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향길에 올랐다.

자주 그리고 또 자주 찾아보아야하는 곳이지만, 마음 먹은대로 되지 않은 일이 바로, 고향길이다.

내가 태어나 자란 곳이고, 부모님께서 살아계신 곳이며, 나의 추억을 고스란히 간직한 곳이 고향이다. 나이가 어려서는 그 뜻을 잘 모르다가도, 어느 정도 나이가 들면서부터 아련한 단어로 변해가는 것이 고향이라는 단어인 것이다.

 

아버지를 뵈니 이제는 젊은 시절의 패기와 사내다움의 듬직함은 어디론가 사라져있고, 어깨는 연약하며, 시들어가는 꽃처럼 안타깝기만하다. 인생은 그런 것, 태어난 모든 것은 그 시기를 다하면 이처럼 쇠약해지고 나약해지는 법, 나도 때가 되면 아버지의 모습을 닮아가리라... 그러나 그 입가의 미소는 그 어느 꽃보다 더 포근하고 더 아름답지 않은가...그 여유있고 자애로운 아버지의 미소가 유일한 위안이 되어준다.

 

 

초등학교 1학년 때의 일이 생각났다. 당시 깊은 산골짜기의 시골 풍경이 크게 다르지 않았겠지만 학교에서 늘 문제를 일으키는 놈은 다름 아닌 공책이었다. 아니, 어쩌면 지우개가 주범이었는지도, 아니면 빈곤이 주범이었을지도 모르겠다. 여하튼 공책에 글씨를 실수라도 하게되면 지우개가 없는 아이들은 손가락에 침을 발라 지우곤했다. 지우개가 있는 친구들이라고 크게 다른 결과를 가져오는 것도 아니었는데, 공책의 구멍이 바로 그 결과였다. 누가 더랄 것도 없이 공책도 지우개도 모두 저질이었다.  

 

침을 발라 연필자국을 지워보겠다는 지극히 단순한 생각의 결과물, 질 떨어지는 공책의 종이가 수분의 힘을 견디지 못했다. 그만 촌놈들의 몸에서 때가 밀려나듯 시골 촌놈들의 손가락에 공책의 살점들이 벗겨져버리는 것이다. 그러니 다음 쪽의 노트가 휑하니 들여다 보인다.

 

지우개의 사정은 때밀이와는 달랐지만 이도 큰 차이는 없었다. 힘조절을 제대로  하지 못하는 고사리 손을 가진 초등 1학년 생들의 생각과 결과는 전혀 원치 않는 것이었다. 이는 침바른 손가락보다 훨씬더 비극적인 결과를 간간히 초래했다. 어느 순간, 북~하고 공책의 한 면이 찢어져버렸으니 말이다. 연필 글씨 하나를 수정해보겠다고 애쓰다가는 공책을 찢어먹은 시골 어린 촌놈의 정말 말로 형용할 수 없는 그 표정...어이가 없는 멍한 그 표정 말이다...

 

이는 비단 공책에만  해당하는 것은 아니었다. 내게는 미술시간에도 유사한 일이 벌어졌던 것이다. 문제는 손가락의 침도 아니요 지우개도 아닌, 바로 크레용이었다. 수업시간에 공책에 침발라 발생하는 일만으로도 스트레스인데, 즐거워야할 미술시간마저도 그러했다. 내가 가지고 있던 크레용은 6색갈, 도대체 어떤 색으로 그림을 그려야할까. 빨강, 파랑, 검정, 하양, 노랑 그리고는 하나는 기억이 나지 않는다.

 

일곱색갈 무지개도 그려낼 수 없는 이 색갈부족의 크레용은 색갈만 부족한 것이 아니었다. 재질이 나빴던지 단단하기가 무슨 나뭇가지같았던 것이다. 도화지 위에 그림을 그리려면 손에 여간 힘이들어가는 것이 아니었다. 단단히 마음먹고 색칠을 할라치면 그만 크레파스가 먹질 않는 것이다. 지금은 상상할 수 없는 일이 벌어지고 있었던 것이다. 색갈이 부족한 것도 불만 가득한 일인데 아 이넘의 크레파스가 도화지 위에 먹질 않네.

 

질 떨어지기는 마찬가지였던 도화지의 살점들이 때 밀리듯 크레파스에 뭍어나온다. 때로는 도화지가 되려 크레파스를 먹고 있었던는 것이다. 이런 상황에 처한 놈이 나 하나면 이 얼마나 억울하고 창피한 일이겠는가. 하지만 다행인지 불행인지, 반에 나와 같은 처지의 아이들은 한 둘이 아니었다. 죄다 그런 놈들 투성이다. 크레파스를 이리 돌리고 저리돌려가며 겨우겨우 그림을 도화지 위에 채워가다가는 미처 다 채우지도 못하고 종이 울리는 것이었다. 미술시간을 겨우 마친 아이들의 이마에는 땀방울이 송글송글하다. 즐거운 그림 그리기시간이 아니라 크레파스와 한바탕 시름을 한 것이다.

 

그렇게 스트레스가 하루하루 쌓여가자 나는 더이상 참을 수가 없었다. 그날도 미술이 들어있는 날이었을 것이다. 그동안 쌓였던 스트레스를 폭발을 해버린 것이다. 무슨 큰 건수라도 잡은 냥, 씩씩거리며 집으로 돌아와서는 아버지 앞에 당당하게 선 것이다. 평소 아버지 앞에서 힘도 못쓰던 촌넘이 그날은 그렇게 단단히 용기를 낸 것이다.

 

이유를 모르고 눈을 똥그랗게 뜨고 바라보시는 아버지께,

 

"아버지~! 저 크레용 바까주세요~!"

"아내 왜?"

제 크레용으로는 그림을 그릴 수가 없어요! 하도 단단해서 그림이 그려지지 않는단 말이에요!

"그러냐? 얼마짜리루?"

"오십원 짜리요!"

오십원씩이나??

 

아버지의 반응은 당시 우리집 가정의 형편을 정확하게 대변해주고 있었다.

 

같은 반에는 선장의 아들이 하나 있었다. 대부분 농사를 짖는 집안의 아이 들어었지만 그 친구의 아버지께서는 엔진이 달려있는 큰 배를 운용했던 모양이다. 어느 날 그 친구가 세상에 듣도보도 못한 크레파스를 가지고 학교에 왔다. 색갈들은 셀수도 없이 많았을 뿐만 아니라 대부분의 아이들이 가지고 있는 그런 크레용이 아니었다.

 

부드럽기는 이루 말할 수 없어서 도화지 위를 날아가듯 스쳐가듯 거침없이 내달리고 있었다, 손이 가는대로 색갈을 내주는 이 신비한 크레파스, 그 색감이 주는 형용할 수 없는 미묘한 느낌을 가진, 바로 파스텔이었던 것이다. 무지렁이 촌놈들이 파스텔을 처음 보고는 눈들이 똥그래가지고, 빙 둘어서서 그 친구가 조심스럽게 다루는 그 파스털의 색감에 감탄을 금치 못하곤 했다. 입이 딱 벌어지는 순간인 것이다. 세상에서 제일 부러운 넘...이 친구를 바라보는 아이들의 눈에 담겨있는 그 부러움 가득한 감정...그 오묘함은 파스텔보다 더 또렷하다.

 

그렇게 나는 아버지께 떼를 써서는 열두가지 색을 가진 크레파스를 가지게 되었다. 그 값은 무려 오십원이었다!! 무지개를 그릴 수 있고, 도화지위에 색감이 먹히는 크레파스 말이다.

당시 짜장면  한 그릇의 값이 오십원이었다. 시내버스의 요금은 15원 혹은 20원. 지금 생각해봐도 대단한 가격의 크레파스는 아니었다. 그러나 짜장면 한 그릇 값의 크레파스를 부담없이 살 수 있는 형편이 되지 못했다.

 

초등학교(당시 국민핵교) 5-6학년이 되니 담임 선생님께서 학생들에게 다음과 같은 질문을 하셨다.

"자기 집이 상위층이라고 생각하는 사람 손들어봐~"

당연 손 드는 놈  하나없다.

"그럼 자기 집이 중산층이라고 생각하는 사람 손들어봐~"

기다렸다는 듯이 우르르 죄다 손을 든다.

눈치를 보는 넘도 가끔 있기는 하지만 약속이나 한 듯, 죄다 손을 번쩍 치켜들어 올리는 것이다.

"그럼 자기집이 가난하다고 생각하는 사람..."

손을 드는 친구가 있을리 없다.

(이런 질문을 왜 했을까? 한마디로 가정 환경조사의 한 방법이었던 것이다)

 

지금 생각해보면 자기집이 중산층이라고 번쩍 손을 들던 넘들, 나를 포함하여 한마디로 거시기가 찢어지게 가난한 넘들이었다. 당연한 것은 서로 비교를 할 처지가 아예 되지를 못했다. 잘 사는 집안이라고 해봐야 겨우 작은 엔진 달린 통통 배를 가진 그 친구네 달랑 하나였고, 나머지는 서로 비교할것도 없이 찢어지게 가난한 집안들 뿐이었으니 이런 촌놈들은 지네가 진짜로 중산층이라 생각하고 있었던 것이다. 우리집이 뭐가 가난한데?? 다른집이랑 차이가 없는 것이었다. 옆집과 차이가 없는 가정, 바로 중산층이었던 것이다.

 

6학년이 되니 테레비가 있는 집 손들어봐, 냉장고가 있는 집 손들어봐,  하는 질문으로 바뀌었는데, 테레비가 뭔지, 냉장고가 뭔지 그 의미를 모르는 놈들에게 물어봐야 소득이 없다. 찢어지게 가난했으면서도 그것이 가난인 줄 모르고 지냈던 나의 과거는 차라리 아름다운 추억이지 싶다.

 

그렇게 나의 추억을 뒤로하고 돌아오는 동리는 많이도 변해있다. 아버지도 어머니도 변해있고, 과거 깊은 산골의 적막함도 변해있고, 세상은 더더욱 변해있다. 오로지 변하지 않은 것는 하늘을 흘러가는 푸르른 저 구름뿐....

 

아니다. 하나가 더 있는데 그만 깜박했다. 언제나 변함이 없는 것이 하나가 더 있다. 바로 어머니 아버지의 마음이다. 자식을 향한 부모의 마음이 그것이다. 언제나 너그럽고 자애로운 그 마음 말이다... 결코 깜박할 일이 아닌데 자식은 늘 이렇게 깜박한다. 아름다운 그 마음에 어찌 깊은 감사를 드리지 않을 수 있겠는가... 그 말이다 내말은...

 


댓글(2) 먼댓글(0) 좋아요(8)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하늘바람 2014-08-04 00:1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차트랑님의 글을 만날수 있어 좋네요

차트랑 2014-08-04 22:3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방문해주셔서 고맙습니다 하늘바람님,
아주 오랫만에 뵙는군요 건강하시리라 생각합니다
늘 건강하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