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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루클린 풍자극
폴 오스터 지음, 황보석 옮김 / 열린책들 / 2005년 12월
평점 :
품절
내 연구실에 쌓여 있던 이 책을 조교선생이 가져가서 읽더니 “정말 재미있다.”고 한다. 웬만하면 그런 말을 안하는 사람인지라 그녀를 믿고 다른 사람에게 책을 사서 선물해줬다. 재밌다고, 고맙다는 인사를 받았다. 그렇게 4권을 선물했고, 재밌다는 대답을 모두에서 들었지만 정작 내가 읽은 건 어제부터였다. 그리고 오늘 마지막 장을 덮었다. 내가 아는 가장 흡인력 있는 작가 폴 오스터의 내공은 이번 책에서 유독 잘 발휘된 듯해, 다음 내용이 궁금해서 일이 손에 안잡힐 지경이었다.
보험업을 하다 은퇴한 후 브루클린에 정착한 사내가 겪는 여러 가지 일들을 저자는 무척이나 흥미있게 그려낸다. 근데 그 일들이란 게 다른 소설에 비하면 특별히 큰 게 아니며, 우리도 얼마든지 겪을 수 있는 잔잔한 것들이다. 식당 종업원을 좋아하는 주인공, 애가 둘 달린 유부녀를 좋아하는 총각, 전과자이면서 헌책방을 하는 또다른 남자, 저자의 능력에 따라 이런 것들도 얼마든지 재미있는 애깃거리가 될 수 있다는 걸 오스터의 책을 보면서 깨닫는다.
저자의 멋진 표현이 드러난 대목. “나 자신의 탁월한 추리 능력에 감탄한 나머지 나는 내 등을 두드려 줄 수 있는 또 하나의 내가 있었으면 싶었다.”
사실인지 아닌지는 모르지만 모르던 걸 알게 된 부분. 비트겐슈타인은 교사 생활을 하면서 애들을 학대했는데, 세월이 흐른 뒤 참회를 하고 어른이 된 그들을 찾아가 용서를 빈다. 그런데 “단 한명도 그를 기꺼이 용서해 주려고 하지 않았다.”
대 철학자와 폭력교사는 영 안어울린다.
아쉬운 대목. 폴 오스터는 분명 친절한 작가는 아니다. 이 책에는 하는 장면이 딱 한번 나오는데, 주인공인 나의 목격담에 대한 묘사는 이게 다다. “나는 그녀가 톰의 침대로 끼어드는 소리에 이어 그 뒤로 벌어지는 모든 소리를 다 들었다...무슨 이유로 그에 뒤따른 신음소리를 하나하나 다 묘사해야 할까? 그들에겐 그들 나름대로 프라이버시가 있고, 나는 이쯤에서 그 일에 대한 이야기를 그만 접으려 한다.” 이거야 그럴 수 있다. 문제는 다음 구절. “독자들이 이의를 제기한다면 나는 그들에게 눈을 감고 상상력을 동원해 보라고 할 것이다.”
상상은 꿈이 많거나 경험이 많은 사람이나 가능한 것이다. 유감스럽게도 난, 둘 다 아니다. 나이에 비해 경험이 부족하고, 마흔이란 나이는 상상력이 이미 고갈된 시점이니까. 다음번엔 자세한 묘사를 해달라. 소설의 주인공에겐 프라이버시가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