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예과조교가 자기 과의 후배를 추천했었다. 생각해 보겠다고 돌려보냈다. 그 과 교수한테서 전화도 왔었다. 다행히 내가 안받았다. 전에도 말했지만 난 대학원에 다니지 않는 사람을 뽑고 싶었다. 대학원 핑계를 대고 늘 자리에 없었던 이번 조교에게 실망한 탓이다. 난 본과 조교에게 사람을 하나 구해 달라고 부탁을 했다. 비정규직으로 2년간 근무하는 조건이 그리 만족스럽지 않은 탓인지 사람은 쉽사리 구해지지 않았다.


어떻게 알았는지 공대 대학원생 하나가 날 찾아왔다. 조교로 일하겠단다.

“남들이 그쪽을 성실하다고 하나요?”

“네, 그렇습니다.”

그는 자신의 어려운 사정을 얘기했다. 형이 교통사고가 났고, 그래서 입원 중이고, 대학원 학비를 대는 것도 너무 어렵고.... 사정은 정말 딱했다. 그리고 그의 말대로 그에게서는 ‘성실함’이 느껴졌다. 본과 조교가 사람을 구하지 못한다면 그를 뽑을 생각이었다. 그가 비록 대학원생일지라도.


본과 조교에게서 연락이 왔다.

“사람 구했어요!”

어제 오후, 면접을 봤다. 여자였고, 성격도 좋아 보였다.

“사소한 일로 삐져서 몇 달씩 말 안한 적이 있나요?”(난 있다!)

“아니요.”

“화가 나서 누굴 때리거나 한 적이 있나요?”

“아니요.”

“주량은 어느 정도??”

방에 올라가서 고민에 고민을 거듭했다. 집안이 어려운 사람을 도와줘야 하는 걸까, 내가 도움받을 사람을 뽑아야 할까. 공대 교수에게서 전화가 왔다. 자기 애를 우선적으로 고려해 달란다.

“형편이 많이 어렵습니다.”

알았다고 전화를 끊었다.


버스를 타고 퇴근을 하면서 내내 고민을 했다 (사실은 내내 잤고, 고민은 조금 했다). 그 뒤 술을 마시면서 계속 고민을 했다 (사실은 미녀와 즐겁게 수다를 떨었고, 가끔씩 고민했다). 밤 9시 40분, 결국 난 그녀에게 문자를 보냈다.

“앞으로 열심히 일해 봅시다.”

답이 왔다.

“교수님, 정말 감사합니다. 열심히 할께요.”

내가 뭔가를 많이 시키는 사람은 아니니 열심히 할 필요까지는 없을 것 같다. 문제는 내 연락을 기다리고 있을 그 대학원생에게 어떻게 연락을 하느냐는 것. 지금은 미안해서 도저히 연락을 못하겠다.


누군가를 뽑는 일은 참 어려운 것 같다. 교수 채용이야 나 말고도 세명의 심사위원이 더 있지만, 이번처럼 전적으로 결정권이 내게 맡겨진 경우라면 고뇌가 깊어질 수밖에. 높은 자리에 올라가면 그런 고민을 훨씬 더 자주 해야 할 터, 난 더 이상 높이 올라가지 않으련다. 내 보직은 의예과장이 끝이다.


댓글(16)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라주미힌 2006-01-07 11:1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니.! 마태우스님 성차별 같은데요.. ㅎㅎㅎ

하늘바람 2006-01-07 11:2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런 고충이 있군요. 저도 예전에 조교를 해 볼까 생각한 적이 있었어요 왜냐면 하는 사람을 보니 무척 편해보이더라고요 자기 방도 있고^^ 요즘 취업난대문에 많은 사람들이 힘겨워하는데 부디 모두 잘되었으면 좋겠네요

paviana 2006-01-07 11:3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ㅋㅋ 저도 성차별 같아요..

진주 2006-01-07 11:4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전, 마태님이 그 대학원생을 뽑으실 줄 알았어요...미녀 싫어~~~~~

마늘빵 2006-01-07 13:0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저도 그 대학원생 뽑아주실 줄 알았는데. 불쌍.

야클 2006-01-07 13:4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흠.... 그 공대생이 이준기 정도만 생겼더라도.... -_-+

미미달 2006-01-07 17:5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음.. 조금 의외군요. ;

모1 2006-01-07 19:5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공대생 뽑을줄 알았어요. 하여튼 그 여자분이 일 잘하셨으면 좋겠네요. 그런데..그 여자분이 미녀셨던가요? ---의혹...

moonnight 2006-01-07 21:4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앗. 저도 공대생을 뽑으신 걸로 결론이 날 줄 알았다는. ^^; 다른 이유가 더 있겠죠. 미녀인 것 외에. ;; 그, 그런데 야클님 댓글 너무 웃겨요. ^^;;;

엔리꼬 2006-01-07 23:3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음.. 조교도 뽑기 힘든데, 하물며 배우자는..

사마천 2006-01-08 00:0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주량이 얼마나 물었닥 안뽑아 줄 경우, 혹시 나중에 면접시 발견되는 성희롱 사례 등으로 연결되는 건 아닐까요?

Mephistopheles 2006-01-08 09:3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주사위는 이미 던져졌네요..사정이 어려운 공대학이 안되긴 했지만...앞으로 그 여자조교분이 마태님 일 많이 도와 드렸으면 좋겠습니다..^^ (야클님 댓글....댓글 추천 같은 건 없는 겁니까..?)

2006-01-08 09:41   URL
비밀 댓글입니다.

마태우스 2006-01-08 18:2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속삭이신 분/감사합니다 앞으론 잘하겠습니다.
메피님/네 저도 그랬으면 좋겠습니다..
사마천님/해석하는 데 약간 시간이 걸렸습니다. 주량을 물었다가 안뽑아주면 성희롱이 아니냐, 이런 뜻? 성희롱에 그런 조항도 있나요??? 전 모르겠어요.
서림님/어, 그게 또 그렇게 연결이 되나요^^
달밤님/대학원생이라는 것에 워낙 데어서 그랬나봐요... 실망시켜서 죄송합니다.
모1님/미녀였으면 제가 안뽑았겠지요....진짜루요.
미미달님/그, 그렇게 되었습니다. 죄송합니다.
야클님/전 님이 제일 좋습니다.
아프락사스님/죄송해요. 아무리 생각해도 대학원생이라는 게 마음에 걸렸어요.
진주님/미녀 아니구요, 저도 조교로 미녀 뽑는 건 반대였어요...
파비님/여자 대학원생과 그냥 남자였다면 아마 후자였을 거예요... 억울함.
하늘바람님/님이 조교를 하셨다면 전설에 나오는 미녀조교가 되었겠지요^^
라주미힌님/대학원 차별입니다.

진주 2006-01-08 21:2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어머...이런...제가 댓글 달기 전엔, 아무도 <대학원생을 뽑을 줄 알았다>라는 말은 없었는데....흐음....역시 그 부분에 대해 제가 논문을 쓰야 할까봐요..ㅡ.ㅜ
본의 아니게 마음 여린 마태님을 질책하는 듯한 댓글을 쓰게 되어서 미안해요. 실무를 보시는 마태님께서 요모조모 따져서 꼭 필요한 인재를 고르셨을 텐데 주제넘게 그런 말해서 미안해요. 인정에 이끌리는 인사는 나쁘다고 하면서도 저도 어쩔 수없이 형편이 어렵다는 이유만으로 대학원생을 지지하는 발언을 하고 말았군요. 공정하게 잘 하셨으리라 생각합니다.

마태님께서 대학원생에 대해 분량을 많이 쓰신 건, 그만큼 마음이 아파서 그랬던 것인데 제가 님의 친구라고 하면서도 속뜻은 깊이 몰라주고 결과만 보고 내 맘대로 생각했던 거 진심으로 미안해요. (귓말로 남기려다가 그냥 올립니다)

마태우스 2006-01-10 13:0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진주님/뒤늦게 감사드려요. 사실 반응 보고 제가 큰 잘못을 한 게 아닐까 했거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