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아버님 책을 버리면서, 왜 읽지도 않을 책들을 그동안 안버리고 있었을까를 생각했었다. 아주 옛날에 사서 종이도 노랗게 바랜, 세로쓰기로 된 책들을. 요즘 시대에 삼십년, 사십년 된 책들을 누가 본다고. 그래도 아버님이 살아계셨다면 책을 버린다고 화를 버럭 내셨을거다. 아버님에게 그 책들은 단순한 책이 아니라 당신이 살아오신 삶 자체일 테니까. 그렇다 하더라도 보지도 않을 책을 가지고 있는 건 집착이라고 생각한다.
서른부터 책을 읽기 시작했는지라 내게 있는 책들은 다 나온지 십년이 안된 책들이다. 하지만 십년 후, 그러니까 초창기에 산 책들이 스무살을 먹었을 때 난 그 책들을 과감히 버릴 수 있을까? 소장하고 있는 책이 2천권을 넘어서 거대한 짐으로 행세할 그때도 아마 난 그 책들을 버리지 못할 것이다. 그 책들 중 내가 다시 볼 책들이 거의 없을 거라는 걸 알면서도. 아버님이 책을 갖고 계신 걸 이해하지 못하고 ‘집착’의 딱지를 붙였던 것처럼, 책을 하나하나 모으면서 내게도 어느덧 집착이 쌓여만 간다. 지금의 삶이 계속될 수 있다면 내 책들은 십년마다 천권씩 늘 테고, 주위 사람들은 그 책들을 짐스러워 하겠지만, 그들이 그 책을 버릴 수 있는 때는 내가 죽고 난 이후일 것이다.
“이 인간, 가져가지도 못할 거 뭐하러 이렇게 책을 쌓아 놨담?”이란 말을 하면서 책을 버리는 장면을 생각하면 갑자기 허무해진다.
내 친구네 집에는 책이 하나도 없다.
“어느날 아내가 몰래 내 책들을 다 버렸더라고”
친구의 아내는 책을 끔찍이 싫어하며, 책을 사는 건 돈낭비이며 가지고 있는 것은 공간낭비라고 생각을 한다. 자기 책을 몰래 버린 것에 친구는 물론 화가 났다.
“그 책들 중 일부는 내게 꼭 필요한 거였거든. 절판되서 구할 수도 없는데”
하지만 친구는 서서히 아내에게 중독이 되어 버렸고, 지금은 아내의 사고방식에 전염이 되어 버렸다.
“책은 짐이야. 집에 책이 없으니까 얼마나 깨끗한지 알아?”라고 말하는 친구는 그러나 전염되어선 안될 것까지 전염되어 버렸다.
“나도 그래서 요즘 책 하나도 안읽어”
책이란 건 취미 중 하나며 반드시 책을 읽을 필요야 없겠지만, 책을 하나도 안읽는 걸 자랑스럽게 말하는 친구가 좀 낯설게 보였다. 내가 준 책도 어느날 몰래 버려질지 모른다.
책을 나르면서 이런저런 생각을 했다.
“이 책 정말 후진데...다시 안읽을 건데..”
하지만 결론은 언제나 하나였다. “그래도 버리긴 아까워”
‘말’지 몇 년치도 결국 버리지 못하고 쌓아 뒀다. 전에 페미니즘 관련 글을 쓸 때 말지를 참고했던 기억이 나서. 월간 <인물과 사상>도 당연히 안버리고 놔뒀다. 다시 볼 일은 없을 것 같지만, 그래도 그걸 버리는 건 강준만에 대한 예의가 아닐 것 같았다. 그렇게 저렇게 나른 책이 책장에 가득 꽂힌 걸 보니 마음이 뿌듯했다. 꽉 찬 책들을 보는 기쁨, 나 뿐 아니라 책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다 이런 마음일 것이다. 하지만 내 친구의 말도 일정부분 진실을 내포하고 있고, 보지 않을 거면 과감히 버리는 그 정신이야말로 삶이 편해지는 지름길일 것이다. 그럼에도 난 집착을 버리지 못한 채, 십년 후 2천권이 될 내 서재를 상상하며 흡족해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