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책은 융 심리학을 기본 바탕으로 사람이라면 누구나 갖고 있는 그림자에 대한 책이다. 성에 관한 문제로 나중엔 결별하긴 했지만 기본적으로 융이 프로이드의 제자인 만큼 프로이드 심리학의 기본 바탕인 이드, 에고, 수퍼에고 등이 등장한다. 책엔 주로 자아가 많이 나온다.

 골자는 비교적 간단하다. 인간은 기본적으로 욕구를 가진 동물인 만큼 그 욕구를 채우기 위한 본능적 갈망이 있다. 하지만 역설적으로 보다 이런 욕구를 잘 해결하기 위해 만든 것이나 다름 없는 우리의 문명은 이 욕구를 허용하지 않는다. 많은 문화권에는 여러 가지 금기사항이 있으며 허용되는 사회적 문화적 기준이 있는데 바로 이런 것들로 인해 인간은 자아를 형성하여 그 사회의 문화적 틀에 자신을 맞추게 된다.

 이 과정은 개인으로서는 자신의 그림자가 생성되는 과정이자 자아를 형성하는 과정이며 사회적으로는 문화인이 되는 단계이다. 하지만 인간은 문화인이자 필연적으로 동물이기에 본능적 욕구를 갈망하며 그림자는 점점 커져나간다. 대부분의 사람은 자신의 일부인 그림자를 혐오하고 대면하기를 거부한다. 하지만 문제는 그럴수록 커져간다. 그림자가 커지면 인간의 심리적 시소는 붕괴되며 그것이 내적으로 향하면 정신병이나 우울증, 자살로 이어진다. 그리고 그것이 외적으로 향하면 폭력이 자신의 가족이나 이웃, 사회의 소외계층이나 다른 민족, 다른 국가로 향하게 되는 것이다.

 때문에 저자는 인간이 선한 존재로 거듭나기보다는 그림자를 인정하고 그 욕구를 충족시켜나가는 전일적 존재가 되어야 한다고 말한다. 그림자를 달래는 과거의 좋은 방법은 제의나 미사를 통해서였다. 포장되기 전의 교회 미사는 매우 잔인하고 폭력적인 의식이었으며 사제는 그 폭력속에서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서 사제복을 입었다. 사람들은 그런 의식에 동참하며 그림자를 달랠수 있었다. 하지만 오늘날의 미사는 그런 것을 모두 버렸으며 사람들은 그림자를 달랠 방법을 잃었다. 새로운 방법이 필요해진 것이다.

 책은 그림자를 달랠 방법으로 종교, 운동, 예술, 다양한 취미활동, 음침한 소설이나 호러물, 잔혹한 영화 보기등을 든다. 이래서 성격이 비교적 온순하고 겁이 많은 사람도 좀비물을 좋아하는 건지도 모르겠다. 책은 해결책은 개인마다 다를 수 있으며 개인이 문화인으로 선한 삶은 살고 그러한 행위를 지속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그림자를 위한 행위도 해야함을 주장한다. 사람은 그림자를 해결하지 못하면 그것을 남에게 투사하기도 하는데 투사의 대상은 주로 자신의 자식이나 배우자다. 투사된 대상은 남의 그림자에 자신의 그림자까지 얹혀 있는 셈이기에 그림자를 달래기가 매우 어려워진다. 업보가 쌓이는 셈이다.

 

 

 

 

 

 

 

 

 

 

 

 

 

 그림자 책을 보면서 2년정도 전에 읽은 '왜 그들이 이기는가' 라는 책이 떠올랐다.  이 책의 주장은 참 신선했는데 선진사회의 성공 요인을 본능에 충실했다는 점에서 찾았기 때문이다. 사람의 본능적 욕구를 억누르거나 제대로 분출될 만한 통로를 마련하지 못한 사회는 필연적으로 성공하기 어려우며 이를 창의적인 부분이나 생산적인 부분으로 전환해주고, 긍정성을 부여한 사회가 성공했다는것이 이 책의 주장이었다. 그림자 이론과 매우 일맥상통한다는 느낌이었다.

  인간이 필연적으로 갖고 있는 어둠을 빛과 하나로 보고 조화시키고자 하는 이런 생각은 사실 우리에겐 크게 새로운 것은 아니다. 우리나라의 국기인 태극기가 이미 그러한 철학을 바탕으로 만들어진 것이기 때문이다. 그런 철학을 국기로 가진 나라가 교육이나 사회 여러분야에서 전인적 인간이 가장 부족하다는 것은 역시 또 하나의 모순이지만.

 그림자 책을 보면서 인간의 필연적인 악에 대해서도 다시 생각해보았다. 악은 매우 말하기 어렵지만 개인적으로는 한 존재가 자신이 뭔가를 얻기 위해 다른 존재를 해치거나 파괴하는 행위라고 생각한다. 인간은 스스로 양분을 얻을 수 없는 존재이기에 필연적으로 다른 존재인 동물이나 식물을 해할 수 밖에 없다. 생존을 위해 악을 행할수 밖에 없는 존재인 것이다.

 하지만 남자와 여자가 악을 동등하게 짊어질 필요는 없었다. 둘은 하는 일이 달랐기 때문이다. 인간이 가장 오랜 세월을 보낸 수렵경제시절 남자는 집단으로 사냥을 했고, 여자는 채집을 주로했다. 둘다 생존을 위해 다른 존재를 해하는 것이지만 채집은 다른 존재를 해하는 정도로 끝날수 있는 경우도 많았고, 식물이라는 존재의 고통을 인간이 느끼기 어렵다는 점에서 많은 그림자가 필요치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남자가 하는 사냥은 동물을 반드시 죽여야만 하는 것이었고, 그 과정은 매우 잔혹한 경우도 있었을 것이었기에 훨씬 많은 그림자를 필요로 했을 것이다.

 거기에 인간 사회 내에서도 남성은 수컷이고 사냥을 위해 수직적 관계롤 어느 정도 형성했기에 자신들 간의 짝짓기를 위한 지위 및 부를 얻기 위한 경쟁으로 더 많은 그림자가 필요했고 생겨났을 것이다. 반면 여자는 짝짓기 경쟁이 남성에 비해 훨씬 적고, 수평적 관계를 형성하는 관계가 많아 보다 적은 그림자가 필요했을 것이다. 또한 번식을 위해 아이를 임신하고 낳고, 육아해야 했기 때문에 그림자는 더욱 옅어졌을 것이다. 자신의 거의 모든 것을 희생해가며 한 존재를 키워내기 위해선 아무래도 빛이 많이 필요했을 것이기 때문이다.

 보다 많은 그림자를 짊어져서인지 남성은 전반적으로 여성보다 악하다. 살인이나 폭력, 강간, 교통사고 등 다른 이에게 폭력을 행사하는 여러지표에서 여성을 압도하며, 내적으로 향하는 그림자도 감당하기 어려워 각종 약물이나, 술, 담배에도 훨씬 많이 외존한다. 수명도 그래서 더 짧을 것인지도 모른다. 하지만 더 악하고 그림자가 짙었기에 더 빛났을지도 모르겠다. 그림자가 창의적인 부분이나 문화예술과 관련하기 때문이다. 실제로 가슴을 저미는 명곡이나 문학작품은 그림자가 짙어지는 이별이나 극도로 부조기한 현실속에서 잘 탄생하며 심지어 그렇기에 몇몇 예술가들은 그런 경험을 원하기도 한다.

 역사적으로 예술가나 음악가, 주요 학자들은 남성의 비중이 여성보다 많다. 과거 여성들에게 교육기회가 전무했기에 그랬던 면이 훨씬 더 크겠지만 남성의 그림자가 더 짙다는 점도 중요하게 작용했을 것 같다. 그래서 언젠가 비교적 완전한 평등사회가 올지라도 이런 분야에서 남성이 조금 더 두각을 나타낼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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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9-15 12:23   URL
비밀 댓글입니다.

닷슈 2018-09-16 09:09   좋아요 0 | URL
있을거라 생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