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일시: 6월 14일(월)
누구와: 내가 담당했던 일이 마무리되어 학교 사람들과 먹었다
마신 양: 소주 3/4병--> 섬씽
"이친구 이거 안되겠는데? 가만히 놔두니까 해도 너무해"
"제가 불러서 얘기하죠"
내가 삐삐소설이라는 허접한 무기로 매스컴을 누비던 시절, 심복이 전해 준, 모교 선생님들끼리 나눈 대화 내용이다. 한두번은 아무말씀 안하셨지만, 경향신문의 매거진 X를 보고는 인내의 한계에 달하셨단다. 그 말을 들은 나는 제발로 자수했고, 앞으로 착하게 살겠다고 다짐을 했다. 다행히도 하나씩 하나씩 방송에서 잘리고, 잦은 인터뷰로 인해 신선도가 떨어지면서 나는 선생님께서 바라는 착한 아이로 되돌아갔고, 이듬해엔 무사히 박사학위를 받을 수 있었다.
2002년의 어느날, 모교에선 비슷한 회의가 열렸다.
"이 친구 이거 안되겠구먼! 도대체 어떻게 이런 말을 하고다니는 거야?"
"그러게 말입니다. 거 참..."
문제가 된 것은 중앙일보 기사였다. <xxx의 xx>이란 책을 내면서 그 취지를 묻는 기자에게 "기생충의 의도는 나쁜 게 아닌데, 본의 아니게 사람에게 피해를 주는 측면이 있다"고 한 것이 [기생충, 대부분 인체에 큰 피해 없어]라는 제목으로 와전되어 실린 것. 그걸 보신 선생님들이 불쾌해하신 건 당연한 일이었다. 그보다 더 기분이 나쁘셨던 건, 내가 책을 냈으면서 당신들에게 전해주지 않았다는 거였는데, 내가 책을 안드린 이유는 별게 아니었다. 드리면 또 "연구는 안하고!"라는 잔소리를 할 거였으니까, 그리고 어차피 안팔릴 책이니 조용히 사라지겠지, 하고 생각했으니까.
시사저널에 기사가 실렸을 때, 난 다음과 같은 시나리오를 생각했다.
"이친구 이거 안되겠구먼! 하라는 연구는 안하고 인터넷만 해?"
"그러게 말입니다. 새벽까지 접속을 한다니 그것 참..."
"도대체 무슨 헛소리를 쓰는지 한번 들어가나 보슈"
내가 그간 쓴 글들 중 보면 안되는 글이 얼마나 많은가. 난 황급히 서재를 닫고 부리로 변신해야 했다.
어제, 천안에서 술을 마시는데 서울서 전화가 왔다. 늦게라도 좋으니 좀 올라오라고. 약간은 불안했지만, 전화하는 사람의 목소리로 봐서 야단을 치려는 의도는 아닌 게 분명했다. 역시나 그랬다. 좋은 일이 있어 술자리를 갖던 중 내 생각이 나서 부른 거란다. 선생님, 그 밑의 애들과 재미있는 시간을 보내고 12시 반쯤 귀가했다. 내가 했던 행동은 오버였다. 다른 일로 바쁘신 선생님들이 신문도 아닌 잡지를 본다는 것, 그리고 그걸 보고 알라딘을 찾아온다는 건 사실 말이 안됐으니까. 그러니까 나의 행동은 아르헨티나와 영국이 전쟁을 하는데 내가 대구로 피난을 가는 것과 비슷한 일이었다.
며칠도 안되어 다시 마태우스로 돌아가려니 쑥스럽긴 하다. 그리고 여러 분들께 괜한 걱정을 끼쳐드린 게 죄송할 따름이다. 하지만 내가 있을 곳은 이곳이고, '부리'보다는 '마태우스'가 내게 더 잘 어울리지 않겠는가? 앤티크님이 돌아오셔서 알라딘이 혼란스러운 틈을 타서 슬쩍 복귀하기로 했다. 그간 받았던 위로에 보답하려면 예전처럼 열심히 서재활동을 해야 할 듯 싶다. 모두에게 깊은 감사를 드리면서 이만.
* 부리의 서재를 만들어주신 쥴님께 감사드리는 뜻에서, 서재 지붕은 그걸로 사용하기로 했습니다. 그전 지붕을 만들어주신 진우맘님, 죄송해요. 하지만 님 덕분에 집이 따뜻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