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인터넷 뉴스로 박근혜 대표의 피습 사건을 봤을 때, 난 그저 멍했다. 현실이 아닌 것 같은 느낌이랄까. 동영상으로 본 피습 장면은 <13일의 금요일>보다 훨씬 더 끔찍했다. 제이슨은 외모도 끔찍하고, 살인할 때도 최대한 뜸을 들이면서 피해자를 공포에 질리게 만든다. 하지만 범인은 어떤가. 손으로 얼굴을 쓰다듬는 것처럼 보였는데, 그 손에 칼이 들려 있었다니. 아무것도 아닌 것처럼 태연히 얼굴을 긋는 범인의 행동은 얼마나 공포스러운가. 원래 오전 중 <파이널 데스티네이션>을 혼자 보러 갈 계획이었는데, 볼 마음이 사라져 버렸다.
11센티는 너무 길고, 3센티는 너무 깊다. 안면신경 마비가 안온 건 다행이지만, 흉터가 남은 박대표의 얼굴을 보는 것은 얼마나 슬픈 일일까. 박대표를 한번도 좋아해본 적이 없는 나도 이렇게 슬픈데, 그를 지지하는 사람들은 얼마나 충격을 받았을까. 때문에 그들이 분노의 화살을 노무현에게 돌리는 건 이해할 수 있다. 범인이 열린우리당에 월 2천원의 당비를 내 왔다 하니, 배후가 어떻게 밝혀지든 사람들은 이번 사건을 여당과 관련지어 생각할 것이다. 정치적 계산에 밝지 않은 사람이라도 한나라당의 선거 압승을 예상할 수 있겠지만, 열린우리당의 행태로 보건대 그게 그렇게 속상할 일은 아니다.
난 지금 딱 한가지가 걱정된다. 댓글들 중 전라도를 욕하는 글을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어서다. 검찰더러 “왜 범인의 출신지를 밝히지 않느냐?”고 촉구하고, 범인을 아예 전라도 사람으로 단정짓고 맹공을 퍼붓는다. 그래서 두렵다. 정말 범인이 전라도 출신일까봐. 혹은 그의 아내가 전라도 사람일까봐. 그것도 아니면 친척 중 전라도 사람이 혹시 있을까봐. 연좌제가 없어졌다고 하지만, 전라도는 아직 연좌제니까. ‘국민작가’라는 이문열이 책반환 운동에 나선 화덕헌을 전라도 사람으로 몰아가기 위해 부모는 물론이고 친척들의 고향이 전라도가 아니냐고 물었던 것처럼, 8촌 이내에 전라도 사람이 하나라도 있으면 그의 고향은 전라도가 된다. 대형사건의 범인이 전라도로 밝혀질 때마다 “전라도 사람들은...” 하면서 쪼아대는 친구분들 때문에 가슴앓이를 하신 어머니처럼, 전라도에서 2년을 채 살지 못했던 나 역시 고향이 어디냐는 질문에 여전히 대답하기를 망설이고, 같은 지역 출신이라 지지한단 소리를 들을까봐 97년 대선 때 DJ를 욕하는 편에 서곤 했다.
그런 판국이니, 이번 사건의 경우 내가 범인의 고향에 민감한 건 당연한 일이다. 다른 어떤 지역도 상관없다. 그저 범인이 전라도와는 털끝만큼도 연관이 없는 사람이라면 좋겠다. 이게 큰 사건 때마다 겪어야 하는 전라도인의 마음고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