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시: 1월 5일(금)
마신 양: 소주 두병 - 2잔
관대하게 봐줘서 상위 25%를 미녀라고 한다면, 우리 누나는 미녀다. 내 친구 중 누나에게 반해 내게 잘해줬던 친구가 둘 쯤 있고, 누나에게 자신의 붉은 마음을 전해달라고 했던 남자도 몇 있다. 신기하게도 누나는 나와 별로 안닮아서, 누나 얼굴만 믿고 동생과 소개팅을 시켜달라고 했던 후배가 미팅 장소에 나온 날 보고 기겁을 하며 “친동생이냐?”고 했던 적도 여러번이다.
그런 걸 감안하더라도 누나의 셋째 아들은 지나치게 예쁘다. 누나와 매형의 조합에서 어떻게 저런 예쁜 아들이 나왔을까 싶은데, 어릴 땐 한없이 귀엽다가 나중에 평범하게 되는 경우도 많으니 아직 방심하긴 이르다. 어찌되었던 부모자식간에도 미모가 중요한지 누나와 매형은 셋째의 미모에 반해 버렸고, 노골적인 편애를 일삼는다. 누나가 셋째를 부르는 호칭은 ‘나비’. 사랑을 듬뿍 받다보니 녀석도 사랑받는 데 익숙해져, 날로 애교가 는다.
잡지를 사러 교봉에 가던 중 소변이 너무 마려워 잠이 깼고, 안되겠다 싶어 내린 곳이 누나네 집 근처였다. 잡지 사는 걸 다음날로 미루고 누나 집에 가서 조카들하고 놀아야겠다는 생각이 불현듯 들었고, 내가 알콜중독이라 그런 거겠지만 빈손으로 가기 뭐해서 처음처럼 두병을 사들고 누나 집으로 갔다. 누나는 라면이 들어간 부대찌개와 밥을 내왔고, 난 내가 왔다고 뛸 듯이 기뻐하는 조카 둘-첫째와 둘째-을 앉혀놓고 수다를 떨었다.
“너희 엄마가 말이야, 젊었던 시절엔 분홍색 잠옷만 입고 3년을 살았다. 열두시 되면 일어나서 잠옷 바람으로 어슬렁....”
엄마의 젊은 시절이 조카들에게는 그리도 재미있는지, 다섯 살 때부터 웃음을 잃은 첫째도 마구 웃어댔다.
누나가 마신 두잔을 제외하고 내가 사간 술을 다 비웠을 무렵, 셋째가 학원에서 왔다. 날 보고 달려드는 셋째, 그런데 둘째가 다짜고짜 셋째를 두들겨 팬다. 왜 때리냐고 그랬더니 귀여운 척 하는 게 얄밉단다. 첫째까지 거드니까 셋째는 울면서 엄마한테 매달리고, 첫째와 둘째는 그게 더 얄밉다.
“쟤가 얼마나 여우인 줄 알아?”면서 에피스드 하나를 이야기해주는 둘째, 걔네들 셋은 우리 형제들이 그렇듯이 콩을 다 싫어하는데, 셋째는 누나 앞에서는 콩이 맛있다고 입에 넣고, 안보는 틈을 타서 콩을 뱉는단다. 야, 걔는 정말 귀여운 게 뭔지 아는구나. 여덟살 짜리가 그런 고단수를 쓰다니. 가진 자원이 없어 귀여움을 만들어 내야 했던 나에 비해, 외모에서부터 귀여움이 묻어나는 셋째는 인생 살기가 참 편하겠다 싶었다. 하지만 아무리 귀여워도 누나와 매형이 그렇게 노골적으로 편애를 하는 건 문제가 있다. 셋째가 응석받이로 자랄 가능성을 제외한다 해도, 편애에서 제외된 나머지 둘의 서러움이 그때처럼 셋째에 대한 미움으로 나타나기 때문.
형제는 자연이 준 친구라고 어느 경구집에 나와 있던데, 형제자매간에 우애를 하지 못했던 난 형제간에 친하게 지내는 사람들이 참 부럽다. 다른 건 몰라도 우애를 잘 못한 전통만은 후대에 전해주고 싶지 않은데, 왜 셋째만 예뻐하냐는 내 질문에 “걔가 제일 예쁘잖아”라고 당당히, 애들 앞에서 말하는 누나, 어쩌면 누나는 셋째에게서 자연이 준 친구 둘을 빼앗고 있는지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