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에 검거된 세칭 ‘발바리’의 행각은 무척 충격적이다. 8년 동안 DNA 검사를 통해 확인된 사건만 77건, 추가로 조사 중인 사건을 합친다면 100건을 훌쩍 넘을 것 같다. 그런 파렴치한 놈에게 왜 ‘발바리’라는 호칭을 붙여 줬는지 이해가 안가지만, 그 사건이 충격으로 다가오는 것은 그런 나쁜 놈이 평범한 가장이라는 사실이다. 게다가 그놈이 딸을 가진 아버지라는 얘기까지 듣고나면 그저 한숨만 나올 뿐이다.


한나 아렌트라는 철학자는 피고석에 있는 나치 전범 아이히만을 보고 이렇게 신음했단다.

“악(惡)이 저렇게 평범하다니….”

그는 그 경험을 토대로 ‘악의 평범성’이라는 개념을 발전시키는데, 그런 경우는 도처에서 찾아볼 수가 있다. 잔인한 고문에 시달렸던 김근태의 법정 증언을 보자.

“그들은 고문을 하면서도, 시집간 딸이 잘 사는지 모르겠다, 아들놈이 오늘 체력장을 잘 치렀는지 모르겠다는 말도 했습니다. 자식을 걱정하는 그들이 고문도 하는, 인간의 양면성을 어떻게 해석하면 좋겠습니까?”


꼭 사람을 죽여야만 희대의 범죄인 것은 아니다. 임수경의 아들이 필리핀에서 죽었을 때, 거기 달린 댓글들은 과연 이들이 인간인지 의심스러울 정도다.

["불쌍하다. 명복을 빈다고 말해야겠지만, 솔직히 쌤통이다" (id:okokha, 하**)

"인간적인 정리로, 또 나의 인격으로 할 말은 아니지만서도 솔직한 소회는 왜 이 정신나간 년의 아들이 하나 밖에 없나 하는 아쉬움이 생긴다!"(id:beqqy, 이**)

"안댔지만 국민의 저주가 하늘을 감동시킨 것 같다!!!"(id:bokean, 김**)

"거참 잘 죽엇다.. 빠알갱이뇬 아들이믄 죽어 싸지~" (id:baginni 박*)

"드디어 임수경이가 천벌을 받는구나!...드디어 천벌을 받았어.죽은 애한테는 안됐지만 에미에게 천벌을 주는 것은 그것 밖에 없다. 살아 생지옥을 봐야지....이 개만도 못한 년아. 십오년 묵은 체증이 이제야 가라 앉는구나."(id:777star 김**) ]

다행히 이 악플러들 중 몇 명은 처벌을 받았지만, 이들은 대개 40-50대의 고학력 인사이며, 그 중에는 대학교수까지 있다고 한다(참고로 이 일로 인해 기소된 사람 중 서모씨는 나와 아무 상관이 없다).


우리는 희대의 범죄자일수록 “평소 우울하고 남과 잘 어울리지 못하며 파괴적인 성향이 강했다.”는 진단을 받아야 안심을 하지만, 원래 악은 이렇듯 평범하고 별 문제 없어 보이는 사람 속에 있다. 그런 생각을 하면 이 사회가 갑자기 소름 끼치는 곳으로 느껴지지만, 남 탓만 할 게 아니라 내 안에도 그런 악의 씨앗이 있는 건 아닌지 잘 찾아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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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란여우 2006-02-01 10:2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음, 평범하게 살지 말아야겠어요..^^
그래서 제가 염소를 키우는 거 아닙니까...
넘 평범한건가?....아이, 몰라요. 메에에~

로렌초의시종 2006-02-01 10:2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나의 인격으로 할 말은 아니지만서도'-참 웃기고 자빠져 계시는구만요ㅋㅋㅋ 그 잘난 인격이 어느 정도시기에 저런말을 하고도 나의 '인격'이라는 말이 나올까요? 저따위 말을 지껄여놓고도 자기가 인격이 있다고 생각할 정도라면 언덕 위에 있는 하얀집에 가셔야겠군요.

코마개 2006-02-01 10:3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 어제 생로명사의 비밀에서 마태님 봤어요...^^

마태우스 2006-02-01 10:3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강쥐님/앗 그렇군요 전 술마시느라 못봤는데...^^
로렌초님/그렇죠? 정말 어이없죠? 처벌 수위가 너무 낮은 게 개인적으론 아쉽더이다. 100만원에 약식기소라니. 물론 벌금내는 사람은 억울하게 느껴지겠지만, 그 악플을 다시금 보고 있자니 화가 마구 나네요
여우님/반갑습니다 여우님, 설은 잘 쇠셨나요? 염소는 잘 있지요? 여우님은 결코 평범한 분이 아닙니다. 평범한 분이 리뷰 평균 11회의 추천, 페이퍼 평균 9.7회의 추천을 받는답니까???

이리스 2006-02-01 10:4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님으 말에 동감입니다. 악은 도처에 평범한 얼굴을 하고 무심히 우리를 바라보다 어느날 도끼로 머리를 찍는게 아닌가 하는...

Mephistopheles 2006-02-01 10:4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뜨끔....!
알라딘 닉이 이 모양이니 조금은 착하게 살아야 하겠다는 생각이 드는
글이였습니다..
그래도 저 악플러들은 미련맞고 멍청하다는 생각은 변함없군요..

비로그인 2006-02-01 11:0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동감입니다. 저도 그러한 걸 보면 인간심리에 대해 연구해보고 싶어져요. 저 자신에 대한것도 마찬가지로....

moonnight 2006-02-01 11:1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내 안에도 저런 악이 숨어있는 게 아닐까 싶어 무섭습니다. -_-; 맞아요. 나쁜 거뜰은 얼굴만 딱 봐도 나쁜 놈 -_-+ 이렇게 씌어있어야 하는데 정말정말 흉악범이 정말정말 평범한 얼굴을 하고 있으면 힘이 쭉 빠지죠. 무시무시한 댓글을 달아놓는 악플러들도 그렇고. 무서운 세상입니다. ㅠㅠ

라주미힌 2006-02-01 11:1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처벌한데니깐 악플러들 대부분 숨었어요 ㅎㅎㅎ

하늘바람 2006-02-01 11:2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세상에 무슨 악플인가 했더니 해도 참 너무 하군요. 그래서 가끔 인터넷서 본명과 시진을 실어주어야 해요. 마태님과 야클님처럼^6

산사춘 2006-02-01 11:5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역시 선을 행하는 것보다 각자 악을 줄이려 노력하는 게 더 중요하겠어요. 저도 제 안의 공격성을 다스리느라 여지껏 노력하고 있는 중입니다.

생각하는 너부리 2006-02-01 12:1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늘 내 안에 숨겨져 있는 악에 대해 늘 두려운 맘으로 생각해요. 전 인간에게 악도 부정할 수 없는 부분이라고 생각하거든요. 다만 어떻게 잘 다스리며 사는가의 문제이지요. 겉으로만 사람을 판단해서는 안된다는 거 다시 한번 생각하게 되네요.

플라시보 2006-02-01 21:0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제 생각에는 어떤 인간이건 그 안에 선도 악도 같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다만 어떻게 누르느냐 혹은 어떻게 삭이느냐의 문제인것 같습니다. 선도 드러내야 하듯. 악도 드러내지 않으면 악이 아니니까요. 그래서 우리가 배우고 생각하고 다른 사람들과 관계도 맺고 더 크게는 눈물도 흘리는게 아닌가 싶습니다. 자기 안에 있는 악을 누르려구요...

깍두기 2006-02-01 22:1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임수경씨에게 달린 댓글이 뭔가 했더니, 정말 심했다.
악은 평범하다, 동의해요. 내 속에도 있어요.

마태우스 2006-02-02 10:3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깍두기님/좀 심하죠? 설마 깍두기님 안에도 악이 있을까....??
플라시보님/앗 님 댓글 너무 멋있잖아요! 자기 안의 악을 누르기 위해 관계를 맺고 눈물도 흘린다....와와...
너부리님/그래요 전 멀쩡하게 생긴 놈이 왜그래,라는 말을 들으면 조금 짜증나요. 이렇게 반문해요. "그럼 나같이 이상하게 생긴 놈만 그래야 해?"
산사춘님/춘님의 공격성이야 귀여운 수준이지요 맘껏 발휘해 주세요!
하늘바람님/호홋 그렇지요? 참고로 야클님은 정말 고매한 인격자십니다
라주미힌님/이영표 부친상 때도 네이버에 악플들 조금 있더이다. 고소하다느니...
달밤님/제 말이 그말입니다. 달밤님같은 미녀분이 안심하고 살 수 있는 세상을 꿈꾸어 봅니다.
나를 찾아서님/제가 행한 악행도 사실 만만치 않답니다 ㅠㅠ 저는 인간심리보다 제 심리에 대해 연구하는 게 좋을 듯....
메피님/호홋 닉과 악행은 별 상관이 없지 않을까요? 님의 닉은 아주 문학적이고 멋지십니다^^
낡은구두님/그러게요.. 악은 왜 평범한 것인지요.. 뿔이라도 나면 좋을텐데...

승주나무 2006-02-09 04:0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제가 볼 때 '악의 평범성'보다 더 근본적인 것은 '악에 대한 무지'가 아닌가 생각합니다. 인간에 대한 전반적인 무지가 깊어질수록 '악'도 전염성이 더 빠르고, 기계적이 되고 있는 것 같습니다. 평범한 고문자들 '악하다'는 카테고리에 넣기에는 모자람이 있지만, 그들은 '무지하다'고 할 수는 있습니다. 만약에 무지하지 않다면 '문제'를 의식하지 않았겠어요. 암튼 '악의 평범성'은 몹시 신선한 물음이네요.
'악'이라는 카테고리는 몹시 위험합니다. 위에 있는 많은 '의분의 댓글'에서도 '단절'이 느껴집니다. 무지는 힘이 흩어지는 원리이며, 지혜는 힘이 모아지는 원리라고 합니다. 그래서 적장끼리 친구가 될 수 있지만, 쩨쩨한 동료끼리는 아무리 해도 합심할 수가 없습니다. 죄송해요^^저도 좀 흥분하고 말았군요..

파스테르나크의 '의사 지바고'에서 지바고가 땡볕 여름에 밭을 일구면서, 위대한 발견을 한 구절이 생각납니다. 위대한 변화라는 것은 거창한 곳이 아니라, 아무도 모르고 무심코 지나가는 어느 사소한 일상에서부터 시작한다는 사실은 제게도 큰 울림이었습니다.
신디 시핸 엄마의 이야기와 같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