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통, 출근을 하지 않고 쉬는 날이 더 바쁜 것은 설마 저만 그런 것이 아닐테지요... 차라리 출근하는 평일이 더 쉬운 분들이 또 계시리라 믿으며....
여하튼, 어제 부처님께서 오신 덕분에 오늘 모처럼 하루는 쉬어볼까 합니다. 휴식은 온 종일 음악과 책을 번갈아 곁에 두는 것으로.
오랫 만에 악성 베토벤께서 남긴 피아노 협주곡 5번을 열었다. 그리고 다음의 두 연주를 번갈아 들으며 하루를 보낼 예정이다. 삼천포지만, 고전 음악이 대중성을 확보하지 못하는 치명적인 단점 중 하나는 시간에 있다. 너무 길다. 대중성에 시간은 거대한 벽과도 같다. 애호가들은 시간 가는 줄 모르겠지만 그렇지 않다면 적응이 쉽지 않은 것이 문제이다. 사실 베토벤 피아노 협주곡은 결코 긴 편에 속한다고 볼 수는 없다. 그럼에도 최소 40분은 써야한다. 이것은 알라딘하며 고전 음악 포스팅을 제대로 할 수 없는 문제이기도 하다. 늘 아쉬운 이유이기도 하면서...

[[[ 사진 출처 ㅡ 위 사진은 별점 비교를 위해 동호회 '고클래식' 의 '명곡감상 비교'에서 가져온 것입니다. 로그인을 하지 않아도 접근이 가능합니다. 고전 음악에 관심이 있는 분이라면 매우 유익한 정보들을 얻을 수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위 음반의 별점은 고전 음악의 어느 절정 고수께서 표시한 내용입니다. 그 고수께서는 당시 지메르만의 연주에 별점을 4개 주었지만, 마음속으로는 별을 하나 더 살짝 얹었을지도 모릅니다.]]]
1. 피아노 제르킨(Rudlof Serkin), 지휘 부르노 발터 (Bruno Walter), 뉴욕필(New York Philharmonic) 1941
뚜껑을 열어 걸면, 하루 종일 돌리게 되는 연주들이 있다. 내게는 위 연주가 그들에 속하는 연주인듯 하다. 좋은 연주라는 말은 무척 진부한 표현이겠고, 제르킨의 연주는 때로 전혀 다른 두 사람이 각각 왼 손과 오른 손을 따로 치는 듯한 착각을 불러일으킨다. 물론 그 둘은 둘이면서 하나이기도 하다. 다른 음반에서는 이런 느낌을 쉽게 발견하기 어렵다. 이 효과는 제르킨의 피아노가 주는 느낌일까 베토벤이 곡에 불어넣은 효과일까. 어느 쪽이든 제르킨은 정녕 위대한 피아니스트이다.
놀라운 것은 최소한 1940년 이전에 만들어진 피아노의 음이 이토록 좋단 말인가? 하는 감탄을 자아내게 된다. 당시의 녹음 기술이 모노인 점을 감안 할때, 피아노 제작 능력과 제르킨의 연주 능력 모두에게 큰 찬사를 보내지 않을 수 없다. 피아노는 단연 돗보이는데, 이는 협연의 질을 평가한 것이 아니라 음질만을 평가한 것이다. 이는 또한 오케스트라의 연주 소리가 당시 녹음의 조건을 충분히 반영하고 있는 점을 참고하여 내린 결론이기도 하다.
어째거나 제르킨의 연주에 협연하는 부르노 발터는 자신이 왜 거장인지를 이 음반에서 또렷하게 각인시킨다. 녹음 조건을 뺀다면 관현악은 협연으로서, 연주 자체로서 흠결을 전혀 남기지 않았다. 협연은 탄탄하고 짱짱하며 일사 분란하다. 피아노와의 조합은 말할 것도 없다. 청자에게 피아노와 협연은 둘이지만 하나라는 일체감을 선사한다. 최고 난이도에 조절된 기품있는 연주이고 리허설 과정은 또 어땠을지,경의를 보내지 않을 수 없다. 'Concerto' 는 바로 이런 것, 이라는 사전적 정의를 구현해낸 연주가 바로 제르킨과 발터의 것 이라고 말하고 싶다. 그리하여 이 연주는 오성(五星)의 빛나는 견장을 받을 자격이 있다!!
2. 피아노 크리스티안 지메르만(Krystian Zimerman), 지휘 레너드 번스타인(Leonard Bernstein), 빈필(Wiener Philharmoniker) 1989

[[[ 사실 서로를 꼭 쳐다볼 필요는 없지만 연주 중 지메르만은 종종 번스타인을 바라본다. 노장에 대한 경의일 것으로 생각한다. 지메르만은 속으로 생각할 것이다. 형님의 협연이 너무나도 좋구나... 라고. 연주가 끝나고 번스타인은 지메르만을 한동안 포옹한다. 끌어안고 놔주질 않는다. 연주의 만족도를 보여주는 장면이면서 지메르만에 대한 애정과 경의를 보여주는 장면일 것이다. ]]]
거의 대부분 존재하는 연주들이 매우 훌륭하지만 기호도에 따른 또 다른, 눈에 띄는 음반이 하나 더 있다. 지메르만과 번스타인의 연주이다. 물론 박하우스(Wilhelm Backhaus)와 슈미트 이세르슈테트(Hans Schumidt Isserstedt)의 1956년 연주는 왜 언급을 안하냐 반문할 수도 있겠지만 박하우스 선생의 2악장은 내가 원하는 템포보다 빨라서 탈락^^ (팬들께는 죄소옹~)
1악장 ㅡ 초반, 피아노 도입에서 지메르만의 손가락이 아직은 살짝 덜풀린듯한 음을 낸다. 그러나 곧 그의 손가락에 신기(神氣)가 들어간다. 베토벤께서 주제를 뚜렷하게 제시했다. 생각보다 많은 것을 제시해준다. 피아노가 물러가면, 번스타인과 빈필은 자신들이 어떤 존재인지를 제대로 확인시켜 준다. 백발의 할아버지인데 번스타인 어르신 너무 귀여우심. 피아노가 호른과 독대하는 1악장의 끝 부분은 정녕 언어로 표현할 길이 없다.
[[[ Musikverein Wien 1989년 실황이다. 늘 아쉬웠던 점은 화질이었다. 마스터링(mastering)을 다시한 깔끔한 영상이 새롭게 올라와 있다. 정말 고맙고 반가운 일이 아닐 수 없다. ]]]
가장 특징적이고 눈에 띄는 순간, 아니, 귀가 번쩍 뜨이는 순간은 1, 3악장에서 현악기 파트와의 협조력이 빛나는 순간이다. 피아노와 현의 피치카토(Pizzicato 줄여서 Pizz.)가 여백을 채우며 서로 들고나는 순간이 진정 예술의 극치이다. 튕기듯 휘어져 서로 달라붙는다. 경(經)과 위(緯)가 함께 비단을 짠다. 탄력있고 눈부신 비단을 완성했다. 입으면 사람의 체형에 맞게 움직여주는 원단이 있다. 이들의 연주는 바로 그 느낌이다. 이런 느낌은 다른 연주에서 찾아보기가 쉽지 않다. 악기들이 서로 이를 물고 들며 나는 순간, 이처럼 긴밀하고 품위있으며 쫀득한 연주를 완성하는 음반은 이뿐인가 하노라. 어찌 오성의 빛나는 견장을 마다할 것인가.
2 악장ㅡ 흔히 피아노 협주곡 중 가장 아름다운 아다지오라고들 한다. 깊은 슬픔, 이루 말할 수 없는 회한, 한없는 포근함, 부드러운 따듯함. 상처와 치유, 이 모든 것들을 버무려낸 것일까. 슬픔과 기쁨을 구별할 수가 없다. 동시에 전해오기 때문이다. 정녕 아름답다... 2악장 역시 최고로 눈이 부신 연주이다.
3악장 ㅡ 곡의 마무리면서 연주의 끝이기도 하다. 그 감탄은 말로 표현할 수가 없다. 3악장은 감상 평을 남긴 애호가들이 이미 모두 말을 다했다. 당당하며 완벽하다. 2악장의 유곡(幽谷)에 깃든 불사조가 죽음의 재에서 부활하듯 재탄생하며 일어선다. (지메르만) 이것이 나의 피아노다!!
지메르만과 번스타인의 협연을 듣기 전에는 제르킨과 발터의 연주가 주는 아쉬움을 발견할 수 없다. 그만큼 제르킨과 발터의 연주는 훌륭하고 빼어나다. 지메르만과 번스타인의 연주를 들은 후에 베토벤의 황제는 지메르만과 번스타인이 기준이된다. 물론 음악은 기호이므로 모든 선택은 존중받아 마땅하다. 사실 나는 모든 연주를 사랑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