속죄
이언 매큐언 지음, 한정아 옮김 / 문학동네 / 2003년 9월
평점 :
구판절판


 

가끔씩 조교선생이 내방에 와서 책을 빌려간다. 책을 빌려주는 건 무지 신경 쓰이는 일이지만, 그에겐 예외다. 한번도 책을 떼인 적이 없었으니까. 늘상 “선생님은 왜 재미없는 책만 사나요?”라고 하던 그가 이언 매큐언의 <속죄>를 갖다주면서는 이렇게 말한다.

“이건 좀 재밌네요.”

<속죄>가 다른 수많은 책들을 제치고 올해 안에 읽히게 된 건 순전히 그 조교선생 덕분이다.




소설은 매우 잔잔하고, 이렇다할 사건이 없는 것처럼 진행된다. 그러다 벌어진 사건, 이기심에 눈이 멀어있던 소녀 브리오니의 착각은 자신을 포함한 많은 사람의 인생을 불행하게 만든다. 결국 브리오니가 택한 길은 그로부터 수십년 후, 그날의 사건을 진실에 입각한 소설로 씀으로써 속죄를 하는 것이다 (이건 책 초반부에 나오는 얘기라 스포일러는 아닐 듯하다).




종교를 안믿어서 그런지 몰라도, 난 사후세계에 잘되는 것보다 살아생전 잘 사는 게 더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나쁜 놈이 현실에서 계속 잘되는 걸 보면, 비록 그가 지옥에 갈 확률이 100%라 해도, 속이 좀 상한다. 브리오니가 뒤늦게 진실을 밝힌다고 그게 속죄가 될까? 꼬여버린 남들의 인생은 되돌릴 수 없는데? 브리오니의 속죄는 그래서 부질없으며, 그 스스로에게만 위안이 될 뿐이다.




나중에 알고보니 이 책이 <어톤먼트>의 원작이란다. 영화로 만들기엔 뭔가 볼거리가 부족하지 않을까 싶었는데 네이버 평점이 무려 8.13이다. ‘끝나고 나서 가슴이 먹먹한 영화’ ‘묘한 여운에 휩싸인다’라는 평이라니, 갑자기 보고 싶어진다. 게다가 키라 나이틀리가 나온다니, 흠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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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로그인 2008-12-22 07:5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브리오니가 답답해서 미칠 것 같다는 평을 읽은지라 이 책을 피하리라 다짐했지만 마태님의 리뷰를 보니 구매 욕구가 급상승합니다. 소설 속 주인공의 착각만큼 괴롭게 만드는 것도 없어 피하려 했었더랬지요. 모든 속죄는, 혼자 흘리는 눈물같기도 해요. 자기 위안과 이제 끝났다, 하는 그런 마음. 하지만 속죄를 듣는 누군가에 대한 배려는 어떻게 해야하는 걸까요.

다락방 2008-12-22 08:2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윽. 저는 책을 읽고 너무 먹먹해서 영화로 나온다고 했을 때 또 조금 화가 났었어요. 제대로 풀어내지 못하면 어쩔테냣, 하고 말이죠. 게다가 포스터의 카피는 사랑만 얘기하잖아요. 이것은 엄연히 속죄에 대한 이야기인데! (그리고 전 키이라 나이틀리가 별로예요!)

저도 그래서 아직 영화로는 보지 않았답니다. 영화도 책처럼 좋을까요? 갸웃.

BRINY 2008-12-22 12:1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너무 답답할까봐 안봤는데, 오늘 영화라도 볼까봐요

무해한모리군 2008-12-22 12:3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너무 답답할까봐 영화부터 피하는 중입니다..
순진무구한 표정으로 남의 인생을 꼬이게 하는 주인공 생각만 해도 ㅠ.ㅠ

마태우스 2008-12-27 02:4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휘모리님/호호, 순진무구한 표정으로 남인생을 꼬이게 하다니, 표현 캡 멋집니다
브리니님/아 영화본지 오래됐군요 과속스캔들 보고픈데....
다락방님/키라 나이틀리가 별루군요 역시 사람은 자기 닮은 사람은 싫어한다니깐요^^
주드님/모든 속죄는 혼자 흘리는 눈물이라는 표현, 멋지십니다. 그래요 정말 그런 건지도 모르겠군요. 자기 위안과 끝났다는 마음, 그게 상대방의 마음을 풀어줄지는 모르지만 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