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달간 서재를 방치하면서 마음이 하루도 편한 날이 없었다.
시덥잖은 글이라도 자주 쓰자,는 걸로 방침을 바꿨고
그 일환으로 인간이 가볍게 생각하는, 하지만 난 심각하게 생각하는 빤쓰 얘기를 쓴다.
전에도 여러번 빤쓰 얘기를 썼으니 내가 심취한 주제라고나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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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젠가 빤쓰에 대해 얘기한 적이 있다.
일주일에 12시간을 강의한 적이 있는데
강의준비 땜시 학교에서 맨날 밤을 샜고,
병원 내 편의점에서 매일같이 빤쓰를 샀다고.
그러다보니 결혼하고 난 뒤 아내가 내 옷장을 보고 놀라자빠졌다.
"왜 이렇게 빤쓰가 많아?"
엊그제, 친한 친구 아버지가 상을 당해 강화도에서 1박2일을 했다.
화장터에 있다가 할일도 없고 해서 친구한테 물었다.
"넌 빤스 며칠마다 갈아입냐?"
이걸 물어본 이유는 먼 지방에서 올라온 그 친구가
1박2일을 하면서 여벌의 빤스를 준비하지 않은 게 의아해서였다.
그 친구의 대답은 놀라웠다.
"3일"
내가 놀랐더니 그 친구도 놀란다.
"3일이 어때서?"
난 다른 건 몰라도 빤쓰는 매일 갈아입는데, 다 그런 건 아닌 모양이었다.
그래도 3일은 좀 너무하지 않은가?
빤쓰가 몇벌이나 있냐고 하니까 친구가 이런다.
"7-8개 있어."
7-8개란 얘기는 사실은 7개란 얘기,
흠흠. 그에 비하면 난 빤쓰 재벌이다. 최소한 30개는 넘으니까.
내가 좀 격하게 놀랐는지 그 친구가 나중에 문자를 보내왔다.
"J(이번에 같이 1박2일을 한 친구)한테 물어보니까 걔는 이틀마다 갈아입는다더라.
근데 걔는 샤워도 이틀에 한번 하는 데 비해
난 매일 샤워를 하니까 내가 더 깨끗한 거 아냐?"
사람마다 자기 삶의 패턴이 있는 법이고,
청결이란 게 빤쓰만 가지고 따질 수 있는 건 아니리라.
본의 아니게 그 친구한테 상처를 준 것 같아 문자를 보면서 미안했다.
미안해, K야. 네가 빤쓰를 며칠에 한번 갈아입던지 넌 내게 소중한 친구야.
참고로 그 친구한테 이런 말도 했던 기억이 난다.
"너 혹시 사흘 입은 빤스, 입에 물 수 있어?"
친구가 대답한다.
"고무줄 부위는 물 수 있어."
친구야, 내가 너한테 너무 상처를 많이 줬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