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안으로 이사온 후 강남에 갈 때는 고속버스를 이용한다.
고속버스는 대개 자리 사이의 간격이 좁아 나처럼 다리가 기형적으로 길면 앉아있기가 힘든데,
그래서 난 비교적 공간이 넓은, 문 바로 앞 자리를 미리 예약해 둔다.
그날도 좌석표 3번이 찍힌 표를 창구에서 찾아 버스에 올라탔다.
그런데 웬 아주머니 한분이 내 자리에 앉아있다.
내 자리라고 했더니 그 아주머니도 자기 자리라고 우기며 표를 보여준다.
보니까 원래 12번인데 볼펜으로 지우고 3번으로 고쳐썼다.
창구 아가씨가 3번 좌석이 팔린 줄 모르고 그런 모양이다.
"제가 사흘 전에 예약한 자리예요!"라고 따졌더니만
그 아주머니는 "다른 자리도 많으니 내가 양보할게요."라며 자리를 옮긴다.
속으로 "흥, 양보는 무슨!" 이러면서 책을 펼쳐들어 읽기 시작했다.
잠시 후 검표가 시작됐다.
검표는 대개 뒷자리부터 하는지라 맨 앞 자리인 내 표는 마지막으로 검사했다.
회수용 표를 받은 그가 그냥 내리려 하다가 날 향해 돌아선다.
"혹시 서울 가세요?"
"네."
"이거, 광주 가는 찬데요?"
이런, 내가 버스를 잘못 탄 거였다.
시계를 보니 1분도 채 남지 않았기에
난 황급히 차에서 내려 서울행 푯말이 있는 버스로 몸을 날렸다.
그래도 내가 기특한 건,
그 와중에 아까 자리다툼을 했던 아주머니한테 죄송하다며 인사를 했던 거였지만,
버스에서 내릴 때 어찌나 얼굴이 화끈거리던지.
앞으로는 좀 바르게 살아야겠다.
* 결혼 후 실버로 떨어졌던 내 등급이 최근 플래티눔으로 향상됐다.
천안으로 오고 나서 책을 오히려 더 못 읽고 있는 판에
왜 갑자기 등급이 오른 건지 모르겠다.
혹시...새해부터 플래티눔이 책 잘 안사는 등급으로 바뀐 건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