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운명 사용설명서 - 사주명리학과 안티 오이디푸스
고미숙 지음 / 북드라망 / 2012년 8월
평점 :
구판절판


 

오랜 세월 그늘에 가려 그 어느 누구도 인문학적 접근을 시도하지 않았던 명리학에 대중들이 가까이 다가갈 수 있도록 시도한 저자에 우선은 찬사를 보내고 싶다.

 

과거 조선에서 글줄을 읽던 다수가 스스로 점을 치거나 생년월일로 좋고 그름을 알아보곤 했고, 조선 정부에서는 관상감에서 주최하는 음양과(陰陽科)를 통해 천문, 지리, 역수및 점산의 기술직을 뽑아섰다하고, 명리학은 명과학(命課學)이라하여 네사람을 뽑았고 교수는 종 6품이었다 한다.

 

성웅 이순신은 난중일기에서 적과 싸움을 치루기 전에 점을 쳤다고 쓰고 있다. 물론 잘 나올때까지 반복했을 것이다. 그 이름도 유명한 주희는 어느 날 목숨을 건 상소를 닦아 놓았는데 스승의 안위를 걱정한 나머지 제자들이 강력히 만류했다고 한다. 하여 역점을 해보고 결정하기로 한 모양이었다. 결과는 천산돈(天山遯-물러나 숨으라)이 나왔다고 한다. 하여 주희도 괘를 보고는 역린을 건드리는 일을 포기했다는 전설이 있다. 과거에는 명리든 역점이든 음양오행으로 알아보는 일종의 미래 예측법 이었던 것이다.

 

우리말에 ‘아이고 내 팔자야~’하는 말도 있는 것을 보면 과거 조상들은 그 팔자를 어느 정도는 수긍을 했던 모양이다. 여기서 팔자(八字)란 자신의 생년월일을 나타내는 천간과 지지를 말하는 것으로 모두 8글자인 탓이다. 그러나 요즘 같은 첨단 디지털 과학의 시대에 음과 양으로 자신의 운명을 알아보는 일이야말로 아주 낙후되고 고리타분하다 하지 않을 수 없다.

 

다만 음양(陰陽)과 오행(五行) 알아두면 세계를 바라보는 시각은 확실히 달라질 수 있다고 본다. 음양 오행은 비단 명리(命理)뿐 아니라 역점, 의학, 심지어 조선의 국시였던 성리학을 모두 관통하는 우주의 이치라고 한다. 특히 사상의학은 음양과 장부의 허실과의 관계를 매우 중시하는 분야이고 이에 관심이 많은 한의학자들도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

 

다만 명리가 대우를 잘 받지 못하는 것은 일종의 학문으로서 라기 보다는 미래를 단순히 점치는 점의 성격으로 이해하고 있고, 특히 명리 상담사가 나쁜 미래를 예측해줄 때, 기분이 상당이 좋지 않다는 것이다. 한마디로 상담사의 말이 자꾸 떠올라 잘되던 일도 안되더라는 것이다. 

 

명리는 우리 말에 있는 것처럼 8글자인 것은 사실이나, 그 8글자가 다는 아니다. 저자가 밝히고 있듯이 대운에서 또 다른 2 글자를 만난다. 그리고 매년 새로이 맞이하는 2 글자를 더하고 매달 맞이하는 2 글자를 또 더하면 모두 14글자가 운행하는 것이다. 여기에 일과 시간까지 합하면 총 18글자인 셈이다. 명리에서는 18글자의 음양 오행이 서로 운행하면서 형충파해합(刑沖破害合)을 연속하고 있는 것이다.

 

천간과 지지는 알다시피 빙글빙글 돌며 움직인다. 저자가 말하는 조커(용신)은 자신에게 꼭 필요한 글자이다. 그러나 그 글자가 한 바퀴를 회전하는 데는 천간에서 10년, 지지에서 12년을 기다려야 한다. 이 말은 유리한 때가 있으면 반드시 불리한 때도 있다는 뜻이다. 춘하추동은 한 사람의 8글자에도, 조커인 대운에도, 그리고 해와 달 그리고 시간에 모두 작용하기 때문이다. 하여 불리한 때가 돌아오는 시기를 미리 알고 그에 맞는 대처법을 찾아내는 것을 명리의 핵심이라고 보는 것이 더 바람직하지 않을까 싶다. 사적인 경험상 유리한 때를 맞이한다는 말은 잘 들어맞지 않아도, 불리한 때를 맞이한다 하는 경우에는 상당히 맞아떨어지는 경험을 한 적이 있다. 즉, 좋은 일은 안 맞아도 불리한 일은 잘 맞아떨어지더라는 얘기다.

 

달도 차면 기울게 마련이고 오르막이 있으면 또 내리막도 있는 법이다. 불리한 시기가 찾아온다하여 기분이 상하기보다는 적절하게 대처한다고 여기고 슬기롭게 헤쳐나간다 마음먹으며, 그 시기가 지나면 또다시 유리한 때가 기다리고 있다 생각하면 좋지 않을까 싶다.

 

이 책이 아쉬운 점은, 저자가 명리에 대한 공부를 많이 한 것으로 보이는 것은 사실이나, 8글자가 가지는 단순한 오행의 수준 만을 다루어 독자들에게 명리에 대한 오해의 여지를 줄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점이다. 저자가 용신의 중요성을 밝히고 있는 것처럼 명리에서 용신은 절대적인 중요성을 갖는다. 그러나 그 용신을 잡는 일은 결코 수월한 것이 아니다. 전문가들 조차도 혼란스러워하는 경우가 있을 정도이다. 한마디로 용신을 잘못 잡으면 거꾸로 가는 것이다.

 

또한 저자가 밝혀둔 대로 음양오행의 상생상극이 존재한다. 그러나 형, 충, 파, 해, 합과 반합의 관계는 단순한 오행의 이해 그 이상의 커다란 변화를 가져오는 내용들이다. 때로는 매우 불리하던 글자, 즉 용신의 반대인 글자가 되려 나를 이롭게하거나, 반대로 용신이 나를 해치는 변화를 맞이하기도 하는 것이다. 이점에 대해서는 언급이 너무 부족하여 이 책을 읽는 독자들에게 오해의 여지를 주지 않았나 하는 큰 아쉬움이 남는다. 

 

또한 격국론은 명리의 정점이나 다름없는 부분이다. 대표적인 예가 종격(從格)이다. 종격은 말 그대로 네 기둥인 원국을 따라가는 형국이라는 의미이다. 8글자의 오행들이 어느 한쪽으로 쏠려있기 때문이다. 종격의 경우 그 쏠림현상이 지나쳐 대운이나 해운에서 도저히 균형점을  잡아 줄수가 없다. 하여  같은 오행의 글자가 대운과 해운에서 자신의 네 기둥을 따라가는 것이 되려 이롭다.  그러나 명리의 꽃이라 항 수 있는 격국론에 대해서는 전혀 언급하지 않았다. 하여 전체적으로 명리를 너무 가벼이 접근했다는 아쉬움을 주는 책이라 할 수 있다. 더더욱 아쉬운 것은 글을 전개해가는 저자의 전체적인 분위기도 이와 크게 다르지 않다는 점이다. 물론 인문학적인 접근은 매우 환영할 만한 일이고 너무 무겁게 접근하는 것도 바람직한 일은 아니라고 본다. 그러나 결코 가벼이 접근할 수 있는 분야는 아니라는 점은 확실하다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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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slmo 2015-03-21 09:1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밑에서 다섯번째 문단 `우리`가 아니라 `유리`아닌가요?^^

주역도 그렇고 명리도 그렇고,
결국은 `하늘`=`신`을 읽어내려한 것이었고, 거기서 뻗어나가야 한다고 생각해요.
그렇기 때문에 명리를 가볍게 보고, 가벼이 접근했다는 것은,
바꾸어 말하면 인간의 삶을 그렇게 만만히 봤다는 의미일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어요.

인간의 삶을 거기서 분리시켜 하늘=신을 읽어내려 하느냐,
아님, 하늘을 자연과 동격으로 놓고,
그 자연에 인간을 집어넣어 자연의 흐름으로 읽어내느냐, 하는 것이 ...
주역과 명리를 공부하는 사람들의 `관점`이 아닐까 싶습니다.

좋은 글 잘 봤습니다~^^





차트랑 2015-03-21 10:19   좋아요 0 | URL
어인 행차이시옵니까 양철나무꾼님?
반갑습니다~

말씀해주신 부분 그대로 오자입니다.
하여 교정했습니다
저자가 완전생략하고 넘어간 격국론에대해
너무 짧게 언급한 것 같아 이참에 약간 추가했습니다.

전반적으로 가볍게 읽을 수 있는 책이기는 하지만
저자가 들떠있는 분위기라 아쉬웠습니다 ㅠ.ㅠ

찾아주셔서 고맙습니다 양철나무꾼님!
늘 건강하십시요~
 
생태주의 시학 - 개정증보판
장정렬 지음 / 한국문화사 / 2006년 8월
평점 :
절판


시는 그저 느끼면 되는 것이라는 말을 흔히 들어왔다. 물론 이 말에 적극 동감해왔다. 그러나 다른 한 편으로는 역시 어려운 것이 시라는 생각을 떨쳐버릴 수가 없었던 것도 사실이다.

고등부의 수능에 출제되는 현대시들의 문제를 보면 이러한 개인적인 생각을 확인하게 된다. 몇 편의 시를 한 그룹으로 묶은 다음 통합 질문 해오는 문제들은 그 개념을 비롯하여 한동안 풀이 연습을 하지 않는다면 답을 내기가 결코 수월한 것이 아니다.

 

이 책은 시를 바라보는 관점을 분석하기위해 내놓은 책이라고 보기는 어려움이 있다. 저자의 저술 목적은 오로지 생태주의 시학에 집중하고 있으며 국내의 시인들이 그동안 우리의 생태변화에 그 얼마나 깊은 우려와 염려를 해왔는지 보여주기 위한 책이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시를 바라보는 즉, 시를 읽는 관점의 중요성도 처절하게 느끼게 한다.

 

소설은 저자가 마음껏, 그야말로 자신이 구상하고 있는 전부를 무제한적으로 보여줄 수 있는 장이 보장된 장르인 반면, 시는 공간이 지극히 제한된 범주 안에서 고도의 압축된 언어들을 어울려 버무려내야 하는 특성을 가진 장르이다. 하여 둘 중 어느 쪽이 더 어렵고 쉬우냐를 묻는다면 이건 완전 우문이겠지만 장르별 특성 혹은 차이점이 존재하고 있는 것은 분명한 일이다.

 

그렇다고 시가 꼭 어려워야 한다는 것은 아니다. 차라리 이해하고 공감하기 쉬운 시가 더 좋은 시임에도 틀림이 없다. 시 역시도 여타의 장르처럼 메시지를 담아 전달하는 것이 공통된 목적이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때로 시란 어렵게 느껴지는 것이 사실이다.

 

고등학교 교과서에서 시를 찾아볼 수 있는 시인, 다형 김현승은 적합하지 않은 시어들을 제거하는 일을 마치 자신의 ‘살점을 떼어내는’ 느낌이라고 그 아픔을 비견했고, 언어의 연금술사 김춘수는 마땅한 시어 하나를 지어내느라 몇날며칠을 우두커니 앉아 마치 실어증에 걸린 사람마냥, 바보가 식음을 전폐하듯 그렇게 앉아 있곤 했다 한다.

 

시를 탄생시켜내는 시인의 아픔과 고뇌를 대변하는 위의 두 일화는 누군가가 지어낸 이야기가 아니라 하나의 작품을 내놓는다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가를 알려주는 사실에 근거한 이야기다. 이러한 어려움은 비단 시인만은 아닐 것이다. 한편의 시를 짓는다는 것이 그 얼마나 공을 들여야 하는 일이던가…….

 

시를 짓는 일이 쉬운 일이 아니듯, 이를 제대로 읽어내는 일도 마찬가지로 어려운 작품들이 있다. 시가 가지는 주제와 운율, 그리고 심상 게다가 압축 상징 그리고 시인의 정신을 읽어냄과 동시에, 한편으로는 화자가 처한 입장에서 그리고 독자가 처한 상황에 적용시킬 수 있는 공감력을 발휘해야 하는 고도의 능력을 요망한다.

 

어떤 시인은 말하길, 평론가가 자신이 전혀 의도하지 않는, 시인과는 전혀 무관한 이해를 하더라는 이야기를 전해들은 바 있다. 한마디로 시인도 모르는 일을 독자가 해낼 수도 있다는 말이다. 그럼에도 그 독자의 평은 대단한 설득력을 가지더라는 이야기이다. 이러한 현상은 비단 시에 국한된 것은 아닐 것이다.

 

저자 장정렬께서 시인들의 원래 의도와 그 얼마나 일치하는 분석을 하고 있는지 나는 알 수는 없다. 그럴 필요도 없다고 본다. 시를 내 놓았고 독자의 손에 넘어간 이상, 그 시는 시인의 것 이라기보다는 이제는 독자의 것이기 때문이다. 시인의 손을 떠난 시에 대한 법적 소유권 혹은 재산권을 소유했다는 것 이외에는 더 큰 의미는 없어 보인다.

 

 

「생태주의 시학」은 내게 매우 강한 인상을 주었다. ‘저자는 문학은 본질적으로 문학을 형성하는 시대의 환경과 뗄 수 없는 관계를 맺는다.’라고 말한다. 이 대목에서 가장 인상 깊은 부분은 ‘환경과 뗄 수 없다’가 아니라 ‘본.질.적.으.로.’ 라는 표현이었다. 저자는 문학의 본질에 대해서 말하고 있는 것이다. ‘본질’이란 어떤 것에서 그 본질을 제외한다면 아무것도 아닌 것이 된다는 의미심장한 말이다. 이 말이 내게 이토록 강렬하게 다가온 것은 ‘인간은 본질적으로 자연과 친화해야 한다’는 말로 내게 들려왔기 때문이다. 자연친화적이지 못한 문학은 그 본질을 상실한, 즉 문학이 더 이상 아닌 것이 된다. 본질이란 없어서는 안되는 것이니 말이다.

 

시의 형식은 변화하고 이미지들은 자본화되고 기계화되어가고 있다. 9쪽

 

시인은 생태계의 파괴를 인간사고의 방식에서 기인한다고 본다. 이는 지극히 바른 말이다.

 

헐벗은 뒷모습 드러낸 채

종로구와 서대문구 변두리에 주저앉아

늘그막에 셋방살이 하는

불쌍한 인왕산

 

김광규, 「인왕산」에서

 

위 시에서 인간에게 신성한과 삶의 힘을 주던 산이 불쌍한 산이 되어 버렸다. 중략...인간에게 있어서는 신성함과 상상력의 상실을 의미한다고 할 것이다. 59쪽

 

 

 

내 눈엔

뿔뿔이 저마다 외롭고

무뚝뚝하게 몰려가는 甲皮魚들의 나라일 뿐,

건강한 야만인의 마을이 그리운

빛의 제국,

가짜비늘로 뒤덮인 화려한 빛의 제국.

 

최승호, 甲皮漁에서

 

‘비늘’은 물고기의 정체성을 표현하는 어휘로서, 이것이 가짜 비늘로 표현됨으로서 정체성이 사라진 물고기를 상징한다고 하겠다.  67쪽

 

 

 

 

한 숟가락 흙 속에

미생물들이 1억 5천만 마리래!

왜 아니겠는가, 흙 한 술  

 

정현종, 한 숟가락 흙속에

 

흙은 모든 생명의 원천이며 본원적 처소이다. 흙은 모든 존재의 의지처이자 귀의처이기도하다.   187 쪽

 

 

 

저자는 우리의 시인들을 통해 자연과 점점 괴리되어가는 현대의 자화상을 좀 더 명료하게 보여주고자 한다. 저자의 이러한 노력에 경의를 표하는 바이다. 물론 저자는 문학의 본질에 대해서 이미 밝혔다. 어디 시인과 소설가뿐이겠는가. 문학과 관여하는 사람들 모두 이에 관계해야하며 독자 역시 그 책임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생각하는 바이다.

 

생태주의 시학이라는 분야는 널리 인식되지 않은 분야인 듯하다. 그런 점에서 저자의 고독한 열정이 더없이 소중하게 다가온다. 개척자가 되기로 자처하는 일이란 본디 남이 알아주기를 바라고서는 할 수가 없는 일이다. 그래서 더욱 어려운 일이다. 저자께 다시 한 번 경의를 표하는 바이다. 저자 덕분에 나는 새삼 우리가 호모사피엔스 사피엔스인가를 되돌아보게되었으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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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몸과 마음 건강을 위한 책을 만드는 판미동입니다.

간디가 사랑한 『바가바드 기타』에서 정조이산의 경전들까지!

경전을 쉽고 맛깔나게 풀어낸  『경전 7첩 반상』이 판미동에서 출간되었습니다.





다산정약용, 정조이산, 간디, 괴테, 링컨 등 시대를 넘나드는
위대한 인물들이 경전을 평생 옆에 두고 읽었던 이유는 무엇일까?

인문고전은 자신을 바로 세우는 데 필요하다. 경전은 그러한 인문고전 중 최고의 고전으로 손꼽히는, 세상에서 가장 오래된 지혜를 담아 놓은 책이다. 그곳에는 수천 년에 걸쳐 인간이 골몰해 온 생에 대한 본질적인 질문과 답이 함축되어 있다. 그러나 그만큼 ‘경전’은 난해하고 복잡해 섣불리다가설 수 없는 책으로, 혹은 자신과는 동떨어져 있는 종교 서적으로 여겨져 오기도 했다.

이번에 판미동에서 나온 『경전 7첩 반상』은 인문고전 중의 고전으로서 독자들이 좀 더 쉽게 다가갈 수 있도록 경전의 벽을 낮춰 지금 우리에게 꼭 필요한 핵심적인 지혜를 맛깔스럽고 쉽게 정리했다. 특히 우리가 이 험난한 시대를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헤쳐갈 수 있도록 삶의 뿌리가 되어줄 깊고 단단한 명구들을 선별하여 방황하는 현대인들에게 생의 좌표를 재점검하고 안착하게 만드는 ‘지점’을 제공해 준다.

변곡점에 서 있는 시대이니만큼 많은 사람들이 삶의 답을 찾으려 한다. 『경전 7첩 반상』은 그 답을 찾기위한 방법으로, 삶의 핵심에 다가서기 위한 ‘경전 읽기’를 시작하라고 말한다. 현인들의 지혜와 경험을 되새기는 작업은 우리가 현재 어디에 서 있는지를 알려주기 때문이다. 

<경전 7첩 반상 속 경전>

1. 동양 문헌 가운데 가장 먼저 읽어야 할 책으로 간주되고 있는 『도덕경』
2. 양극단으로 치달은 우리 사회에 무엇보다 간절한 정신이기도 한 『중용』
3. 불교의 수많은 경전 가운데서 가장 초기에 모아졌기에 담박한 맛이 일품인 『숫타니파타』4. 인도를 넘어 세계의 고전이 된 『바가바드기타』
5. 그리스도교를 새로운 차원으로 이끄는 선두 마차 『도마복음』
6. 우리 모두의 대 자유를 추구하는 대승의 중추인 『금강경』
7. 마지막으로 우리 종교, 우리 정신, 우리 철학을 보여 주는 『동경대전』

리는 『경전 7첩 반상』을 통해 어느 하나 흘릴 게 없는 천금 같은 문구를 만나게 될 것이다.

▶ 지은이
글·캘리그래피 성소은

서울 출생. 일본 릿쿄 대학교 법학과에서 합리적인 사고를, 도쿄 대학교 대학원에서 화엄세계처럼 얽혀 있는 국제관계를 공부 했으며, 이후 한일 양국 정부와 국제기구 등에서 공공선을 추구했다. “진리를 알지니 진리가 너희를 자유하게 하리라.”는 예수의 말씀을 찾아 순복음교회를 나왔고, 성공회를 지나, “붓다를 만나면 붓다를 죽이라.”고 하는 선불교의 칼끝 같은 가르침에 이끌려 3년간 출가수행을 했다. 이후 ‘나는 누구인가’를 참구하면서 선물처럼 “아하!”를 체험하고 기쁨으로 환속했다. 

현재는 인문, 사회, 종교, 과학, 문학, 신화 등 학문의 경계를 넘나들면서 서로 배우는 지식협동조합 <경계너머 아하!>를 운영하고 있으며, 성공회 대학교 사회학과 박사과정에서 인간사회와 종교 관계를 관찰하고 있다. 

지은 책으로는 그리스도교와 불교의 의미 있는 만남을 담은 구도적 고백서 『선방에서 만난 하나님』과 경계 너머의 무한한 가능성을 담아 엮은 『종교 너머, 아하!』(공저)가 있다.
(지식협동조합 경계너머 아하! www.njn.kr)


▶ 『경전 7첩 반상』 서평단 모집 상세 내용


하나, 『경전 7첩 반상』 서평단 모집 포스팅을 개인 블로그에 스크랩 한 뒤,

서평단 응모 링크(http://goo.gl/forms/8GbsT5od5o)를 클릭하여 설문지를 꼼꼼하게 작성한다.


둘, 응모 기간은 2015년 3월 12일(목)부터 3월 18일(수)까지 입니다.


셋, 총 추첨인원은 5명입니다. (당첨자에게는 개별 연락 드립니다.)


넷, 서평기간은 도서 수령 후 10일이내 니다. 

(혹시 기간이 촉박 하거나 부득이한 사정이 있는 경우는

yoongy@minumsa.com 로 미리 메일 부탁드립니다.)


마지막, 당첨된 서평단 분들은 알라딘 개인 계정으로 서평을 작성한후, 담당자 메일(yoongy@minumsa.com)로 알라딘 블로그 및 개인 블로그 등에 남기신 서평 링크를 보내주셔야 최종 서평이 완료됩니다.


※ 해당 기간 안에 서평 및 서평완료 메일을 보내지 않을 시,

다음 서평단 모집에 불이익이 있을 수 있습니다. 많은 참여와 관심 부탁드립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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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퇴계와 기고봉은 스승과 제자로서 보다는 학문을 나누는 벗으로 서로를 대했다. 물론 서로 깍듯한 예를 잃지 않고 편지를 주고받으며 논쟁을 했던 것이다. 그런데 일반적 자료들을 보면 이퇴계와 기고봉의 관계를 언급할 때, 기고봉을 ‘이황의 문인(門人)’, 혹은 ‘32세에 이황의 제자가 되었다’ 라는 표현을 자주 접하게 된다. 이는 마치 기고봉이 이퇴계의 문하생(門下生)인 듯 한 느낌을 준다. 문인(門人)이라는 말은 스승의 집안을 들고나며 직접 가르침을 받은 문하생을 말하기 때문이다.

 

두 사람 사이에 오간 편지의 내용 중에는 두 사람이 각자 어떻게 학문을 닦았는지에 대한 언급이 있다. 이퇴계는 자신의 학문에 대해 말하기를, 저는 젊어서 일찍이 학문에 뜻을 두었으나, 선생이나 동료가 이끌어주지 못했기에 얻은 것은 조금도 없이 몸에 병만 깊어졌습니다. (1559년 3월) 라고 쓰고 있고,

기고봉은 편지에서,

다만 어릴 적 얕은 재능으로 고금의 책들을 두루 읽을 수 있었을 뿐입니다. ...중략... 성현의 글을 구해보게 되었는데, 그것도 다만 스스로 즐겼을 뿐, ...(1559년 3월) 이라고 쓰고 있다.

 

이퇴계는 12세에 작은 아버지에게서 글을 배우기 시작했고 2년 후부터는 혼자서 글을 읽었다고 한다. 한참 젊은 시절 주역에 깊이 빠지는 바람에 몸에 병이 들어 나이가 들어서까지 고생을 했다고 전해진다. 몸에 병만 깊어졌습니다, 라는 위의 표현은 이를 두고 하는 말일 것으로 추측된다.

 

기고봉도 사정은 크게 다르지 않았던 모양이다. 1519년 중종 당시 훈구의 강력한 반발로 발생한 기묘사화 당시 막내 작은 아버지였던 기준(奇遵)이 유배되고, 신사무옥으로 또다시 유배생활을 하던 중 교살되는 일이 벌어졌다. 역사에 기록된 화를 당한 집안이었으니 공부하기가 쉽지는 않았을 것이다. 하여 부친과 막내 작은 아버지의 영향을 크게 받아 학문에 들었고 독학으로 갈고 닦았다고 볼 수 있다: 기준(奇遵)은 조정암의 문하였다고 한다. 기고봉은 그의 나이 31세(이퇴계를 만나 기 전)에 이미 주자대전을 완파하고 이퇴계로부터 통유(通儒)라는 별칭을 얻었을 정도였다. 이퇴계도 이미 기고봉에 대한 소문을 들어 알고 있었을 뿐 아니라 그의 글을 읽었던 것이다.

 

두 사람은 이처럼 독학으로 학문을 닦은 독학 파들이었다. 물론 기고봉께서 이퇴계를 깍듯이 선생님으로 존중한 것은 사실이나 그렇다고 두 사람의 관계를 사제 혹은 기대승을 이황의 문인 이라 칭하는 관계는 적절하지 않아 보인다.

 

기고봉은 나이 32세가 되어서야 처음 이퇴계의 얼굴을 마주했다. 기고봉은 당시 과거를 보기위해 한양으로 올라오면서(1558년) 김인후(金麟厚)와 이항(李恒)등을 만나 학문(태극太極)을 논하던 중 정지운의 천명도설을 얻어보게되었다고 한다. 기고봉, 김인후, 노수신등은 서로 서신을 교환하며 학문을 논하던 사이였다. (이항은 조남명과 비견할 수 있는 인물이라는 평을 받던 대학자였다). 당시 학문을 논하는 분위기가 대략 그러했던 것이다. 요즘과는 달리 편지로 학문을 논하던 그 시절의 모습을 생각해보면 참으로 세상이 많이도 달랐다.

 

문제의 발단은 이퇴계가 그 천명도설(天命圖說)의 내용을 수정한데서 비롯한다고 한다. 학자 정지운은 주희와 여러 학설들을 종합해 천명(天命)과 인성(人性)의 관계를 표로 만들어 설명했다고 한다. 참고서를 찾아보니, 이퇴계는 정지운의 천명도설에 있는 사단발어리(四端發於理), 칠정발어기(七情發於氣)사단이지발(四端理之發), 칠정기지발(七情氣之發)로 바꾸었다는 것이다. 즉, 「사단은 이로부터 발하고, 칠정은 기로부터 발한다」, 라는 천명도설의 내용을 이퇴계는 리와 기가 능동적이지 못하다는 판단, 「사단은 이가 발한 것이고, 칠정은 기가 발한 것이다」 라고 고쳐 쓰도록 했다는 것이다. 하여 원본의 천명구도(舊圖)가 천명신도(新圖)로 탈바꿈하게 된 것이다.

 

역사적 상황과 편지의 전후 상황으로 보아 첫 대면에서 바로 사단칠정은 논했을 것으로 추측된다. 기고봉은 이기(理氣)를 서로 합할 수 없는 것으로 생각한 이퇴계를 만나 논쟁을 펼쳐보고 싶었을 것이다. 기고봉은 사단과 칠정이 모두 기(氣)에서 나온 것이라고 보았던 것이다. 이렇게 하여 그들의 첫 만남이 이루어졌고, 그 후 이퇴계가 먼저 편지를 전하며 조선의 철학이 주체성을 가지는 꽃을 피우기 시작한다.

 

다음해인 1559년, 정월이 되자 이퇴계는 기정자의 안부를 묻는 편지를 보낸다. 기고봉은 급제 후 바로 임관, 승문원부 정자(正字)의 자리를 제수 받는다. 9급 공무원이 된 것이다.

 

.... 선비들 사이에서 그대가 논한 사단칠정의 설을 전해 들었습니다. ....중략..., 그대의 논박을 듣고 나는 더욱 잘못됨을 알았습니다. 그래서 그것을 다음과 같이 고쳐 보았습니다. “사단의 발현은 순수한 이(理)인 까닭에 선하지 않음이 없고, 철정의 발현은 기(氣와) 겸하기 때문에 선악이 있다.” 이처럼 하면 괜찮을지 모르겠습니다.

 

편지의 내용과 날짜로 미루어보아, 기선달은 하늘같은 선배의 편지를 받자마자 답을 써서 박순(朴淳)을 인편삼아 보냈던 모양이다. 당시 기고봉께서 신속한 답을 올렸고, 이퇴계 또한 답을 받자마자 다시 붓을 들었던 모양이다. 설을 지낸 직후인 정월 5일자로 미루어 보면 그렇다는 말이다. 이퇴계의 마음을 급하게 했던 것은 무엇일까. 노장 이퇴계가 새로이 학문의 불을 당기게하는 벗을 만났기 때문이던가. 학문으로 맺은 벗은 대개가 이러하다.

 

위 편지에서 보듯이 이퇴계는 자신의 견해를 수정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진정한 대가의 모습을 볼 수 있는 대목이 아닌가 싶다. 일면식도 없는, 게다가 족보에 먹도 채 마르지 않은 젊은이가 초면에 다짜고짜 강력한 태클을 걸어온 것이 아니던가.

 

성즉리(性卽理), 즉 성리학은 기(氣)의 활동 근거를 우주만물의 이치인 이(理)라 보았고, 기를 만물을 구성하는 재료이므로 모든 사물을 구성하는 도구라고 보았다. 이퇴계는 리는 원리적 개념이므로 절대적으로 선하고, 기는 현상적이므로 선악이 혼재한다고 보았다. 하여 이는 존귀하고 기는 비천하다고 여겼던 것이다(理尊氣卑).    

 

하여 위 편지는 이퇴계가 자신의 견해를 수정해가면서 좀 더 깊이 있는 초식을 선보이라고 기정자에게 채근하는 듯하다. 이에 기고봉은 올커니, 했을 것이다. 이퇴계가 몸소 한 판 놀아보세, 하고 멍석을 깔았으니 마다할 기고봉이 아니다. 망설일게 무엔가. 이 편지를 받자마자 기고봉은 이퇴계를 다시 직접 찾아 나선 다. 이미 서로 얼굴도 익혔겠다, 신이 난 기고봉은 이퇴계와의 한판 거침없는 설전을 벼르면서 대문을 나섰을 것이다. 막 벼슬을 받는 말단 9급 공무원이 하늘 같은 산전 수전 다겪은 고위직 2급 공무원을 직접 찾아나섰던 것이다. 현대에서 어떤 9급이 곧 1급을 앞둔 2급을 다이렉트로 만나기를 청할 수 있단 말인가. 겁도 없다 기정자여...    

 

당시 이퇴계는 공조참판으로 있었지만, 역시나 병약한 상태였던 듯하다. 하여 안타깝게도 이퇴계는 기정자에게 멍석을 깔아 주고는 휴가를 얻어 낙향한 후였다고 한다. 이에 기정자의 실망이 이만저만이 아니었을 것이다. 설레기도 하고 심각하기도 한 이퇴계와의 두 번째 만남에 설레어 가슴이 부풀어 있었을 텐데 말이다. 어쨌거나 이 덕분에 당시 기정자가 이퇴계에게 보낸 사단칠정의 내용을 우리가 읽어 볼 수 있게 된 것이다. 기정자가 이퇴계와 얼굴을 마주하고 직접 논하고 싶었던 자신의 주장을 글로 써서 보낸 편지가 지금껏 전해오기 때문이다.

 

두 사람이 만나던 1558년은 그 미래의 조선 역사에 사실상 커다란 영향력을 끼친 시발점인 해였다. 그러나 현재 이퇴계에 비해 기고봉은 상대적으로 잘 알려진 인물은 아니다. 그가 특별히 당파를 형성하지 않았던 탓이기도 하거니와 그 학맥이 계승되지 못한 탓이 아닌가 생각된다. 물론 기고봉은 율곡에게도 커다란 영향을 끼쳤지만 율곡은 싫든 좋든 서인들이 그들의 종장으로 삼아 칼과 방패로 삼았으니 기고봉의 영향력을 인정하기도 어려운 일이다.

 

두 사람의 논쟁은 지극히 아름답다. 다양한 이유들이 있으나, 무엇보다도 널리 공인된 대유(大儒) 이퇴계가 자신의 학문의 절정에 달해있던 즈음에 까마득한 후학이며 새파란 젊은이의 날카로운 도전을 지극히 온유하면서도 즐거이 교류하는 장으로 변화시겼다는데 있다. 예나 지금이나 종장격의 인물에 대한 철학적 도전은 그야말로 어쩌면 한 거물의 생애는 물론 그 학파의 근간을 흔드는 일로 여겨질 수도 있는 사안이다. 하여 그 충격파는 이루 말할 수 없이 큰 것이라 할 수 있다. 당시에 조선에 거대 운석의 충돌과 다름없는 일이라 해도 과언이 아닌 대 사건어었던 것이다. 

 

천만 다행한 일은 그때만 해도 당파가 아직 자리 잡기 그 이전이었기에 새파란 기고봉이 무사할 수 있었다고 본다. 사림이 동서로 분열된 해는 명종 사후 선조가 집권하던 1575년으로 노장 심의겸과 소장 김효원이 이조정랑의 후임를 놓고 갑을 박론하던 해였다. 소장 김효원을 지지하던 사림은 유성룡, 이산해, 이발, 김우옹 등이었는데 주로 퇴계학파로 동인이었고, 노장 심의겸을 지지하던 인물들은 박순, 정철, 윤두수 등으로 주로 율곡학파로 서인이었다. 이조판서와는 별도의 인사권을 쥐고 있었던 이조정랑, 비록 5급 공무원이었지만 그 힘은 막강했던 요직, 그 이조정랑의 후임을 놓고 서로 다투던 해가 1575년 이었던 것이다. 당시 전랑(정랑과 좌랑)은 요직으로 승진하면서 후임을 자천하는 권한을 가지고 있었다. 이를 역사는 을해당론이라 기록하고 있다.

 

을해당론 후 동서의 갈등은 점점 깊어져 기축옥사를 계기로 조선 전역에 메가톤급 비극을 볼러 온다. 이후 끈임 없는 예송 논쟁과 고변, 역고변, 환국 등으로 조선은 그야말로 만신창이가 된다. 이러한 과정에서 당론은 사림의 목숨 줄인 권력으로 변해버렸고 이론이 나오는 순간, 바로 처단의 대상이 되었다. 그것이 순수한 학문이었다 해도 결과는 마찬가지였다. 시간이 흐를수록 사림은 주희를 신성한 존재인 교주로 추앙했고, 주희의 견해에 토를 다는 자, 죽음으로 다스렸다. 그러한 비극적 운명을 맞이한 대표적 실례가 백호 윤휴와 서계 박세당이었다.

 

다행히 이공판과 기정자가 편지를 주고 받던 당시만 해도 학문의 장이 그만큼 자유로웠다는 이야기이다. 만약 시기가 조금 만 늦어, 이러한 분위기 속에서 도전장을 내밀었다면 기고봉의 목숨이 열 개였더라도 무사치는 못했을 것이다. 다행히 당론이 뿌리를 내리기 이전의 논쟁인지라 현대에까지 그들의 논쟁이 아름답고도 고밀도의 학문적 가치를 남길 수 있었던 것이며 조선의 진일보한 독자적 철학을 가질 수 있는 소중한 계기가 되었던 것이다.

 

 

 

참고:

 

* 박순(호-사암): 서경덕, 이퇴계를 사사하고 이이및 기고봉과 친분이 두터웠으며 척신 윤원형 일당을 제거하는데 그 공이 컸고, 대사헌을 거처 이판, 우의정, 좌의정, 영의정을 거치던 중 율곡의 탄핵 사건 때 율곡을 옹호하다가 되려 탄핵을 받고 은거한 군자였다고 한다. 그러나 아쉽게도 박사암이 이퇴계에게 전해주었다는 기고봉의 첫 답신은 이 책에 소개되지 않아 내용은 알 길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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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립간 2015-03-04 08:0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랜만에 인사 댓글 남기면서 좋은 책 소개받고 갑니다.^^

차트랑 2015-03-04 10:2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랫만에 뵙습니다 반갑습니다 마립간님,
써주시는 독서일기는 잘 보고있습니다
늘 건강하시기 바랍니다~
 

 

아주 가끔은 뜻밖의, 정말 의외의 책을 만나기도 한다. 그런 책을 만나는 순간 그 기쁨과 희열은 비할 수 없이 크다. 알라디너라면 그러한 책을 만난 적이 한 번 쯤은 있을 것이라 여긴다. 내게도 그런 책이 있다. 밀도 있고, 정렬적이며, 정성을 들였고, 온 힘을 쏟아부었구나 싶은 이 책이다. 사적으로 매우 귀하여 그 가치를 높이 평가하지 않을 수 없는 책, 바로 「생태주의 시학」이다.

 

생소한 제목의 책이지만 내용은 그만 감동을 금할 길이 없었다. 몇몇 우리의 시인들은 이미 생태에 깊은 관심을 가지고 있었고 걱정과 우려로 그들의 아픈 가슴을 시로 써 나아갔다. 지극히 대중성을 지닌 시들이지만 실제로는 대중적이지 못한 시들이 많다. 당시에 주목받지 못했을 것이지만 어쩌면 그 제목들은 어디선가 들어보았음직 한 것들이기도 하다. 물론 별로 널리 읽히며  팔려 나가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들의 시가 그러했듯, 이 책 역시 별로 알려지지는 않은 듯하다. 10년이 지났지만 리뷰하나, 아니 페이퍼하나 없다. 이유는 자명하다. 저자가 돈벌이가 되지 않는 내용을 책으로 엮어낸 것이다. 자본주의가 아닌 생태주의가 우리들의 뇌리 속에 뼛속 깊이 자리잡지 않은 탓이던가, 이토록 아름다운 책은 알려지지 못한 채 조용히 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을 뿐이다. 생태, 친환경을 외치는 사회에 살고 있고, 썩은 물과 공기를 마시는 사회에 살고 있지만 사실 우리는 그것에 큰 관심이 아직은 없는 것이다. 그러하다보니 각 국가의 정책은 자본 중심이고 우리의 건강에 관심을 줄 여유가 없다. 이에 홀로 고독한 경종이라도 울리듯, 저자는 외롭고 쓸쓸한 생태주의를 노래한 시인들의 시를 정밀하게 분석해낸다. 역시나 고독하게..아, 시를 바라보는 시각은 이런 것이었구나 싶은 감동의 물결이 가슴에 밀려온다. 모름지기 책이란 이처럼 저자의 땀과 피나는 노력과 정렬, 그리고 자신의 진정성을 가득 담아내는 것이어야 한다. 아니 독자로하여금 그것들을 느낄 수 있도록해야 한다. 사람들은 시를 어려운 것이라고 흔히들 말한다. 이 책은 그러한 관념을 산산히 부서주거나 혹은 역시나 겁나게 어려운 것이 시라는 생각을 더욱 공고히 해주거나!  어쨋거나 친환경이니 에코이니 하는 말은 이제 인문학의 영역으로 들어와야 할 때가 된 것이 아닌가 한다.

 

최근, 서울의 하늘은 평소의 하늘, 평소의 공기가 아니었다. 황사와 미세먼지가 하늘을 뒤덮었고 그 공기는 우리들의 폐 속으로 고스란히 들어갔다. 숨을 쉬는 일이 결코 쉬운 일이 아님을 절감하지 않을 수 없었다. 과거의 대기가 숨쉬기에 좋았다는 뜻은 아니다. 그보다 더 과거에는 황사를 으레 그려니 했고 지금처럼 그리 폐해가 심각한 것도 아니었다. 그러나 몇일 전의 공기는 정녕 최악이었다.

 

자연보호는 초중등학교 교과서에서나 볼 수 있는 말이고, 매체는 에코, 그린, 혹은 친환경을 외치지만 이는 겉으로 드러낸 슬로건일 뿐, 그 내면은 마케팅에 그 목적을 두고 있다. 알고보면 환경에 해악을 끼칠 수 밖에 없는 상품에 기업은 죄다 그런 수식어를 가져다 붙이고 있으며, 정작 알아보아야 할 우리는 기업이 환경을 위해 애를 쓰는 줄로 안다. 학교도 기업도 말로는 자연보호를 외치지만 우리가 진지하게 자연을 생각해 본 적이 과연 있던가. 자연보호는 공허한 메아리일 뿐이다. 결과적으로 전두엽을 손상시켜 인지능력을 현저하게 떨어뜨리고, 치매 혹은 암을 유발시킨다는 초미세먼지를 우리의 자녀들이 마시게 했다. 기성세대는 공범이나 진배없다. 발전이라는 명목으로 물과 공기를 더럽혀왔으니 말이다. 아니 의식의 부재로 되려 오염을 부추겨왔다. 사실은 국가도 기업도 국민도 모두 공범인 것이다. 그러나 영문도 모르고 자신을 해치는 공기를 마시고 있는 저 어린 아이들은 무슨 죄란 말인가. 조만간 중금속으로 가득 한 미세먼지가 한반도를 강타할 것이라 한다. 그들에게 이제는 생화학전용 방독면을 권해야 할 때가 온 것인가. 그들의 조상들이 만들어 낸 오염으로 찌든 공기가 폐로 들어가 그들의 온 몸을 병들게 하고 말 것이니 말이다.

 

동양에서는 이미 2500년 전 자연으로의 회귀를 외쳤고, 서구에서는 그 족보를 들추면 니체를 만날 수 있다. 니체는 정신 뿐 아니라 육체의 중요함을 설파했다. 육신이 병들면 그 정신이 온전할 수 있겠느냐 외쳤던 것이다. 동양은 본디 천지인을 하나로 인식했으니 새삼 언급할 필요도 없겠다. 서구도 자연의 중요성을 인식하고 있고 동양보다 더 자연을 생각하는 언론과 단체가 있지 않느냐고 말한다면 글쎄올시다 이다. 자연의 파괴는 산업혁명으로부터 시작한다고 볼 수 있다. 인간과 동물의 노동력이 아닌, 기계의 힘을 이용하던 그 시점부터 자연의 파괴는 시작된 것이다.

 

이 책으로 니체는 정신만을 유독 지나치게 강조하는 서구의 사상에 큰 파문을 일으켰다. 플라톤 이후 서구는 정신세계의 정수라고 일컫는 이데아의 사고속에서 같혀 살아왔다. 상대적으로 물질 세계를 경시했고 열등한 것으로 인식했다. 그렇게 철학이 정신의 미학에 도취되어 있으면서도 실제로는 물질(자본)을 숭상하는 서구의 이율배반에 직격탄을 날린 것이다. 서구의 기형적 철학에 염증을 느껴던 것일까. 니체는 그 결과 편협된 사고의 불균형을 이제는 바로잡아야한다고 생각했는지도 모른다. 어쨌거나 니체의   짜라투스트라는, 서구는 도대체 왜 하.늘.을 날아다니는 독.수.리.만을 강조하고 주입시키냐고 반기를 들었다. 대.지.를 제 몸뚱이라로 기어다니며 인식하는 나의 친구 '뱀'을 홀대하지 말라 외쳤다.  짜라투스트라는 독수리의 눈과 뱀의 몸뚱이리가 조화를 잘 이루어야한다고 일갈했던 것이다. 니체에게 대지는 치유의 대지였다. 당시 서구는 짜라투스트라의 이러한 직격에 경악을 금치 못했다.

 

니체의 짜라투스트라에 깊은 감명을 받은이가 있었으니, 바로 Richard Strauss였다.  

자본주의가 피도 눈물도 없는 이념을, 가진 자와 가지지 못한 자를 양산해온 주범이며, 불평등의 최고 기여자라는 점도 그러하지만, 우리가 마시는 물과 공기를 오염시킨 주범이기도 하다. 자본주의를 한마디로 정의할 수 있을까? 물론 있다. 자본주의는 '사람의 목숨보다 돈을 더 소중하고 귀중히 여기는 이념' 이라고 말이다. 다시 말해, '돈을 가장 숭상하는 이념'이다. 국가와 기업은 대중 앞에서는 사회로의 환원과 재분배 그리고 평등을 강조하지만 뒤로는 귀중한 돈을 쫒는다. 신을 숭상하는 종교는 사실은 역시 돈을 숭배한다. 물론 종교가 죄다 그렇다는 말 아니다. 지구상에서 가장 영향력이 있는 집단인 각 국가와 각 종교의 작동 원리는 알고보면 자본주의, 즉 돈이다.

 

생명은 물과 공기에서 온다고 했다. 과학자 ‘밀러’와 그 동료  ‘유리’라는 두 냥반은 물, 메테인, 암모니아, 수소를 사용한 실험을 했다. 일주일 간의 실험 끝에 그들은 탄소가 유기물로 합성된 사실을 알아냈다. 무기물로부터 유기물이 합성된 것이다. 더욱 놀라운 것은 그 중 미소량의 탄소가 아미노산의 한 형태라는 것이었다. 아미노산이 무엇이던가. 살아있는 세포의 단백질을 합성하는 생명의 중요 물질이 아니던가. 우리 신체내의 DNA는 아미노산을 특정한 위치에 배치시켜 단백질을 만들어내게 한다. 그렇다면 아미노산의 결핍은 무엇을 뜻하는 것인지 자명한 일이 아니던가.

 

원시 대기에서 그런 아미노산의 발생을 매개했던 것은 바로 물과 공기가 핵심이었다. 이제 생명의 근원인 그 물과 공기가 오염될대로 오염되어 더 이상 마실 수가 없게 된 것이다. 공기도 곧 우리를 질식 시키려하고 있다. 우리는 이미 물을 병에 담아 팔고 사기를 20여년 이상 해왔다. 기업은 그렇게 물로 돈을 벌고 있다. 우리가 마실 수 없는 오염수가 더 증가하고 지독해질수록 기업은 돈을 더 많이 벌어들일 것이다. 사실 물이 기름 값과 다름이 없는 가격이 아니던가. 이대로라면 앞으로 더 비싸질 것이 뻔하다.

 

우리의 처지가 이러하니 압축 공기주머니를 구매해야 할 날이 멀지 않아 보인다. 가정집에 공기 정화기가 대세인 요즘이다. 앞으로는 개인 휴대용 공기 정화기 가지고 다니거나 공기 주머니를 차고 다닐밖에... 과연 양질의 공기를 얼마에 팔고 사게되는 것일까... 양질의 물과 공기가 더욱 희박해지고 고갈 될수록 그 값은 점점 더 비싸질 것이다. 물과 공기를 살 돈이 모자란 사람들은 중금속이 가득한 썩은 물과 공기를 마시며 그렇게 죽어가야 할지도 모른다. 마치 돈이 있는 사람들은 영원한 생명을 얻으려 은하철도 999를 타지만 그 고층 도시의 아래, 지독하게 오염된 곳에서 거리의 서민들은 서서히 죽어가는 모습을 보여주던 그 은하철도 999말이다.

 

얼마 전의 언론 기사에 의하면 인도 인구의 절반이 질 나쁜 공기의 덕분에 3년의 수명이 단축된다고 한다. 이는 인도만의 문제가 아니라 전 세계의 문제인 것이다. 우리의 세상이 이지경이 되도록 내버려 두어도 좋단 말인가....혹자는 말할 수 있다. 굶어 죽으나 썩은 물과 공기를 마시고 죽으나 죽기는 매한가지가 아니던가? 라고 말이다. 물론 맞는 말이다.  그러나 그렇게 생각하기 전에 우리는 한 가지를 더 생각해줄 필요가 있다. 우리는 오염수를 마시고 사는 물고기들의 몸이 변형되어 찌그러진 상태로 태어나고 돌연변이가 태어나는 시대에 살고 있다. 방독면을 착용하거나 압축 공기주머니를 몸에 지녀야하는 세상에서 과연 우리가 살아야하는 것인가? 나아가, 우리의 자녀들이 앞으로 생산하게 될 미래의 우리 후손들에게 무슨 일이 벌어질지 생각해보아야 하지 않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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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녀고양이 2015-02-27 17:5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리운 챠트랑님 잘 지내시지요?
오랜만에 인사드리네요.

요즘 생수를 사먹는 것은 너무나 당연시 되어 버려서,
갑자기 초등학교 때 선생님께서 물을 사먹는 나라도 있다고 했을 때 다들
와아- 하고 웃어버렸던 기억이 납니다. 당연했던 것들이 당연해지지 않는 세상이 되어가네요.

그리고 사람이란게,
당연하지 않을 때가 되어서야 그 당연했던 것들의 소중함을 알게 되나봐요.
저는, 가끔이라도 차트랑님이 이렇게 글을 올려주시는 자체가 안심이 됩니다. ^^

차트랑 2015-03-04 01:51   좋아요 0 | URL
마녀고양이님, 오랫만입니다
염려해주신 덕분에 잘 지내고있습니다
무소식이 희소식이겠지요...

저는 북플을 하지 않아 소식을 제때 받지 못해
답이 늦어진 점 양해바랍니다

늘 건강하시기 바랍니다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