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시간이 없어 날림으로 썼습니다. 회의 들어가야 해서요...아 아쉽다.

지하철 역 중 책을 보는 공간이 있는 곳이 있다. 지하철에 그런 공간을 마련한다는 건 분명 축복받을 일, 하지만 그 아름다운 취지를 무색하게 만드는 경우가 있다. 꽂아둔 책을 가져가 버리고, 제대로 꽂아놓지 않고 책상 위에 늘어놓는다거나, 코를 후빈 손으로 책장을 넘기는 등등.


내가 거주하는 합정역의 상황도 다를 바가 없다. 예전에는 볼만한 책이 몇권 있었던 것 같은데, 어제 오랜만에 간 김에 한번 둘러보니 읽을만한 책이 거의 없고, 상권만 있는 책, 2권만 있는 책 등 장난이 아니다. 나야 어차피 내 책을 읽으니 책이 있건 없건 무슨 상관이랴. 약속이 엇갈려 오지 않는 미녀를 기다리며 열나게 책을 읽었다. 그 한시간 동안 두명 정도가 앉아서 책을 읽었다. 두명 모두 책을 꽂아놓지 않고 책상 위에 놓고 갔는데, 나중에 나이 지긋한 부부가 오시더니 책을 마구 치운다. 그분의 말씀,

“책을 봤으면 좀 치우지 이게 뭐야? 하여간 책을 볼 가치가 없는 사람들이야”

자원봉사자, 혹은 그 공간을 만드신 분? 아주머니의 말씀은 계속된다.

“집에 가져가질 않나...아니 지 책도 아니면서 책에다 왜 낙서를 하고 난리야?”

존 버거의 <행운아>를 읽으면서 열나게 줄을 치던 나는 그 말에 화들짝 놀랐다. 그 두분은 그래도 분이 안풀렸는지 한 십분여를 그렇게 말씀하신다. 이 책도 있었는데 없어졌다는 둥, 저 책도 사라졌다는 둥... 마치 나를 보고 말씀하시는 것 같아 더 이상 앉아 있을 수가 없었다 (결국 미녀 분과는 못만났다).


정말 그렇다. 책을 기증한 아름다운 마음을 무심한 사람들은 좌절시켜 버린다. 책 공간에는 “기증을 받습니다”라고 쓰여 있었지만, 난 그곳에 내가 소장한 책들을 기증할 마음은 없다. 천권 가까운 책들이 전시된다면 당장은 보기 좋겠지만, 그게 다 사라지는 데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을 것이고, 내가 아껴 보던 책들을 그들은 거친 손으로, 코를 후비던 손으로 넘길 테니까. 그러니 내가 24시간 들러붙어서 책을 지키지 않는 한, 내가 내 책들을 그런 곳에 기증할 일은 전혀 없을 것이다. 몇몇 분들은 책은 돌려보는 게 원칙이라는 거룩한 마음을 갖고 계시고, 또한 그걸 실천하시지만, 벤댕이과인 난 내가 모은 책들이 꽂혀 있는 것을 지켜보고 있는 데서 즐거움을 찾으니까.




댓글(18)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마냐 2005-04-18 16:3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방이 넓으신 모양임다. 책장이 작아서, 어제도 동생에게 잔뜩 책을 안겨 보냈슴다. -.-;; 아마 결국엔 '소장본'이라고 찍어놓은 '있어보이는 책', '지적허영을 채워주는 책'만 남는 거 같아요...

플라시보 2005-04-18 16:3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음... 예전에 제가 일하던 건물에서 비가오면 우산을 빌려줬었거든요. 3천개를 샀는데 한달만에 다 없어졌습니다. 돌아올꺼라 기대를 하고 (다는 아니라도 절반은) 시행한거였는데 그렇게 모조리 다 없어지니 허탈하더군요. 그 당시 비가오면 가끔 길에서 그 우산을 보곤 했는데 마음이 착잡했습니다. 기증이나 빌려가기가 정착되려면 우선 사용하는 사람들의 자세가 갖춰지고 나야 할 수 있는거 아닌가 싶어요.

울보 2005-04-18 16:4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전 마태우스님이랑 같은 과인가 봅니다,,,,,,,,,,,,,,,,,
저도 움켜지고 뿌듯해하는 스타일이라,,,,,

sweetmagic 2005-04-18 16:4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전 제 속에 없으면 있는 것도 없는 것이다 주의라...책 소장에 별 큰 의의를 두진 않아요. 예전에 집에 책이 너무 많아서 가까운 도서관이랑 지하철에 기증했는데요 그 책들이 엉망인 꼴로 돌아다니는 걸 보니 가슴 아프더군요,,, 지하철에서 오바이트 한걸 쓸어담는데 기증 도서 찢어 쓰는 걸 볼때는 정말이지....
어머 ~ 실수 !! 하면서 밀어서는 그 더미로 확 코라도 *박게 하고 싶었습니다.
( 아....승질 너무 드럽다 .....ㅠ.,ㅠ; )

인터라겐 2005-04-18 16:5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ㅎㅎ 저두 책은 빌려보지도 않고 잘빌려주지도 않는데 너무 치사하단 소리에 빌려줬다가 김치국물튀겨있고 접혀있고 한것을 발견할때 그 분노...참을수 없더라구요..
하물며 그렇게 소중한 책들이 없어져버린다면 눈물날것 같아요...우리나라는 기증문화도 그렇지만 기증된것을 소중히 다룰줄 아는 마음부터 가꿔야한다고 생각해요..

하이드 2005-04-18 17:0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 미녀분 나빠요. (→ 전혀 포인트를 못잡고 있음 -_-a ) 근데, 존버거의 '행운아'를 읽으신다구요? 그 책 너무 좋습니다.(→여전히 못잡고 있음 -_-;;;;)

moonnight 2005-04-18 17:0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역시 심한 벤댕이과 -_-;; 코후빈 손으로 책장을 넘긴다는 대목에선 저도 모르게 부르르.. -_-;;;; 싫어요. 싫어. ㅠㅠ 책에 깔려죽는 한이 있어도 꼭 끌어안고 있을테야요. ㅠㅠ

숨은아이 2005-04-18 17:1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헉, 그렇습니까? 지하철역에는 절대 기증하지 말아야겠군요. --; 도서관에서 빌린 책이라면 좀더 조심스럽게 다룰 텐데...

클리오 2005-04-18 17:2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직은 저도 서재가 있어보이는 것을 좋아하는 편이라서... ^^

paviana 2005-04-18 17:2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맞아요...합정역에는 볼만한 책이 하나도 없어요..
기증하지도 않으면서 불평만 많지만,넘 관리를 안해요..
바로 옆에 동사무소 민원센터가 있는데, 거기서라도 좀 관리를 해주면 좋으련만...

하루(春) 2005-04-18 21:0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전 아주 가끔씩 헌책방에 갖다 파는데... 헌혈은 해도, 책은 기증 못하겠어요. 물론 헌혈은 건강에도 좋다니까 하는 거지만요.

2005-04-18 22:32   URL
비밀 댓글입니다.

라쇼몽 2005-04-19 07:4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예전에 그 동사무소 민원센터에서 책을 몇 권 빌려 봤던 적이 있었습니다. 거기 뒤지다 보면 그래도 영양가 있는 책도 있지요. 하지만 그런 미니 책방 보다는 홍대 앞의 마포 도서관이 참 좋더군요. 거기 책이 13만권인가 된다던데 제가 보기에는 왠만한 대학 도서관보다 나은 것 같습니다. '미녀'들도 많구요.^^ 서교동에서 7년 살고 다른 동네로 이사가면서 가장 아쉬웠던 것이 바로 마포 도서관을 떠난 거였어요. 흑흑

마태우스 2005-04-19 09:4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황게으름동이님/마포도서관...저희 동네 사람들의 지적 양식을 고양시켜주는 곳이죠. 근데 님은 저번에 "황소곱창을 떠난 게 가장 아쉽다"고 하셨던 것 같은데, 어느 것이 진실입니까?^^
하루님/헌혈과 책기증은 엄연히 다르죠. 피는 빼도 또 생기지만, 책은 주면 끝이잖아요
파비아나님/와, 우리동네 분들이 참 많네요. 정말 곱창 먹어야겠네요^^
클리오님/저랑 같은 과시군요. 호호.
숨은아이님/대출할 때 이름도 쓰고 관리를 한다면 좀더 조심하겠죠. 하지만 무인 시스템에서 사람들의 양식을 기대한다는 것은 어려운 일인 것 같습니다
문나이트님/저도요!!!! 여러 모로 님과 통하네요 흐흐.
하이드님/로드무비님이 선물하신 책인데요, 첨엔 몰랐는데 굉장한 책이더군요. 가슴이 벅차서 책장 넘기기가 어려운...
인터라겐님/맞습니다. 기증 문화가 활발해지려면 일단 책을 소중히 여기는 풍토가 정착되어야 하겠지요 지금같으면 누가 기증하겠어요
매직님/님의 가슴에 그런 슬픈 사연이 있다니, 저도 마음이 아픕니다... 오버이트한 걸....으으윽.
울보님/알라디너 분들 대부분이 저희 과랍니다^^
플라시보님/3, 3천개나..... 정말 대단합니다. 아무리 생각해도 기증품을 아끼는 문화는 정착될 것 같지 않네요...
마냐님/방이 넓긴 하죠. 가끔 저희 어머니를 찾아 이방 저방을 헤매고 다닌다니깐요^^

히나 2005-04-19 17:5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꽂아둔 책을 가져가 버리고.. 가슴에 비수처럼 꽂히는군요. 지하철에서 읽을거리가 없어(밤이라 잡지가판대도 문을 닫았음) 딱 두 번 가져온 적이 있는데.. 그 중 하나는 사람들이 이응준의 '전갈자리에서 생긴 일'을 읽고 사악한 영혼(?)에 빠져들지 않을까 염려되어 가져왔는데.. (기증 스티커 붙은 책이 탐이 나서라고는 절대 말 못함 ㅎㅎ)

라쇼몽 2005-04-19 22:1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마태우스님, 허허... 그때 그때 달라요.^^;;

조선인 2005-04-19 22:3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헛, 제가 이상한 거군요. 지하철역에 기증한 책이 없어진 걸 보고, 내 책을 가지고 싶어하는 사람이 있었구나 무지 뿌듯해 했는데. -.-;;

마태우스 2005-04-20 14:0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조선인님/님은 진정한 대인이십니다. 저같이 쪼잔한 사람들은 책 하나 없어지면 가슴이 찢어지죠. 저는 몸집만 컸지 마음은 좁답니다. 어떡하면 님처럼 될 수 있을까요
황게으름동이님/호호, 그렇군요^^
스노우드롭님/님처럼 책을 사랑하는 분이 가져간다면 괜찮을 것 같아요. 하지만 책을 식탁 밑에 괴어 둔다든지 하는 상상을 하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