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에필로그
내 방에 물건을 팔러온 외판원에게 난 언제나 이렇게 말한다.
"전 조교구요 교수님 서울 가셨는데요."
그러면 그들은 십중팔구 나가 버린다. 치, 조교는 뭐 사람도 아닌가?
발단
공대 교수가 전화를 했다.
"저희 학생 하나가 많이 어렵습니다. 의예과 조교로 좀 뽑아 주시면 안될까요?"
"네... 후보가 세명 쯤 있는데(사실은 둘) 선생님 의견을 많이 참작하겠습니다."
결국 난 다른 사람을 뽑았다.
전개
엊그제 전화가 왔다.
"서민 교수님 계십니까?"
목소리가 공대 교수와 비슷했다. 미안하면 피해 버리는 성격상 난 내가 나라고 말할 수가 없었다.
"교수님 지금 안계시는데요."
"번호는 맞습니까?"
"네, 서울 가셨어요."
전화는 끊어졌다.
절정
오늘 아침 또다시 전화벨이 울렸다. 엊그제 그 목소리다. 이번만큼은 피할 수 없겠다 싶어 난 내가 나라는 걸 순순히 인정했다.
"전데요...."
"안녕하십니까. 전 xx의과대학 xx과의 xxx라고 합니다."
"...(일단 안도)근데 혹시 저를 아시나요?"
"그럼요, 알지요. 십년쯤 전에 선생님께서 웃기는 법에 대해 방송에 나와서 말하지 않았습니까?"
내가 그랬었나? 참 허튼 짓 많이 했군.
"다름이 아니라 선생님께 강의 좀 부탁드리려구요. 예과생들에게 의사 말고 다른 길도 있다는 걸 좀 알려 주시면 좋겠습니다. 1시간이구요, 시간표는 제가 보내드리겠습니다."
휴우, 다행이다. 난 또 공대 교수가 추궁이라도 하면 어쩌나 싶었는데. 상식적으로 생각하면 추궁이란 게 말이 안되는데, 역시 난 너무 소심하다.
결말
그가 용건을 다 말한 뒤 난 그에게 사과했다.
"선생님, 엊그제도 제게 전화하셨었죠? 그때 제가 받았는데 저 아니라고 했거든요. 그때 좀 전화오면 안되는 데가 있어서 그랬는데, 하여간 죄송합니다."
그는 호탕하게 웃어 줌으로써 내 사과를 받아들였다. 아름다운 오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