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시: 9월 12일(월)
누구와: 미녀 둘과
미녀 하나가 생일이어서 모였다. 겁나게 마셨다. 밥도 안먹고 생맥주로 시작해 소주로 2차를 했고, 3차는 무슨 술을 마셨는지 기억도 안난다. 미약하게나마 정신이 남아있던 10시 30분쯤, 도저히 버티기가 힘들다는 생각이 들어 “집에 가겠다”고 했다. 그네들은 “안된다”고 붙잡았다. 눈을 떠보니 내가 탁자 밑에 들어가 자고 있었고, 미녀 둘이서 날 끄집어내려고 노력하고 있었다. 탁자와 의자 사이의 틈이 좁아 나오기가 무지 힘들었다는 것, 발달한 귀소본능 덕분인지 다시 눈을 떴을 때는 집이었다는 것 등이 어렴풋이나마 남아있는 내 기억의 편린들이다.
그날 난 얼마나 마셨을까? 아무리 적게 잡아도 소주 두병 이상은 마신 것 같다. 올해 들어 지금까지 술을 마신 횟수는 117회, 평균 마신 소주의 양을 한병 반으로 잡는다고 하면 대략 160병 가량이 된다. 다른 이들은 과연 얼마나 마실까. 오늘자 메트로에 그 해답이 있다.
“우리나라 15세 이상 인구는 2003년 기준 1인당 68병의 소주와 248병의 맥주를 소비하고 있다”
그러니까 지금까지 난 소주는 개인 할당량을 이미 채웠다. 맥주는? 잘 모르겠다. 맥주는 배가 나온다는 속설 때문에 맥주 쪽에 신경을 못썼는지라 200병까지 마시지는 못한 것 같다. 남은 기간 맥주에 전력해 할당량을 채울 생각이다. 역시 메트로의 기사다.
[1986년 20.6%이던 여성의 음주비율은 2003년 49/0%로 17년만에 2배 이상 늘었다... 20대와 30대 인구 중 술을 마시는 비율은 2003년 기준 75% 이상으로 92년에 비해 10% 이상 늘었다... 전체 음주자 중 소주 1병 이상 과음자는 2003년 40.5%로 9%, 맥주를 4병 이상 마시는 과음자도 37.5%로 늘었다...
지난 토요일, 그리고 어제 난 술을 마시지 않았다. 삼겹살을 구워가며 소주를 비우긴 했어도 마신 양이 각각 소주 한병에 불과, 기준주량인 ‘소주 한병 또는 맥주 5병 이상’에 미달했기 때문에 집계에서 빠진 거다. 그런데 이 통계는 소주 1병, 맥주 4병 이상을 ‘과음자’로 분류한다. 소주 1병과 맥주 4병을 같이 마시면 모를까, 맥주만 4병 마시는 게 왜 과음인지 난 이해가 안간다. 이렇게 노력하는 내게 다음 기사는 충격이었다.
[우리나라 국민 1인당 고도. 증류주의 연간 음주량이 세계 4위인 것으로 조사됐다...2002년 기준 4.5리터에 육박해 러시아(6.5), 라트비아(5.6), 루마니아(4.7)에 이어 세계 4위라고 밝혔다]
몇 년 전, 우리나라의 음주비율이 슬로바키아에 이어 2위였을 때 난 무척이나 실망했다. 술집마다 그렇게 미어터지는데, 그리고 나도 무진장 노력하는데 2위였으니까. 그런데 이번에는 4위라니 힘이 쭉 빠진다. 그래서일까. 메트로 기사의 제목도 “부끄럽네요”다. 전에 1위였던 슬로바키아가 한국에 근소하게 뒤진 5위라는 걸 위안으로 삼아야 할까. 우린 더 잘할 수 있다. 나도 물론 노력할 테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