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분의 선생님 중, 한 선생님께서는 만나 뵐 때마다 두 손을 꼭 잡으시면서 ‘벗’이라는 말씀을 하시곤 한다. 선생님께서 매번 이러시니 참으로 황망하기 이를 데가 없다. 군사부 일체라는 말도 있지 않던가.

선생님께 벗은 사전적인 의미를 고스란히 담고 있는데, 사전에는 ‘벗-마음이 서로 통하여 가깝게 사귀는 사람’이라고 되어있다. 어찌 보면 오래도록 친하게 사귀어 온 사람을 뜻하는 ‘친구’라는 말과 대동소이한 느낌이 들기도 한다. 그러나 '친구'라는 말 속에는 ‘나이가 비슷한 또래이거나 아랫사람을 낮추어 부르는 의미’도 들어있다고 한다.

 

그런 점에서 '벗'과 '친구'라는 말은 유의어 일 수는 있겠으나 결코 동의어는 될 수가 없는 것은 벗이라는 말이 가지는 무제한적 交와 친구라는 말이 가지는 제한적 交 즉, 범주의 차이이지 싶다.

 

어쨋거나 ‘벗’이 되었든 ‘친구’가 되었든 두 단어의 핵심은 ‘交’이다. 인간 관계 자체가 ‘교’인 만큼,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관련 성어가 많은 편이다.

 

 

흔히들 일컫는 문경지교(刎頸之交)는 인상여와 염파의 전설에서 온 것으로 사마천이 사기에서 아주 잘 기록해두고 있고, 문(刎)이라는 말이 ‘목을 베다’라는 뜻이라고 하니 목숨을 함께하는 교를 말함이다. 그 얼마나 의미심장한 交이던가.

 

 

관포지교(管鮑之交)의 장본인인 관중과 포숙은 공자보다 윗대의 인물들로 2500여년이 지난 후에도 우리들에게 아름다운 교의 전설을 남겼다.

 

 

또한 포의지교, 거립지교, 망년지교등 신분과 나이를 초월한 아름다운 교의 전설들이 전해오는데, 대표적인 예가 ‘지음’이라는 고사에 담겨있지 않나 싶다. '지음'은 매우 널리 알려진 고사이며 신분의 귀천을 뛰어 넘은 좋은 예이다. 지음의 주인공인 '백아'가 거문고의 달인이었다는 점은 그가 비싼 악기를 가질 수 있는 능력자였으며 직접 일을 하지 않아도 되는 귀족었음을 암시한다. 시대가 춘추시대이니 만큼 士 혹은 大夫에 해당하는 신분으로 추측이 된다. 반면 '종자기'는 초나라의 인물로 음률을 잘 구별했다고 하는데 직업은 실상 농사꾼이었다.

 

 

백아는 종자기가 죽자 이렇게 한탄 했다고 한다. 夜深窓月絃聲苦 只恨平生無子期(야심창월현성고 지한평생무자기-깊은 밤 창에 달이 걸렸는데 괴로이 타는 거문고 소리, 다만 평생에 종자기가 없어 한탄하고 있구나-

 

 

종자기가 죽자 절현을 했다는 이야기가 있지만 백아의 한탄을 들어보면 백아는 종자기가 죽은 후에도 거문고를 연주했음을 말해주는 대목이다. 그러나 종자기를 잃음으로서 영 흥이 나지 않자 절현을 했을 수도 얼마든지 있는 일이다. 어쨋거나 신분을 초월한 교임에는 틀림이 없다 하겠다.

 

 

 

각설하고, 사실 이번에는 이러한 교를 말하기 위함이 아니다. 거의 2년 전 풍우란의 저술 중국철학사 상하권을 모두 읽었었다. 그러나 시기가 적절하지 않아 노트를 정리하지 못했다. 아니 노트를 정리할 여건이 되었다 하더라도 리뷰는 감히 엄두를 내지도 못했을 것이다. 나는 풍우란의 이 역작을 리뷰로 쓸 능력이 없기 때문이다. 중국 철학사는 분명 내가 감당하기에는 나의 힘이 턱없이 부족함을 느끼게 하는 저술이다. 그러나 페이퍼라면 부담은 훨씬 덜하지 싶다. 그렇다고 소감을 적고자 하는 것은 아니고, 이 책에서도 교와 관련한 대목이 나오기 때문이다.

 

 

 

풍우란은 장자와 당시의 인물 혜시의 ‘범애만물 천지일체(汎愛萬物 天地一体)-만물을 다 같이 사랑하라. 천지는 한 몸이다’라는 공통된 설을 피력한다. (어느 글에서는 이 글의 주인공을 맹자와 혜시라고 소개를 하고 있는데, 장자를 읽어보신 분들이라면 금방 구별이 갈 것이다)

 

 

물론 확증은 없지만 장자와 혜시의 관계로 보아 충분히 근거가 있음을 시사하면서 그 증거로 그 두 사람에 관련한 장자의 글을 소개하고 있다. 풍우란이 소개하고 있는 글은 다음과 같다.

 

 

 

어떤 영인(郢人: 초의 서울인 郢의 미장이)이 백회를 자기 코에 파리의 날개 모양으로 발라 놓고 장석(匠石)으로 하여금 깍아내게 했다. 장석은 바람처럼 가뿐히 도끼를 휘날리어 태연하게 깍아, 백회만 떨어뜨리고 코는 조금도 다치게 하지 않았다. 영인 역시 얼굴을 꼿꼿이 세우고 낯빛을 변하지 않고 내맡겼던 것이다. 송나라 임금이 이 이야기를 전해듣고 장석을 불러 말하기를 “한 번 과인을 상대로 그같이 해보라”하자, 장석은 대답하기를 “저로서는 아직 그렇게 깍을 수 있는 능력이 있습니다. 하지만 저의 상대가 되어줄 수 있는 사람은 이미 오래 전에 죽었습니다”고 했다고 한다.

이제 혜시 선생이 죽었으니, 정녕 내게는 상대가 되어 줄 사람이 아무도 없다.

 

풍우란, 중국철학사 (상) 315-316쪽

 

저자는 『장자』자체가 우언이 많기 때문에 그 사실 여부를 장담할 수는 없다고 한다. 그러나 제물론이 보여주는 장자와 혜시의 사상적 부합 여부는 확실하다는 점을 방증으로 하고 있다.

 

 

여하튼, 이 대목에서 이참에 말하고자 하는 장석운근성풍(匠石運斤成風)이 나온다. 장석이 도끼를 바람소리가 날 정도로 휘둘러 영인의 코 잔등위에 발라진 파리 날개만한 석회를 깍아내는 것이다. 바람을 일으키며 깍아 내는 장석도 장석이지만, 영인입불실용(郢人立不失容) 역시 감동적인 대목이다. 다시 말해 영인은 그토록 무서운 기세로 자신의 얼굴위로 도끼가 날아오는데도 눈 하나 깜짝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그런데 이만하면 그러니라 하겠지만, 더더욱 감동적인 交의 장면이 더 등장하는 것이다. 송나라의 임금이 이 소문을 듣고 급기야 장석을 소환한다. 하여 자신을 상대로 도끼를 휘둘러보라고 하자 영인의 대답은 교의 진정한 의미를 전해준다. 나는 이때부터 그 어느 표현보다 운근성풍을 가장 애정하게 되었다.

 

 

송원군문지(宋元君聞之), 소장석왈(召匠石曰): 신즉상능착지(臣則嘗能斲之) 수연(雖然) 신지질사구의(臣之質死久矣)

 

송나라의 임금이 이 이야기를 듣고, 장석을 불러내자 장석이 말하기를: 저로서는 아직 그렇게 깍을 수 있는 능력이 있습니다. 하지만 저의 상대가 되어줄 수 있는 사람은 이미 오래 전에 죽었습니다”

라고 답했다는 것이다. 도끼를 휘두르는 상대를 절대적으로 신뢰하지 못한다면 일을 그르치고 만다. 그르치는 정도가 아니라 자신이 상하고 마는 것이다. 그런 신뢰를 갖지 못하는 왕은 분명 상할게 뻔하다. 장석의 도끼가 부정확해서가 아니라 장석과 그 도끼를 신뢰하지 못하는데서 오늘 참담한 결과인 것이다. 절대신뢰의 여부가 가지는 차이점이다.

 

 

그 후일담으로 중국철학사에서는 나오지 않지만 백아가 절현(絶絃)을 했듯이 장석도 은부(隱斧)했다는 이야기가 있다. 절현이나 은부도 교의 의미심장함을 전달하는 중요한 대목이겠지만, 장석이 날카로운 도끼를 휘날리며 얼굴을 향할 때 영인의 얼굴 빛 조차 변하지 않았다는 대목에서는 상대방에 대한 신뢰가 그 얼마나 커다란 것인지 짐작할 수 있다. 이는 나에게는 참으로 멋지고 감동적인 장면으로 강렬한 인상을 남긴다. 문경지교도 좋고 관포지교도 좋지만 나는 영인과 장석의 이야기에서 交의 핵심인 무한신뢰를 절감하게 되었다.

 

사람은 공수거한다고 한다. 자신의 손에 쥐는 것은 전무하며 그 상태로 되돌아가는 것이 인생인 것이다. 하여 인간은 늘 고독하지 않을 수 없는 존재이다. 타자와 어울려 살아야하며 자신의 집 안에서조차 가족과의 交로 출발을 하는 것이 삶이다. 잠 자는 시간을 빼고 눈을 뜨면서부터 다시 감을 때까지 인간은 交 안에 있다.

 

다양한 형태의 교가 존재하는 것도 사실이다. 일반적인 교의 목적은 내적 삶의 질을 윤택하게 하기보다는 흔히 이익에 우선하는 것이 대부분이다. 하여 사마천이 자신의 저술, 열전에서 장이와 진여의 바르지 못한 문경지교를 설득력 있고 날카롭게 지적하고 있는 것은 이 때문이다.

 

되돌아 갈 때 아무것도 가져 갈 수 없는 것이 우리의 삶이라면, 내 인생의 가장 아름다운 관계인 交를 자신의 가슴에 담아가는 것은 어떠할까. 사람은 자신의 종말 앞에서 겸허해질 수밖에 없다. 모든 것을 버릴 수 밖에 없다. 사선에서 서성이는 자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고는 유일하게 모든 것을 버리는 일 뿐인 것이다. 그러고 싶어서가 아니라 자신도 어쩔 수 없기 때문이다.

 

자신의 죽음을 앞에서, 가슴 속 가장 깊은 곳에 남아있는 것은 물질이 아니라 분명 자신의 交일 것이다. 자신의 가슴, 죽음 앞에서도 그 가슴 속에서 미처 도려내지 못한 것이 있다면 바로 그 것이 交이다. 아픈 듯 시리며 지극히 아름다운 交가 그 생명이 다하는 순간까지 함께하는 交야말로 세상에서 가장 아름답고 귀중한 것이 아니던가...

 

천상병시인은 자신의 죽음을 두고 이렇게 시를 썼다.

 

 

 

 

 

 

 

 

 

 

 

 

 

 

 

 

歸天(귀천)

                                                                               천상병

 

나 하늘로 돌아가리라

새벽빛 와 닿으면 스러지는

이슬 더불어 손에 손을 잡고

 

나 하늘로 돌아가리라

노을빛 함께 단 둘이서

기슭에서 놀다가 구름 손짓하면은

 

나 하늘로 돌아가리라

아름다운 이 세상 소풍 끝내는 날

가서, 아름다웠더라고 말하리라

 

 

자신의 삶을 아름답게 표현하고 있지만 그의 삶은 결코 녹록하지 않았던 것이 사실이다. 부유했던 시인도 아니요, 권력을 손에 쥔 시인도 아니었으며, 정상적인 신체를 가졌던 것은 더더욱 아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시인이 이토록 아름다우며 심금을 울리는 작품을 남길 수 있었던 것은 바로 그의 교에서 찾을 수 밖에 없다고 나는 생각한다.

 

장자가 혜시의 죽음 앞에서 그토록 안타까워했던 이유도 交에 있었던 것이다. 장자야 말로 무엇이 부족하여 저토록 안타까움을 토로했겠는가. 혜시가 죽음으로서 자신의 소중한 교를 잃었기 때문이 아니었겠는가. 이런 점에서 장자 보다는 혜시가 더 행복한 사람이었을지도 모르겠다. 

 

아름다운 교는 인생을 가장 아름답게 해줄 수 있는 어쩌면 유일한 것일지도 모른다. 세상에서 아름답게 소통할 수 있는 단 한 사람이라도 가질 수 있다는 것은 자신의 인생을 풍요롭게하는 것이며 어쩌면 삶에 가장 중요한 의미를 더할 수 있는 유일한 것일 수 있다. 그러한 교를 가진 자, 진정으로 행복한 사람임에 틀림이 없다. 자신의 생을 죽는 그 순간까지 가장 의미있도록 해주니 말이다..내가 그러한 교를 만나기를 기다리고 또 기다리고 싶은 이유이다. 그러한 교를 가지지 못하고 생을 마감한다면 그보다 더 후회스러운 일이 나에게 또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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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녀고양이 2014-06-19 21:4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글을 읽게 되어, 제가 얼마나 행복한지 아실까요?

저는 사람을 참으로 믿지 못했답니다. 누구라도 제 뒤통수를 칠 수 있다고 생각해왔답니다. 하지만 이제는 사람은 한번쯤은 저를 서운하게 할 수는 있지만 그게 다는 아니다 라고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오르락 내리락 하면서도 끈을 놓지 않는 것, 그것이 믿음이라고 생각합니다.

아름다운 교, 참 좋은 단어입니다.

차트랑 2014-06-20 20:19   좋아요 0 | URL
마녀고양이님, 잘 지내고 계시지요?

별스럽지 않은 글에 행복을 느끼셨다니 부끄럽습니다
저의 대략적인 그간 상황을 짐작하시겠지만
지난 경험이 약간은 표현된 글이기도 하답니다

물론 저는 아름다운 교를 하지 못하는 사람입니다
저도 앞으로 아름다운 교를 가져보고 싶다는 바램이 담긴 글이고
제게도 그런 일이 있기를 바라고 있는 중이랍니다^^

마녀고양이님께서는 저보다 더 많은 아름다운 교를 가지실 수 있기를...
고맙습니다 마녀고양이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