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 문단을 바라보면, 커다란 봉우리가 하나 서있다. 그 봉우리의 이름은 '톨스토이'이다. 그 봉우리 뒤로 안개속에 가려져 잘 보이지 않지만 그보다 더 큰 산으로 이어져 있는, 끝이 보이지 않는 산맥이 있다. 바로 도스도옙스키 산맥이다. ㅡ앙드레 지드



사실 내게 도스도옙스키는 접근하기에 결코 쉬운 작가가 아니다. 그의 작품을 읽기에는 나의 능력이 모자란다는 것을 스스로 잘 알고 있기때문이다. 그 깊은 산중으로, 아니 그 커다란, 잘 보이지도 않는 산맥 안으로 들어갔다가는 길을 잃을 것이고, 나는 분명 중간에 지쳐 쓰러져 버릴것이다. 이렇듯 나로서는 감히 엄두가 나지 않는 소설들이 특히 도스도옙스키의 것들이다. 도스도옙스키의 소설들이 아니어도 나는 모든 소설들이 어렵다고 느끼고 있었다. 부끄럽게도 도스도옙스키의 소설들은 물론 대부분의 소설들과 서먹하고도 소원한 관계를 지금껏 잘 유지해왔다. 



탐험은 본디 미지의 것이고, 그 무엇과 조우할지 모르는 아찔한 기대감, 혹은 심장을 조여오는 쫄깃한 긴장감을 즐기는 특성을 가진 것이기도 하다. 전혀 예상치 못했던 뜻밖의 발견은 어마어마한 덤이다. 때로는 그 뜻밖의 덤이 탐험가의 인생을 엉뚱한 곳으로 바꿔놓기도 한다. 발을 헛디뎌 낭떠러지로 떨어질 지도 모르는 가파른 산을 오르는 것도 이와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탐험은 단지 에베레스트를 오르내르는 것과는 전혀 다른 성질의 것이다. 발견이 기다리고 있고, 미지성과의  조우가 기다리고 있다. 그 조우는 결코 단순한 노동의 댓가가 아니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탐험은 스스로 해야 그 가치가 빛날 것이다.




그러나 나는 내비게이션과 전조등을 준비해 그 깊고 어둑한 곳으로 들어가보기로 했다. 자신이 없는 험난한 길을 떠날 땐 내비게이션, 뭐 이런 심산이다. 도덕경은 이런 곳을 '玄현'이라고 했다. 有와 無가 혼재하여 구분할 수 없고 아득하여 보이지 않는 경지가 바로 현(玄)인 것이다. 이런 현(玄)이 산(山)에 중첩되어 있으면 이를 유(幽)라고 한다. 유(幽)는 현보다 한 길 쯤 더 들어간다. 그리하여 유(幽)에는 삶과 죽음이 깃들어있게 된다. 유택(幽宅)은 그리하여 망자(亡者)가 머무는 거처이다. 내게 도스도옙스키로 가는 길은 '유곡幽谷'에 드는 것과 마찬가지다. '유곡幽谷'은 생명을 거두어 들이는 곳이기도 하고, 보이지 않는 그 무엇인가를 품어 태동시키는 곳이기도 하다. 정녕 신비로운 곳이 아니겠는가...



[[[ 도스도옙스키를 읽어보고 싶었지만 아직 그러지 못하신 분들 중에는, 1) 책이 겁나 두꺼워서  2) 왠지 어려울 것 같아서  3) 도스도옙스키가 뭐 대순가? 등의 이유가 있을 듯 하다. 그러나 이 책, '도스도옙스키 번역 일기'를 읽어본다면 도스도옙스키의 그 어떤 소설 하나는 꼭 읽어보겠다는 강력한 의지와 힘이 생기리라 믿는다. 나는 죄와 벌, 백치, 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 이 세 종류는 반드시 읽고야 말겠다는 강한 의지를 뛰어넘는 전투력을 가지게 되었다. 다 읽기 전에는 결코 시들지 않을 전투력이라 해도 좋을 것이다. '도스도옙스키 번역 일기'는 도스도옙스키 낚시꾼이다. 이 책을 읽고도 낚이지 않는 자, 없을 것이라고 감히 추측해본다. ]]]



도스도옙스키의 '죄와 벌'을 처음 접한 것은 중학생 때였다. 경애하는 조부께서 돌아가시고, 쓰시던 사랑방이 비게되었다. 나는 고입을 준비하는 수험생이었으므로 공부방으로 할아버지께서 쓰시던 방의 사용권을 요구했다. 그렇다고 공부를 더 열심히 하는 것도 아니다. 중요한 것은 공부라는 사실 자체가 아니다. 매사가 그러하듯 명분이 서느냐 이다. 그럴싸한 명분 앞에 뜻을 수월하게 관철시킬 수 있었다. 어렵지 않게 방의 사용권을 확보했던 것이다.



자연스럽게 그 방 안에 있던 책들도 나의 것이 되었다. 사랑방에는 깡촌에서는 믿기 어려운 도서 목록들이 있었다. 셱스피어 전집, 죄와 벌, 신곡, 데카메론, 펄 벅의 대지 등등의 책들이 그것이다. 윤초시네 시골과 버금가는 곳 이었으므로 주변 수십리를 모두 찾아도 이런 목록을 가진 집은 없었으리라 생각한다. 비록 먼지만 쌓여가는 책들이기는 했지만. 그중 가장 흥미로운 책은 데카메론이었다. 약간은 선정적이며 성인들의 에로틱한 모습을 살짝 살짝 보여줬는데, 이는 중학생인 나에게 충분히 자극적이었다. 나는 고입 공부를 제껴두고 그 두꺼운 데카메론을 모두 읽었다. 완독의 힘은 다음 스토리에서 또 나올지도 모르는 기대감, 데카메론이 주는 야릇한 그 선정성에 있었다. 그리고 '말괄량이 길들이기'가 인상적이었다. 그렇다고 이해했다는 말은 결코 아니다. 그냥 흥미롭게 읽었다는 것일 뿐.



그 귀한 '셱스피어 전집'과 '죄와벌' '데카메론'등이 전혀 어울리지 않는 시골 촌 구석에 있게된 데에는 이유가 있었다. 경애하는 조부님께는 지극히 사랑하고 아끼는 친동생이 있었다. 그리고 경애하는 작은 할아버지에게는 아들이 하나 있었다. 당숙께서는 도회지로 나가 사셨다. 그리고 이것 저것 닥치는대로 일자리를 찾아 다녔다. 그 일자리 중 하나가 고전을 방문 판매하는 일 이었다. 당연히 큰댁인 우리집에도 찾아 왔다. 말 하나마나 할아버지께서는 조카가 권하는 책을 모조리 들이셨다. 다양한 고전들은 물론 태권도 교본, 절권도 교본, 합기도 교본, 편지쓰는 법, 전예해행초서 쓰는 법 등등등등...  이루 말할 수 없이 다양한 책들을 들이셨다. 지금 생각해보면 책으로 무술을  배우는 것은 무협지에서나 있는 일이었다. (한가지 남은 것이 있다면 완독의 힘이 되어준 것이 무엇이었든, 그 두꺼운 데카메론을 끝까지 읽어냈다는 자긍심이다.) 경애하는 나의 의가 좋았던 조부님 형제께서는 분명 부처님 곁에 가 계실 것이다.




중학생인 나에게 죄와 벌은 무척 충격적이었다. 초장부터 사람을 죽이는 장면과 마주했기 때문이었다. 그때만해도 죽음이라는 단어는 내게 존재 했지만, 살인이라는 단어는 내게 있지 않았다. 그런데 주인공이 사람을 죽였다!! 마음이 벌렁거렸다. 그리고는 또 사람을 죽였다!!! 결국 나는 죄와 벌을 손에서 놓고 말았다. 아... 나의 이 소심하고 심약함이여!!!

지금 돌이켜보면 내가 조금 더 대범했거나, 조금 더 머리가 좋아 '죄와 벌'이 얼마나 위대한 작품인지를 알아봤다거나, 작품의 매력에 흠뻑 빠졌더라면, 지금의 나는 전혀 다른 사람이 었을지도 모른다.
혹은 누군가가 옆에 있어, '죄와 벌'을 알아보는 안목을 가지고는 조용히 말하길, "그 소설을 끝내는 읽어야 하리라" 라고 조언을 했더라면 상황은 꽤나 달라져 있을듯 하다. 그러나 내게는 그런 행운이 영 따라주지 않았다. 그 후로 나는 소설을 외면하고 살았다. 그러다가 다시 만난 소설이 하필 '파리대왕'이었다. 



내가 생각하는 나의 오만은 죄이자 벌이다. 나는 파리대왕을 읽고 이렇게 독후감을 썼다. '인간의 야만성은 지극히 본능적인 것일 수 있다. 저 어린 학생들의 야만성을 보라. 나이가 들어야만 인간이기를 거부하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나이 어린 사람들이 인간성을 상실하고 그 어떤 상태로 타락을 하든, 어른들이 있어 이들을 구제할 수 있다. 그러나 기성세대의 야만성과 타락, 폭력, 인간성 상실, 욕망, 그 잔인한 전쟁으로부터 그들을 과연 누가 구제할 수 있을 것인가?'  나는 '파리대왕'의 어린 학생들을 통해 저자가 기성세대의 문제점을 지적했다고 판단했고, 나름의 해석에 아주 만족해하며 자뻑을 날리고 있었다. 물론 이 독후감은 나의 것이기에 저자가 의도했던 것 과는 전혀 다를 수 있다. 해석은 독자의 것이라는 오만이 또 작동한 것이다. 


나의 우쭐함도, 오만도, 그리고 나의 선택도 알고보면 내가 지금껏 받아온 '죄'이며 '벌' 이였다. 나의 독후감이 나를 벌했으니 말이다. 그리고 소설을 홀대하기 시작했다. 돌이켜보면 나의 이 건방은 나를 늘 곤란하게 했다. 그나마 때로는 이 건방이 보이지 않도록 뒤로 숨기려하지만 곧 들키고 만다. 건방과 오만은 도스도옙스키에 따르면 일종의 죄이자 벌이다. 건방과 오만은 신성함을 소홀히 하기때문이다. 그러므로 신성함을 잃는 것은 죄이다. 신성함을 잃는 순간 살인 이라는 벌이 시작되듯 말이다. 

그렇게 양극단의 경험들은 나를 서서히 소설과 더 멀어지게 했다.




그런데 요즘은 서서히 소설을 향해 시선을 주기시작했다. 책의 두께!! 한 손으로 들면 버거울것만 같은 두께의 소설들의 사진을 알라딘 서재에서 만나면서 였다. 나는 책의 두께에 매료되기도하고 기가 죽기도 하는  사람이었다. 그러나 고민스러운 일이다. 과연 어떤 소설부터 두께감을 갖기 시작해야할까....

블로그의 힘은 확실히 영향력이 있다. 게시된 사진 중 도스토옙스키의 소설들이 두터웠다. 게시해준 똘스또이의 '전쟁과 평화'는 무려 4권,  2988쪽, 무게 3.89kg. 너무 두껍고 기가 죽는다. 도스도옙스키의 '백치'는 상ㆍ하를 합하면 1,000 쪽이 넘었다. 역시 나의 기를 눌러 놓는다. 아련한 옛 추억이 떠올랐다. '죄와 벌'을 손에서 내려놓던 그 순간 말이다. 나는 지금껏 죄를 지었다. 행여 내게도 시베리아로부터 부활의 시간이 찾아 오려는가...



국립공원 앞에 산 전체 조망도를 보여주는 안내판이 있다. 나도 그걸 보고 가야겠다. 도스토옙스키는 크기를 가늠할 수 없는 안개에 가려진 산맥이라하니, 내비게이션과 전조등을 준비하는 마음으로 구입한 책이 바로 '도스도옙스키 번역 일기' 이다.


스포에 해당하는 이 책은 미지 탐험의 짜릿함과 긴장감을 주지는 못하겠지만 나의 무능력을 보완해줄 수 있겠지 싶다. 물론 도스도옙스키의 매니아들이나 소설 매니아들은 나의 이런 절차를 비웃을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현재의 나는 중학생 때의 소심함을 벗어났으니 이제 도스토옙스키에게 천천히 다가가려한다. 가다보면 앞서간 이들이 못보고 간 무엇인가가 하나 쯤은 내게 나타나지 않겠는가. 학부때 셱스피어에 관한 논문을 쓰고 박사가 된 사람들이 100여명이 넘는다는 말을 교수에게 들은 적이 있다. 속으로 '미쳤다', 생각했다. 셱스피어가 광산이라도 되나, 파고 파도 또 파낼 것이 있다는 뜻 아니겠는가. 셱스피어도 그정도인데 하물면 산맥인 도스도옙스키 선생이야 말해 뮛하겠는가. 그 깊고 깊은 산맥, 첩첩 산중, 안개에 가려 보이지않아 그 크기를 가늠할 수 없는 거대한 유곡(幽谷), 그 산맥속으로.. (Go for i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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잉크냄새 2026-05-22 21:0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책도 너무 두껍고 또 너무 어렵고, 도스도옙스키 선생뿐 아니라 대부분의 고전에 접근하기 쉽지 않은 이유인 것 같네요.
죄와 벌의 주인공 라스꼴리니코프의 이름만 외워 읽은 척 했던 철 없던 고등학교 시절이 떠오르네요. 그래도 삼국지 빼고 아직까지 이름 기억하는 몇 안 되는 주인공입니다. 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