머니를 찾으러 다니는 그네들, 과연 내 어머니가 실종되었다면 나도 그럴 수 있을지 생각을 해보게 된다. 다 읽고 난 뒤엔 갑자기 어머니한테 잘해야겠다 결심해 보지만, 이게 과연 얼마나 갈지 모르겠다.


요즘 사람들 치고 바쁘지 않은 사람이 없다. 나 또한 그렇다. 평소 안하던 연구를 하느라 아내로부터 "왜 결혼하니까 갑자기 연구하냐"는 핀잔도 듣지만, 이것저것 할 일들이 산적해 그 일들만 생각해도 머리가 아프고 마음이 떨려온다. 한가지 확실한 건 이렇게 살다간 10년쯤 뒤, 난 어머니께 평소 못했다며 가슴을 쥐어뜯고 있을 거다. 내 이름으로 된 논문이 50편이 있으면 뭐하나? 그래봤자 난 불효자식이란 레떼르를 달고 살아야 할텐데. 그러니 작심삼일일지라도 결심을 하나 하자. 그 바쁜 일들의 목록 1호에 어머니를 넣자. 아무리 바빠도 아침에 문자 한통씩은 넣어 드리자. 가끔 영화도 보여드리고, 컴퓨터도 가르쳐 드리자. 연말이니 송대관 디너 쇼 티켓을 끊어 드리는 것도 그리 어려운 일...이지만 할 수 없는 건 아니잖나? 작심삼일도 좋다. 삼일이라도 어머니께 잘하면 아무것도 안한 것보다 낫다. 이게 내가 이 책을 읽고 든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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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오기 2008-12-17 06:3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좋은 영화나 좋은 책은 그걸 보고 난 후 내 삶에 어떻게 작용했느냐? 물론 긍정적으로~ 그런 면에서 이 책은 이땅의 모든 자식들을 효자 효녀로 만드는 데 성공한 듯해요. 다들 눈물로 동감하고 효의 대열에 합류하겠노라 불끈 다짐하잖아요.^^ 이 책 읽고 부모님께 특히 엄마에게 전화 한 통 안 한 사람 없겠죠?

마태우스 2008-12-22 00:3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순오기님 안녕하세요 답이 넘 늦었지요? 후후, 그 뒤로 매일 문자 날리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 정도 가지고 효자라면 많이 부족하죠... 하여간 잘해야겠다는 마음이 지금도 변하진 않고 잇습니다 역시 책 속에 길이 있네요

순오기 2008-12-22 09:29   좋아요 0 | URL
아하~ 문자를 날리는군요. 저는 전화를 더 자주 하고요, 소설로 쓰면 몇 권은 될듯한 엄마의 지난 얘기를 들어드립니다.^^
사실은 이 책을 읽고도 리뷰를 어떻게 써야 될지 막막해서 엄마랑 얘기하다 보면 답이 나올거 같아서요.ㅜ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