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일 회의자료 때문에 세 번째로 밤을 샌다. 나랑 같이 밥을 먹은 조교의 말대로, 내가 여기 온 뒤 올해가 가장 힘든 시기인 것 같다. 지금까지 술이 아닌 이유로, 일 때문에 밤을 새운 게 올해가 처음이니까 말이다. 그다지 보람없는 일을 하느라 신경질을 박박 내면서, 남들이 한마디씩 던지는 말-그렇게 쉽게 생각하지 말고 잘 좀 해. 학교의 운명이 걸린 일이야-에 상처받으면서 컴퓨터 앞에 앉아 있다.
그래도 오늘은 지난번보다 사정이 좋다. 처음 밤을 샐 때는 챙겨놓은 반바지를 모르고 안가져온 탓에 팬티 바람으로 있느라 문을 잠궈야 했고, 두 번째 밤을 샐 때는, 좀 더 촉감이 좋은 바지를 가져가야지 하다가 또 안가져갔다. 천안에 도착한 뒤 반바지를 사러 여기저기 다니다 결국 못사고-철이 지났다나-또다시 팬티 바람으로 밤을 샜다.
작전상의 미스도 있었다. “밤을 샐 거니까”란 마음은 나에게 한없는 여유를 가져다 줘, 두 번째 밤샐 때는, 그때가 일요일이었는데, 오후 7시에 도착해서 인터넷 사이트를 여기저기 다니다 보니 글쎄 10시 반이 지나 있었다. 2시 좀 못되어 잠이 들었으니 실제 일한 시간은 얼마 안되고, 더 나쁜 건 혼자 있으니 심심하고, 심심하다보니 배가 고파지는 희한한 기제 때문에 밤 12시에 라면을 먹어버린 것. 모르긴 해도 한 1킬로 정도는 늘지 않았을까.
오늘은 모든 준비가 완벽하다. 반바지도 가져왔고-그 촉감 좋은 건 어디다 뒀는지 못찾겠다-오예스는 못샀지만 몽쉘통통을 한박스 샀고(조교 선생이 4개나 가져갔다) 가장 중요한 이유로, 하고자 하는 의지가 어느 때보다 굳다. 내일 지나고 모레, 수업 후에 있는 회의만 잘 끝나면, 그리고 뒤풀이가 끝나면 나는 자유다. 써야 할 게 또 있긴 하지만 지금처럼 촉박한 건 아니니만큼, 산과 들로 놀러다니면서, 밀린 영화를 보면서 가을의 정취를 즐길 생각이다.
계획을 세워본다.
오후 7시부터 10시; 내일 회의자료 준비를 다한다.
10시부터 11시: 운동을 한다.
11시부터 1시: 강의준비를 한다.
이정도면 거의 완벽하다. 음하하핫. 하지만.... 문제는 지금, 7시가 지났다는 사실. 그리고 회의자료 준비는 세시간 안에 안끝날 거라는 사실. 어제 잠을 별로 못자서 오늘 금방 졸릴 거란 사실. 이런저런 악조건에도 처음으로 입은 반바지와 소파 위에 얹혀진 몽쉘통통을 생각하면서 열심히, 또 열심히 일을 할 것이다. 혹시 내가 서재에 출몰하면 가혹하게 말 좀 해주시겠어요?
“정신차려!”라든지 “너 뭣이 되려고 이러고 있냐” “저녁으로 먹은 짜장면이 아깝지 않냐” 등등의 질책을 해주신다면, 열심히 일하는데 도움이 될 것으로 사료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