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들의 행복한 시간
공지영 지음 / 푸른숲 / 2005년 4월
평점 :
구판절판



책을 선물받아 놓고 오래도록 읽지 않은 이유는 이미 영화로 본 탓이었다. 4년이 지나 그 책을 집어든 건, 지하철을 오래 타야 하는데 마땅히 손에 잡히는 책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결말도 알기에 크게 기대하지 않았건만, 그게 아니었다. 초반부터 난 이 책에 빨려들어갔고, 다 읽을 때까지 헤어나오지 못했다. 영화가 그리 재미없던 건 아니었지만, 책에 비할 바는 못됐다. 그건 영화를 볼 때 유치하게 생각했던 '조벵이꽃'이 책에는 나오지 않은 덕분이기도 하지만, 정윤수가 <블루노트>에 쓴 어린 시절의 사연은 영화로 봤던 것보다 훨씬 절절했다.


물론 영화를 먼저 본 영향도 지대했다. 문유정이 나올 때마다 난 커다란 눈망울을 가진 이나영을 떠올렸고, 정윤수를 묘사할 땐 어쩔 수 없이 강동원을 생각했다. 정윤수의 키가 175센티라는 대목에선 "강동원은 그보다 큰데.."란 생각을 하기도 했다. 어찌되었건 주인공의 얼굴이 상상이 된 탓에 책이 더 잘 읽혔던 것 같다. 마지막 장을 읽을 땐, 그때도 지하철이었는데, 영화볼 땐 나오지 않던 눈물이 흘렀다. 책으로 얼굴을 가리면서 난 참 눈물이 많구나 싶었다. <도전 골든벨>에서 마지막 참가자가 탈락할 때, 그리고 친구들이 "괜찮아"를 외칠 때, 난 매번 눈물을 흘려댔다. 눈이 큰 사람이 울면 참 그럴듯한데, 눈이 작은 사람이 울면 없어 보인다. "저 놈 또 차였구나"라는 생각을 남들이 할까봐 걱정이다. 내 얼굴이 딱 차이기 좋게 생겼지 않은가?


<하루가 소중한 사람들>이라는 책을 읽었던 기억이 난다. 저자가 어머니 친구다보니 책을 받아서 읽었는데, 그분도 이 책에 나오는 모니카 수녀님처럼 사형수들을 찾아다니는 분이다. 훌륭한 분이란 생각은 들지만, 사형제에 대해 묻는다면 난 여전히 유지하는 게 낫다고 생각한다. 이게 다 유영철 때문인데, 하여간 이런 걸 보면 책 몇 권을 읽는다고 해서 그 사람이 기존에 가진 생각이 바뀌기는 어려운 듯하다. 이 책을 내게 선물해 주신, 지금은 연락이 끊긴 존경하는 그분께 감사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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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로그인 2009-01-24 10:2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사형제에 대해서는 많은 이들이 사형수의 인권 운운을 하는데, 문제는 사형수에 희생된 피해자의 인권입니다. 이미 인권 운운조차 할 수 없는 사람의 인권은 어쩐답니까?

마태우스 2009-01-24 10:3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앗 주드님 무플방지위원회에서 나오셨군요^^ 감사합니다 꾸벅. 정말 그래요. 사형수의 인권을 생각해야 인권의식이 한차원 높아진다는데, 그럴 때면 억울하게 죽은 피해자 생각이 나지요. 예컨대 예슬이를 죽인 그놈, 그에게 인권은 좀 사치가 아닐까 싶기도 하답니다.

순오기 2009-01-24 12:2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책은 영화보다 훨 낫지요~ 화면으로 다 보여줄 수 없는 절절함을 글로 보여줄 수 있는 작가에게 경배를!!^^
사형수의 인권보다 피해자의 인권을 먼저 생각하는 나라가 돼야 해요. 가해자 얼굴은 가리면서 피해자는 모든 걸 적나라하게 보여줄때마다 진저리를 칩니다.ㅜㅜ

새우범생 2009-02-09 04:1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안녕하세요. 그간 건강하셨죠? 종종 들러 눈팅을 했습니다만 정말 오랜만에 댓글 남깁니다. 사형제 존폐 문제는 제 오랜 고민거리 중에 하나였는데 최근에 다시 사형제 존치론에 힘을 실어주는 여론 분위기에 당혹스럽습니다. 연쇄살인범에 대한 들끓는 대중의 분노를 사형제 부활에만 쏟는다면 한 때의 분풀이에 지나지 않을 것 같아요. 물론 그 분풀이는 (마땅히) 불가피하고 나쁘다고 할 수도 없지만요. 다만 좀 더 생산적으로 활용될 방안을 모색했으면 좋겠습니다. 문득 조지 오웰의 「교수형」의 한 구절인 “한 정신이 줄어들면 그만큼 한 세상이 좁아진다”가 떠오릅니다. 죽어 마땅한, 죽여 마땅하다고 느껴지는 악한에게도 어떤 선한 정신이 있을 것이라는 마지막 믿음은 너무 사치스러운 것일지 고심스럽네요.

사형 존치론을 지지하는 이명박 정부의 태도와 적잖은 여론에도 불구하고 18대 국회에서도 사형제 폐지를 위한 입법적 노력이 이어져 반갑스럽습니다. 사형을 폐지하는 대신 사면이나 가석방·감형이 불가능한 종신징역형으로 대체하도록 한 사형 폐지에 관한 특별법 제정안의 문제점도 있지만 국민적 불안감을 눅이기 위한 과도기적 조치로 본다면 수긍할 만하고요. 또한 사형제에 대한 헌법재판소의 위헌법률심판도 올해 진행된다는 것도 주목할 일입니다. 이러한 사형제 존폐 논란과는 별개로 대법원 확정 선고를 받은 사형수의 형 집행을 미루는 것은 직무유기라는 항변은 설득력 있습니다. 법은 집행되어야 한다는 것이 법치주의의 기초이기 때문에 지금의 직무유기가 아무리 아름답더라도 서둘러 매듭지어야 할 것 같아요. 사법부의 손에 맡기기보다 입법부가 용단을 내리기를 희망하지만 쉽진 않겠죠.

영화 <데드맨 워킹>은 사형수의 참회만 묘사하지 않고 피해자 가족의 고통을 대비시켰습니다. 이 정도의 균형감각이 필요하다고 생각해요. 미국에서는 살인 피해자 유가족들과 가해자인 사형수 가족들이 모여 함께 교감을 나누는 “희망여행”이라는 행사가 열린다는데 우리는 이런 움직임이 드물고요. 흉악 범죄가 터질 때마다 범죄자의 응징에만 관심을 쏟을 뿐 범죄 피해자들의 괴로움을 다독이려는 사회적 노력을 별로 기울이지 않았음을 반성해야 할 듯싶습니다. 범죄피해자구조법에 따른 범죄피해구조금이 범죄 피해자와 가족들에게 실질적인 도움이 되지 못하고 있는 현실을 개선하려는 움직임이 나타나고 있어 그나마 다행입니다. 슬픈 일에 함께 화를 내는 것도 큰 위안이 되겠지만 국민이 낸 세금으로 연대한다면 고통을 더 나눌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을 해봅니다.

사형 존치론과 폐지론은 몇 가지 통계 수치로 결판날 사안은 아닌 모양입니다. 사형제는 상대적 찬반보다 절대적 찬반의 비율이 여느 사회적 다툼보다 크다는 점도 사안의 해결을 어렵게 만들죠. 사형의 범죄 억지효과가 너무 작다고 해도 존치론자들의 정의감과 피해자 보호에 대한 열망을 쉽게 눅이지는 못할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억지효과가 무척 크다고 해도 폐지론자들의 인간 존엄성과 불완전한 인간에 대한 연민을 헝클어뜨리기는 힘들겠죠. 양측의 화해할 수 없는 가치관의 차이는 사회적 합의를 더디게 만들지만 계속 논쟁이 이어지는 수밖에 없나 봅니다. 뜬금없이 횡설수설해서 죄송합니다. 조금 늦었지만 새해 복 많이 만드시고 나누시길 바라겠습니다. 건승, 건필하세요!

추신 - 『우리들의 행복한 시간』도 너무 훌륭한 이야기지만 마태우스님께서 일전에 리뷰 쓰신 적도 있는 다카노 가즈아키의 『13계단』 역시 사형제를 소재로 한 소설 가운데 앞 자리에 두어야 할 작품인 것 같아요. 또 읽고 싶어지네요.^^

마태우스 2009-02-10 10:3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새우범생님/안녕하셨어요 제 페이퍼보다 훨씬 수준높은 님의 댓글, 잘 읽었습니다. 님이 하신 말씀이 더 옳은 방향이겠지요. 하지만 제 마음이 그렇게 움직이지가 않네요. 잠잠해질만 하면 터져나오는 흉악범, 특히 여성을 상대로 한 범죄들을 보면서 사형제 폐지가 옳은 게 아닐까, 하는 마음이 일순간에 사라지네요.... 그리고 13계단은 잘못된 판결에 기인하지만, 유영철 같은 이는 그런 게 아닌지라. 글구 그네들이 감옥에서 반성을 하느냐면 그런 것도 아니고, 대접받으며 살고 있는 것 같아서 더더욱 얄밉습니다. 이거야 뭐, 계속적인 토론이 필요하겠지요
순오기님/네 맞습니다. 피해자의 고통에 대해서도 좀 신경을 썼으면 좋겠습니다. 자기 딸을 죽인 자가 살아 있다는 것, 그것만으로도 고통을 받을 수도 있는 일이잖아요...

생각하는 너부리 2009-06-30 11:3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책 정말 슬프지요. 저두 얼마나 울었는지 몰라요. 특히 마지막부분 윤수가 남긴 돈을 스탠드 지붕을 만드는데 쓰자던 그 부분이요. 형을 따라 학교와서 비가 오면 비를 맞고, 추우면 덜덜 떨며 그저 형을 기다리던 불쌍한 동생이 가슴아파 정말 많이 울었어요. 얼마전에 읽었는데 리뷰를 보니 반가워서 글 남깁니다.

은비령 2010-05-18 11:1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영화가 그리 재미 없는건 아니지만 책에 비할봐는 아니었다 ..백배동감입니다
지나가다가 들려 항상 서평만 읽고 갔는되
알라딘에서 그 유명하신 마태우스님의 서재에 첫 발자국을 남깁니다 ..

마태우스 2010-05-18 11:4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은비령님/안녕하세요. 첫 발자국 남겨주셔서 감사합니다. 제가 예전에나 그랬지, 지금은 별로 안유명합니다. 평범한 서재인끼리 친하게 지내요!
너부리님/세상에 1년 전의 댓글에 이제야 답을 드리다니요. 반갑습니다. 그간 안녕하셨는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