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알파가 테니스 모임에 나오지 않은 건 꽤 오래 된 일이다. 테니스를 좋아했고, 지난 2년간 위력적인 백핸드와 포핸드를 보여주던 그가 라켓을 놓은 이유는 돈 때문이었다. ‘이번주 칠 수 있냐’고 문자를 보내도 답이 없고, 전화를 걸어도 안받기에 뭐 이런 사람이 있냐 싶었는데, 알고보니 그는 같은 테니스 멤버 중 한명에게 500만원의 공사대금을 주지 않고 있었다. 돈을 주기로 한 날짜에서 다섯달이 흐른 뒤 친구는 알파의 회사로 전화를 했다. 놀랍게도 회사에선 공사 대금을 알파에게 이미 지급했단다. 이런 걸 전문용어로 공금횡령이라 할 것 같은데, 알파가 왜 그렇게 전화마저 피하는지 이해가 됐다.
친구는 말한다.
“정 사정이 어려우면 미리 말을 하지. 왜 준다준다 해놓고 시간을 끄냔 말야.”
사실 그랬다. 여기저기서 돈을 벌고 있는 친구인지라 500만원을 좀 늦게 받는다고 해서 큰일날 건 없었다. 친구가 답답한 건, 연락을 끊고 회피요법을 쓰고 있는 그의 태도였다.
“사업가는 역시 못믿을 존재야. 교수보다 질이 더 나쁘다니까.”
사실은 나도 빚이 좀 있다. ‘좀’이라고 했지만, 사실은 큰 빚이 있다. 갚기로 한 지가 벌써 두달이 더 지났다. 난 이렇게 말했었다.
“8월 초까진 힘들거든요. 그 이후에 어떻게 해볼께요.”
그 이후 내가 보여주는 행태는 알파와 다를 바가 없다.
“이번 주말까지 받을 수 있겠죠?”란 메일에 답변을 안해 버렸고-사실 메일을 열어보기도 두렵다-문자 메시지는 못본 체하거나 “정말 죄송합니다. 님 앞에 떳떳이 설 그날을 저도 기다려 봅니다”라는 추상적인 답변을 한다. 당연한 얘기지만, 한달에 한번은 만나던 사이건만 안만난지가 벌써 4개월째다. 참다못한 그가 문자를 보냈다.
“너무해요. 흑흑.”
그를 만나서 “사실 이러저러해서 앞으로 이러이러하게 하겠다, 그리고 그 날짜는 꼭 지키겠다”고 허심탄회하게 말한다면 그가 내 목을 조르기라도 할까? 있는데 안주는 게 아니라 능력이 안되서 못주는데 설마 죽이기야 하겠는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회피요법을 쓰는 건, 당장 야단맞는 게 무섭기 때문이다. 알파가 사업가이기 때문에 그런 것이 아니듯, 빚을 진 많은 사람들의 유전자에는 회피요법이 담겨 있다. 알파가 돈을 갚고 다시 테니스를 칠 수 있는 날을 꿈꾸는 것처럼, 나도 그에게 빚을 갚고 다시 예전처럼 술잔을 기울일 그날을 손꼽아 기다린다. 과연 그 날은 언제나 올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