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2011년에 가장 재미있게 봤음에도 불구하고 흥행과 비평 모두에서 저평가되었다고 주장하는
영화가 바로 <황해>다.
거기서 하정우는 전작인 추격자보다 몇 배는 더 힘들게 조직과 경찰로부터 쫓겨다니는데,
총까지 맞은 채 눈 덮인 산에서 입김을 불고 있는 장면에선 가슴이 아팠다.

독감에 걸렸다.
"독감 백신은 노령자나 맞는 거야!"라며 만용을 부리다 백신을 안맞은 게
덜컥 독감에 걸린 이유일 것이다.
수요일 저녁부터 계속 누워만 있는데,
오늘은 몸이 너무 안좋아 학교를 못가버렸다.
그래도 강아지 산책은 시켜야지,하면서 장비를 챙겨 나가다 거울을 보니
<황해>의 하정우 생각이 났다.
그 영화에서 조선족인 하정우는 김 교수를 청부살인할 임무를 띠고 우리나라에 온다.
김 교수가 사는 건물을 답사하고, 김교수의 퇴근시간을 알기 위해 근처에서 라면을 먹으며 잠복도 한다.
그러던 어느날, 건물의 셔터가 내려가는 순간 하정우는 김교수와 정면으로 맞닥뜨린다.
경호원을 겸한 운전기사가 덤벼들려 하자 김교수는 그를 제지하며 묻는다.
"조선족이지?"
그러면서 그는 "춥다고 여기서 자지 마"라며 지갑에서 2만원을 꺼내 하정우에게 준다.
"가서 사우나나 해."

엘리베이터 거울에 비친 내 모습은, 하정우 팬들에겐 미안하지만,
당시 건물에서 김 교수와 맞닥뜨린 하정우와 비슷해 보인다.
누가 날 만나면 "조선족이지?"라고 물을 것만 같은.
그래서인지 내가 엘리베에터에 타면 주민들이 슬슬 경계하는 눈치다.
(아직까지 돈을 건내준 사람은 없다).
빨리 독감이 나아 이 빵모자 대신 원래 쓰던 야구모자를 쓰고 다닐 날이 왔으면 좋겠다.
그리고 내년엔 꼭 독감백신을 맞자.
내 나이면 그거 맞아야 할 나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