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친구가 결혼을 했다. 마흔이 다된 나이에, 그보다 세 살쯤 많은 남자와. 그 때문에, 실로 오랜만에 동창들이 모였다. 먼저 간 애들도 있지만 나를 포함해 남자 둘, 여자 여섯의 아저씨, 아줌마들은 결혼식을 보고, 짬을 내서 태종대를 놀러갔고, 우리에게 남은 20분을 이용해 자갈치시장에서 생선회를 먹었다. 남들은 그 와중에 상추에 회를 싸먹었지만, 난 대여섯점씩 회를 입에다 구겨넣은 덕에 나온 회의 반은 내가 먹은 듯싶었다.
나무랄 데 없는 규수가 마흔까지 시집을 가지 못한 건, 내가 알기에 남자 집안의 반대 때문이었다. 91년에 만나 15년째 사귀었던 그 커플이 결국 결혼까지 한 건 축복할 일이지만, 조금 잔인하게도 이해득실을 따지고 싶어진다. 그토록 줄기찬 반대가 도대체 어떤 의미가 있었을까. 좀더 일찍 가정을 꾸리고 그 안에서 행복을 쌓아갔을 부부가 거듭된 반대에 지치고 지친 모습으로 식장에 서는 게 그들이 원하는 것일까? 그래도 괜찮은 편이던 신부의 미모는 어느덧 퇴색했고, 신부 나이가 마흔이라 아이를 낳는 것도 보통 일은 아닐 것같다. 고난을 이기고 결혼에 골인한 그 커플에게 아낌없는 축하를 보내겠지만, 앞줄에 앉아있는 신랑 부모님이 얄미워 보였다. 결혼식 풍경을 조금 스케치해본다.
-신랑, 신부의 나이가 많아서 그런지 주례가 70을 훨씬 넘긴 분이었다. 그보다 많은 연배에도 정정한 사람은 얼마든지 있지만, 주례는 그렇지가 못해 서있는 것도 힘들어 보였고, 목소리도 떨렸다. 주례사도 별 내용이 없었으며, 짧은 주례사를 신랑의 집안이 좋다는 얘기로 채워넣기 바빴다. 의사인 주례가 보기엔 의사 집안이면 다 좋은 줄 아는 듯, “신랑은 아버지가 의사인 좋은 집에서 자라났고...”라고 거듭 말했는데,. 의사면 뭐하나. 성인인 아들이 결혼하겠다는데 무조건 반대하는 게 좋은 집안인가?
-친구들 사진 찍을 때의 광경. 사진사가 말한다. “저 끝에 아가씨, 안쪽으로 좀 들어가 주세요”
한바탕 웃음이 터져나왔다. 한명이 말한다. “여기 아가씨 없어요!”
1년 후배 여자애가 부케를 받았다. 사진사가 뭐라고 설명하는데, 뒤에서 이런다.
“부케 많이 받아봐서 다 알아요”
-주례사 중 이런 대목이 있었다. “결혼 후에도 건전한 생활을 하길 바랍니다”
결혼 후에 어떻게 건전한 생활을 할 수 있을까?
부산까지 가고 오는 기차 안에서 못다한 수다를 떠느라 남들의 눈총을 받았지만-아저씨 한명이 한숨도 짓고, 눈을 부라리기도 하고-그래도 즐거운 하루였다. 처음 만난지 20년이 되는 애들이지만, 어쩜 그렇게 하나도 변한 게 없는지, 다시금 젊어진 기분을 느끼며 집으로 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