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를 쓰면서 <그남자네 집>은 기생충에 대한 두려움을 심어주는 책이라고 했다. 거기에 관해 쓴다.


주인공의 첫사랑인 남자는 이런 상태였다.

“점점 아이가 이상해지는 거야. 신경질을 잘내고 툭하면 물건을 내던지질 않나...우리 식구들은 상사병이라고 생각한 거야”

사랑하는 여인이 결혼을 했는데 남자가 이런다면 그건 좌절된 욕망의 발현, 크게 봐서 상사병이라고 할 수도 있겠다. 아니 그게 당연하다. 그런데.

“어느날 골치 아프다고 펄펄 뛰던 아이 눈이 한쪽으로 확 돌아간 거야....그제서야 응급실로 데려가고 뇌 사진을 찍게 된 거지...사진에 나타난 걸로 봐서는 안보이는 쪽에 종양이 있을 것 같다고 해서...”

병명이 뭐인가를 떠나서, 이때는 기껏해야 50년대, 혹은 60년인데 어떻게 뇌사진을 찍을 수가 있었는지 모르겠다. 그러고보면 CT나 MRI가 없을 때는 어떻게 살았을까. 어떻게 그 많은 뇌질환을 진단했을까. 그것들이 나온 게 잘해야 십여년인데.... 하여간 이 환자가 머리가 아팠던 것은 뇌압이 올라간 탓인데, 그럴 때 눈이 돌아가는 경우도 있을 수 있겠지 뭐.  


“종양이 있을 것 같다고 해서 열어보기로 했지. 열어보니까 종양이 아니라 벌레가 있었어. 잡아내 세어보니까 열 마리도 넘는 벌레가”

저자는 의사의 입을 빌어 “음식물을 통해 들어간 유충이 뇌에 도달해서 자라났겠지”라고 한다. 의학저널에도 보고가 되었다고 한다. 이 구절을 읽는 순간 스파르가눔 생각밖에 안났다. 뱀이나 약수물을 통해서 전파되는 하얗고 가느다란 그놈. 뇌로 간 경우도 심심치 않게 보고가 되었으니 가능성이 가장 높다.

뱀 껍질에 있는 스파르가눔( 화살표)


 

스파르가눔은 입을 통해 들어간 뒤 위에서 위벽을 뚫고 밖으로 나간 뒤 여기저기를 돌아다닌다. 그 중 한 경로가 척수 주위의 연부조직을 타고 뇌로 가는 것. 혈액-뇌 장벽이라는 가상의 벽 때문에 기생충이 가기 힘들어서 그렇지, 뇌는 기생충이 살기 좋은 조직이 아닐까 싶다. 피부에 있으면 금방 사람 눈에 띄지만 뇌라면 잘 모르고, 또 뇌조직이라는 게 다른 곳보다 부드러워 살기도 편하지 않겠는가. 게다가 혈액 공급도 풍부하니 일단 가기만 하면 꽤 편하게 살 수 있지 않을까. 하지만 제 아무리 탱크같은 스파르가눔이라 해도 그 멀고 험한 길을 열한마리나 무사히 건너갔다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게다가 주인공이 벌레를 넣어 둔 유리병을 봤더니 이랬다.

“구더기 같이 생긴 연분홍 벌레들이 잠겨 있었다”

이 표현대로라면 스파르가눔과는 영 틀리다. 그렇다면 유구낭미충이 아닐까. 갈고리촌충의 유충이 혈액을 타고 뇌로 가는 거니 11마리가 아니라 40마리도 갈 수 있다. 게다가 그 남자는 지저분한 돼지껍질도 먹었다지 않는가. 하지만

(하얀 알갱이가 유구조충)

 

이렇게 생긴 걸 수술해서 다 꺼낼 수 있는지도 의문스럽고(이건 원래 약으로 치료하는 게 원칙이다), 결정적으로 유구낭미충은 뇌 속에서 10-20년간 살다가 죽은 다음에야 증상을 나타낸다. 즉 증상이 나타날 때 쯤에는 책에서처럼 원형 그대로의 벌레를 꺼낼 수 있는 게 아니라 죽고 석회화되어버린 유구낭미충만을 발견할 뿐이다.  결론을 말하자면 스파르가눔이 더 의심되지만 증거는 없다.


하나 더. 그 남자는 결국 실명을 한다. 왜?

“집도의가 뇌수술의 일인자로 소문난 분이지만 그 수술에서 시신경을 건드리는 건 불가항력이었을 거야”

일인자가 아니라도 그렇지, 어떻게 그 굵은 시신경을 건드릴 수 있는지 모르겠다. 만에 하나 건드렸다고 쳐도 바로 실명하는 건 아니다. 학생 때 신경의 손상 부위에 따라 시야의 어느 쪽이 안보이는지 배운 적이 있는데, 그래봤자 한쪽만 안보일 뿐 다른 쪽은 정상일텐데. 그 의사는 일인자답게 양쪽 시신경을 모두 건드렸단 말인가. 의문은 커져만 간다. 그 벌레는 무엇이며, 남자는 왜 실명했을까.


댓글(17) 먼댓글(0) 좋아요(33)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돌바람 2005-07-13 14:4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나중에 기회 있음 박완선 선생님께 보여드려도 될 것 같은데. 너무너무 좋아요. 이런 글. 짝짝^^. 참고로 저는 위의 책은 사실 좀 별로구요, 다들 장편을 좋아하는 것 같은데 저는 박완서 선생은 '대단한 단편작가다'라고 세겨두고 있지요.

날개 2005-07-13 14:5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호~ 마태님 날카로우십니다..!!! 이런 글엔 추천을~

클리오 2005-07-13 15:0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댓글이 날아가서 무지 슬픕니다. 흐억.. 하여간 너무너무 좋은 글이라는 말로 줄이구요. 조용히 추천을 날립니다. (카테고리... 사진이 다보이지 않는건 좀 다행스럽기도 하네요..)

싸이런스 2005-07-13 15:1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우와아~~ 멋져요. 대단해요. 근데 몸이 근질거려요

merryticket 2005-07-13 16:3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페이퍼를 읽고나니 괜스레 찝찝해지고, 근질거리는 것 같어요.
벌레가 무얼지 궁금하지도 않고,,알고나면 병이다" 란 말이 떠올라요..

꾸움 2005-07-13 17:2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와... 아 아니지, 으....... 무섭고 징그러라.... ㅡㅡ;

ceylontea 2005-07-13 17:4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와.. 저도 추천이요...

moonnight 2005-07-13 18:1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마태우스님 대단하세요. ^^ 그, 그런데 저도 머리가 심하게 가려워요. 눈도 어둑어둑해지는 것 같고.. 눈감고 추천 꾸욱 =_=;;

엔리꼬 2005-07-13 19:0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마태선생님.. 그럼 이제 약수물을 안먹어야 하는겁니까?

비로그인 2005-07-14 09:3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전............항상 먹기 전에 손을 깨끗히 씻어야 겠네요.
리뷰보다는 페이퍼에 공감 ^^*

진주 2005-07-14 12:4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구.....정말 유익한 페이퍼였어요. 저렇게 끔찍한 일이 실제로 일어날 수 있단 말이죠..헬...무섭네요...뱀과 약수물은 안 먹어서 다행이다. 어떻게 하면 예방할 수 있나요? 아..기생충..정말..무섭다..덜덜덜

추천수도 과히 놀랍군요 덜덜덜
"(댓글:13, 추천:13)"

진/우맘 2005-07-14 13:0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흠...이 대목에서 댓글만 남기고 추천을 안 누르면....혼 나겠군. ㅡ,,ㅡ

2005-07-14 13:06   URL
비밀 댓글입니다.

마태우스 2005-07-14 13:2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진우맘님/예리한 지적 감사드립니다. 그리고 님은 실천하는 지성이십니다^^
진주님/기생충에 대해 지나치게 공포감을 갖는 게 문제라고 어느 기생충학자가 그랬죠. 눈이 작고 줄무늬 티를 즐겨입는....님도 추천 하셨죠?^^
벨님/호홋, 손 씻는 거 좋은 습관입니다. 주변 사람에게도 강요하세요
서림님/아니 뭐, 약수물 먹고 걸린 사람은 극히 드물어요. 그대신 착하게 살아야 그런 거 안걸리죠
문나이트님/머리를 이틀에 한번은 감아 주셔야 합니다. 안감으니 가렵고, 긁다가 시신경이 손상되면 눈이 안보이는 거죠(뻥입니다. 안믿으셨죠?)
실론티님/아아 이 추천의 물결... 과분한 추천을 받고 있네요
꾸움님/가끔은 기생충 가지고 충격을 줄 필요가 있다는 생각이...^^
올리브님/그렇습니다. 알면 괜히 걱정만 늘죠^^ 그래도 추천은 하셨죠?
새벽별님/아아 감사합니다. 가끔은 제가 이런 글도 써야 학자라는 거 믿죠
싸이런스님/몸이 가려우신 건 이 글과 전혀 관계없습니다. 목욕을 가끔이라도 하십시오
클리오님/님 말씀 듣고 사진 다시 갈아끼웠습니다. 댓글이 날라간 건 저도 아쉽습니다. 님의 인문학적인 식견이 담긴 댓글을 보고 싶어요!
날개님/날개가 보통 두개 있으니 추천도 두개씩 올라가면 좋겠어요....^^ 어맛! 제가 무슨 말을
따우님/사실은 어설픈 지식에서 나온 거라 출판사 보내면 퇴짜 맞습니다^^
돌바람님/와 돌바람님이다! 제일 먼저 칭찬해 주셔서 감사드리옵니다. 안그래도 제가 요즘 님이 주신 책 읽고 있어요! 나중에 인사 올릴께요


진/우맘 2005-07-14 16:3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예리한 지적 고맙다면서 수정 안 하는....마태님은 실천하지 않는 지성이구만요. ㅋㅋ

미완성 2005-07-15 07:5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전 마태님을 알고 나서부터, 세상의 모든 병은 기생충 때문이라는 생각에 시달리고 있다구요 ㅜ_ㅜ 조금만 몸이 근질거려도 '이'가 있는 것은 아닐까, 머리가 근지러우면 '벼룩과 이가 함께 살고 있는 것이 틀림없다!', 눈알이 간지러우면 '혹시 파리의 유충이?!' 먹어도 먹어도 배가 안 부르면 '이건 분명 촌충과 회충이..'싶다구요 ㅜ_ㅜ
아, 그런데 또 이런 좋은 글을 보게 되다니.....추천할께요. 우리 사이에 너무 고마워하실 필요는 없어요 *.*

마태우스 2005-07-15 10:0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진우맘님/실천하는 지성이 되겠습니다^^
멍든사과님/우리 사이니까 더더욱 고마워요. 매번 이렇게 신세를 져서 어쩝니까. 그리고 기생충에 대한 지나친 공포는 몸에 해롭습니다. 사과라도 드시면서 공포를 쫓도록 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