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드미스다이어리> 극장판에서 나이든 세 아주머니는 리어커에 놓인 고운 색깔의 팬티를 사 입는다. 한명이 말한다.
“빤쓰 하나 바꿨을 뿐인데 왜 이렇게 기분이 붕 뜨냐?”
여기에 대한 김영옥의 말, “인생은 빤스다 이년아.”

내가 갖고 있는 팬티의 대부분은 2005-2006년 사이에 마련한 거다.
그때 난, 일이 이상하게 꼬이는 바람에, 매주 10학점에 총 14시간씩 강의를 해야 했다.
강의 주제도 유전학, 비교해부학, 의학개론 등 기생충과는 크게 관련이 없는 것들이어서
주말에만 집에 들어갈 정도로 몸 고생, 마음고생을 했다.
유전학 첫시간엔 파도에 흔들리는 난파선 사진을 하나 띄워놓고
“이게 유전학의 운명입니다”라고 했을 정도.
그때 난 새벽까지 강의준비를 하다 라꾸라꾸 침대에서 잠을 잤고,
아침에 사우나를 갈 때마다 병원 앞 편의점에서 팬티와 양말을 샀다.
결혼 후 아내가 “아니 왜 이렇게 팬티가 많아?”라며 놀랄 수밖에.
하지만 편의점에서 산 팬티는 색상이 대체로 구렸고,
이건 내가 험하게 입은 탓도 있겠지만, 튼튼하지가 않았다는 게 문제였다.
그러다보니 어느날 출근을 하려고 보니 빨아서 널어 놓은 빤스 중
입을만한 게 하나도 없는 지경에 이르렀다.
어떤 건 늘어났고 어떤 건 색이 바랬으며, 또 다른 건 구멍이 나 있었다.
늘어난 팬티를 입고 하루를 보내면서 했던 생각은 이거 하나였다.
멋진 팬티를 사자.

옥션에 가보니 세상에, 값도 싸고 색상도 아름다운 팬티가 무지하게 많았다.
하나둘 고르다보니 나도 모르게 열두장의 팬티가 담겼다.
나답지 않게 택배 오기를 기다렸고,
팬티가 도착한 날엔 팬티를 늘어놓고 3분여 동안 넋을 잃고 바라봤다.
도대체 옷장 앞에서 뭐하느냐는 아내의 잔소리가 있기 전까지.
새 팬티를 입고 출근한 어제, 하루종일 기분이 상쾌했고,
소변을 볼 때 특히 기분이 좋았다.
김영옥의 말은 진리였다.
인생은, 팬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