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들어 통 러닝머신을 못하고 있다. 그도 그럴것이, 집에를 잘 안들어가고, 어쩌다 가도 술을 왕창 먹고 가니 뛸 수가 없는 것. 이러다간 러닝머신 기계가 빨래걸이로 정착되는 게 아닌가 약간 불안하다. 이번 학기의 바쁨이 끝나면 다시 달려봐야지.


어제 유전학 시험을 봤다. 문제지는 두장이지만 다 주관식이라 답을 쓰라고 B4 용지를 나눠줬다. 문제지를 나눠주고 남는 걸 회수했다. 여유있게 복사를 했는데 남는 게 하나다.

“어? 한 장밖에 안남았어요?”

시험이 시작된 후 한명이 들어온다. 마지막 문제지를 그에게 줬다. 5분 있으니 또 한명이 들어온다. 내가 갖고 있던 원본을 그에게 줬다. 조금 있다가 또 한명이 들어오자 난 당황했다.

“잠시만 기다려요. 제가 갖다줄께요.”

난 정말 비호같이 달려 내 방에 갔고, 여분으로 비축해둔 문제지를 캐비닛에서 꺼낸다. 다시 비호같이 달려 시험장에 간 뒤 그에게 시험지를 전달.


1분 후, 또 한명이 들어오자-그래도 시험인데 이렇게 늦게 들어오다니!!-난 정말 눈앞이 캄캄했다. 하지만 할 수 없었다. 비호보다 더 빠르게 내 방에 갔고, 컴퓨터를 켰고, 한글을 불렀고, 거기서 유전학 파일을 찾아 프린트를 했다(참고로 내 프린트는 맛이 가서, 어떤 문서든지 현재면으로 놓고 한 장씩 해야 한다). 그걸 늦게 온 학생에게 전달했다. 그러고 나서 물었다.

“이 학년은 도대체 몇 명인가요? 전 분명히 47장을 복사했는데..”

“44명이요.”라고 누군가가 대답한다. 그리고, 오른쪽 줄 맨 뒤에 있던 학생이 일어난다.

“선생님, 시험지 여기 남았는데요.”

그는 문제지 7장을 손에 들고 있었다. 너무 어이가 없어서 주저앉을 뻔했다. 내가 시험지 남은 게 없냐고 물었을 때, 그리고 감독을 하다말고 두 번이나 내 방에 갔다올 때 그는 도대체 뭘 하고 있었을까.


화를 낼 뻔했지만, 한 학생의 말이 내가 화내는 걸 막아줬다.

“교수님 화나셨다....”

그 말을 들으니 이상하게도 화가 풀려 버렸다. 그래서 이랬다.

“운동한 셈 치죠 뭐. 요즘 통 못뛰었거든요.”

그 말이 끝나고 나자 두명이 더 들어온다(하여간 예과 애들이란....). 그들에게 말했다.

“시험지 여분 많거든요. 두장씩 받으세요.”

난 정말로 시험지를 두장씩 나눠 줬다.


하지만 그때 운동한 건 별반 소용이 없을 듯하다. 어제 고기와 더불어 왕창 술을 마셨고, 오늘부터 2박3일 동안 학회에 간다. 학회에 간다는 건 다른 사람들을 만난다는 얘기고, 그건 곧 술을 마신다는 뜻이 되니까. 학회장까지 뛰어서 가고 싶다. 익산에서 버스로 한시간이니, 좀 멀긴 하다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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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인 2006-10-25 09:1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하아, 대단한 학생이네요. 참 착하기도 하시지.

야클 2006-10-25 09:2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비호가 랑이의 약자인가요?

BRINY 2006-10-25 09:3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교수님도 애들하고 지내면서 도 많이 닦으셨군요.

Mephistopheles 2006-10-25 09:4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 학생들은 복 받은 거에요..저 같았으면..그냥.. 드롭킥을....^^

하이드 2006-10-25 09:4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야클님 최고. 으하하하하하

비로그인 2006-10-25 09:5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야클님 ㅋㅋ~

저도 담에 마태님이 화낼 일 있음 미리
마태님 화나셨다~ 그래버릴까 봐요 ㅎㅎ(그럼 화 안내겠죠?^^)

건우와 연우 2006-10-25 10:0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정말 대단하십니다. 저라면 얼굴이 붉어졌을것 같은데...^^

호랑녀 2006-10-25 10:1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비호... 비만 호랑녀... 나네...ㅠㅠ

마노아 2006-10-25 10:5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운동만 한 게 아니라 인내심도 키우셨어요. ^^;;;

달콤한책 2006-10-25 11:0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학회에 간다는 건 다른 사람들을 만난다는 얘기고, 그건 곧 술을 마신다는 뜻이 되니까. 학회장까지 뛰어서 가고 싶다. 익산에서 버스로 한시간이니, 좀 멀긴 하다만."
으이그....내가 마태우스님 때문에 미쵸! 운동이 아니라 술이 고프다시는 거죠^^

sooninara 2006-10-25 11:1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익산에서 내려서 뛰어가시면???
그 학생..정말 미워욧!!

기인 2006-10-25 11:3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수도를 많이 하셨네요. 근데 요즘은 예과 친구들도 열심히 하더라고요. 대학국어 예과 애들 조교 맡아서 고생할 것 예상했는데, 오히려 경영대 애들이 더 속 썩이더라고요. ㅋㅋ 마태님 후배라 다들 성실해서 그런가요? ㅎㅎ

클리오 2006-10-25 11:5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정말 너무하는군요.. 화를 내시지 그랬어요. 그리고 늦게 들어온 학생에게 복사해오라고 시키시지.. --;

2006-10-25 11:57   URL
비밀 댓글입니다.

moonnight 2006-10-25 12:2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야클님 역시 대단하십니다. ^^; 근데 마교수님은 너무 착하세요. (혹시 늦게 온 학생이 미모의 여학생?;;) 저같음 난리났을거에요. -_-++

2006-10-25 13:15   URL
비밀 댓글입니다.

비로그인 2006-10-25 14:1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화나서 참느라 혼났어요.그래도 잘 참으셨어요.어른답게....

가시장미 2006-10-25 23:5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역시 형의 긍정적인 사고는~~
 많은 사람들에게 귀감이 되는군요! ^-^

 형~ 그래도 유산소 운동은
 최소한 20분은 해줘야 한다구요!

 나도 요즘 어찌나 열심히 하는지..
 ㅋㅋㅋ 증거 사진 제출~!!  

 으흐흐 술 줄이고 운동하삼!!


모1 2006-10-26 07:2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 긍정적인 자세..멋지십니다. 마태우스님..

세실 2006-10-26 09:4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어머 호호호 재밌어요. 비호같이 달려가는 님의 모습~~ 귀엽당.
화 나는 순간에도 자제하시는 님~ 역쉬 고수네요.

마태우스 2006-10-28 14:3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세실님/직접 보시면 더 빠르답니다 정말 비호같아요 어흥.^^
모1님/화내면 담에 뻘쭘하자나요.. 다행이죠^^
장미님/이게 얼마만의 댓글인가요. 몸을 열심히 만들고 있군요 으음...
승연님/한번 참으면 그 다음이 쭉 편하죠. 애들한테 화내면 뭐하겠어요 담번에 더 불편하기만 하지...^^
속삭이신 분/네 바로 그 얘들 맞습니다^^ 근데 선생님 덕분에 연애 성공했다는 아름다운 후일담은 아직 없네요. 내년에 본격적인 연애학 강의 기대하고 있을께요^^
달밤님/어디나 그렇지만 늦게온 학생은 다 남자! 달밤님도 화 안내셨을 거 같은데요 뭐. 지난번에 제가 공항에 두시간 늦게 갔을 때 와준 게 어디냐고 따뜻하게 웃어주셨자나요^^
속삭이신 분/갠적으로 친구가 별로 없는 사람을 추천합니다. 남자들 사이에선 인기 없지만 여자에겐 가장 좋은 애인이 그런 사람이죠...님의 미모라면 뭐, 어느 남자라도...^^
클리오님/근데요... 시험지를 학생수에 맞게 복사해 오는 건 제가 해야 할 일이어서요...
기인님/그, 그럴리가요. 걔네들이 득도를 했나 왜 그러죠^^
수니님/하나하나 보면 착한데, 이렇게 뭉치면 사고를 친답니다^^
달콤한 책님/요즘 점점 술이 세져서 기분이 좋습니다. 원없이 마시고 왔어요
마노아님/참는 자에게 복이 있겠지요 호호.
호랑녀님/우리 같이 노력해요 어흥.
건우와 연우님/전 너무 열심히 뛰었는지 얼굴이 창백했다는...^^
고양이님/설마요 전 미녀에겐 잘 화 안내요^^
하이드님/댓글론 제가 안되죠 야클님한테
메피님/발을 쓰는 건 조심해야 한답니다 박찬호가 그랬다가 정지 먹었죠...^^
브리니님/애들이랑 지내면서 그런 건 아니구요, 좀 더 어려운 밑바닥 생활을 했었죠
야클님/팬이어요 꺅!
조선인님/애들의 형으로 군림하고 싶은 사람이 그 정도로 화내면 안되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