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휴대폰에 저장된 전화번호를 검색하다가 명철이(가명)의 번호를 발견했다. 올해 1월 3일, 젊은 나이로 불귀의 객이 되어버린 그 명철이. “다음 달이면 저 애아버지 되요”라고 했다던 그 명철이.
결혼한지 1년도 안되는 젊은 부인은 배가 남산만하게 불러 나타났다. 그녀를 보며 난 이런 생각을 했었다.
“그래도 명철이를 닮은 애가 있으니 살아가는 데 의지가 되지 않을까?”
하지만 아니었다. 명철이의 장인은, 술에 취하긴 했지만, 딸에게 그 아이를 지워버리라고 했다. 그때 그녀가 9개월인 걸 감안하면 대단히 놀랄만한 말이었다.
그 불길함은 현실로 이어졌다. 자의든 타의든 부인은 애를 낳아 기를 마음이 없었고, 큰누나로부터 뒷일을 다 책임지겠다는 약속을 받아내고서야 출산을 했다. 그리고 애는 태어나자마자 큰누나의 품으로 들어갔다.
그녀를 비난할 마음은 없다. 애 딸린 여자가 혼자 살아간다는 게 얼마나 어려운지를 대충이나마 짐작하기 때문이다. 내가 맨날 우려먹는 <행복한 여자>에서 주인공 여자가 이혼 전에 낳은 아이 때문에 얼마나 고통을 겪는지를 생각하면, 그녀의 선택은 자신의 인생이란 면에서 본다면 현명한 것일 수도 있다. 모성 운운하며 그녀를 비난할 분도 계시겠지만, 그 상황이 되어보지 못했다면, 즉 애를 가진 상태에서 남편이 죽는 참사를 겪어보지 못한 사람이라면 함부로 비난해서는 안된다는 게 내 생각이다.
물론 조금은 아쉽다. 애당초 가졌던 내 생각이 너무 순진했구나 싶기도 하고, 애는 엄마 밑에서 자라는 게 제일 좋지 않으냐는 보수적인 생각 때문이기도 하다. 어찌되었건 어머니는 그를 원하지 않았고, 그는 이제 고모 슬하에서 자라야 한다. 과연 그는 어떤 아이로 자랄까. 명석하고 외모도 훤칠했던 명철이였던만큼, 명철이를 닮은 아이로 자라나길 빈다 (일찍 죽은 건 빼고!). 십년쯤 후, 그 녀석으로부터 명철이의 모습을 일부라도 볼 수 있다면 얼마나 대견할까. 참, 한가지 더. 이왕이면 그 녀석이 말도 좀 많았으면 좋겠다. 명철이는, 너무 과묵해 가끔 답답할 때가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