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에 얘기한대로 내 책은 2쇄를 찍으면서 순항 중이었다. 통계에 의하면 내 책이 나온 뒤 ‘윌’의 판매고가 37% 급감했고, ‘윌’을 먹고 있는 사람들 중 61%가 ‘가까운 장래에 끊겠다’고 대답을 했다. 10억병을 팔았다고 기고만장하던 ‘윌’ 측이 당황한 것은 뻔한 일, 그들은 엄청난 방해공작을 시작했다. 책 사재기를 하러 교보에 갔을 때, 하필이면 내 책 위에 엎드린 채 책을 보는 사람을 항상 발견할 수 있었다. 머리에 나비 삔을 꽂은 여자, 그녀는 내가 갔을 때마다 늘 거기 있었다. 내가 잠깐만 비껴달라고 하자 그녀는 날 째려보다가 이내 물러났다. 하지만 내가 책 다섯권을 계산대에 올려놨을 때, 그녀는 다시금 내 책 위에 엎드려 있었다. 그때 난 봤다. 그녀의 가방에서 ‘윌’의 뚜껑 부분이 삐져나와 있는 걸. 강남교보에 갔을 때는 코끼리 모양의 모자를 쓴 사람이 내 책 위에 엎드려 있었다. 그들의 조직이 의외로 방대하다는 걸 확인한 나는 절망감에 사로잡혔다.
모 신문의 기자 하나가 나와 인터뷰를 했다.
“그러니까 헬리코박터가 전혀 해롭지 않다는 거죠?”
“해롭지 않다는 게 아니라요, 아직 확실히 밝혀지지 않았고, 과장된 측면이 많다는 거예요”
기자는 잘 알았다면서 다다음날이면 기사가 날 거라고 했다. 하지만 일주일을 기다려도 기사가 나지 않았다. 그 대신 난 ‘윌’의 전면광고가 매일같이 그 신문에 실려 있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같은 기간, 다른 신문에 ‘윌’의 광고가 없었던 걸 보면 그게 과연 우연일까. 제보에 의하면 그 기자가 ‘윌’ 한박스를 자기 차에 싣고 집으로 갔다고 한다. 의문은 깊어만 갔다.
‘윌’의 방해공작은 거기서 그치지 않았고, 결정적인 한방을 준비하고 있었다. 엊그제 발표된바에 의하면 헬리코박터가 위염과 위암의 원인이라는 걸 발견한 세명이 공동으로 노벨의학상을 수상했다. 여기에는 몇가지 의문점이 있다.
-헬리코박터의 유해 여부가 아직도 논란 중이라는 것
-발견한 시점부터 얼마 지나지 않았는데 노벨상을 줬다는 점(참고로 DNA가 이중나선임을 밝힌 와슨과 크릭은 몇십년 후에 노벨상을 받았고, 그래서 노벨상은 오래 살아야 받을 수 있다는 말이 나왔다)
-노벨의학상은 한단계 업그레이드된 연구여야 받을 수 있다. 예컨대 1984년 수상자인 예르네 등은 단클론항체법을 개발해 그 뒤에 나올 숱한 연구들의 밑거름이 되었다. 하지만 올해 수상자는 달랑 헬리코박터의 유해성을 발견한 사람들, 뭔가 냄새가 나지 않는가. 아무튼 이번 노벨상 발표로 인해 내 책의 판매에는 빨간불이 켜졌다.
어제, 헬리코박터에 반대하는 유일한 사람이라는 이유로 동어일보 기자와 만나 인터뷰를 했다. 인터뷰라기보다는 동동주만 열나게 먹다가 왔는데, 그 기자의 요청으로 오늘 오전 내내 반격할 자료를 검색했다. 헬리코박터와 위암과의 관계를 부정하는 논문은 딱 두 개밖에 없었다. 심각한 회의에 빠졌다. 진짜로 관계가 있긴 있는 걸까. 아니면 이것도 ‘윌'의 영향일까. 하지만 다음과 같은 논문이 꽤 많이 검색되어 약간의 위안을 얻었다.
-헬리코박터 감염이 감소되는 것이 식도암이 증가되는 중요한 요인이 될 수 있다.
-최근 식도의 선암이 증가되고 있다. 미국에서 식도 선암의 비율은 10만명 중 5명으로 상피세포암에 필적할 수준인데, 80-90%가 식도 아래쪽 3분의 1에 생기며, 대부분이 Barrett's esophagus(바렛 식도라고 암의 전구증상으로 알려져 있다. 식도는 대개 편평상피에 싸여 있는데, 어떤 이유로 그게 기둥형 상피로 바뀌는 걸 바렛식도라고 한다)에서 기인한다. 바렛식도는 주로 역류성 식도염에 의해서 생기는데, 헬리코박터는 역류성 식도염을 예방함으로써 바렛식도를 감소시키고, 나아가서 식도암 예방에 도움을 준다.
모든 암의 기원은 다르고, 한가지 암을 예방하면 다른 암의 발생을 높인다는 내 소신이 이번에도 증명되는 것 같다. 헬리코박터, 니 정체는 무엇이냐.
* 참고로 미국에서는 논란을 잠재우기 위해 헬리코박터의 균주가 중요하다는 쪽으로 가고 있다. 즉 CagA와 VagA라는 독소를 내는 헬리코박터인 경우에만 위염, 위암과의 관계가 인정된다는 것이다. 무해한 균도 있다는 걸 인정한 게 진전이라면 진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