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친구가 패널로 나온다기에 ‘아침마당’에 방청객으로 나간 적이 있었다. 일등신랑, 일등신부의 조건이 주제였는데, 패널로 나온 한 여자애의 말은 아직도 기억이 난다. “빌딩을 여러 채 갖고 세만 받으러 다니고 낮에는 노는 남자를 원한다.”고 말한 그녀는 “지하철에서 졸고 있는 남자를 보면 한심해 보인다. 그 나이가 되도록 자기 차도 없냐?”고 해 사람들을 격분시켰다. 전화연결 순서에서 시청자가 “이봐요, 아가씨. 단칸방에서 출발해서 한평씩 집을 늘려나가는 것도 기쁨이랍니다.”라고 하자 그녀는 다음과 같은 대답을 해 나를 경악시켰다.
“그럴 수도 있겠죠. 하지만 집 두채에서 시작해 한채씩 집을 늘려 나가는 것도 기쁠 수 있어요.”
나중에 나한테까지 마이크가 와서 “저는요, 기생충을 사랑하는 여자가 좋아요.”라고 말했었는데, 8년이 지난 지금 그녀가 소원대로 빌딩을 여러 채 가진 남자와 결혼했는지 궁금하다.
샘플을 가지러 혜화동으로 가던 오늘 아침 전철 안, 책보는 것도 포기하고 서있는데 옆에서 젊은 남녀가 나누는 얘기 소리가 들린다.
남자: 2천원만 줘봐.
여자: (지갑을 열어보더니 난감한 표정이 된다) 뭐하게?
남자: 하여튼 줘봐.
여자, 아쉬운 표정으로 2천원을 꺼내지만 여전히 꺼리는 표정이다.
남자: (웃으면서) 그러니까 니가 삼순이 머리라고. 일단 줘봐.
여자, 2천원을 건내준다. 그러자 남자가 지갑에서 5천원짜리 한장을 꺼내더니 여자에게 준다.
남자: 오늘 점심 때 맛있는 거 사먹어.
여자의 얼굴이 환한 미소로 바뀐다. 그렇게 행복해하는 모습을 난 오랜만에 본다. 타워팰리스에 처음 입주한 사람도 그런 행복한 표정은 짓지 못할 거다. 그 모습은 엄청난 전염력을 지녔는지라, 옆에서 보고있는 나까지 행복하게 만들어 줬다.
여자: 자기는 돈 있어?
남자: 응, 만원짜리 한장 있어.
그들은 아마도 열심히 살아가는 부부일 터, 남편은 아내가 맛있는 걸 먹기를 바라지만 자기도 쓸 곳이 있으니 줄 수 있는 한계치는 3천원이었을 거다. 사랑하는 사람끼리는 뭔가를 줄 때 받는 것 이상으로 기쁜 법, 남자는 그래서 미소를 띤 채 2천원을 달라고 얘기했을 거다. 3억 같은 3천원을 받은 여자가 얼마나 행복했을지도 짐작이 가지 않는가.
돈을 많이 벌어주지 못할지라도 자기를 사랑해 주는 사람과 같이 있는 것만으로도 행복감을 느끼는 사람이 있는 반면, 그렇지 못한 사람도 얼마든지 있다. 집을 한채씩 늘리는 데서 기쁨을 얻는다는 ‘아침마당’의 여자는 설사 원하는 결혼을 했다손 쳐도 지하철에서 본 부부만큼 행복하지 못할 것 같다. 행복의 기준은 사실 마음 속에 있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