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일시: 6월 15일(화)
누구랑?: 우울하다고 했던 친구랑
마신 양: 무진장...
술일기를 쓰면서 올해 목표를 180일 이하로 잡았었다. 하지만 그게 잘 안되어 200번으로 슬그머니 바꿨다. 12월 특수를 감안한다면 6월말까지 95번 아래로 끊어줘야 하건만, 벌써 88번이다. 이번주 두 번, 다음주 다섯 번이 예정되어 있는지라 이변이 없는 한 95번을 넘길 것 같다.
비가 오면 사람들은 술을 마시고 싶어한다. 기쁜 일이 있어도, 슬픈 일이 있어도 그건 마찬가지다. 나? 돌이켜보면 그런 감정에 좌우되어 술을 마신 건 드문 것 같다. 즉흥적인 감정에 휩싸여 마시기보다는, 난 미리 정해진 약속에 따라 술을 마시는 편이다. 그날 슬픈 일이 있다면 마시는 양이 더 많아지긴 하지만 말이다.
7-8년 전만 해도 우울할 때면 혼자서라도 술을 마셨다. 연간 300번을 넘게 마셨던 그 시절, 난 술을 벗삼아 슬픔을 이겨냈다. 술을 마신다고 상황이 달라지는 게 아니라는 건 잘 알고 있었지만, 술을 마시지 않고는 견딜 수 없을 때가 이따금씩 있는 법이다. 그러고보면 술은 그당시 내 가장 좋은 친구였다.
이런 적이 있었다. 어느날 아침에 출근을 했는데, 너무너무 슬픔이 몰려왔다. 매점에 가서 소주 세병과 참치 캔을 샀다. 그리곤 실험실 구석에 가서 조용히 술을 마시기 시작했다. 그게 아마 아침 열시쯤 되었을 거다. 마시는데 눈물이 펑펑 흘렀다. 내게 장난을 치러 온 사람들이 놀라 도망갔고, 잠시 후 내가 왜그러는가를 알기위해 회의를 열기도 했다. 그렇게 두병 반을 비웠고, 그러다 잠이 들었다. 내가 마신 술 중에 가장 슬픈 술이었는데, 그 술 덕분에 어느정도 슬픔을 몰아낼 수 있었던 것 같다. 누군가 내게 왜 우냐고 물었을 때, 술에 취해 하나도 기억이 안나는 상태에서 이렇게 대답했단다. "안약 넣어서 그래요" "안약?" "저 렌즈 끼는 거 몰라요?"
엊그제, "사는 게 너무 힘들다"고 하소연하는 친구와 술을 마셨다. 자기를 혼자 내버려 두라고 하는 그에게 이렇게 말해줬다. "니가 내 친구인 이상 혼자서 괴로워하도록 내버려 두지 않겠어" 나름대로 멋진 말이었지만 그 친구는 하나도 감동하지 않은 듯했는데, 그래도 그 가 웃는 모습을 몇번 보여 줘서 보람은 있었다. 크기가 작든 크든, 사람은 누구나 저마다의 고민을 가지고 산다. 언제나 사자처럼 강하게 느껴지던 그도 이런저런 고민을 가진 한 인간이었다. 술이 나의 좋은 친구였듯이, 나도 그에게 좋은 친구로 남을 수 있었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