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 세이건의 <Contact> 소설을 읽고 있다. 조디 포스터 주연의 영화도 본 적이 있는데, 영화와는 세부 줄거리와 호흡이 확실히 다르다. 몇 가지 기억나는 것을 적자면, 주인공인 엘리와 아빠가 함께 천체 망원경으로 별을 보거나 엘리가 아마추어 무선 통신을 하며 아빠를 그리워하는 내용이 책에는 없다. 영화는 책보다 좀 더 감성적인 부분이 강조되어 있고 내용도 압축되어 있다. 영화라는 장르 특성상 당연한 것 같기도 하다. 또 영화에서 엘리는 외계신호 탐색을 위한 연구비를 얻지 못해 전전긍긍하다 어느 억만장자의 도움을 받는 것으로 나오지만 소설에서는 미국과학재단의 연구비를 받아 연구하는 것으로 나온다. 물론 엘리의 연구가 연구자원의 낭비라고 질시하는 동료 천문학자들이 소설에는 나온다.


외계신호를 처음 받는 순간의 영화장면이 지금도 기억나는데, 소설에서도 조금 다르지만 나름 긴박하게 그려지고 있다. 사실 소설 <콘택트>는 내가 30여 년 전에 읽으려다 포기했던 책이다. 책을 버리지 않았나 싶었는데 찾아보니 아직 있더라. 1985년 11월 20일 초판 발행된 길한문화사 간이다. 거의 40년 전에 번역된 책이다. 세이건의 원서도 85년에 발행됐으니 미국 발행과 거의 동시에 번역된 것 같은데, <코스모스>의 성공에 기대어 나름 괜찮게 팔리리라 출판사는 기대했던 것 같다. 하지만 세이건의 팬인 내가 읽다가 괴로워 포기했으니 아마 출판사가 별 재미는 못 봤으리라 생각한다. 


원서로 읽으며 예전 번역서는 어떻게 번역했나 가끔 들춰보는데, 역시나 번역이 별로이고 종종 맥락이 없다. 내가 읽다가 포기한 이유를 알 것 같다. SF는 과학적, 기술적 내용을 정확히 번역해야 함을 다시금 절감한다. 30여 년의 시간 동안 우리나라는 많이 발전했으니, 다시 번역, 출판된 책은 이 초판 번역보다 더 나으리라 기대한다. 당시는 인터넷도 없었을 때이니 자료를 찾기 위해서는 도서관에 가거나 아니면 전문가에게 자문을 받는 것 외에는 방법이 없었으리라 이해하고자 한다. 


소설을 보면 자전하는 지구 위에서 외계신호를 끊김 없이 수신하기 위해 국제협력을 할 수밖에 없는데, 아시아에서 중국, 일본, 인도는 언급되지만 한국은 전혀 나오지 않는다. 그것이 당시 우리나라의 위상이다. 전혀 존재감이 없다. 지금의 상황을 보면 참 격세지감이다. 


외계신호를 받아서 처음 검증하는 소설 속 장면을 다음에 옮겨 둔다.


Briskly she entered the control area and approached the main console.

  “Evening, Willie, Steve. Let’s see the data. Good. Now where did you tuck away the amplitude plot? Good. Do you have the interferometric position? Okay. Now let’s see if there’s any nearby star in that field of view. Oh my, we’re looking at Vega. That’s a pretty near neighbor.”

  Her fingers were punching away at a keyboard as she talked. 

  “Look, it’s only twenty-six light-years away. It’s been observed before, always with negative results. I looked at it myself in my first Arecibo survey. What’s the absolute intensity? Holy smoke. That’s hundreds of janskys. You could practically pick that up on your FM radio.

  “Okay. So we have a bogey very near to Vega in the plane of the sky. It’s at a frequency around 9.2 gigahertz, not very monochromatic: The bandwidth is a few hundred hertz. It’s linearly polarized and it’s transmitting a set of moving pulses restricted to two different amplitudes.”

  In response to her typed commands the screen now displayed the disposition of all the radio telescopes.

  “It’s being received by 116 individual telescopes. Clearly it’s not a malfunction in one or two of them. Okay, now we should have plenty of time baseline. Is it moving with the stars? Or could it be some ELINT satellite or aircraft?”

  “I can confirm sidereal motion, Dr. Arroway.”

  “Okay, that’s pretty convincing. It’s not down here on Earth, and it probably isn’t from an artificial satellite in a Molniya orbit, although we should check that. When you get a chance, Willie, call up NORAD and see what they say about the satellite possibility. If we can exclude satellites, that will leave two possibilities: It’s a hoax, or somebody has finally gotten around to sending us a message. Steve, do a manual override. Check a few individual radio telescopes—the signal strength is certainly large enough—and see if there’s any chance this is a hoax; you know, a practical joke by someone who wishes to teach us the error of our ways.” (pp. 56-57)


"sidereal motion"이란 말은 처음 봤다. 찾아보니 항성의 움직임(또는 항성과 함께 움직임)을 말한다. 항성의 움직임을 기준으로 하는 항성시는 sidereal time이라고 한다. 그 외에도 기술적 용어가 나온다. 전파신호의 세기를 나타내는 jansky도 그렇다. 10^(−26) W⋅m^(−2)⋅Hz^(−1)을 말한다.


약 40년 전으로 돌아가면, 당시의 번역문은 이렇다:


활기있게 그녀는 통제구역으로 들어가서 중앙본부로 다가갔다.

⌜안녕, 윌리 스티브. 데이터를 보여 주세요. 좋아요. 거리측정 도면은 어디에 있죠? 좋아요. 간섭계의 위치는 있죠? 자, 그 지역에서 어떤 근접한 별이 있는지 살펴봅시다. 이럴 수가, 직녀성이 보이는군요. 정말 이웃에 가까이 위치해 있군요.⌟

그녀의 손가락은, 이야기하면서도, 키보드를 펀치하고 있었다.

⌜단지 26 광년만 떨어져 있군요. 전에도 그것을 관측한 적이 있지만, 결과는 항상 부정적이었읍니다. 나의 첫 번째 알렉시오 조사에서 그것을 보게 되었어요. 절대강도는 얼마나 되죠? 홀리 톨리도, 당신들도 FM 라디오에서 자주 들었을 겁니다.⌟

⌜알았어요. 우리는 직녀성 근처에서 아주 가깝게 미확인 국적불명기를 발견했읍니다. 그것은 일정하지 않지만, 약 9.2 기가헤르츠의 주파수를 보이고 있읍니다. 주파수폭은 수백헤르츠 정도입니다. 그것은 직선형태로 편광하면서 두 가지 다른 진폭으로 한정된 일련의 파동을 전달하고 있읍니다.⌟

⌜116개의 망원경에 의해 그것이 수신되고 있읍니다. 확실히 그 중 한 두 개는 고장나지 않은 정상적인 것이겠지요. 우리는 수많은 시간축선이 있읍니다. 그것은 별과 함께 움직이고 있나요? 혹시 어떤 전자정보위성이나 항공기일 가능성은 없나요?⌟

⌜나는 항성의 움직임이라고 확신합니다, 애로웨이 박사.⌟

⌜좋아요, 다소 확신적이군요. 그것은 지구로 떨어지지는 않을 거에요. 우리가 점검하였지만, 혹시 모리나와 궤도의 인공위성으로부터 온 것일 가능성은 없나요. 윌리, 기회가 있으면 NORAD에 전화하여 인공위성일 가능성에 대해 문의해 보십시오. 만약에 인공위성이 아니라면, 두 가지 가능성만 남습니다. 그것이 누군가의 장난이든가 아니면 결국 우리에게로 보내는 메시지를 전달하기 위해 주위를 방황하는 것입니다. 스티브, 개개의 망원경들을 점검하세요—신호의 강도가 확실히 강해졌다—이것이 짓궂은 장난일 가능성을 살펴보세요. 누군가가, 우리에게 우리의 방식이 잘못되었다는 것을 가르쳐주려고 하는 못된 장난을 칠 수도 있읍니다.⌟ (73~74 페이지)


난 여러 면에서 우리나라가 대단하고 자랑스럽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아직도 더 나아질 부분이 많이 있다. 오늘날의 감성으로 시도해본 내 번역이 다음에 있다. 40년 후 언젠가, 내 번역도 누군가에겐 위의 번역을 읽으며 내가 느꼈던 감정을 불러일으키지 않을까.


활기차게 통제실로 들어온 그녀는 주 제어판으로 갔다.

  “윌리, 스티브, 좋은 저녁. 데이터를 봅시다. 좋아요. 진폭 그래프는 어디 있나요? 좋아요. 간섭측정 위치는요? 오케이. 자, 이 시야 안에 무슨 별이 있나 봅시다. 아, 베가군요. 꽤 가까운 이웃이에요.”

  그녀는 말하면서 손가락으로 계속 키보드를 두드렸다.

  “봐요, 겨우 26광년 떨어져 있어요. 전에도 관측한 적이 있지만 결과는 항상 부정적이었어요. 내 첫 번째 아레시보 관측에서도 직접 살펴봤지요. 절대 세기는 얼마에요? 맙소사, 수백 잰스키군요. FM 라디오에서도 신호를 잡을 수 있겠네요.

  오케이, 우린 하늘에서 베가 근처로부터 미확인 신호를 받고 있어요. 주파수는 약 9.2기가헤르츠이지만 아주 단일주파수는 아닙니다. 대역폭은 수백 헤르츠에요. 선형편광되어 있고, 두 개의 진폭으로 제한된, 진행하는 펄스가 송신되고 있습니다.

  그녀가 입력하는 명령에 따라 이제 스크린에는 모든 전파망원경의 배치가 나왔다.

  “116개의 개별 망원경이 수신하고 있네요. 분명 한 두 개 망원경의 오작동은 아닙니다. 오케이, 이제 꽤 많은 시간기선(time baseline)이 있겠네요. 신호가 별과 함께 움직입니까? 아니면 엘린트(ELINT) 위성이나 항공기에서 온 신호일 수도 있나요?”

  “항성과 함께 움직임을 확인했습니다, 애로웨이 박사님.”

  “오케이, 꽤 확실해 보이는군요. 지구로부터의 신호는 분명 아니고, 몰니야(Molniya) 궤도에 있는 인공위성 신호도 아닌 것처럼 보이네요. 물론 확인해봐야겠지요. 윌리, 시간되면 북미항공우주방위사령부(NORAD)에 전화해서 인공위성 가능성에 대해 뭐라고 하는지 보세요. 인공위성을 배제할 수 있다면 이제 두 가지 가능성만 남겠네요. 짓궂은 장난이거나, 아니면 누군가 드디어 우리에게 메시지를 보내고 있는 겁니다. 스티브, 수동조작으로 전환해서 몇 개의 전파망원경을 살펴보세요. 신호의 세기는 충분히 큽니다. 짓궂은 장난일 가능성이 있는지 확인해 보세요. 누군가 우리 방식이 잘못됐다는 교훈을 주려고 벌이는 실제적 농담의 가능성 말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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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eremy 2023-06-04 16:5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blueyonder 님이 번역해주시면 한국어책으로도 <Contact> 읽고 싶은데요.
Carl Sagan 책 , 오래간만에 다시 읽고싶게 만드는 페이퍼입니다.

Carl Sagan 의 책은 그렇다치고 솔직히 Ted Chiang 의 두 단편 소설집이나
Ken Liu 의 책도 알라딘에서 <책 속에서> 와 여러분들이 줄친 부분들 읽었을 때
무슨 말인지 더 어리둥절하게 하는 부분들이 많이 보였습니다.

한국책값이 결코 미국에 비해서도 싼 편이 아니던데
독자 존중, 번역할 때 조금 더 Research 하고 시간 들이면
보다 정확하고 좋은 표현이나 전문 용어를 사용하고 필요에 따라
각주를 달 수 있을텐데, 좀 안타까운 부분입니다.

blueyonder 2023-06-04 17:26   좋아요 1 | URL
댓글 감사합니다. 그냥 재미로 번역해 봤습니다. ^^ 아직 살펴보지는 못했지만 <Contact>는 이미 새 번역이 나왔습니다. 찾아보니 2001년 번역이네요. 벌써 20여 년 전 번역이지만 40년 전 번역보다는 좋으리라 기대합니다~

과학소설의 과학적 내용을 정확하게 번역하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고 저도 생각합니다. 번역가와 출판사가 신경을 더욱 많이 쓰기를, 그래서 우리나라 독자들이 좋은 번역을 즐길 수 있기를 바랍니다.

기억의집 2023-06-16 21:0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는 몇달 전에 넷플릭스로 블랙홀을 찾아서라는 다큐 보는데.. 일본인은 있는데 우리나라 유학생은 없어서 서운 했네요!!

blueyonder 2023-06-17 08:50   좋아요 0 | URL
80년대보다는 그래도 훨씬 나아졌습니다. 이제 웬만한 분야에서는 우리나라도 명함을 내밀 정도는 됐다고 생각해요. 아직도 부족한 부분이 있겠지만...
 


이제 노벨상 수상자인 로저 펜로즈 인터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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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ow: The Physics of Time (Paperback)
리차드 A. 멀러 / W. W. Norton & Company / 2017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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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험물리학자였던 저자의 '시간'과 '현재'의 의미에 대한 책이다. 항상 나오는 상대성이론과 양자역학에 대한 소개도 저자 자신의 관점이 들어가서 비교적 재미있게 읽힌다. 하지만 역시 책의 백미는 물리학 주류의 생각과 달리 시간이 실재한다는 저자의 관점이다. 그런 점에서 저자는 비주류이지만, 그는 UC 버클리에서 주류 물리학자의 삶을 살았다. 시간의 방향('화살')을 설명할 때마다 나오는 '엔트로피의 증가가 그 이유'라는 주장에 대한 그의 반론이 통렬하다. 에딩턴과 그의 추종자들은 상관관계('시간이 진행하는 방향으로 엔트로피가 증가한다')를 인과관계('엔트로피의 증가로 인해 시간의 방향이 결정된다')로 잘못 생각했다는 것이다. 실험물리학자답게 그는 예측가능한 실험을 통해 반증가능함을 보일 수 없는 초끈이론이나 평행우주의 개념에 대해 비판적이다. 


그의 시간 이론의 핵심은 이렇다. 빅뱅 이후, 공간의 팽창을 통해 새로운 공간이 생겨나는 것과 마찬가지로 시간도 생겨나고 있으며, 지금 이 순간에도 생겨나는 이 새로운 시간이 우리가 경험하는 시간의 흐름이라는 것이다. 그는 자신의 이론을 4차원(4D) 빅뱅이라고 부른다. 빅뱅 이후, 공간(3차원)의 팽창만이 있는 것이 아니라 시간(1차원)의 팽창도 있다는 의미이다. 


측정되는 것만이 존재한다고 보는 극단적 물리주의(physicalism)에 대한 비판도 있어서, 단순한 물리학의 경계를 넘어선다. 그는 물리로 파악되는 것 외에 다양한 실재가 있다고 생각한다. 어찌 보면 당연한 말이지만, 물리지상주의자들에게는 납득이 안되는 말일 것이다. 


시간이 실재한다는 그의 관점은 리 스몰린과 유사하지만, 그 이유는 다르다. 시간의 본질에 관한 새로운 이론을 알고 싶은 이들에게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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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의 해방일지
정지아 지음 / 창비 / 2022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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앉은 자리에서 반나절 만에 쉬지 않고 다 읽었다. 그만큼 흡인력이 있고 잘 쓰여진 소설이다. 작가가 영리하다는 생각이 든다. 까뮈를 떠올리게 하는 '아버지가 죽었다'라는 첫 문장에서 아버지에 대한 원망이 있는 듯, 위악스러움을 보인 주인공 딸은, 사실 아버지에 대한 그리움을 감추기 힘들다. 


빨치산이었던 사회주의자 아버지 그리고 난 처음 보는 소설 캐릭터인 사회주의자 엄마는 무엇을 위해 산 것일까. 젊었을 때의 짧은 빨치산 생활이 이들의 의식을 평생 지배한다. 이들은 사회주의자라기보다 본질적으로 박애주의자이다. 


우린 이념으로 인한 싸움으로 너무 많은 피를 흘렸다. 소설에서는 우익의 양민학살 이야기가 살짝 나온다. 하지만 좌익의 양민학살 이야기는 없다. 오히려 미담이 있다. 책 한 권만 보고 그것이 전모라고 판단하면 안 된다. 인간은 본질적으로 극한 상황이 되면 좌우 없이 죽고 죽인다. 그러므로 그러한 지경에 이르도록 상황을 몰고 가면 안 된다. 


오해하지 마시라. 나도 눈물 콧물 흘리면서 읽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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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승수 2023-05-29 11:36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안녕하세요. 저는 작가 임승수라고 합니다. 이번에 제가 쓴 인문에세이 <사회주의자로 산다는 것> 출간 소식을 전하기 위해 찾아뵙게 되었습니다. 진심을 담아서 한 글자 한 글자 열심히 썼지만 딱히 홍보할 방법이 없다 보니 답답한 마음에 저자가 이렇게 직접 나서게 되었습니다. 마음 같아서는 책 여러 권을 가방에 넣고 무작정 지하철에 올라 승객분들에게 직접 육성으로 알리고 싶은 심정입니다(그래서는 안 되겠지만요). 갑작스러운 댓글에 불편하셨다면 진심으로 사과드립니다. 여러 일로 바쁘시겠지만 1분 정도만 시간을 내 읽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저도 소설 <아버지의 해방일지>를 무척 재미있게 읽었는데요. 그러고 보니 문득 제 신간 <사회주의자로 산다는 것>의 내용이 <아버지의 해방일지> 21세기 실사판 같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소설 속 아버지가 빨치산 출신 사회주의자로서 신념을 버리지 않고 살아오면서 생긴 독특한 인간관계와 에피소드가 있듯이, 두 딸의 아빠이자 반백살의 남성인 저도 30년째 사회주의자로 살아오면서 그런 삶을 견지했을 때만 경험할 수 있는 평범하지 않은 사건이 많았기 때문입니다.

저는 대학생 때 사회주의자가 된 이후 인생이라는 여행의 경로가 대폭 변경되었습니다. 가치관이 바뀌다 보니 갈림길에서 예전과는 다른 방향으로 나아가기 때문인데요. 글치였던 공대생 출신이 멀쩡하게 다니던 직장을 그만두고서는 느닷없이 마르크스주의 책을 쓰는 작가가 되고, 선거 날 투표할 때면 지지율이 1%도 안 되는 후보에게 거침없이 한 표를 행사하고, 뜬금없이 와인에 홀딱 빠져서는 대한민국 검사뿐만 아니라 노동 조합 간부들을 대상으로 와인 강의를 하기도 했습니다. 그러다 보니 제 인생 경로는 명승지 투어 같이 잘 차려진 패키지 여행과는 결이 달라서, 오지 탐험에서나 맞닥뜨릴 돌발 장면들이 순간순간 펼쳐졌습니다.

<사회주의자로 산다는 것>에는 제가 사회주의자라는 여행 경로를 선택하게 된 이유, 그리고 이 경로를 선택했을 때만 접할 수 있는 풍경, 경험할 수 있는 사건, 만날 수 있는 사람들의 이야기가 담겨 있습니다. 불행인지 다행인지 여전히 이 여행이 제법 맘에 들어서 설사 구부러질지언정 부러지지 않고 사회주의자로 살고 있습니다. 모두가 이 이야기에 공감하리라 기대한다면 과욕이겠지만 누군가에게는 오지 탐험 여행서 같은 흥미진진함을 제공하리라 작은 기대를 해봅니다.

이 책은 누군가를 설득하기 위해 쓴 건 아닙니다. 그저 이렇게 사는 사람도 있다는 것, 그리고 이런 삶이 생각보다 괜찮다는 걸 보여주고 싶어서 썼습니다. <아버지의 해방일지>를 재밌게 읽으셨다면 제 책도 ‘실사판’으로서 무척 흥미롭게 읽으시리라 확신합니다. 혹시 관심이 있으시다면 한 권의 여행서를 읽는다는 느낌으로 읽어주기를 바랍니다. 아래에는 출판사의 책소개 일부를 발췌해서 옮깁니다. 귀중한 시간 할애해 읽어주셔서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책에 대한 자세한 정보는 아래의 인터넷서점 링크에서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http://www.yes24.com/Product/Goods/119181643

”우리는 과연 사회주의에 대해 얼마나 알고 있을까? 사실 사회주의는 생각보다 훨씬 우리의 일상 가까운 곳에 스며들어있다. 일례로 전 세계가 주목한 코로나19 감염병 대처 방식도 지극히 사회주의식이었다. 국가가 앞장서서 공공 재원과 행정력을 동원해 감염병에 대처했으며 코로나 진단 검사와 치료를 누구나 무상 또는 저렴한 비용으로 받을 수 있었다. 이러한 보건 의료 정책과 더불어 국민건강보험공단, 국공립학교, 국공립어린이집, 무상 급식, 공공 임대 주택, 부자 증세 등등정부가 시행하고 있는 복지 및 재분배 정책은 모두 사회주의적 성격을 가졌다. 그런데 복지를 확대하길 원하면서도 왜 사회주의에는 유독 반감을 가질까?

저자는 사람들이 막연하게 가지고 있던 사회주의에 대한 오해와 편견을 본격적으로 해소한다. 이를 위해 자본주의가 대세이면서 동시에 분단국가인 대한민국에서 30년 차 사회주의자로 살아온 자신의 이야기를 아낌없이 들려준다. 또한 자본주의의 은폐된 착취 시스템이 작동하는 원리를 해설하고, 역사적 관점에서 자본주의의 태생과 최후를 통찰한다.

사회주의로의 강요는 없다. 다만 질문이 시작될 뿐이다. 최악의 빈부 격차, 극심한 이윤 지상주의, 유례없는 환경 파괴, 만연한 생명 경시 풍조가 지배하고 있는 이 땅에서 우리는 무엇을 소중하게 여기며 지켜나갈 것인지. 증오와 배척, 불평등와 불공정 너머의 세계를 꿈꾸며, 우리 삶의 지표에 진중한 화두를 던진다“
 















우주 초기(빅뱅)의 엔트로피가 작음(과거 가설Past Hypothesis)의 문제에 대한 상반된 견해가 위의 두 책에 있다. 캐럴은 기본 법칙의 시간 대칭성에 의거해 우주를 기술하는 상태 공간이 변하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But if a space of states changes with time, the evolution clearly can't be information conserving and reversible. If there are more possible states today than there were yesterday, and two distinct initial states always evolve into two distinct final states, there must be some states today that didn't come from anywhere. That means the evolution can't be reversed, in general. All of the conventional reversible laws of physics we are used to dealing with feature spaces of states that are fixed once and for all, not changing with time. The configuration within that space will evolve, but the space of states itself never changes. (p. 293)


상태 공간이 변하지 않는다면 왜 우주 초기에 엔트로피가 작은지에 대한 설명이 필요하게 된다. 하지만 뮬러는 공간의 확장이 상태 공간을 증가시키므로 우주 초기에 엔트로피가 작은 것이 당연하다고 말한다. 


  The expansion of space meant that the matter was in a relatively low-entropy state, compared to what it could be. The creation of space meant that there was a lot of empty space for additional accessible states, for additional entropy. And the universe, only 14 billion years old, has not yet had a chance to occupy the most probable high-entropy state. This idea--that although entropy continues to increase, the maximum allowed value for the entropy of the universe increases even faster--may have been first articulated by David Lazer, a physicist at Harvard. (pp. 133-134)


빅뱅 이전에 시간이 존재하는지에 대한 합의가 이루어지지 않는 것처럼, 우주 초기에 엔트로피가 낮은 이유에 대해서도 물리학자들 사이에 합의가 이루어지지 않은 상황이다. 


물리학의 기본 법칙과 이에 따른 상태 공간과 정보의 보존에 집착하는 이들에게 우주 초기의 낮은 엔트로피는 미스터리이고 왜 그런지 설명해야 할 이유가 있는 일이다. 캐럴은 이를 설명하기 위해 우리 우주가 엄마 우주에서 생겨나는 아기 우주의 하나일 것이라는 모델을 만들어냈다. 스몰린에게 캐럴의 입장은 전형적 오류로 보일 것이다. 물리학의 기본 법칙은 고립계에 대한 연구를 통해 얻어낸 근사 법칙을 뿐이며, 이를 우주 전체에 적용할 수 있다는 보장은 어디에도 없기 때문이다. 


우리는 우주론의 백가쟁명 시대에 살고 있다. 과학은 불일치를 통해 발전하며, 지금 그러한 장면을 보고 있는 셈이다. 뮬러는 과학자들이 할 일이 결코 없어지지 않을 것이라고 말하는데(p. 135), 그의 말이 옳다. 적어도 한동안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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