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날씬하기 짝이 없는 여인네가 다이어트를 해야 한다고 할 때가 있다. 당연히 이해는 안 가지만, 이해해야 한다. 몸매라는 건 기본적으로 자기만족이니까. 아주 비만은 아닐지라도, 나 역시 내 몸매에 불만이 많다. 배가 너무 나왔고, 체중도 키에 비해서 지나치게 많이 나간다. 운동을 열심히 해도 안빠지고 있으니, 심난해 죽겠다.
그렇다고 남들의 평가가 중요하지 않은 것은 아니다. 어쩌면 그게 더 중요할 수도 있다. 내 배를 보고 “대단하다”라고 누군가가 말할 때면 들켰다는 생각에 화들짝 놀라면서도 다이어트의 의지가 무럭무럭 생겨 버린다. “살쪘다”는 말이 지겹긴 해도, 주위의 지속적인 질책이 필요한 이유다.
내가 워낙 살쪘다는 말을 많이 해서 그런지 주위 사람들 중에는 날더러 “그 정도면 괜찮다”고 하는 사람이 더 많다. 그런 말을 들을 때면 기분도 좋고 긴장도 풀린다. 그냥 이대로 유지하는 게 내 목표라고 스스로에게 말하기도 한다. 하지만 그래서는 안된다는 걸 어제 느꼈다. 밤늦은 시각, <제니퍼의 연쇄살인>이라는 추리물을 봤다. 앤디 가르시아가 남자 주인공인데, 나보다 마르면 말랐지 뚱뚱하지 않은 그 배우가 형사로 분해 시각장애인인 우마 서먼을 좋아한다. 그들의 대화.
앤디: 왜 나에 대해서 안 묻지요?
우마: 반장님이 다 말해 줬어요.
앤디: 내가 어떻게 생겼데요?
우마: 뚱뚱한 편이고 얼굴을 찡그리는 버릇이 있어요.
앤디 가르시아 정도만 되면 뚱뚱한 편이라니, 놀라운 일이다. 그걸 보니까 지금 누군가가 나에 대해서 이런 얘기를 하고 있을지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왜 그 뚱뚱한 애 있잖아”
이런 상상이 전혀 근거가 없지 않은 것이, 내가 조교 때인 95년, 그러니까 지금보다 5킬로나 덜 나갈 때 들었던 말이 있어서다. 그때 난 우리 학교 주변 3.2킬로를 한바퀴 도는 마라톤 대회에 참여했었는데, 우연히 나를 본 중국집 아저씨가 다음에 날 만날 때 이렇게 말한 거다.
아저씨: 그날 잘 뛰던데?
나: 아네요. 참가자 중 거의 꼴등 했어요 (180명 중 172등인가 했다. 여자 포함이다. 그때는 내가 마라톤을 시작하기 전으로, 다음 대회 때는 12등을 했다)
아저씨: 아냐, 그 몸에 완주한 것만 해도 어딘데.
모 선생님에 따르면 살이 찌는 것은 노화의 한 증거라고 한다. 그 말이 맞다면 노화가 일어나는 40세부터는 살을 빼는 게 불가능하다는 얘기, 그 전까지 난 꼭 살을 빼고야 말 것이다. 아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