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통, 출근을 하지 않고 쉬는 날이 더 바쁜 것은 설마 저만 그런 것이 아닐테지요... 차라리 출근하는 평일이 더 쉬운 분들이 또 계시리라 믿으며....
여하튼, 어제 부처님께서 오신 덕분에 오늘 모처럼 하루는 쉬어볼까 합니다. 휴식은 온 종일 음악과 책을 번갈아 곁에 두는 것으로. 


오랫 만에 악성 베토벤께서 남긴 피아노 협주곡 5번을 열었다. 그리고 다음의 두 연주를 번갈아 들으며 하루를 보낼 예정이다. 삼천포지만, 고전 음악이 대중성을 확보하지 못하는 치명적인 단점 중 하나는 시간에 있다. 너무 길다. 대중성에 시간은 거대한 벽과도 같다. 애호가들은 시간 가는 줄 모르겠지만 그렇지 않다면 적응이 쉽지 않은 것이 문제이다. 사실 베토벤 피아노 협주곡은 결코 긴 편에 속한다고 볼 수는 없다. 그럼에도 최소 40분은 써야한다. 이것은 알라딘하며 고전 음악 포스팅을 제대로 할 수 없는 문제이기도 하다.  늘 아쉬운 이유이기도 하면서...



[[[ 사진 출처 ㅡ 위 사진은 별점 비교를 위해 동호회 '고클래식' 의 '명곡감상 비교'에서 가져온 것입니다. 로그인을 하지 않아도 접근이 가능합니다. 고전 음악에 관심이 있는 분이라면 매우 유익한 정보들을 얻을 수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위 음반의 별점은 고전 음악의 어느 절정 고수께서 표시한 내용입니다. 그 고수께서는 당시 지메르만의 연주에 별점을 4개 주었지만, 마음속으로는 별을 하나 더 살짝 얹었을지도 모릅니다.]]] 




1. 피아노 제르킨(Rudlof Serkin), 지휘 부르노 발터 (Bruno Walter), 뉴욕필(New York Philharmonic)  1941


뚜껑을 열어 걸면, 하루 종일 돌리게 되는 연주들이 있다. 내게는 위 연주가 그들에 속하는 연주인듯 하다.  좋은 연주라는 말은 무척 진부한 표현이겠고, 제르킨의 연주는 때로 전혀 다른 두 사람이 각각 왼 손과 오른 손을 따로 치는 듯한 착각을 불러일으킨다. 물론 그 둘은 둘이면서 하나이기도 하다. 다른 음반에서는 이런 느낌을 쉽게 발견하기 어렵다. 이 효과는 제르킨의 피아노가 주는 느낌일까 베토벤이 곡에 불어넣은 효과일까. 어느 쪽이든 제르킨은 정녕 위대한 피아니스트이다.



놀라운 것은 최소한 1940년 이전에 만들어진 피아노의 음이 이토록 좋단 말인가? 하는 감탄을 자아내게 된다. 당시의 녹음 기술이 모노인 점을 감안 할때, 피아노 제작 능력과 제르킨의 연주 능력 모두에게 큰 찬사를 보내지 않을 수 없다. 피아노는 단연 돗보이는데, 이는 협연의 질을 평가한 것이 아니라 음질만을 평가한 것이다. 이는 또한 오케스트라의 연주 소리가 당시 녹음의 조건을 충분히 반영하고 있는 점을 참고하여 내린 결론이기도 하다.


어째거나 제르킨의 연주에 협연하는 부르노 발터는 자신이 왜 거장인지를 이 음반에서 또렷하게 각인시킨다. 녹음 조건을 뺀다면 관현악은 협연으로서, 연주 자체로서 흠결을 전혀 남기지 않았다. 협연은 탄탄하고 짱짱하며 일사 분란하다. 피아노와의 조합은 말할 것도 없다. 청자에게 피아노와 협연은 둘이지만 하나라는 일체감을 선사한다. 최고 난이도에 조절된 기품있는 연주이고 리허설 과정은 또 어땠을지,경의를 보내지 않을 수 없다. 'Concerto' 는 바로 이런 것, 이라는 사전적 정의를 구현해낸 연주가 바로 제르킨과 발터의 것 이라고 말하고 싶다. 그리하여 이 연주는 오성(五星)의 빛나는 견장을 받을 자격이 있다!!




2. 피아노 크리스티안 지메르만(Krystian Zimerman), 지휘 레너드 번스타인(Leonard Bernstein), 빈필(Wiener Philharmoniker) 1989


[[[ 사실 서로를 꼭 쳐다볼 필요는 없지만 연주 중 지메르만은 종종 번스타인을 바라본다. 노장에 대한 경의일 것으로 생각한다. 지메르만은 속으로 생각할 것이다. 형님의 협연이 너무나도 좋구나... 라고. 연주가 끝나고 번스타인은 지메르만을 한동안 포옹한다. 끌어안고 놔주질 않는다. 연주의 만족도를 보여주는 장면이면서 지메르만에 대한 애정과 경의를 보여주는 장면일 것이다. ]]]  


거의 대부분 존재하는 연주들이 매우 훌륭하지만 기호도에 따른 또 다른, 눈에 띄는 음반이 하나 더 있다. 지메르만과 번스타인의 연주이다. 물론 박하우스(Wilhelm Backhaus)와 슈미트 이세르슈테트(Hans Schumidt Isserstedt)의 1956년 연주는 왜 언급을 안하냐 반문할 수도 있겠지만 박하우스 선생의 2악장은 내가 원하는 템포보다 빨라서 탈락^^ (팬들께는 죄소옹~)



1악장 ㅡ 초반, 피아노 도입에서 지메르만의 손가락이 아직은 살짝 덜풀린듯한 음을 낸다. 그러나 곧 그의 손가락에 신기(神氣)가 들어간다. 베토벤께서 주제를 뚜렷하게 제시했다. 생각보다 많은 것을 제시해준다. 피아노가 물러가면, 번스타인과 빈필은 자신들이 어떤 존재인지를 제대로 확인시켜 준다. 백발의 할아버지인데 번스타인 어르신 너무 귀여우심. 피아노가 호른과 독대하는 1악장의 끝 부분은 정녕 언어로 표현할 길이 없다.



[[[ Musikverein Wien 1989년 실황이다. 늘 아쉬웠던 점은 화질이었다. 마스터링(mastering)을 다시한 깔끔한 영상이 새롭게 올라와 있다. 정말 고맙고 반가운 일이 아닐 수 없다. ]]] 



가장 특징적이고 눈에 띄는 순간, 아니, 귀가 번쩍 뜨이는 순간은 1, 3악장에서 현악기 파트와의 협조력이 빛나는 순간이다. 피아노와 현의 피치카토(Pizzicato 줄여서 Pizz.)가 여백을 채우며 서로 들고나는 순간이 진정 예술의 극치이다. 튕기듯 휘어져 서로 달라붙는다. 경(經)과 위(緯)가 함께 비단을 짠다. 탄력있고 눈부신 비단을 완성했다. 입으면 사람의 체형에 맞게 움직여주는 원단이 있다. 이들의 연주는 바로 그 느낌이다. 이런 느낌은 다른 연주에서 찾아보기가 쉽지 않다.  악기들이 서로 이를 물고 들며 나는 순간, 이처럼 긴밀하고 품위있으며 쫀득한 연주를 완성하는 음반은 이뿐인가 하노라. 어찌 오성의 빛나는 견장을 마다할 것인가.



2 악장ㅡ 흔히 피아노 협주곡 중 가장 아름다운 아다지오라고들 한다. 깊은 슬픔, 이루 말할 수 없는  회한, 한없는 포근함, 부드러운 따듯함. 상처와 치유, 이 모든 것들을 버무려낸 것일까. 슬픔과 기쁨을 구별할 수가 없다. 동시에 전해오기 때문이다. 정녕 아름답다... 2악장 역시 최고로 눈이 부신 연주이다. 


3악장 ㅡ 곡의 마무리면서 연주의 끝이기도 하다. 그 감탄은 말로 표현할 수가 없다. 3악장은 감상 평을 남긴 애호가들이 이미 모두 말을 다했다. 당당하며 완벽하다. 2악장의 유곡(幽谷)에 깃든 불사조가 죽음의 재에서 부활하듯 재탄생하며 일어선다. (지메르만) 이것이 나의 피아노다!! 


지메르만과 번스타인의 협연을 듣기 전에는 제르킨과 발터의 연주가 주는 아쉬움을 발견할 수 없다. 그만큼 제르킨과 발터의 연주는 훌륭하고 빼어나다. 지메르만과 번스타인의 연주를 들은 후에 베토벤의 황제는 지메르만과 번스타인이 기준이된다. 물론 음악은 기호이므로 모든 선택은 존중받아 마땅하다. 사실 나는 모든 연주를 사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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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nine 2026-05-25 11:1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는 임윤찬이 연주한 것을 들은 후론 그것만 듣고 있네요.
누가 연주를 했든, 하던 일 멈추고 듣게 되는 곡이지요.

차트랑 2026-05-25 12:43   좋아요 0 | URL
안녕하세요 hnine님,
저도 임윤찬, 홍석원, 광주 심포니, 2022, DG반을 소장하고 있습니다.
두분께서 명연를 남기셨지요?
말씀해주신대로 어느 분의 연주이든 정말 좋은 곡입니다.

음악을 좋아하시는 분 인줄은 짐작으로 알고 있었는데,
말씀을 들으니
더욱 반갑습니다 hnine님
좋은 휴일 되십시요~!











 



러시아 문단을 바라보면, 커다란 봉우리가 하나 서있다. 그 봉우리의 이름은 '톨스토이'이다. 그 봉우리 뒤로 안개속에 가려져 잘 보이지 않지만 그보다 더 큰 산으로 이어져 있는, 끝이 보이지 않는 산맥이 있다. 바로 도스도옙스키 산맥이다. ㅡ앙드레 지드



사실 내게 도스도옙스키는 접근하기에 결코 쉬운 작가가 아니다. 그의 작품을 읽기에는 나의 능력이 모자란다는 것을 스스로 잘 알고 있기때문이다. 그 깊은 산중으로, 아니 그 커다란, 잘 보이지도 않는 산맥 안으로 들어갔다가는 길을 잃을 것이고, 나는 분명 중간에 지쳐 쓰러져 버릴것이다. 이렇듯 나로서는 감히 엄두가 나지 않는 소설들이 특히 도스도옙스키의 것들이다. 도스도옙스키의 소설들이 아니어도 나는 모든 소설들이 어렵다고 느끼고 있었다. 부끄럽게도 도스도옙스키의 소설들은 물론 대부분의 소설들과 서먹하고도 소원한 관계를 지금껏 잘 유지해왔다. 



탐험은 본디 미지의 것이고, 그 무엇과 조우할지 모르는 아찔한 기대감, 혹은 심장을 조여오는 쫄깃한 긴장감을 즐기는 특성을 가진 것이기도 하다. 전혀 예상치 못했던 뜻밖의 발견은 어마어마한 덤이다. 때로는 그 뜻밖의 덤이 탐험가의 인생을 엉뚱한 곳으로 바꿔놓기도 한다. 발을 헛디뎌 낭떠러지로 떨어질 지도 모르는 가파른 산을 오르는 것도 이와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탐험은 단지 에베레스트를 오르내르는 것과는 전혀 다른 성질의 것이다. 발견이 기다리고 있고, 미지성과의  조우가 기다리고 있다. 그 조우는 결코 단순한 노동의 댓가가 아니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탐험은 스스로 해야 그 가치가 빛날 것이다.




그러나 나는 내비게이션과 전조등을 준비해 그 깊고 어둑한 곳으로 들어가보기로 했다. 자신이 없는 험난한 길을 떠날 땐 내비게이션, 뭐 이런 심산이다. 도덕경은 이런 곳을 '玄현'이라고 했다. 有와 無가 혼재하여 구분할 수 없고 아득하여 보이지 않는 경지가 바로 현(玄)인 것이다. 이런 현(玄)이 산(山)에 중첩되어 있으면 이를 유(幽)라고 한다. 유(幽)는 현보다 한 길 쯤 더 들어간다. 그리하여 유(幽)에는 삶과 죽음이 깃들어있게 된다. 유택(幽宅)은 그리하여 망자(亡者)가 머무는 거처이다. 내게 도스도옙스키로 가는 길은 '유곡幽谷'에 드는 것과 마찬가지다. '유곡幽谷'은 생명을 거두어 들이는 곳이기도 하고, 보이지 않는 그 무엇인가를 품어 태동시키는 곳이기도 하다. 정녕 신비로운 곳이 아니겠는가...



[[[ 도스도옙스키를 읽어보고 싶었지만 아직 그러지 못하신 분들 중에는, 1) 책이 겁나 두꺼워서  2) 왠지 어려울 것 같아서  3) 도스도옙스키가 뭐 대순가? 등의 이유가 있을 듯 하다. 그러나 이 책, '도스도옙스키 번역 일기'를 읽어본다면 도스도옙스키의 그 어떤 소설 하나는 꼭 읽어보겠다는 강력한 의지와 힘이 생기리라 믿는다. 나는 죄와 벌, 백치, 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 이 세 종류는 반드시 읽고야 말겠다는 강한 의지를 뛰어넘는 전투력을 가지게 되었다. 다 읽기 전에는 결코 시들지 않을 전투력이라 해도 좋을 것이다. '도스도옙스키 번역 일기'는 도스도옙스키 낚시꾼이다. 이 책을 읽고도 낚이지 않는 자, 없을 것이라고 감히 추측해본다. ]]]



도스도옙스키의 '죄와 벌'을 처음 접한 것은 중학생 때였다. 경애하는 조부께서 돌아가시고, 쓰시던 사랑방이 비게되었다. 나는 고입을 준비하는 수험생이었으므로 공부방으로 할아버지께서 쓰시던 방의 사용권을 요구했다. 그렇다고 공부를 더 열심히 하는 것도 아니다. 중요한 것은 공부라는 사실 자체가 아니다. 매사가 그러하듯 명분이 서느냐 이다. 그럴싸한 명분 앞에 뜻을 수월하게 관철시킬 수 있었다. 어렵지 않게 방의 사용권을 확보했던 것이다.



자연스럽게 그 방 안에 있던 책들도 나의 것이 되었다. 사랑방에는 깡촌에서는 믿기 어려운 도서 목록들이 있었다. 셱스피어 전집, 죄와 벌, 신곡, 데카메론, 펄 벅의 대지 등등의 책들이 그것이다. 윤초시네 시골과 버금가는 곳 이었으므로 주변 수십리를 모두 찾아도 이런 목록을 가진 집은 없었으리라 생각한다. 비록 먼지만 쌓여가는 책들이기는 했지만. 그중 가장 흥미로운 책은 데카메론이었다. 약간은 선정적이며 성인들의 에로틱한 모습을 살짝 살짝 보여줬는데, 이는 중학생인 나에게 충분히 자극적이었다. 나는 고입 공부를 제껴두고 그 두꺼운 데카메론을 모두 읽었다. 완독의 힘은 다음 스토리에서 또 나올지도 모르는 기대감, 데카메론이 주는 야릇한 그 선정성에 있었다. 그리고 '말괄량이 길들이기'가 인상적이었다. 그렇다고 이해했다는 말은 결코 아니다. 그냥 흥미롭게 읽었다는 것일 뿐.



그 귀한 '셱스피어 전집'과 '죄와벌' '데카메론'등이 전혀 어울리지 않는 시골 촌 구석에 있게된 데에는 이유가 있었다. 경애하는 조부님께는 지극히 사랑하고 아끼는 친동생이 있었다. 그리고 경애하는 작은 할아버지에게는 아들이 하나 있었다. 당숙께서는 도회지로 나가 사셨다. 그리고 이것 저것 닥치는대로 일자리를 찾아 다녔다. 그 일자리 중 하나가 고전을 방문 판매하는 일 이었다. 당연히 큰댁인 우리집에도 찾아 왔다. 말 하나마나 할아버지께서는 조카가 권하는 책을 모조리 들이셨다. 다양한 고전들은 물론 태권도 교본, 절권도 교본, 합기도 교본, 편지쓰는 법, 전예해행초서 쓰는 법 등등등등...  이루 말할 수 없이 다양한 책들을 들이셨다. 지금 생각해보면 책으로 무술을  배우는 것은 무협지에서나 있는 일이었다. (한가지 남은 것이 있다면 완독의 힘이 되어준 것이 무엇이었든, 그 두꺼운 데카메론을 끝까지 읽어냈다는 자긍심이다.) 경애하는 나의 의가 좋았던 조부님 형제께서는 분명 부처님 곁에 가 계실 것이다.




중학생인 나에게 죄와 벌은 무척 충격적이었다. 초장부터 사람을 죽이는 장면과 마주했기 때문이었다. 그때만해도 죽음이라는 단어는 내게 존재 했지만, 살인이라는 단어는 내게 있지 않았다. 그런데 주인공이 사람을 죽였다!! 마음이 벌렁거렸다. 그리고는 또 사람을 죽였다!!! 결국 나는 죄와 벌을 손에서 놓고 말았다. 아... 나의 이 소심하고 심약함이여!!!

지금 돌이켜보면 내가 조금 더 대범했거나, 조금 더 머리가 좋아 '죄와 벌'이 얼마나 위대한 작품인지를 알아봤다거나, 작품의 매력에 흠뻑 빠졌더라면, 지금의 나는 전혀 다른 사람이 었을지도 모른다.
혹은 누군가가 옆에 있어, '죄와 벌'을 알아보는 안목을 가지고는 조용히 말하길, "그 소설을 끝내는 읽어야 하리라" 라고 조언을 했더라면 상황은 꽤나 달라져 있을듯 하다. 그러나 내게는 그런 행운이 영 따라주지 않았다. 그 후로 나는 소설을 외면하고 살았다. 그러다가 다시 만난 소설이 하필 '파리대왕'이었다. 



내가 생각하는 나의 오만은 죄이자 벌이다. 나는 파리대왕을 읽고 이렇게 독후감을 썼다. '인간의 야만성은 지극히 본능적인 것일 수 있다. 저 어린 학생들의 야만성을 보라. 나이가 들어야만 인간이기를 거부하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나이 어린 사람들이 인간성을 상실하고 그 어떤 상태로 타락을 하든, 어른들이 있어 이들을 구제할 수 있다. 그러나 기성세대의 야만성과 타락, 폭력, 인간성 상실, 욕망, 그 잔인한 전쟁으로부터 그들을 과연 누가 구제할 수 있을 것인가?'  나는 '파리대왕'의 어린 학생들을 통해 저자가 기성세대의 문제점을 지적했다고 판단했고, 나름의 해석에 아주 만족해하며 자뻑을 날리고 있었다. 물론 이 독후감은 나의 것이기에 저자가 의도했던 것 과는 전혀 다를 수 있다. 해석은 독자의 것이라는 오만이 또 작동한 것이다. 


나의 우쭐함도, 오만도, 그리고 나의 선택도 알고보면 내가 지금껏 받아온 '죄'이며 '벌' 이였다. 나의 독후감이 나를 벌했으니 말이다. 그리고 소설을 홀대하기 시작했다. 돌이켜보면 나의 이 건방은 나를 늘 곤란하게 했다. 그나마 때로는 이 건방이 보이지 않도록 뒤로 숨기려하지만 곧 들키고 만다. 건방과 오만은 도스도옙스키에 따르면 일종의 죄이자 벌이다. 건방과 오만은 신성함을 소홀히 하기때문이다. 그러므로 신성함을 잃는 것은 죄이다. 신성함을 잃는 순간 살인 이라는 벌이 시작되듯 말이다. 

그렇게 양극단의 경험들은 나를 서서히 소설과 더 멀어지게 했다.




그런데 요즘은 서서히 소설을 향해 시선을 주기시작했다. 책의 두께!! 한 손으로 들면 버거울것만 같은 두께의 소설들의 사진을 알라딘 서재에서 만나면서 였다. 나는 책의 두께에 매료되기도하고 기가 죽기도 하는  사람이었다. 그러나 고민스러운 일이다. 과연 어떤 소설부터 두께감을 갖기 시작해야할까....

블로그의 힘은 확실히 영향력이 있다. 게시된 사진 중 도스토옙스키의 소설들이 두터웠다. 게시해준 똘스또이의 '전쟁과 평화'는 무려 4권,  2988쪽, 무게 3.89kg. 너무 두껍고 기가 죽는다. 도스도옙스키의 '백치'는 상ㆍ하를 합하면 1,000 쪽이 넘었다. 역시 나의 기를 눌러 놓는다. 아련한 옛 추억이 떠올랐다. '죄와 벌'을 손에서 내려놓던 그 순간 말이다. 나는 지금껏 죄를 지었다. 행여 내게도 시베리아로부터 부활의 시간이 찾아 오려는가...



국립공원 앞에 산 전체 조망도를 보여주는 안내판이 있다. 나도 그걸 보고 가야겠다. 도스토옙스키는 크기를 가늠할 수 없는 안개에 가려진 산맥이라하니, 내비게이션과 전조등을 준비하는 마음으로 구입한 책이 바로 '도스도옙스키 번역 일기' 이다.


스포에 해당하는 이 책은 미지 탐험의 짜릿함과 긴장감을 주지는 못하겠지만 나의 무능력을 보완해줄 수 있겠지 싶다. 물론 도스도옙스키의 매니아들이나 소설 매니아들은 나의 이런 절차를 비웃을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현재의 나는 중학생 때의 소심함을 벗어났으니 이제 도스토옙스키에게 천천히 다가가려한다. 가다보면 앞서간 이들이 못보고 간 무엇인가가 하나 쯤은 내게 나타나지 않겠는가. 학부때 셱스피어에 관한 논문을 쓰고 박사가 된 사람들이 100여명이 넘는다는 말을 교수에게 들은 적이 있다. 속으로 '미쳤다', 생각했다. 셱스피어가 광산이라도 되나, 파고 파도 또 파낼 것이 있다는 뜻 아니겠는가. 셱스피어도 그정도인데 하물면 산맥인 도스도옙스키 선생이야 말해 뮛하겠는가. 그 깊고 깊은 산맥, 첩첩 산중, 안개에 가려 보이지않아 그 크기를 가늠할 수 없는 거대한 유곡(幽谷), 그 산맥속으로.. (Go for i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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잉크냄새 2026-05-22 21:0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책도 너무 두껍고 또 너무 어렵고, 도스도옙스키 선생뿐 아니라 대부분의 고전에 접근하기 쉽지 않은 이유인 것 같네요.
죄와 벌의 주인공 라스꼴리니코프의 이름만 외워 읽은 척 했던 철 없던 고등학교 시절이 떠오르네요. 그래도 삼국지 빼고 아직까지 이름 기억하는 몇 안 되는 주인공입니다. ㅎㅎ

차트랑 2026-05-23 07:05   좋아요 0 | URL
라스꼴리니코프의 이름을 기억하고 있으시다니 저보다 훨씬 더 대단하십니다 잉크냄새님,
저는 입 안에서 발음음이 안되서 혀가 꼬이네요 아놔~

삼국지보다 어려운 소설은 쫄려서 못 읽었습니다 ㅠ.
저는 영웅문이 최고의 소설인줄 알고 있었으니 원~

이제 천천히... 조금씩... 유(幽)의 연속인 산맥에
저의 지저분한 족적을 살짝, 티안나게 남겨볼까 합니다!
대단한 결심입지요, 암요~~^^

좋은 하루 되십시요 잉크냄새님~



 
도스토옙스키 번역 일기
김정아 지음 / 샘터사 / 2026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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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부 때, 어느 교수가 말했다. 셱스피어를 연구하여 학위를 받은 학자들이 100 명도 넘는다, 라고. 나는 속으로 생각했다. 셱스피어가 광산인가? 그렇게 많은 사람들이 파 낸걸 또 파내게? 이제는 좀 알 것 같다. 셱스피어는 탄광이고, 도스도옙스키는 끝없이 빛나는 금광 산맥임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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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스토옙스키 번역 일기
김정아 지음 / 샘터사 / 2026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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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나! 이런 번역가와 이런 번역이 있단 말인가? 대한민국 번역史의 전범((典範)을 제시한 번역가에는 깊은 경의를!!! 그리고 도스도옙스키 선생의 소설들에게는, 굿모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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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미지 출처 - 네이버 블로그 Chan's Screen  ]]] 



그 남에게 들려준 얘기는 대단한 것이 아닌, 누구나 해줄 수 있는 말이다.  그 남이 자신의 여친에게 잘못한 일이 있어 일이 이렇게 되었다고 하여 다음의 이야기로 시작했다.   


1) 사과는 눈을 보면서 하는 거란다


그 男에게 말해준 것 중 하나는 영화의 한 장면이었다.  바로 'Letters to Juliet'이 라는 영화이다. 기억을 잊어 검색을 해봤다. 2010년 수입 개봉한 영화이고, 관객수는 58만명이다. 그 해에 개봉한 영화 원빈과 김새론양의 "아저씨"가 관객수 617만명을 기록했다고 한다. '아저씨'에 비하면 죽을 쒀도 제대로 쑨 영화다. 이 영화의 대한민국 당해 년도 관객수는 10위 안에 들지 못했다. 로열티를 회수는 했는지 모르겠다.
(아...!  갑자기 원빈의 진짜 감동적인 대사가 다시 떠오른다. 눈을 부르릅 무섭게 뜨고, 어금니를 있는 힘껏 긴장시키며, 이를 악물고 원빈이 분노에 사무친 표정으로 저음의 포효를 내뱉는다 " 나 전당포한돠!!!!! 금니빨 빼고 싹다 씹어먹어주께에ㅡ!!!!!!!!!!!!!!!!!"  사실은 "모조리 씹어 먹어줄게" 이다 ) 


대한민국에서의 흥행은 별로였고, 그리 임팩트가 있는 성격의 영화도 아니어서 이 영화를 좋아하는 분들이 몇이나 계실지는 모르겠다. 나는 할머니 역으로 출연한 '바네사 레드그레이브 Vanessa Redgrave'의 팬이라고는 말하지 못하겠지만 좋아하게 되었다.

이 영화와 레드그레이브를  좋아하게 되는 동기를 부여해주는 장면이 하나 있다. 나의 기억 속에 각인된 정말로, 정말로 멋진 장면 말이다.

젊은 남자 주인공 '찰리'는 어쩌다가는 젊은 여자 주인공인 '소피'의 마음에 생채기를 내버린다. 스토리가 늘 그러하듯, 찰리는 소피에게 사과하고 싶어한다. 아래의 대본에서 보듯이 사과하는 입장에 있는 찰리의 태도가 영 어색하고 시원찮다. (어쩌면 이런 남자가 진짜일 수 있다. 선수는 절대로 이런 아마추어같은 모습을 보이지 않으니 말이다. 매사 능숙하고 이벤트 하는 남자 조심...) 그러자 갑갑했던지 이를 보다못한 할머니 클레어의 즉석 사과법 한 수 지도 들어가신다.


"사과는 정중히, 그리고 눈을 보면서 하는거란다. 진심을 담아서, 그리고 뉘우치는 마음으로", 영화 letters to Juliet 에서 할머니 클레어는 자신의 손자 찰리에게 이렇게 지도하신다. 우리말 해석을 내 멋대로 이렇게 하기는 했지만 대본을 들여다보면 다음과 같이 써있다.


영화 속의 클레어는 " in the eyes, truly,  with contrition and sincerity 눈을 보면서, 그리고 진심으로 뉘우치면서" 라고 아주 부드러운 톤으로, 동시에 마치 훌륭한 교육자 상을 백만 번은 받았을 법한 초등학교 선생님이 학생들을 지도할 때 보여주는 우아하고도 소신있는 목소리로 또박또박 말한다. 영화에서 클레어는 분명히 "truly" 라고 말하지만 위 대본에는 없다. 클레어의 애드립인지 아니면 다운로드 받은 대본이 빼먹은 것인지 나로서는 알 수가 없다. 그러나 그 "truly"가 주는 레드그레이브의 딕션은 순간의 장면과 아주 잘 어울렸고, 지도의 순간을 훨씬 더 빛나게 했다고 생각한다. 할머니의 지도력 있는 이 장면은 클레어라는 어른의 존재 이유를 증명해준다. 나는 이 뭉클한 장면을 선명하고도 또렷하게 기억하고 있다. 그리고 그런 일이 생기지 않는 것이 좋겠지만 행여 사과를 할 일이 발생한다면 늘 클레어의 말을 기억했다, "사과는 눈을 보면서 하는 거란다.".



2) 사랑은 감정이다!!


또 물론 스토커를 말하려는 것이 아닌 줄은 다 아시리라 믿는다. 또한 집착을 말하려는 것도 아닌 줄은 다 아시리라 믿는다. 사실 이 말은 하나마나한 말이지만, 영화에서 할머니는 손자에게 사랑은 감정이라는 것을 가르치고 있는 중이다.

용서를 구해야하는 입장에 처한 사람이 취해야할 태도가 상대방의 마음을 움직일 수 있느냐는 모든 관계의 핵심일 수 있다.
화가 나있거나 마음의 상처를 입은 상대에게 아무리 이성적인 접근을 시도한다 한들 소용이 없다. 이성적인 접근은 애초에 코드 자체가 다른 것이다. 이해를 요하는 상황에서 오해가 발생한 경우 이성적인 설득이 주효할 것이지만, 마음을 얻어야하는 상황에 알맞는 코드는 감정이다. 감성과 이성은 애초에 파동 자체가 다른 성질의 것이다. 기분이 나쁘면 매사 일이 틀어지니 말이다. 사실 남녀의 관계는 '화성에서 온 남자, 금성에서 온 여자'이다.
 



3) 사랑은 시간이다!!


사랑은 시간과 아주 밀접한 관계가 있다. 그 또는 그녀가 나를 위해 얼마의 돈을 쓰느냐도 하나의 척도가 될 수는 있겠다. 그러나 시간은 돈과 바꿀 수 없고, 그 무엇과도 교환할 수 없는 가치를 가졌다. 그 귀하디 귀한 시간을 아낌없이 나와 함께하고 싶어하는 사람은 분명 사랑을 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돈으로 시간을 사려는 사람은 사랑을 하는 사람이 아니다. 또한 그러므로 한 겨울 나를 위해 뜨개질한 한 켤레의 벙어리 장갑은 바로 사랑의 증표가 될 수 있다. 자식 또한 마찬가지다. 돈으로 키운 자식과 시간으로 키운 자식은 분명 다르다는 것을 알아야한다. 시간으로 키운 자식은 나이가 들어 그 시간을 부모에게 되돌려주려고 노력한다. 반면 돈으로 키운 자식은 그럴 가능성이 거의 없다. 결국 자녀의 불효를 한탄할 가능성이 높다.


소피는 곧 결혼하기로 약속한 약혼남과 여행을 하고 있는 중이었다. 그러나 이 약혼남은 사업에 몰두하느라 소피와 시간을 함께하지 못한다. 함께 여행을 와서는 따로 논다고? 이 男은 함께있어도 상대방을 외롭게 만드는 스타일의 男이었다. 영화니까 그러는 거겠지만 말이다.  반면, 할머니 클레어는 과거에 자신의 마음을 내어준 남성을 50년간 잊지 못하고 있었다. 그것은 클레어만 그런 것은 아니었다. 상대방 男도 그랬다. 그들은 정녕 서로를 사랑했던 것이다.


한 쪽은 함께있어도 시간을 공유하지 못하는 커플이고, 다른 한 쪽은 아주 아주 오래도록 떨어져 있지만 시간을 함께 하고 싶은 사람들이다. 이 영화는 이런한 시간의 대조법을 잘 활용했다. 男과 女의 사랑에 관한 영화라서 결말이 훤이 보이고, 뻔한 영화라서 뻔할 뻔짜, 누구라도 짐작이 가지는 영화이지만 그래도 재밋고 진지한 것은 이성이 아니라 감성에 닿아있는 영화이기 때문이다.

이성(理性)의 중요성을 모르는 바는 아니다. 그러나 나는 삶의 8할은 감정이 차지한다고 보는 입장이다.


에릭 프롬은 철학자이지만 '사랑의 기술'은 '태도'의 중요성과 '훈련'을 강조한다. 나아가 에릭 프롬은 사랑을 '사랑 받는 사람의 성장과 행복에 대한 능동적 관심'으로 규정한다. 사실 이 모든 것들은 감정에 관여하는 것들이다. 그에의하면 감정도 훈련을 해야할 필요가 있다. 에릭 프롬은 감정을 세련되게 표현하는 방법을 익히라고 권하고 있는 것이다.
에릭 프롬은 사랑은 둘이 하나가 되는 것이지만 동시에 둘로 남아있다는 역설이 성립한다고 말한다. 그 연결 코드는 단연 감정이 아니겠는가.



카네기는 말한다, '사람의 마음을 움직여라'. 쉽게 말해 일을 성사시키려면 상대방의 마음을 얻으라는 조언이다.


카네기가 말하는 기본은 '논쟁하지 마라, 비난 하지 마라, 칭찬 하라'이다. 한마디로 상대방의 기분을 상하게 해서 이로울게 하나도 없다는 뜻이다. 그는 논쟁에서 이기려면 논쟁하지 말라고 한다. 상대방의 이름을 기억하고 상대방에게 말을 많이 하게하라고 조언한다. 실제로 논쟁의 승자가 자신의 뜻을 관철시키는 경우는 드물다. 카네기의 이 모든 조언들은 상대방의 감정을 고려한 조언들이다.

카네기의 결론은 이것이다. 진심으로 찬사를 보내고 아낌없이 칭찬하라!!


얼마 전 나는 한장의 청첩장을 받았다. 그 男과 그 女가 상암동에서 결혼을 한다는 소식이다. 서로 사랑하여 혼인을 하게되었으니 정말 축하할 일이다. 두 사람의  행복을 진심으로 빈다.  




사실, 혼인을 할 정도의 인연은 따로 있다. 인연이 없는 상대와는 아무리 노력을 해도 뜻을 이룰 수 없고, 인연이 있다면 누가 뭐래도, 또 어떤 일이 닥쳐와도 결국 뜻을 이루게 되어있다.  이런 점에서 내가 그 男의 결혼에 기여한 바는 없다고 보는 것이 맞다. 아무리 내가 나선들, 인연이 아니면 결코 이루어지지 않았을테니 말이다. 그렇기는 하지만 독서는 열심히 합시다요~! 
 

마지막으로,  그 男과 헤어져 돌아서면서 아차 하고 후회한 책이 떠올랐다.  함께 주었으면 훨씬 더 좋았을걸 후회 했던 것이다. 그 책은 바로 '화성에서 온 남자, 금성에서 온 여자'였다. ㅠ 더이상 책을 주지 않아도 될듯 하지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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잉크냄새 2026-05-19 20:2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눈을 바라보며 말하기가 쉽지 않죠. 사과도 사랑도 눈을 바라보고 해야 하는데 말입니다. ㅎㅎ

차트랑 2026-05-20 08:26   좋아요 0 | URL
아이구야~
생각해보니, 눈을 바라보며 말하기가 쉽지 않아보이는군요~ ㅠ

오늘은 비가 오시네요.
좋은 하루 되십시요 잉크냄내님~!!


firefox 2026-05-20 03:1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글 잘봤습니다. 건강은 회복하셨는지 궁금하네요. 언제나 건강하고 행복하시길 바랍니다.

차트랑 2026-05-20 08:37   좋아요 0 | URL
안녕하세요 firefox님,
저의 건강을 염려해주셔서 고맙습니다.
현재는 회복한 상태입니다.

건강한 신체를 가졌다는 것은 정녕 홍복입니다.
firefox님도 늘 평안하시고,
건강하십시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