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아버지는 무명화가였는데 술을 너무 좋아해서 그가 일곱 살이 되던 해에 간암으로 세상을 떠나버렸고”
내가 지금 읽고 있는 <장외인간>(이외수 저)의 한 대목이다. 내가 술을 좋아해서 이렇게 변명을 하는 건지 몰라도, 술을 좋아한다는 게 늘 이렇게 간암과 연결되는 건 아니다. 친구 아버님은 살아생전 거의 술을 드시지 않았음에도 지금 간암으로 투병 중이다. 내가 배우기로는, 간암에 가장 결정적인 것은 B형 간염바이러스로-그때는 C형이 발견된 초기라-간암 환자의 99% 이상이 그 바이러스에 걸려 있었다. 우리가 간염백신을 맞아야 하는 이유도 여기 있는데, 상식적으로 생각해 볼 때 술을 마신다고 해서 간염에 더 잘 걸리는 건 아니니만큼 참이슬에 씌여져 있는 경고문-술을 많이 마시면 간암에 걸릴 수 있습니다-이 나로서는 불만스러웠다. 그렇다고 술이 몸에 좋을 거야 없겠지만, 간암과 술을 연결지어가며 술을 탄압하는 것에는 반발심이 생긴다.
술처럼 탄압받는 게 바로 TV다. 바보상자라는 오래된 별명 말고도 TV는 사람들 눈을 나빠지게 하는 존재라는 오랜 믿음이 있다.
[난 왜 이렇게 눈이 나빠졌을까? 울 엄마 주장으로는 어렸을 때부터 TV를 코앞에서 봤기 때문이란다. 하지만 그건 세상 모든 엄마들이 자기 자식들을 겁주기 위해 하는 말 아니던가. 그리고 TV시청과 시력은 무관하다는 기사를 읽은 기억도 있다. 또 다른 의견으로는 책을 많이 봐서 그렇다고도 하는데, 그 말이 사실이라면 정말 좋겠지만 나보다 몇 갑절 더 많은 책을 읽은 친구는 여전히 1.5의 시력을 자랑하고, 또 유치원 시절까지 내가 책을 읽어봤자 얼마나 읽었겠는가 말이다(스타리스카이님이 쓰신 글)]
스타리님같이 총명한 사람은 유감스럽게도 그리 많지 않아, 사람들 대부분은 여전히 TV를 눈이 나빠지는 주범으로 본다.
안과 책에는 이런 말이 나온다. ‘TV를 가까이서 본다고 눈이 나빠지지 않는다’ 이 말은 내게 퍽이나 충격적이었다. 지금사 생각해보면 당연해 보인다. 눈이 나쁘니까 TV를 가까이서 보게 된 거지, TV를 가까이 봐서 눈이 나빠진 건 아닐 테니까. 책에 의하면 어두운 곳에서 책을 본다고 눈이 나빠지는 것도 아니었고, 자외선 같은 게 눈에 해로운 게 아니었다. 안과책에는 그래서 이런 말도 있었다. “선글라스는 필요없다”
이런 것들을 다 배웠을 안과의사들도 TV 때문에 애들 눈이 나빠졌다는 얘기를 가끔 한다. 내 생각에 그건 눈이 나빠지는 이유를 사실은 잘 모르기 때문에, 그냥 할말이 없어 둘러대는 것이리라.
난 심각한 짝눈이다. 왼쪽 눈의 시력은 1.0에 가깝지만, 오른쪽 눈은 0.3이 안된다. 처음 그걸 안 건 대학 3학년 때였는데, 왼쪽 눈에 덮개를 씌웠을 때 평소에 보이던 글자들이 안보이자 얼마나 당황했는지. 눈을 피곤하게 한다고 눈이 나빠지는 게 아니라는 걸 알았으면서도, 난 실습을 위해 현미경을 볼 때 늘 오른쪽 눈만 사용했다. 왼쪽까지 나빠지면 정말 큰일날 것 같아서 좋은 왼쪽 눈이라도 건지기 위해서였다. 이렇듯 선입견이란 교과서적인 지식 위에 군림할 때가 많다.
그렇다면 눈을 좋게 하는 방법은 없을까? 내가 어릴 적 학교에서는 의무적으로 안구운동을 하도록 했다가 그 효과가 근거없는 것이라고 밝혀져 중단했었다. 눈을 자주 쉬게 해주면 좋을 것 같고, 실제로 인터넷에 그런 글들이 떠돌아다니지만, 내 생각에 그것도 그다지 효과는 없을 듯하다. 눈이 피로한 건 근육이 피로한 거라는데, 근육과 시력은 사실 별 상관이 없으니까. 현재까지 시력이 나빠지는 원인 중 가장 사실에 가까운 것은 오직 유전이고, 그렇기 때문에 시력 저하를 막지 못하는 것이다. 그러니 눈이 나빠질까봐 보고싶은 TV나 책을 보지 않는다면 그 사람만 손해일 뿐이다.
결론: 눈이 피로해도 서재질을 열심히 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