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림을 하다보면 깨닫게 되는 게 있다.

기껏해야 설거지가 내가 집에서 하는 일의 전부지만,

그거라도 하다보니 되도록 그릇을 적게 쓰는 생활습관이 몸에 뱄다.

엄마랑 살던 시절엔 물마실 때마다 새 컵을 꺼내 썼지만 지금은 그러지 않고,

음식이 좀 뜨겁다고 새 그릇에 덜어먹던 버릇도 없어졌다.


1. 도마

얼마 전 병원 앞에서 바자회가 열렸다.

바자회라고 더 싼 건 아니었지만 지나가면서 쓸만한 게 있나 눈여겨봤는데,

대나무로 만들었다는 도마가 전시되어 있다.

대략 3분간 그 도마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

집에서 쓰는 도마는 김치국물이 배겨 씻는 데 어려움이 있고,

물에 취약한지 여기저기 틈이 생기는데

대마무 도마는 그 두가지를 해결해 준단다.

2만5천원이란 가격이 생각보다 높아 그냥 지나갔지만,

점심 때 다시 보니까 아무래도 사야겠다 싶다.

결국 그날 난 도마를 사가지고 집에 갔고,

아내에게 칭찬을 받았다.

모자나 테니스라켓이 아닌, 도마를 보고 몇분간을 서있는 것도

5년 전이라면 상상도 못할 일. 




2. 도시락

얼마 전 무슨 모임에 갔다가 거기서 주는 도시락을 먹었다.

와, 이렇게 맛있는 도시락이 있다니.

순간 아내 생각이 났고, 내 눈은 이미 도시락이 쌓인 곳을 바라보고 있었다.

내가 좀 늦게 온 편이라 더 먹을 사람은 없어 보였고,

모임이 끝나고 나니 과연 주최측에서 남은 도시락을 싸고 있었다.

어떻게 해서 한 개를 얻었고,

비닐에 싸서 가방에 넣어 집에 가져갔다.

기습적인 비가 오던 그날, 소나기를 피하면서도 그 가방엔 물이 들어가지 않도록 조심하면서.

다음날 아침 아내는 그 도시락으로 아침을 해결했다.

맛있다며 도시락을 먹은 아내는 날더러 ‘살림꾼’이라며 칭찬했다.


3. 학원

아내는 후각이 발달한 편이라

결혼 전에 내 발냄새 때문에 결혼을 안하려고 생각한 적이 있단다.

그때만 해도 난 신발을 하나만 죽어라 신던 때였는데,

“신발 여러개 신으면 발냄새가 없어진다”는 친구의 충고를 듣고 나랑 결혼을 해줬다.

덕분에 난 발냄새가 없어져, 신발을 벗는 식당에도 자신있게 들어간다.

아무튼 냄새를 잘맡는 아내는 요리를 하는 동안 맡은 냄새에 질려

자기가 요리한 걸 잘 먹지 못한다.

그래서 난 가끔씩이라도 내가 요리를 해줘야지, 하는 생각을 갖게 됐지만,

지난번의 김치찌개 사건에서 보듯이 요리솜씨가 엉망이라

그 이후로는 시도조차 안하고 있다.

손을 다쳐 입원해 있는 동안 많은 생각을 했는데,

그 중 하나가 “퇴원하면 요리 학원에 다니겠다”는 거였다.

내일 모레, 그러니까 다음주 화요일에 드디어 손에 박힌 철심을 제거하고,

깁스도 풀어 드디어 오른손이 자유롭게 된다.

그래서 오늘, 인터넷으로 요리학원을 뒤졌고,

주말에 4시간씩 8주간 ‘가정요리’를 가르쳐 주는 학원에 등록했다.

기초가 워낙 부실해 거기를 다닌다 해도 뭘 제대로 할 수 있을지 의문이지만,

부실한만큼 더 열심히 준비해 볼 생각이다.

이러다 ‘요리가 제일 쉬웠어요’라는 책을 내는 게 아닌지 모르겠다,며 혼자 웃고 있는 중.
 


 

 

 

 

 

 


여기다 좋은 얘기만 써서 그렇지

난 사실 그리 좋은 남편은 아니다.

일단 마음이 좁아 삐지길 잘 하고,

청소 같은 것도 그리 좋아하지 않는다.

하지만 앞으로 남은 결혼생활은 길고 기니,

지금처럼 하나씩 하나씩 노력한다면 괜찮은 남편이 될 수 있지 않을까?

요리의 성공 여부가 중요한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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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SHIN 2010-11-14 00:4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늘은 칭찬 받을 일 투성이인걸요,형님.^^
참 잘 했어요.(토닥토닥)

마태우스 2010-11-14 01:59   좋아요 0 | URL
요즘 칭찬에 목말라 있었는데
엘신님의 칭찬에 갈증을 모두 채웠습니다.
글구...오늘 술자리 큰 게 있었는데
거의 안마시고 왔답니다.
이왕 하시는 거 이것도 마저 칭찬해주시길!

L.SHIN 2010-11-15 21:09   좋아요 0 | URL
나는... 출장 내내 하루에 맥주 한,두 병 가볍게(?) 마셨던지라..;
칭찬을 안할 수가 없군요.
분명 그런 술자리에서는 왕창 마시고 건강에 해를 끼쳤을지도 모르니까.
참 잘 했어요,이번도.(쓰윽쓰윽)^^

순오기 2010-11-14 01:1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렇게 진화할 줄 아는 남편이 최고에요.
그래야 늙어서 '남의 편'이 아닌 '내편'남편이 될 수 있거든요.
마태님, 참 잘했어요! 도장 꽝~~~~~~~^^

마태우스 2010-11-14 01:58   좋아요 0 | URL
순오기님 안녕하셨어요?
3년에 그치지 않고 남은 기간 동안 더 열심히 해서
진짜 좋은 남편이 되보려고 합니다 불끈!

hnine 2010-11-14 06:1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여자들이 원래 후각이 발달해있다네요. 남자의 사랑은 시각적으로 시작되고 여자의 사랑은 후각으로 시작된다 라는 말을 들었어요.
요리학원이라, 나도나도~~ 하며 따라 붙고 싶네요.
그나 저나 드디어 다음 주에 손의 기브스에서 해방되신다니, 무엇보다도 축하드릴 일입니다.

마태우스 2010-11-19 06:50   좋아요 0 | URL
그, 그런데 기브스에선 해방됐는데 핀 빼고나서 보조기를 착용했습니다ㅠㅠ
석달이라고 하기에 안믿었는데 석달을 넘어가 버렸네요
순간의 잘못이 이렇게 큰 지장을 초래하다니, 흑

마노아 2010-11-14 10:4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리 멋진 마태우스님은 이미 품절남!!

마태우스 2010-11-19 06:51   좋아요 0 | URL
아유 부끄...
제가 외모가 떨어지는지라 이것저것 해보려고 하는 겁니다. 만회 차원에서.

stella.K 2010-11-14 15:3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햐아~! 정말 마태님 살림꾼 다 되셨군요.
그래서 남자는 결혼을 해야한다고 생각합니다.
뭐 꼭 살림 때문에 해야한다는 건 아니고,
멋있어지잖아요. 가족은 그래서 좋은 것 같습니다.
뭘 먹어도 나 하나만을 생각하지 않는 것.
암튼 마태님은 나날이 멋있어지시는 것 같습니다.
철심 푸신 거 축하해요!^^

마태우스 2010-11-19 06:51   좋아요 0 | URL
그러게요 가족이 생기니깐 삶이 좀 떳떳해진 것 같더라고요
모임에 나갈 때도 그렇구,
하여간 철심 풀 때 무지 아팠습니다.
앞으론 몸을 사리며 살려고 합니다.

blanca 2010-11-14 22:5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마태님, 어떻게 이런 이쁜 생각을...저의 옆지기도 교육좀 ㅋㅋㅋ 부탁드려요...정말 음식하다 냄새 다 맡고 맛 다 봐버리고 나면 내가 한 음식은 아무 맛을 느낄 수 없답니다.(음식을 못해서일까요?--;;)

마태우스 2010-11-19 06:52   좋아요 0 | URL
오오 님도 냄새 맡으면 먹기가 싫어지는군요
아내가 그 얘기를 오래 전부터 했지만 외면해 오다가
팔다친 걸 계기로 마음 잡았습니다.

세실 2010-11-14 23:2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호호호 살림꾼 마태우스님^*^ 노력하는 모습이 보기 좋아요.
알콩달콩 예쁘게 사시는 모습 보니 제 기분도 좋은걸요.

마태우스 2010-11-19 06:52   좋아요 0 | URL
호호 뒤늦게 철들었죠!
제가 예쁘게 살아봤자 세실님만 하겠습니까?

조선인 2010-11-15 08:0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훌륭하신 남편입니다. 짝짝짝

마태우스 2010-11-19 06:53   좋아요 0 | URL
아직은 아니지만 앞으로는 꼭..!

다락방 2010-11-15 08:5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대나무 도마앞에 3분간 서있는 마태님이라니! 아, 정말 훈훈한 모습이에요. 게다가 요리학원까지 ㅠㅠ
아, 마태우스님은 정녕 하늘이 내린 남편이란 말입니까! 흑흑. 멋져요, 멋져.
만약 제게 혹시 남편이란게 생기게 된다면 이 페이퍼를 읽히겠어요. 불끈!

마태우스 2010-11-19 07:02   좋아요 0 | URL
다락방님은 제가 만난 분 중 가장 멋진 여자분이신데요 뭘.
안그래도 다락방 특집 페이퍼를 준비 중입니다. !

카스피 2010-11-15 09:4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마테님,요리 잘하는 부인>착한 부인>이쁜 부인순이라고 하던데 축하 드립니다용.그리고 정말 요리에 심취하셔서 책 한권 쓰시지 않을지 모르시겠네요^^

마태우스 2010-11-19 07:01   좋아요 0 | URL
헤헤 워낙 기초가 없어서 8주 배운다고 뭐가 달라질지 걱정이어요 1월 8일 개강이 제일 빠른 거라니, 2월 말에는 멋진 요리를 할 수 잇겠죠?

마태우스 2010-11-19 07:01   좋아요 0 | URL
헤헤 워낙 기초가 없어서 8주 배운다고 뭐가 달라질지 걱정이어요 1월 8일 개강이 제일 빠른 거라니, 2월 말에는 멋진 요리를 할 수 잇겠죠?

비로그인 2010-11-15 10:0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제 손으로 밥을 짓고 빨래를 하고 청소를 하지 않은 사람은, 제 그림자를 모르는 사람일 거라 생각한 적이 있습니다.
결론은--마태님 멋져요.

마태우스 2010-11-19 07:01   좋아요 0 | URL
제 그림자를 모르는 사람이라, 멋진 표현이어요! 감사합니다 주드님

BRINY 2010-11-15 11:4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대단하세요, 마태님.
누구누구 생각나서 완전 부럽습니다.

마태우스 2010-11-19 07:05   좋아요 0 | URL
저도 다치기 전까지 아무 생각도 없었는데요 뭐
부군께서도 무슨 계기가 있겠죠!

깐따삐야 2010-11-15 14:0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역시 사람은 아픈만큼 성숙해지나 봐요.^^ 마태님 나중에 맛깔스런 요리 포토 페이퍼도 올려주세요!

마태우스 2010-11-19 07:06   좋아요 0 | URL
글게요 아픈만큼 성숙..! 요리 페이퍼 2월 말부터 올릴게요

레와 2010-11-16 14:5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역시 역시 역시!!
마태우스님은 멋찐 사람이었어요!

마태우스 2010-11-19 07:06   좋아요 0 | URL
열심히 노력하겠습니다 꾸벅!

summit 2010-11-16 15:2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멋진 분이시네요. 생각은 누구나 할 수 있으나, 실천에 옮기는 사람은 극소수에 지나지 않는데... 요리학원에서의 좌충우돌 일상을 기대합니다.^^

마태우스 2010-11-19 07:08   좋아요 0 | URL
호호 요리학원의 좌충우돌... 남들에게 민폐 안끼치도록 기초를 닦아서 가야겠습니다

마태우스 2010-11-19 07:08   좋아요 0 | URL
호호 요리학원의 좌충우돌... 남들에게 민폐 안끼치도록 기초를 닦아서 가야겠습니다

가을백작 2010-12-30 10:27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정말 훌륭하신 남편이십니다~
정말 부러워요~
딴지일보때 부터 늘 팬이였는데..
그땐 주구장창 냅다 술만 드시는 분인줄 알았어요 ^^
가정스러운 마태우스님의 모습에 정말 멋진 분이시구나라고 감탄하고 있습니다
진정한 꽃미남이야 말로...
마태우스님 같은 분을 두고 하는 말이라는 걸 새삼 깨닫게 되는 하루입니다
저도 마태우스님을 롤모델로 삼아




이제부터 술을 늘려볼까 합니..

..아..아니에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