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씨가 몹시 차가운 날입니다.

단단히 준비하지 않고 외출을 했다가는 동장군에게

혼쭐나고도 남음이 있는 그런 하루였습니다.

 

언젠가 어느 분의 페이페에 써있었던...

늦게 배달되어 마음 졸이며 기다리던 안타까운 마음이

책에서 전해오는 차가운 냉기로인해

택배아저씨께서 고생이 얼마나 많으신지 생각하게 되었다는 내용이

기억되는 차가운 하루입니다.

 

정말....

책을 꺼내 드는 순간...

이렇게 날이 차가웠구나 싶습니다..

택배아저씨께 깊이 감사드립니다.

 

아, 알라딘 컵도 하나 딸려왔습니다. 노란색 컵을 가지고 있어 핑크로 왔으면 생각했는데,

정말 핑크색을 보내왔습니다. 이건.. 쩜...좋은걸~

 

안사람은 지난해의 컵이 더 마음에 든다하고, 저는 올해의 컵이 더 마음에 든다하고

서로 싸우다가는,

이럴게 아니라 각자 마음에 드는 알라딘 컵으로 차나 한잔 같이하면서 싸우자하고는 

얼떨결에 차 한잔 함께했다는 ㅋ

( 그런데 아무리 봐도 지난해 컵이 더 좋은걸~)

 

다음은 알리디너분들의 서재와 리뷰에 힘 입어 택배받은 책들입니다.

 

 

선택도서 1,2 

 

서재 활동을 하시는 분들께서는 대부분 잘 아실만한 분의 뽐뿌질이 워낙 강력하여 뿌리치지 못하고 주문하게 되었습니다. '신화의 힘' 은 이윤기님의 번역인데요 이윤기님의 번역과 저술을 몇권 읽어본 적이 있습니다.

 이윤기님의 번역에서는 혼을 불어 넣고고 있는 분이라는 생각을 떨쳐버리기 어렵습니다. 그리하여 찾아 읽은 책들은 아래와 같습니다. 이윤기님께서 타계하셨다는 매체의 보도를 접하고는 마음깊이 애도해마지 않았습니다. 이윤기님께서 번역을 위해 그 어떤 노력을 해왔는지  그의 책을 읽어보신 분들은 잘 느끼실 수 있으리라 여깁니다. 저는 이윤기님의 번역에서 무한한 신뢰를 느낍니다. '신화와 인생' 은 저자 캠벨의 글솜씨를 접하고 싶어 함께 접하게 되었습니다. 물론 같은 분의 등떠밀기가 있었습니다 ㅠ.ㅠ

지금 신화와 인생을 시작했습니다.  

두 권 중 한권만 마음에 안들어도 두권다 반품할 생각입니다, 대전으로요 두-둥~!

 

 

과거에 읽은 이윤기님의 저서및 번역서

( 아래의 7권은 이번에 구입한 책이 아닙니다)

 

 

 

 

 

 

 

 

 

 

 

 

 

 

 

 

 

 

 

 

 

 

 

 

 

 

선택도서 3

 

그리모의 피아니즘을 특별히 사랑하는 애호가의 한 사람으로, 그리모의 저서 '특별수업'을 읽어볼 생각을 하지 않았다니...쩜 쩍발린다는 양심의 소리를 외면 할수가 없었습죠 ㅠ.ㅠ

이렇게 쩍발린 것은 알라디너의 영향력 덕분입니다. 알라디너... 생각보다 무섭습니다 ㅠ.ㅠ

 제가 가장 좋아하는 그리모가 연주하는 베토벤 피아노 협주곡 5번 2악장은 그 어느 연주보다 성스럽습니다. 협연에 참여하고 있는 예르비 또한 마찬가지 입니다. 그리모의 모습에 깊이 경도된 애호가의 한 사람으로 특별수업을 읽어보는 것은 그녀에 대한 예일 듯 여겨집니다. 

 생각이 비록 다른 점이 있을 수 있겠지만 마음을 열고 읽어볼 작정입니다. 그리모께 다시 한 번 경의를 표합니다.

 

 

 

 

선택도서 4

 중용 한글 역주입니다. 김용옥선생께서 해준 중용 강의에 쩜 경도었다고나 할까요...사실 김용옥선생은 강의를 할 때 잘난체를 아주 잘 하십니다. 솔직히 이점은 별로입니다 ㅠ.ㅠ 중용을 깊이있게 공부하셨다는 분이 너무 잘난체를 잘 하십니다..이점은 동양의 최고 고전인 중용과 맞지 않는다 생각합니다. (김용옥선생님, 솔직하게 말씀드려서 죄송합니다 ㅠ.ㅠ)  

 그러나 강의의 내용은 정말 좋습니다. 자사선생님의 중용을 전달하는 방식은 또한 정말로 감탄스럽습니다. 동양의 고전이 가지고 있는 '힘'을 고스런히 느낄 수 있습니다. 더불어 논어와 대학 그리고 노자에 이르기까지 관련 장구의 일부를 더불어 설명하는 김용옥선생은 학문적 깊이를 가늠하기 어렵게 합니다. 더불어 중용은 정녕 지상 최고의 경서입니다.

 

 

 

 

선택도서 5

 물론 정통 성리학을 공부하신 분들께서 보면 약간은 입장이 다르다는 견해를 보이십니다. 딴은 '사이비'라는 말까지 운운하는 것을 들어본 적도 있습니다. 그러나 개인적으로 외골수 성리학의 곰팡이 냄새나는 사고는 노땡큐입니다. 

 밀폐되고 고립적이며 마음을 열지 못했던 성리학의 모습은 스스로의 학문을 성안에 가두어두고 소통시키려하지 않았던 그들만의 리그를 연상시킵니다. 학문과 사상은 사회와 소통하고 진정한 대의를 위한 것이어야 하며 자신들의 利를 위한 도구로 사용해서는 절대로 안된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노땡큐인 것입니다. 과거 조선의 성리학은 폐단이 너무 컸습니다. 동양의 고전을 권력과 특정 집단의 이익을 위한 사용했으며 필요에 따라서는 학문이라는 칼자루를 마음대로 휘둘러 사용한 적이 많았습니다. 칼자루를 잡았다는 것은 맘껏 휘둘러대라는 의미는 결코 아니어야 합니다. 칼자루는 반대로 애민의 도구로, 나라를 지키며 백성을 지키는 수단으로 용감하게 휘두르라는 뜻입니다. 성리학의 자부심은 칼자루에 나오는 것이 아니라 지혜와 만인과의 교감과 소통에서 나오는 것임을 망각해서는 안될 것입니다.

 

 

 

선택도서 6

 그 내용이 어떤 것인지는 아직 모르겠지만 개인적으로 기대에 부응해주는 책이었으면 합니다. 나름대로 기대치를 가지고 선택한 책이니만큼 말입니다.

  사실 대의와 명분을 위해 자신의 목숨을 초개와같이 버린 우리들이 선비들이 있습니다. 마이클 샐던의 '정의란 무엇인가'를 읽으며 쓴 웃음을 지을 수 밖에 없었던 대목은 바로 난파된 배 위에서 목숨이 경각에 달려있던 영국인들이 죽어줄 사람을 제비뽑기로 했다는 사실을 전하면서 서술한 부분이었습니다.

  조선의 선비로 기개를 가진 분들이었다면 과연 그 어떤 선택을 했을까...하는 자문을 했던 기억이 납니다. 물론 선비의 기절을 목숨보다 더 중요시했던 선비들이라면 분명 누군가를 죽여 목숨을 연명하는 선택을 과연 했을까...하는 것이었습니다. 물론 이 책은 그런 선비의 모습을 담고 있는 것 같지는 않습니다. 반대로 선비답지 않았던 우리 선조들을 험담하는 책인 듯 합니다. 선비는 과거에만 존재하던 것은 아닙니다. 현대에도 선비는 분명히 있습니다. 학문은 印이므로 財를 만나면 파괴되는 성질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러나  종종 학문을 하는 선비들이 財와 權을 쫒으려하는 겨우를 흔히 목도합니다. 재와 권을 쫒는 순간 학문은 증발하게 됩니다. 이것이 동양적 사고의 이치 중  하나라는 것을 잘 알면서도 학문을 버리는 경우가 많아 안타깝습니다.

 

미지막으로, 알라디너분들의 서재를 통해서 많은 깨달음을 얻습니다. 알라디너들의 서재와 리뷰는 다양한 사고의 방식을 접할 수 있는 통로를 제공할 뿐 만 아니라, 책을 선택하는데 커다란 도움이 되어줍니다. 위의 책들은 알라디너분들의 도움으로 선택하게된 책들입니다. 그동안 책을 선정하는데 도움이 되어주시고, 또 직접 저의 서재를 찾아주신 여러분들께 이자리를 빌어 깊이 감사드리며 저의 글을 마칩니다. 고맙습니다 여러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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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극곰 2012-02-03 09:4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신화의 힘' 꽤 오랫동안 보관함에 있다가 저도 요번에 구입해서 보고 있어요.
2/3 정도 읽었는데 아주 좋아요!
신나서 남편한테 막 떠들어댔더니, 무슨 사이비교에 심취한 사람같대요.
그런 마력이 있는 책입니다요. ^^

저도 오늘 배달될 책을 기다리고 있다지요.
어제 당일배송이래놓고는 안 와요.
ㅠㅠ

차트랑 2012-02-03 15:38   좋아요 0 | URL
알라디너님들 덕분에 좋은 책을 읽게되어
저도 기쁩니다.
좋은 책을 널리 알려져 읽을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요즘 워낙 날씨가 추워서
배달도 늦어지나 봅니다 ㅠ.ㅠ

stella.K 2012-02-03 11:5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엇, 컵이 핑크색도 있던가요? 자주색인가 그랬던 것 같은데...
책 엄청 사시네요. 컵을 또 받으실 정도면.
책도 내용면에서나 가격면에서나 묵직합니다.^^

차트랑 2012-02-03 15:4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제가 벌써 노안이 온것인지
색깔 구별도 헛갈립니다요^^
위의 책 6권을 주문했더니 알라딘 컵을 준다고해서
그러시라고 했습니다 ㅠ.ㅠ^^

저는 많이 구입하는 편에 들지 않는 것 같더라구요
워낙 독서력이 좋으신 분들이 많으십니다.
스텔라님도 마찬가지구요^

stella.K 2012-02-03 15:44   좋아요 0 | URL
ㅎㅎ 슬슬 차트랑공님의 연식이 궁금해지는데요?^^

차트랑 2012-02-03 16:2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스텔라님, 후덜덜~~^^
대한민국은 인문학을 절실히 필요로하는 시대입니다만
저는 어깨를 조심해야 하는 시대에 아직 들어서지를 못했습니다요 ㅠ.ㅠ
문제는 아닌데도 어깨에 통증이 온다는 ㅠ.ㅠ
용어를 좀 앞당겨야 하는건 아닌지...
하는 생각을 하는 중입니다 쿠더덩~

stella.K 2012-02-03 17:45   좋아요 0 | URL
ㅎㅎ 저도 처음에는 어깨 통증부터 왔습니다.
그렇다면 저 보단 아래인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기도 하네요.
근데 책을 선택하시는 것을 보면 정신연령적 측면에선 저 보다 한참 옵화 같기도 하구요. 전 아직 저런 책 못 읽거든요.
용어를 앞당긴다는 말은 또 무슨 뜻일까요?^^

순오기 2012-02-03 20:4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알라딘 서재는 지름신을 부르는~~ ^^

차트랑 2012-02-04 00:23   좋아요 0 | URL
지름신 무서버~~ㅠ.ㅠ

차트랑 2012-02-04 00:2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어깨에 신호가 먼저 온 사람이 위입니다요^
그러니 스텔라님이 눈임입니다요 ㅋ

책이야 관심 분야가 서로 다르니
그걸가지고 정신연령을 판단하는 것은 쩜...^^

용어를 압 당긴다는 말은
흔히 오십견이라고 하는데 저는 오십견이 될 나이도 아닌데
그 증상이 나타난다는 뜻입니다요 ㅠ.ㅠ

stella.K 2012-02-04 10:19   좋아요 0 | URL
ㅋㅋㅋㅋㅋ 어깨 조심하십시오.^^

차트랑 2012-02-04 12:5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잘 알겠사옵니다 스텔라님~^^

라로 2012-02-07 23:0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요즘 차트랑공님 알라딘에서 활동 열심히 하시는 모습이 보기 좋아요.^^
저도 차트랑공님 덕분에 좋은 책을 만나는 걸요~.^^

차트랑 2012-02-08 01:3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어구구..
위의 신화의 힘, 신화와 인생, 특별수업은 모두 나비님 덕분에
결정하게된 도서입니다.
위 글의 '아실만한 분' = 나비님입니다.

물론 땡스투도 나비님께 날려드렸죠.
그래서 궁금해하시던 뜬금없는 대전 반품은
그런 의미를 내포하고 있었답니다 ㅠ.ㅠ

신화의 힘을 읽고 있는 중이고
캠벨의 견해에 대한 반박문을 준비중에 있습니다 쿠더덩~

모두가 나비님 덕분인걸요^^
좋은 책을 읽을 수 있는 기회를 주셔서
감사를 드려야할 사람은 저입니다.

나중에 다 읽은 후에 페이퍼를 작성해보도록 하겠습니다.
고맙습니다 나비님~
 

돌이켜 보면 우주와 관련한 지식을 별로 없지만 우주와 그 물리학에 관심을 가진지는 꽤 오래된 듯 하다.  그래서 늘 '우주'와 관련된 용어의 책들은 눈여겨 보는 편에 속한다.

 

올해도 여지없이 우주에 관련한 책들을 검색하고 있는데...시선을 확~ 끄는 도서가 포착된다. 다름 아닌 '멀티 유니버스'라는 책이다.

  원제는 보이는 그대로 'THE HIDDEN REALITY' 이다. '평행우주'라는 책에서도 소개하고 있는 '멀티'라는 개념이 우주에 적용된 것은 생각보다 오래전의 이야기이다.

 

원제를 한글의 새로운 타이틀로 출간한 것은 흔히 있는 관례로 불편할 것은 전혀 없다하겠다. 그러나 이 책이 '멀티'라는 용어와 관련한 책이라면 제목은 멀티 유니버스(Multi-Universe)가 되어서는 안된다는 것이 개인적인 생각이다.  왜냐면 Uni-라는 용어는 '하나' 혹은 '통합'이라는 사전적인 의미를 담고 있으며, 과거 서구 과학계의 사고로는 우주를 '단일한, 즉 Uni'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라는 그럴 듯한 이유가 있었다.

 

그러나 어느 순간부터 우리가 알고있다고 생각하는 단일의 '우주(Universe)' 외에도 다른 우주가 또 있을 것이라고 주장하는 학자들이 생겨났다. 과학자들이 이렇게 주장하기 까지에는 그 어떤 실험의 결과를 가지고 있다고한다. 실험은 상대적으로 매우 간단하다. 집에서 어린이들과 직접 실험해보아도 확인 가능할 정도로...

 

실험과정의 첫 번째 실험

1. 하나의 판대기에 한 가운데에 장방형의 구멍을 낸다.

2. 그 구멍으로 빛을 통과 시킨다.

3. 빛이 통과하면서 만들어 낸 그림자를 장방형의 틀과 비교해본다.

    (비교의 방법은 두 가지가 있을 수 있다.

    자로 정확하게 두가지를 잰 후 비교한다던가, 아니면 판대기를 장방형으로 자를 때 종이를 덪대고 잘라내면 같은 모양의 종이를 얻을 수 있다)

 

이 실험의 결과는 장방형의 판대기와 빛이 통과 한 후의 그림자로 나타나는 모양이 정확하게 일치 한다는 것이다.

 

실험과정의 두 번째 실험

더불어 실험은 약간 더 진행되어야 한다.

4. 이번에는 똑 같은 장방형의 판대기를 2개 준비한다.

5. 두개의 판대기 중앙에 같은 방법으로 구멍을 낸다.

6. 두개의 판대기를 일정한 거리에 나란히 그리고 정확하게 위치시킨다.

7. 그 두 판때기에 빛을 전달한다.

8. 이번에도 두개의 같은 틀을 동시에 통과한 빛을 확인한다.

 

과학자들의 이 실험의 결과는 이전의 실험결과와는 전혀 다른 결과를 보여주었다. 첫번째 실험에서는 틀의 모양과 그림자의 모양이 정확하게 일치하고 있다는 사실을 일차적으로 확인했다. 이 실험의 목적은 빛이 평행하게 움직인다는 것을 증명하려는 간간한 실험이기도 하다. 실험의 핵심은 두번 째에 있었다. 두 번째의 실험에서는 두개의 틀을 통과하고 난 후의 그림자가 보여주는 빛은 원래 틀의 모양과 달랐던 것이다. 이 설험은 빛이 휘어지는 현상을 직접 확인해주는 실험이었다.

 

빛이 휘어지는 현상은 블랙홀 부근에서 발생한다는 것이 기존의 입장이었다. 워낙 강력한 인력을 가진 블랙홀이 자신의 주변에 있는 빛을 자신에게로 끌어당기는 것이다. 그러나 직선운동을 하던 빛은 자신의 관성을 잃어버리고 싶어하지 않고 버틴다. 그렇게 상대적인 두 힘이 상호 작용한 결과 빛을 휘어지게 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블랙홀의 주변을 지나고 있지 않는 빛은 휘어질 수 있는 것일까? 이러한 질문과 그 해답이 바로 과학자들이 우주에 '멀티'라는 용어를 관련시키게 되는 중요한 근거가 된다. 위의 두 번 째 실험에서 확인 했듯이 두개의 동일한 틀을 지나면서 빛은 자신이 휘어질 수 있다는 것을 증명해주었다. 블랙홀의 인력이 아니어도 말이다.

 

'평행 우주'는 우주에 관련한 매우 유익한 도서이다

 

그렇다면 두개의 똑같은 틀을 지나는 빛이 휘어지는 것과 'Multi'라는 용어는 어떤 관계가 있는 것일까. 이 글을 읽은 분들께서는 빛을 두개의 틀에 통과 시키는 실험에서 이미 그 의도를 추측했을지도 모른다.

빛이 블랙홀 주변을 지나지 않으면서도 휘어지는 것을 목도하는 실험이 두개의 틀을 지나는 실험인 것이다. 즉, 블랙홀의 힘이 아니라도 '같은 두개의 물체를 지나는 빛은 휘어진다'는 결론에 도달 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결론적으로 '두개의 같은 우주(Universe)를 지날 때 빛은 휘어진다'는 것을 증명해낸 실험이라 할 수 있는 것이다.

 

위의 실험은 생각 이상으로 간단한 실험이지만, 논문으로 발표할 당시 학계에 커다란 반향을 불러일으켰다. 그리하여 우주가 하나가 아닌 여러 개가 있을 수 있다는데 동의하는 학자들이 많아진 상태이다. 책으로도 여러개의 우주에 관련한 시적들이 심심찮게 출간되고 있을 뿐만 아니라 멀티버스에 관련한 영화를 출시할 수 있었던 것은 이러한 이론적 바탕을 두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이 책의 제목은 Multi-Universe가 아니라 Multiverse가 되어야 타당하다는 것이 개인적인 생각인 것이다. 물론 번역서를 쓴 분도 이 점에 대해서 많은 고민을 했을 것이다.  Multiverse는 우리에게 여전히 친숙한 용어가 아니며, Universe를 우리말로는 '우주'라는 의미로 통용해왔다는 점에서 다우주(多宇宙)라는 의미로는 Multi-Universe라는 표현은 성립되는 듯 보인다. 그러니 고민 스러울 수 밖에 없다.

 그러나 우리가 표현하는 우주(宇宙)는 집우(宇)와 집주(宙)의 개념이다. 즉, 이 우주를 우리가 살고있는 넓은 집이라는 광의의 개념어로 사용하고 있다는 점을 간과해서는 안될 것만 같다. (천자문에서는 하늘 천, 땅지 다음 집우와 집주를 다루었다.)  우리가 사용하는 '우주'라는 언어적 의미에는 Uni, 즉 '하나' 혹은 '통합'의 개념을가지고 있지 않다는 점을 놓쳐서는 안될 것이라 보는 이유이다. 그러므로 'Multi와 Uni'를 결합시킨 영어의 표현이 가질 수 밖에 없는 언어적 딜레마를 최소한 제거해 주었어야하는 것은 아닐까...이 책이 독자들에게 주고자하는 내용을 전달함에 있어 '멀티 유니버스'는 이러한 언어적 모순을 가진 표현일 가능성이 높다. 그러한 연유로 현재의 표지어는 적당하지 않다고 본다.

 

영화 The One을 아시는 분들이 많을 것이다. 물론 허무맹랑한 영화라고 생각하는 경우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 허무 맹랑한 이 영화는 Multiverse 이론 하나만은 잘 번영한 영화이다. 나머지가 별 볼 것이 없어 시나리오와 이론의 빈약함을 절감하게 하는 그저 액션영화가 되어버렸지만 말이다.

그 허무 맹랑한 이야기는 대략 다음과 같다. 그러니까...감독은 이 영화에서 우주를 123개나 등장시킨다. 우주가 많다는 이론을 주었더니 뻥을 좀 더해서 이렇게나 많은 우주를 등장시킨거다. 그 123개의 우주에는 각각 '나와 똑같은 나'가 있는 것이다. 즉, 그 모두는 '나'의 복제품이냐 하면 절대로 복제품이 아닌 '진짜 나'이다. 그 '진짜 나'가 다른 우주에 있는 또 하나의 '진짜 나'를 죽이면 나의 힘은 그만큼 증가한다. 에너지 보존의 법칙이 적용되는 순간이다. 그러니까 122개의 우주에 있는 '진짜 나'를 모두 제거하면 '나'는 122배로 강력한 힘을가진 자가 된다. 즉, 우주를 지배할 수 있는 그야말로 'The One'이 되는 것이다. 이런 야심을 품고 우주를 돌아다니면서 나를 죽이는 나가 있다. 주인공 나는 살인자 나가 나를 죽일 때마다 힘이 그만큼 솟아남을 느낀다. 죽이지 않는 나마저도 힘이 함께 솟아니는 것이다. 왜냐면 같은 나이니까 당연한 말씀이다.

 

결론은 안봐도 뻔하다. '주인공 나'가 '악당 나'를 물리친다는 것이다. 내가 나를 물리치다니...헐~ 그러나 멀티버스의 이론으로라면야 불가능할 것이 없는 이야기이다. 믿거나 말거나~^^ 

 

아, 우주에 관심 있는 분들에게는 다음의 책은 필독서이다.

  

 

 

 

 

 

 

 

코스모스는 최소한 우주관련한 전설적인 책일 것입니다. 두권의 책이 똑같아 보이지만 하나는 보급판이고 하나는 고가판입니다. 내용은 같아서 저렴한 책을 선택하면 한권의 책을 더 구입할 수 있는정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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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녀고양이 2012-02-06 19:0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평행 우주도 그렇고, 차원 이야기도 그렇고
저는 물리학자들의 창의력에 정말 크게 박수를 보내게 됩니다. 그분들이 진정한 천재구나 싶어져요. 어떤 현상을 발견하면 그것을 해석하기 위하여 온갖 가설을 다 내놓고 실험하기 시작하잖아요. 또는 어떤 때는 수치를 맞추기 위해서도 그러더군요. 수치가 맞지 않는 것은 무엇인가 비어있기 때문이라고 하면서.. 저는 읽으면서 개념 따라가기도 벅찬데 말입니다.

차트랑 2012-02-07 09:4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마녀고양이님,
저의 서재를 찾아주셔서 고맙습니다.
평소 써주신 좋은 페이퍼를 잘 읽고 있습니다.
 

'청소년을 위한' 이라는 말을 따로 붙여 출간되는 다양한 도서들과 청소년들이 공부하는 교과서가 달라야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믿을 수 없는 교과서


흔히들 '교과서적'이라는 표현을 사용한다. 그만큼 교과서에 대한 기성 세대들의 신뢰도가 존재한다는 뜻일 터이다. 그러나 막상 학생들 스스로에게는 결코 그렇지 못한 것이 현실이다. '교과서적'이라는 용어를 사용하는 성인들조차도 이를 잘 알고 있다. 그러면서도 늘 '교과서적'이라는 용어를 사용하곤 한다. 사실상 신뢰하지 못하는 교과서에 대한 기성세대들의 이러한 이율배반적인 현상이 나타나는 이유는 무엇인가?


추측컨대 아마도 교과서에 대한 바램과 소망이 가미된 기성세대의 표현이 아닐까 생각하게 된다. 그런 교과서마저 우리는 믿을 수 없는 시대에 와있다. 교과서는 언제나 학생들의 관심과 흥미를 유도하는데 대부분 실패해왔다. 현재의 기성세대들이 학생이었을 때에도 말이다. 그런 까닭에 좀 더 흥미롭고 유익하며 학교를 졸업한 후에도 꾸준한 관심을 가지고 독서를 생활화하는데 필요로 하는 그러한 교과서에 대한 바램과 소망이 내재된 용어가 바로 '교과서적'이라는 표현이라고 결론지을 수 밖에 없다.


 

이토록 흥미로운 주제와 내용들이 시중에서 출간된 책을 접한 후에서야 눈을 돌리게되는 것은 바람직한 현상이 결코 아니라고 본다. 물론 시험이라는 중압감을 떨쳐버릴 수가 없다. 그러나 시험의 압박이라는 트라우마 때문이라고 그 책임을 떠넘기기에는 학생들이 기성 세대가 된 후에 독서에 흥미를 잃어버리는 것을 모두 설명할 수는 없다. 결정적인 문제점은 수업의 내용에 있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흥미로운 주제들을 흥미롭게 가르치고 학습하는 수업의 내용이 기성세대가 된 후의 독서생활에 중요한 요인으로 작용할 것이라는 점을 부인 할 수는 없다. 비록 시험 점수에 대한 압박감이 있었고 점수가 낮았던 과목이라도 수업시간에 또렷한 기억과 인상적인 느낌들은 성인이 된 후의 독서력에 지대한 영향을 끼칠 것임이 분명하기 때문이다. 물론 직장에서 느끼는 피로와 스트레스가 생활 속의 독서를 저해하는 주요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음을 부인 할 수는 없다. 그러나 이 또한 그 책임을 온전하게 전가시킬 수는 대상은 아니다. 독서는 자연스러운 생활의 일부여야 하기 때문이다. 



한국인의 치명적인 독서량과 그 인과 관계


한국인의 독서량이 왜 이토록 저조한 것인가에 대한 문제도 함께 제기할 수 있는 장면이 아닌가 생각한다.

대한민국 국민들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 내용을 신문 및 다양한 매체를 통하여 접하곤 한다. 최근(2011년 기준)의 발표에 따르면 “직장인들의 평균독서량은 15.5권으로 2009년보다 3.7권이 늘어난 것으로 나타났다.”고 한다. 이는 직장인 1,000 명을 대상으로 한 조사의 결과물이라고 한다. 그러나 이 조사 결과를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표준지수로 받아들일 수는 없는 일이다. 대도시의 직장인들 기준이기 때문이다.

대한민국의 성인 평균 독서량은 11-12 권 정도라고 한다. 중고생들의 연평균 독서량이 1-3권이다. 처참한 독서량이 아닐 수 없다. 대입 시험에 올인할 수 밖에 없는 중고생들의 처지임을 직시할 수 있는 대목이다. (물론 책과 함께 인생을 풍요롭게 가꾸어가고 있는 멋진 알라디너들과는 거리가 먼 이야기이다.)


중고생 때 왕성한 독서를 해야함에도 불구하고 실제로는 그렇지 못한 처지는 그렇다 치더라도 한국의 대학생들의 독서는 연평균 3-4권에 불과 하다. 이는 더더욱 처절한 수치이다. 가장 많은 량의 왕성한 독서량과 지적 욕구에서 솟구치는 끈임 없는 목마름을 주체할 수 없어야 하는 주체가 바로 대학생들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3-4권이라니...믿을 수 없는 수치인 것이다.

이것이 믿기 어려운 우리 국민들의 독서현실이다.


한 마디로 독서의 부재나 다름없는 우리의 젊은 세대들을 어떻게 설명해야 하는 것일까... 복합적인 요인들의 합작품일 것이다. 그러나 가장 큰 책임을 져야할 주체는 바로 교과서일 것이다. 현재의 교과서는 내용만을 고려했을 때 유익한 것들일지 모른다. (실제로 그렇게 보이는 교과서가 많은 것은 아닌 듯 하지만...) 그러나 더더욱 중요한 것은 학생들의 관심을 유도할 수 있으면서도 대학생이나 성인이 된 이후에도 꾸준한 독서열을 보여줄 수 있는 초중고의 교과서 시스템이 절실히 요구된다. 


수학이나 외국어들은 어쩔 수 없다 치더라도 과학, 사회, 음악, 철학, 미술등은 얼마든지 학생들에게 좋은 자양분을 심어주면서 자연스러운 독서 욕구를 자극할 가능성이 매우 높은 과목들이다. 공부를 잘 하는 학생들이든 못하는 학생들이든 독서로 그들을 유도하는 것이 우리의 교육이 할 일인 것이다.


독서의 부재가 주는 사회적 문제점

독서량의 부재는 사실상 사회적인 문제점을 유발하는 원인 중 하나가 될 수도 있다. 현대는 다양성의 시대요, 개성의 시대라고 한다. 그만큼 다양성과 개성을 존중하며 또 존중받고 싶어하는 시대에 우리는 살고 있는 것이다. 다양성이 하나의 트렌드와 문화의 패턴으로 자리매김하는 시대에 접어든지 이미 오래이다.

 

그러나 아쉬운 점 또한 공존하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이는 가치 부여의 문제이다. 매사는 그 가치를 판단해야하며 결정하고 행동해야 한다. 그러므로 각 개인이 매사에 가치를 부여하는 일은 대단히 중요한 일이다. 그 가치의 평가 여부에 따라 개인들의 행동이 수반되기 때문이다. (여기서 말하는 ‘가치’란 자신의 인생관에 부합하는 윤리관, 교육관, 경제관, 사관 등 모든 것을 포함하는 말이다.) 독서의 부재는 올바르지 않은 가치부여와 판단을 이끌 수도 있다. 올바르지 않는 판단으로 인한 행동은 사회에 물의를 일으키기 쉽다. ‘모럴해저드’현상은 비단 어제 오늘만의 문제는 아니다.

모럴해저드가 사회 전반적인 영역으로 확산 될 때, 대중매체는 이를 반영할 수 밖에 없다. 대중의 가치 판단이 매체에 영향력을 행사하게 되는 것이다. 나아가 올바르지 않은 매체는 더더욱 올바르지 않은 영향을 사회에 행사하게 된다. 이는 또다시 개인들의 올바르지 않은 가치 부여와 판단, 그리고 행동으로 이어지는 악순환을 거듭하게 한다. 우리의 모든 사회 영역에서 불어오는 모럴해저드를 상상해보시라. 그 골은 더욱 깊어지고 우리 사회는 점점 더 나빠지져 오지 않았는가...

 나비효과는 기후와 경제에만 적용되는 것은 아니다. 비록 그 주기가 느리겠지만 나비효과를 이에 적용시켜도 될 것이다. 또한 ‘깨어진 유리창의 법칙’도 예외는 아니다. 한 번 빗나가기 시작하면 이를 바로잡는 일은 매우 어렵다. 그러나 인간의 사회는 끊임없이 이어질 것이다. 그러므로 아직 늦었다고 말할 수는 없다. 그러나 끊임없이 이어질 우리 사회이기에 더더욱 건전하고 이성적이며 올바른 가치 부여와 판단을 내릴 수 있는 사회로 변모해야한다.


불확실성의 시대가 낳은 심리적 안드로이드


현대는 불확실성의 시대라고들 한다. 왜 현대는 불확실한 시대가 된 것일까. 우리 인문학의 부재에서 오는 안드로이드를 스스로 키워왔기 때문은 아닐까. 심리적 안드로이드의 출현은 자아의 상실을 의미한다. 사회의 자아가 불확실해질 때 그 사회 속에서 살아가는 개인들의 자아도 불안해진다. 아이작 아시모프가 염려하는 바도 바로 이런 점일 것이다. 아시모프가 보여주는 물리적 안드로이드는 차라리 나은 편이다. 자신과 안드로이드라는 타자를 구별하기만 하면 될테니까 말이다.

그러나 우리 스스로가 만들어내는 심리적, 정신적 안드로이드가 출현할 때 문제는 전혀 다른 양상을 띄게 된다. 심리적 안드로이드의 출현은 인간의 정체성의 상실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자아와 또 다른 자아가 서로 구별되지 않는 불분명한 경계에서 인간이 서성일 때 인간성은 그 본질을 잃어버리게 되어있다. 인문학의 부재로 인한 가치의 판단이 명료하지 않은 탓이다.


 인문학적 소양의 필요성과 그 사회적 힘


위의 이야기는 결론적으로 인문학의 중요성으로 귀결된다. 과학과 첨단 기술이 발전할 수록 인문학은 그만큼 더 중요해진다. 어느 한쪽의 무게가 커질수록 그와 상대적인 균형을 이루기 위해서는 더욱 비중있는 인문학을 얹어 놓아야 한다. 물리적인 가치의 발달과 징신적인 가치의 발달이 불균형을 이룰 때 오는 결과는 끔찍한 것일 수 밖에 없다. 사회는 더욱 위험해지고 서로를 경계하게 된다. 외면적인 사회의 모습이 내면적인 사회의 모습과 다르게 된다. 가치의 윤리가 무너진 탓이다.

 가치의 판단과 윤리, 사회적 정의등은 바로 인문학적 소양에서 비롯하는 것이다. 독서가 절실히 요구되는 이유이다. 독서를 통하여 고뇌하고 사고하는 과정에서 인간은 성장할 수 있다. 독서를 통한 성장은 대부분 바람직하다. 독서는 독자의 안목을 높여줄 것이다. 독서의 힘은 다양한 가치들이 충돌할 때 그 위력을 발휘하여 스스로 작동하록 되어 있다. 法 이전에 도적이 있고, 과학과 기술의 발전 이전에 도덕과 倫理가 앞서 있어야 하는 것처럼 말이다.


 

올바른 사관과 윤리관의 정립은 인문학이 주는 결과물이다. 역사를 통하여 우리는 과거를 돌이켜보고 이를 미래에 투영시키게 된다. 과거와 미래는 현재라는 끈으로 서로 연결되어 있다. 마치 물이 아래로 흐르는 이치와 같다. 우리는 그 중간 역할을 하는 현재라는 끈이다. 그 끈이 바르고 건강해야만 아래로 흐르는 물도 역시 건강하게 된다. 인문학은 인간의 정신이다. 올바른 인문학은 건전한 사회를 이루는 정신의 근간인 것이다. 즉, 우리에게 철학이 필요한 시간인 것이다.

 

 

 

서로 어려울 때 화합하고 도우며 함께 걱정해주는 사회는 건강하다. 인문학은 사회적 힘으로 바르게 작동해야 할 사회의 세포가 되어야한다. 사회의 구조는 인문학이라는 올바른 윤할류라는 도우미 세포를 필요로 한다. 사회라는 구조적 장치가 돌아갈 때, 적절한 시점에 적절한 곳에 스며들어야한다. 독서를 통한 인문학이 절실하게 요구되는 이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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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ella.K 2012-02-02 11:5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니 왜 이런 글에 추천이 없는지 모르겠습니다.
추천 많이 받아 알라딘 메인에도 뜨고 그래야 하는데.ㅠㅠ
그런데 차트랑공님 교육 관련 일을 하시나봐요.^^

차트랑 2012-02-02 16:5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스텔라님,
추천을 벌써 세방이나 받았고요
메인 화면에 뜨는 것은 과분한 일인지라 기대하지 않습니다.

추천을 한방 먹여주신 분이 스텔라님이시라는 것을
알겠습니다^^
방문해주시고 추천도 날려주시고..
고맙습니다 스텔라님~
아 참,
저는 교육관련 일을 하고 있습니다요 ㅠ.ㅠ

이진 2012-02-02 17:5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맞아요. 이런글이 주목을 받지 못한다는 것이 너무 안타까워요.
정말 좋은글인데 말이어요.
교육관련 일이라, 저도 그쪽을 꿈꾸고 있는데 말이지요 ㅎㅎ

stella.K 2012-02-02 18:15   좋아요 0 | URL
엇, 이진이 수의학 생각하고 있다고 하지 않았던가?
아니면 누구지...? 누구 그랬는데.ㅠ

차트랑 2012-02-02 19:0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어구구...
소이진님과 스텔라님...
두분 그렇게 말씀해주시면 저 얼굴이 확~ 달아오릅니다요..
주목받으려고 쓴 글 아니구요.
위의 책 중 몇 권을 읽었기에 쓴 소감문입니다요.

그런데 그리 칭찬해주시면 허명이 나게되구요
허명이 나면 안됩니다요
소문난 찬치에 먹을 거 없다는 말씀 들어보셨잖아요 ㅠ.ㅠ

재는재로 2012-02-02 21:1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추천꾹 ~ 왜 도덕인가는 저도 읽었지만 다른책은 한권도 읽은게 없네요 옛날부터 인성교육이라는 말만 하는데 실제 학교에서는 윤리나 도덕수업보다 영어,수학시간표가 더많잖아요 일주일에 한시간있나 수업이 요즘은 도덕불감증 시대 지키는 사람이 바보취급당하는

차트랑 2012-02-03 15:4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재는재로님 찾아주셔서 고맙습니다.
재는재로님께서 지적해주신대로 도덕불감증...
이거 심각하다 느끼는 바입니다.
윤리, 도덕수업 늘립시다요~~^^
(저 윤리나 도덕과목은 아닙니다요~)

낭만인생 2012-03-12 22:3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제 생각도 역시 인문학이라고 생각합니다. 시대적 필요이자 삶의 본질이라 믿습니다.
 

'얼후'는 영문 표기로 'Urhu', 한글 표기로는 '이호(二胡)'라고 부릅니다. '얼후'는 그 모양이 우리 나라의 '해금'과 아주 비슷하고 활로 연주한다는 점에서도 같습니다. 그러나 차이점도 있어서 우리의 해금은 2줄로된 '명주실'을 사용하는 반면 열후는 2줄짜리 '쇠줄'을 사용합니다.  명주실을 사용하는 해금과 쇠줄을 사용하는 얼후의 소리가 다른 점은 바로 이러한 차이 때문인데요 얼후는 해금보다 약간 소리가 낮으며 부드러움에서 좀더 섬세하다 할 수 있겠습니다.

 

얼후(이호, 二胡)라는 악기의 이름으로 보아 얼후는 중국의 북방에서 전파되어 온 악기라고 생각해볼 수 있습니다. 호(胡)라는 말은 오랑캐를 뜻하는 한자이기 때문입니다. 중국과 조선은 북방의 유목민들을 오랑캐라 했습니다. 말을 타면서도 얼후를 연주했을 것으로 추측해볼 수 있는데 이는 매우  흥미로운 상상인 듯 합니다.   

 

 

 

 

Jia Peng Fang 은 58년 생으로 중국 중앙민속악단의 얼후 수석이라고 합니다. 얼마 전부터 얼후 연주가들은 서구적 작곡을 연주하곤 합니다. 은히 '뉴에이지'의 영역에 뛰어들었다고나 할까요. 현대적인 곡을 연주해내고는 있지만, 얼후의 소리는 악기의 고풍스러움을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어 여전히 매력적인 얼후만의 소리를 재연해내고 있습니다.

 

 

 

 

 

 

 

 

 

 

알라딘에는 위와 같은 지아펑팡의 연주곡들 외에도 다수 있습니다, 맨 왼쪽의 음반은 River라는 타이틀을 가진 2000년 발매되었습니다. 그리고 중앙은 같은 음반을 2009년에 재발매를 한 음반이고 수록곡은 동일합니다.  위의 영상물로 포스팅한 곡은 바로 RIVER 입니다.

맨 오른쪽은 최근 새로운 표제로 음반을 출시한 음반입니다. 최근 발매반인 만큼 지아펑팡의 야심작이라 할만하며 상당히 실험적이면서도 범주를 초월하고자 하는 강한 의지가 반영된 음반이라 합니다. 그만큼 높이 평가해도 좋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끝가지 들어보셔도 좋습니다  얼후라는 악기는 아래와 같이 생겼습니다. 활을 잡는데는 상당한 시간을 요한다고 합니다. 제대로 잡으려면 기본 3년...뻥이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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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트랑 2012-01-28 20:5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2000년 반은 품절로 표시되어있는데 아마도 절판이지 싶습니다.
새로 발매된 가운데 음반 river는 그 가격이 무려...입니다.
행여 river 의 손실되지 않은 소리 파일을 들으시고싶은 분 계시면....
이메일을 사용해주십시요 ㅠ.ㅠ

stella.K 2012-01-29 15:2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해금이나 얼후 연주를 좋아합니다.
구성지고, 슬프고, 때론 애잔하기까지한.
그런데 얼후가 저렇게 생겼군요.
제가 볼 땐 3년 뻥은 아니지 싶은데요...^^

차트랑 2012-01-30 15:00   좋아요 0 | URL
네, 소리가 참 좋은 악기입니다.
현대의 신디사이저와도 잘 어울린다 싶습니다.
방문해주셔서 고맙습니다 스텔라님~

진주 2012-01-30 00:0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앞부분은 마치 노르웨이 출신 수사나 룬뎅의 연주곡과 같은 분위기네요.
당신 곁의 소중한 사람--이었나?
얼후란 애가 생긴 것과 달리 비올라와 얼추 비스무레한 음색도 낼 줄 아는군요~널라워라~ 도대체 워똫게 붙잡고 연주해야할지..감도 안 잡히는 애군요.해금처럼? 하핫^^;;
암튼 전형적인 뉴에이지 패턴이군요.
김수철도 국악 악기로 뉴에이지 곡들 많이 했죠..

들으러 오라고 해서 왔는데 음악을 좋아하시나봐요.
조만간 저도 제가 좋아하는 곡 올리고 싶은데
잘 될려나 모르겠어요^^

차트랑 2012-01-30 15:08   좋아요 0 | URL
지아펑팡과 룬뎅의 활약상을 보면
우리 악기에서도 필요에따라 방향을 잡을 필요성을 느끼게 됩니다.
고전과 현대의 조화롭고 창조적인 퓨전이라고나 할까요...

김수철의 음악 세상은 때로 놀랍다는 생각을 해본적이 있습니다.

제가 적절하게 설명을 전해드렸는지
모르겠지만 음악 포스팅해주시면 놀러가겠습니다~ ㅋ
방문해주셔서 고맙습니다 진주님~

북극곰 2012-01-30 09:2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조용히 눈으로만 귀로만 보고듣고 다니다가 딱 걸렸네요. ㅎㅎ
먼저 찾아와주셔서 감사해요. 게다가 도움의 손길까지! ^^
저는 이상스레 월요일에 젤 좋아요.
주말에 너무 무절제하고 지저분하게 무너져있다 와서 그런가 봐요. 흐흐.

좋은 한 주 보내세요.

차트랑 2012-01-30 15:09   좋아요 0 | URL
출근을 안하시면 월요일이 제일 좋고요
출근을 하시면 놀토가 좋습니다^

제가 알려드린 방법이 효과가 있어야 할텐데요 ㅠ.ㅠ
찾아주셔서 고맙습니다 북극곰님~

2012-01-30 16:00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2-01-30 20:44   URL
비밀 댓글입니다.

마녀고양이 2012-01-31 13:0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얼후라는 악기는 처음 들었지만, 너무 편안하네요.
네, 저도 해금 연주 좋아합니다. 사실 바이올린이나 첼로도요.

예전, 앨런 포우의 <어셔 저택의 몰락>에서 자신은 신경이 너무 예민하여 바이올린 곡만 들을 수 있다고 어셔 가의 유일한 후손이 말합니다. 저는 그게 이해가지 않았는데, 나이가 들수록 공기 중 떨리는 선율의 섬세함이 좋아집니다. 피아노 없이 얼후만으로 연주된 곡도 참 좋을거 같네요...

차트랑 2012-02-02 00:5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얼후만으로 된 연주가 있는데, 포스팅하려고 하니 제가 찾는 곡이 없습니다요 ㅠ.ㅠ

순오기 2012-02-02 12:0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음악감상은 차트랑공님 서재에서~ ^^
잘 들었습니다, 고맙습니다~~~

차트랑 2012-02-02 19:0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방문해주셔서 고맙습니다 순오기님~
 

 그 어느 악기보다 더, 그 어느 소리보다 더 아름다운 소리가 있다면 바로 인간의 노래 소리는 아닐런지... 피아노의 소리를 지극히 좋아한다고는 하지만 인간이 내는 그 소리보다 더 아름답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나에게 인간의 목소리는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것이다. 독일의 라인강을 배경으로 한 처녀요정 로렐라이는 인간의 노래 소리가 그 얼마나 매력적일 수 있는가를 공감하지 않는다면 이루어 질 수 없는 전설일 것이다.


위의 이야기는 지극히 개인적인 편견에서 비롯된 것이지만 역시 그 편견에 근거하여 스스로에게 증명하곤 하는 노래가 있으니 바로 캉틀루브의 노래를 부른 다브라스의 목소리이다.


오베르뉴의 노래

오베르뉴는 어디일까...프랑스 관광청을 인터넷으로 검색해봤다. '프랑스 중남부에 위치하고 있고 3,000만년 전 화산 활동으로 생겨난 곳으로 푸르른 산이나 협곡이 아름답다'고 써있다. 특이 이곳 오베르뉴지방은  오래도록 고립된 곳인지라 자연 그대로의 상태가 잘 보존되어 있다고 한다. 


노래가 만들어졌던 당시의 오베르뉴는 워낙 시골인데다가  캉틀루브가 1924년 오베르뉴 지방의 민요를 편곡하여 발표했다고 한다. 노래를 통해서 오배르뉴의 아름다운 자연을 그저 짐작만 해볼 뿐이다. 이 노래는 목동들을 위한 노래이고 가사는 그곳의 방언이라고 한다.


음반의 내지를 살펴보면 오베르뉴의 노래는 ‘개울을 건너는 목동들, 개울 건너의 아가씨에게 전하는 말, 숲속의 연인들, 포도주 예찬, 별들도 숨겨주지 못하는 실연의 아픔’을 묘사했음을 알 수가 있고 우리는 노래들 듣는 모두는 그 순간 목동이 된다. 또한 ‘개울 건너 서로에게 이야기를 전하는 목동과 아가씨들의 정경은 정말 아름다운 노래와 음악으로 묘사하고 있다.’는 점을 알 수 있다.

 

 

 

 

그러나 음반의 내지에서 찾아 볼 수 없는 이야기가 하나 더 있다. 오베르뉴의 목동들 사이에 흐르는 것은 단순한 개울이 아니다. 노래에 등장하는 개울은 사실은 강이다. 화산의 폭발로 협곡이 깊은 산악지대로 그들 앞에 놓은 것은 사실은 건널 수 없는 강인 것이다. 이쪽 편의 목동들은 저쪽 편의 목동들과 서로 마주 바라보며 그들의 이야기를 나누다 해가 지면 헤어지곤 했다. 그렇게 공감대를 형성한 목동들은 서로 사랑에 빠지곤 했다. (당시 목동은 남자들만이 아니었다. 여자 목동들도 있었던 것이다)


서로 사랑에 빠져버렸지만 건널 수 없는 강이 그들 사이를 가로 막고 있다. 서로 사랑하고 있지만 그들은 서로의 손을 마주 잡을 수 없는 처지에 있다. 이러한 남녀 목동들의 아련하고 안타까우며 애달픈 마음을 이 노래에 담았다고 생각하면 이해하기가 수월해질 것 같다.



다브라스 

다브라스의 소리를 들을 때면 언제나 늘 같은 생각을 하지 않을 수 없다.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소리를 내는 악기는 분명 사람의 목소리이다..." 악기를 직업으로 하는 사람들은 그  행위를 연주라 한다... 노래를 하는 사람도 자신의 노래 행위를 또한 연주라 한다... 동감이다...


   이 모든 내용들은 사실 다브라스의 노래를 듣는 순간 아무런 의미도 없는 일이 되어버린다. 왜냐면 다브라스는 그 모든 것을 잊어버리게 하기 때문이다. 다브라스은 그 푸르름을 고스란히 자신의 육성으로 담아내고 있다. 청아하다는 말로는 너무나 아쉬움을 남길 뿐이다. 다브라스의 청명한 높고 푸르른 아름다움을 말로는 형용 할 수가 없기 때문이다. 그녀의 목소리를 듣는 순간 나는 목동이 된다. 푸르른 꿈을 꾸는 목동.... 어쩌면 고려의 비취색이라면 다브라스의 음색을 조금이나마 설명할 수 있을까....


청아하다는 말도, 푸르르다는 말도, 청명하다는 말도, 정갈하다는 말도...그 어느 말도 그녀의 노래를 설명해줄 수는 없다. 


 알퐁스 도데의 '별'이라면.......  


"잘 있거라 목동아... 조심히 가셔요, 아가씨...."   --- 소나기에 강물이 불어 흠뻑 젖은 아가씨가 돌아옵니다... 그리고 우리는 둘이 아무런 말없이 나란히 앉아 있습니다. 


저게 무얼까...천국으로 들어가는 영혼이지요..저렇게 많은 별들은 처음봐...참으로 아름답구나, 넌 저 별들의 이름을 잘 알테지... 아무렴요, 아가씨...온갖 별 들중에서요 아가씨..제일 아름다운 별은 목동의 별입니다. 7년 만에 한 번 씩 만나 결혼을 하는 예쁜 마글론일입니다.. 어머, 별들도 결혼을 하니..그럼요 아가씨, 


저 숱한 별들 중에서 가장 가냘프고 가장 빛나는 별님 하나가 그만 길을 잃고 내 어깨에 내려 앉아 고이 잠들었노라고... 


 


아니, 오르페우스의 노래라면 어쩌면....


 오르페우스의 노래를 부르자 탄탈로스는 물을 마시려고 하지 않았고, 익시온은 비명을 지르지 않았으며, 뱃사공 카론은 돌아가려고 하지 않았다. 케르베로스는 꼬리를 다리사이로 말아 넣었으며, 시지프스의 바윗 덩어리는 가던 길을 멈추어 시지프스로 하여금 걸터앉아 쉬게 하였다...


 이와같은 표현은 바로 다브라스의 노래에 해당하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또한 다브라스의 노래는 천국으로 들어가는 영혼일지도 모른다. 나를 천국으로 안내하는 영혼....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노래... 그 아름다움을 형용할 수 없는 노래...


아....물론 이 민요가 노래만 좋은 것이 아니다. 노래가 한없이 이쁘다보니 악기는 미처 떠오르지 않았다. 관악과 현악은 노래의 뒤편으로 한 걸음 물러나 있다. 분명 노래가 앞서고 있는 곡이다. 그러나 이러한 배치는 마치 목동을 가까이 조명하고 거리를 두고 있는 배경을 보여주는 구도처럼 다가온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관현악의 연주는 더욱 또렷하다. 아니 완벽한 배경을 만들어 그 목동들과 정경을 한없이 아름답게 수놓고 있다. 마치 하늘의 별들처럼...오보와 클라리넷은 냇가의 물이 흐르고 새들이 하늘을 날아가는 정경을 고스란히 담고있고 목동들이 강건너 아가씨들에게, 아가씨들이 개울 건너 목등들에게 무슨 말을 전하려는지도 느낄 수 있는 것과 같은 착각을 불러일으킨다.  멀리서 들려오는 양떼들의 음성이 또한 악기를 통해 전해온다. 


분명 구도는 목동들이 가지고 있지만, 나머지의 배경과 효과는 절묘한 분위로 시골의 모습을 한폭의 그림을 보여주듯 나를 감동시킨다... 바로 앞에서 손에 잡힐 듯한 정경....바로 그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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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로 2012-01-26 02:1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이 밤에 듣고 있자니 아름다움이 느껴지네요.
이 노래에 대한 설명도 잘 읽었습니다.
양을 지키는 일이 얼마나 지루한 일이었을까 하는 생각을 새삼 하면서 들으니
올려주신 글이 더 의미가 있네요.

차트랑 2012-01-26 13:2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제 생각에도 양치기 하는 일이 지루할 것 같아요 ㅠ.ㅠ
대신 독서를 하면 그 지루함을 극복할 수 있지 않을까 그런 생각도
듭니다^^
방문해주셔서 고맙습니다 나비님

낭만인생 2012-01-26 14:3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음악을 즐기는 편은 아니라 잘 모르는데.. 아름다운 서정노래인 듯하여 꼭 들어 보고 싶네요. 알퐁스 도데의 별 같은 느낌이라나...

차트랑 2012-01-26 22:2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네..
저 역시 아름다운 서정노래가 무척 마음에 듭니다.
편안하게 들어도 좋은 노래인 듯 합니다

방문해주셔서 고맙습니다 낭만인생님~

마녀고양이 2012-01-28 13:4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네.. 인간 목소리, 정화된 인간 목소리도 참 아름답습니다.
또한 인간인 우리에게, 무엇보다 안정감과 친밀감을 느끼게 하고 그로 인해
편안함을 주는게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봅니다. 페이퍼를 읽으며 문득
뱃속에 있던 시절, 간간히 들려오는 엄마의 목소리가 얼마나 좋았을까 하는
엉뚱한 생각도 해보네요~ ^^

차트랑 2012-01-28 21:0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고맙습니다 마녀고양이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