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꿈꾸는 자는 유죄>라는 책입니다.... 물론 본문과 별 상관 없지요.
나는 ‘윌’을 먹는다. 헬리코박터를 없앤다는 요구르트 음료 말이다. ‘윌’을 먹는 이유는 내 친구인 홍혜걸이 TV에 나와 윌을 먹으라고 권했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더 중요한 이유는 그 음료가 악의 온상인 헬리코박터를 없애주기 때문이다. 그런 특수한 기능이 있으니 ‘윌’의 가격은 내가 좋아하는 빙그레 바나나우유보다 비싼 1천원이다. 한번은 친척 한분이 우리집에 온 적이 있었다. 남을 돕는 걸 즐겨하는 그 친척분은 어머님의 지시로 무거운 절구통을 나와 같이 날랐는데, 뭔가 대접해야겠다 싶었던 어머님은 나한테 음료수를 가져오라고 하셨다. 냉장고를 열어보니 마침 우유가 떨어졌기에, 난 ‘윌’을 꺼내서 친척분에게 드렸다. 친척분이 윌의 뚜껑을 따는 순간, 기겁을 한 어머님이 달려오셨다.
“그건 안돼!”
어머니는 ‘윌’을 빼앗아 다시 냉장고에 넣어 두셨고, ‘윌’ 대신 냉장된 보리차를 따라 친척분께 드렸다. 그러면서 어머님은 내게 한마디 하는 것을 잊지 않으셨다.
“그 비싼 걸 주면 어떡해!”
그날 이후, 내가 열심히 윌을 마셔서 헬리코박터를 박멸해야겠다는 생각을 한 건 지극히 당연했다.
사실 내가 학교를 다닐 무렵만 해도 헬리코박터가 나쁜 균이라는 얘기는 전혀 들은 바가 없었다. 그러던 것이 어느 순간부터-1994년-헬리코박터는 위염과 위궤양, 심지어 위암까지 일으키는 나쁜 균이 되어 우리 앞에 나타난 거다. 예나 지금이나 우리들 위 속에서 평온하게 살아가고 있던 헬리코박터로서는 난데없이 ‘주적’으로 몰려 탄압을 당하는 작금의 사태가 매우 뜬금없고 억울하기만 할 것이다. 헬리코박터가 억울해 하거나 말거나, 학자들은 논문을 쓸 때마다 다음 구절을 반복적으로 기술한다.
[헬리코박터와 위염, 위궤양, 위암과 위림프종의 밀접한 관계는 명백하게 밝혀져 있다]
과연 그럴까? 다음 통계를 보면 그런대로 수긍이 간다(네이버 지식검색 참조).
-십이지장 궤양 환자의 90-95%, 위궤양의 60-80%에서 헬리코박터균이 발견되며 이 균을 박멸하면 궤양의 재발률이 현저히 감소
-위에서 발생한 림프종의 92-100%에서 이 균이 발견되고 헬리코박터균의 박멸 후 림프종이 소실
-위암을 내시경적으로 절제한 후 균의 박멸 요법을 시행하면 암의 재발률을 낮출 수 있다
그럼에도 의문은 남는다. 세계인구의 절반, 우리나라 인구의 70% 이상이 헬리코박터에 감염되어 있는데 왜 극히 일부에서만 위암이 발생하는 걸까? 네이버에 따르면 우리나라의 위암 발생률은 인구 10만명 당 남자 39명, 여자는 24명에 불과하다. 헬리코박터 감염률을 70%로 잡았을 때, 7만명의 헬리코박터 감염자 중 0.6%에도 못미치는 39명만이 위암에 걸린다는 건 발병원인 치고는 지나치게 낮은 수치가 아닐까.
여기에 대한 해답을 주신 분이 있다. 서울의대 예방의학교실의 유근영 교수는 지난 2월 4일 다음과 같은 결과를 발표해 ‘윌’ 관계자들을 당황스럽게 했다.
[서울대 의대 예방의학교실 유근영 교수팀은 1993년부터 9년 동안 1만8,000명을 추적 조사한 결과, 위암과 헬리코박터균은 역학적인 관련성이 없는 것으로 나타났다고 밝혔다. 유 교수팀의 이번 연구 결과는 암 분야의 세계적인 권위지인 ‘브리티시 저널 오브 캔서’에 게재된다.
조사 기간 동안 위암이 새로 발병된 환자 86명 가운데 72명(83.7%)이 헬리코박터균에 감염됐고, 위암 환자군과 성ㆍ나이ㆍ관찰기간이 같으면서 위암이 생기지 않은 사람 344명 가운데 278명(80.8%)이 감염됐다. 즉 위암 환자와 정상인의 세균 감염률은 거의 같아 세균에 감염됐다고 해도 위암이 더 걸리는 것은 아닌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유 교수는 “외국 연구와 다른 결과를 보인 것은 우리나라 사람들의 헬리코박터균이 서양의 것과 유형이 다를 수 있으며, 섭취 음식의 영향 등을 생각해 볼 수 있다”고 말했다]
그렇다. 문제는 헬리코박터가 아니었다. 게다가 그게 새삼스러운 일도 아니었단다.
[헬리코박터균은 1994년 국제암연구소(IARC)에서 위암의 위험 요인으로 인정됐으나, 이후에도 충분한 근거가 없다는 비판이 많았다. 헬리코박터 감염률이 매우 높았던 아시아, 아프리카에서 세균에 감염된 만큼 위암이 발생하지 않았으며, 일부 국가에서는 감염률에 비해 상대적으로 위암 발생이 낮았기 때문이다.
유 교수는 “인도네시아의 경우 국민의 80~85%가 헬리코박터균에 감염됐으나 위암 발생은 우리나라의 1000분의 1에 그치는 것으로 조사됐다”고 말했다]
자, 그렇다면 나처럼 위암에 안걸리려고 열심히 ‘윌’을 먹은 사람들은 모두 속아넘어간 걸까? 아닐 수도 있겠지만, 그럴 확률이 더 높다. 폐암과 담배 등 인과관계가 정립된 몇몇 예를 제외한다면, 발생원인을 정확히 아는 암은 극히 드물다. 담배를 피운다고 모두 폐암에 걸리는 건 아니고, 비흡연자라고 폐암에 안걸리는 건 아니니 폐암 역시 원인이 완전히 밝혀진 것은 아니다. 20대 이전에 걸리는 암을 제외한다면, 암은 유전적 요인과 먹는 음식을 비롯한 환경적 요인이 복합적으로 작용해서 발생한다는 게 일반적인 생각이다. 그러니 한국인의 70%, 전 세계 인구의 절반이 갖고 있다는 헬리코박터에게 모든 책임을 뒤집어씌우는 건 좀 지나치다. 헬리코박터가 암과 전혀 연관이 없다고 생각하는 것은 물론 아니다. 연구란 거짓말을 하지 않는 법, 모르긴 해도 헬리코박터가 암 발생에 있어서 최소한 쥐꼬리만큼의 역할은 할 거다. 하지만 이런 의혹은 남는다. 그 세균에 걸려있는 사람이 많고, 치료제를 팔면 떼돈을 벌 수 있는 상황이 연구자들로 하여금 헬리코박터의 위협을 과장하게 한 것은 아닐까.
뭐가 하나 새로 발견되면 우르르 그쪽으로 몰려들어 스포트라이트를 받게 되는 것은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다. 남들이 잘 모르는 것, 새롭게 떠오르는 걸 해야 권위자로 뜨니까. 그리고 자신의 명성을 위해서라도 그들은 새로 발견된 것을 대단한 것인 양 포장한다. 세포간의 신호를 전달해주는 인터류킨(IL)도 그 한 예다. 백혈구에서 만들고 인터넷같은 역할을 하니 인터류킨이라는 이름이 붙었는데, 처음에 IL-1과 2가 나왔을 때 사람들은 ‘아 그게 그래서 그랬구나’ 하고 감탄을 했다. 3, 4, 5가 나오면서 사람들은 ‘이제야 세포간 신호전달체계에 대해 체계적으로 알 수 있게 되었다’고 생각했다. 그러다 6, 7, 8이 나오고, 9, 10이 나왔다. 11이 나오고 12, 13이 나왔다. 중요한 것은 새로운 인터류킨이 나올 때마다 “그전 것들은 아무것도 아니다. 내가 발견한 이게 진짜 중요한 일을 한다”고 떠드는 바람에, 뭐가 뭐고 뭐가 뭔지 점점 헷갈리게 되었다는 것. 최근에 나온 인터류킨 18은 “염증반응을 조절하는 핵심적인 물질”이라고 하니, 이걸 몰랐던 시절에는 어떻게 염증반응을 이해했는지 의아해진다. 지금도 어떤 연구자는 인터류킨 19번을 찾아 헤매고 있을테고, 또 다른 사람은 20번을 발견하느라 아주 고생이 많을 거다. 하지만 아무리 자신이 발견한 게 가장 중요하다고 떠들어도, 제일 많이 인용되는 인터류킨은 역시 1번과 2번, 이쯤되면 그들이 말하는 ‘중요성’이 뭘 말하는 건지 헷갈린다 (숫자가 크다고 중요하다는 뜻일까?).
물론 이건 연구자들의 심성이 나빠서가 아니다. 연구를 통해 세계평화에 기여함과 동시에 자신의 명예도 높인다는 건 연구 하나에 목숨을 거는 연구자로서는 당연히 가져야 할 자세니까 말이다. 하지만 그들의 순수한 연구가 한 요구르트 회사의 이익을 위해 이용당하고 있는 건 아닌지 한번쯤 생각해 볼 일이다. 유근영 교수의 충격적인-사실은 지극히 상식적인-발표에도 불구하고 ‘윌’의 판매량은 별로 줄어들지 않았는데, 그건 ‘윌’이 워낙 맛있기 때문이기도 하겠지만, 보다 중요한 이유는 이 충격적인 사실을 주요 언론들이 대문짝만하게 보도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경기 침체로 어려운 이때, 광고주의 하나인 ‘윌’에게 잘못보여서 좋을 게 뭐가 있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