번역서의 ‘여는 글’과 ‘서문’을 읽었는데, 역자는 직역하는 스타일이 강한 듯 보인다. 스몰린의 유려한 구어체 문장이 딱딱한 문장으로 번역된 듯 싶어 좀 아쉽다. 예컨대, 서문Introduction의 첫 번째 문장이다.


The scientific case for time being an illusion is formidable.


기존의 관념에 대해 위와 같이 선언하며 스몰린은 시작한다. 역자의 번역은 이렇다: 


시간의 존재가 환상이라는 것을 뒷받침하는 과학적 사례는 강력하다.


잘못된 번역은 아니지만, 원문의 간결한 문장이 번역되며 딱딱한 느낌이 들고 늘어진다. 어찌 보면 원문에 충실하고자 하는 우리말 번역이 피해가기 어려운 함정인 것 같다. 난 최대한 간결히 


“시간이 환상임을 지지하는 과학적 근거는 강력하다.”


와 같이 했으면 어떨까 싶다. 번역문 시간의 존재에서 존재란 단어는 있을 이유가 전혀 없다.


저자는 같은 관점을 공유하는 로베르토 망가베이라 웅거의 글을 인용하는데, 번역문은 이렇다.


당신은 현재 우주의 속성을 추적하여 태초에 우주가 분명 갖고 있었을 속성을 알아낼 수 있다. 그러나 당신은 이 속성들이 어떤 우주라도 가질 수 있었던 유일한 속성임을 보여주지는 못한다. ... 그보다 더 이르게 혹은 더 이후에 등장한 우주들은 완전히 다른 법칙을 따를 수 있다. ... 자연법칙을 기술하는 것은 가능한 모든 우주의 가능한 모든 역사를 기술하거나 설명하는 것이 아니다. 한 번 일어나는 역사적 계열에 대해서는 이에 대한 법칙적 설명과 서사 사이에 오직 상대적인 구분만이 존재할 뿐이다.” (30 페이지)


딱딱하다. 특히 마지막 문장이 잘 이해가 안 된다. “한 번 일어나는 역사적 계열에 대해서는 이에 대한 법칙적 설명과 서사 사이에 오직 상대적인 구분만이 존재”한다고? “역사적 계열”이 뭔가?


원문은 다음과 같다.


You can trace the properties of the present universe back to properties it must have had at its beginning. But you cannot show that these are the only properties that any universe might have had.... Earlier or later universes might have had entirely different laws.... To state the laws of nature is not to describe or to explain all possible histories of all possible universes. Only a relative distinction exists between law-like explanation and the narration of a one-time historical sequence.” (p. xxv)


웅거가 여기서 주장하는 바는 이렇다: 우리 우주의 법칙이 왜 이런지는 아무도 모른다. 다른 법칙이 있었을 수도 있으므로, 법칙에 따라 이렇게 우주가 진행한다고 설명하는 것과 그냥 사건의 시간적 순서를 기록하는 것(역사) 사이에는 본질적 차이가 없다. “역사적 계열”의 원문은 “historical sequence”이다. 시간 순으로 일어나는 사건들을 의미한다. 철학에 과문해서인지 모르겠지만 “역사적 계열”이라는 말은 들어본 적이 없다. 또한, “You”로 시작하는 영어적 표현을 그대로 직역한 부분이 눈에 띈다. 


내 이해를 바탕으로 다음처럼 의역해 봤다.


“현재 우주의 성질로부터 초기 우주가 가졌을 성질을 우리는 유추할 수 있다. 하지만 이 성질이 어느 우주나 가질 단 하나의 성질이라는 것을 보일 수는 없다.... 그 이전 또는 이후의 우주는 완전히 다른 법칙을 가질 수 있기 때문이다.... 자연 법칙을 기술하는 것이, 가능한 모든 우주의 가능한 모든 역사를 서술하거나 설명하는 것은 아니다. 시간 순으로 일어나는 사건들을 법칙으로 설명하는 것과 그냥 나열하는 것 사이에 질적인 차이는 없다.”


예전에는 직역이 옳다고 생각했는데, 요즘에는 원문의 맥락을 왜곡하지 않는 한에서 의역하는 것이 좋다고 생각한다. 읽고 이해하지 못하는 글보다는 당연히 이해할 수 있는 글이 더 좋다. 원문의 풍미까지 살린다면 더 바랄 나위가 없다. 참 어려운 요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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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돌이 2022-11-07 15:31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우와 blueyonde님 번역이 훨씬 더 매끄럽게 읽혀요. 저는 번역도 역시 하나의 창작작업이라고 생각해요. 무조건 직역할거면 좀 있으면 진짜 구글 번역기가 다하지 않을까요?
한국어에 맞춰 매끄럽게 읽을 수 있도록 하는 번역 어렵지만 많은 번역가들이 노력해줬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외국어 공부하기 싫어하는 저는 간절히 기원합니다. ^^

blueyonder 2022-11-07 21:37   좋아요 2 | URL
칭찬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 우리말 번역은 여러 분야에서 점점 좋아져야 하고 또 점점 좋아질 것이라 생각합니다. 점점 좋아지라고 저는 자꾸 이런 글을 올립니다. ㅎ
 















읽다가 이해가 안 돼 원문을 찾아보고 오역인 것을 알게 되어 기록해 놓는다. 


필멸성의 원리가 절대적인 이유는 이 원리가 모든 시간과 모든 상황에 적용되기 때문이다. (14 페이지)


"필멸성의 원리"가 모든 시간과 모든 상황에 적용된다는 의미는 무엇일까? 모든 살아 있는 것은 반드시 죽음(生者必滅)을 말하는 것인가? 이것이 모든 시간, 모든 상황에 적용되기 때문에 절대적이라고? 혹시 다른 "필멸성의 원리"라는 것이 있나 인터넷을 찾아봤지만 나오지 않는다. 원문을 찾아보면 다음과 같다. 


What makes a principle of morality absolute is that it holds in every time and every circumstance. (p. xiii)


역자가 단어 하나를 완전히 잘못 봤다. 원문은 "principle of morality"이다. "필멸성의 원리"가 아니라 "도덕적 원칙"이다. morality를 mortality로 잘못 본 듯하다. 이에 따라 완전히 생뚱맞은 번역이 되어 버렸다. 원문대로 해석하면 "도덕적 원칙을 절대적으로 만드는 것은 이것이 모든 시간, 모든 상황에서도 성립하느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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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eremy 2022-11-05 14:33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What is time?˝
이라고 시작하는 이 책의 Preface 서문에서 나온 구절인데
갑자기 생뚱맞게 ˝필멸성˝ 이 나와서
blueyonder 님 읽다가 당황하셨겠어요.
그냥 넘어가지 않고 원문 찾아보는 님한테 감탄합니다.

이 구절이 나온 문단의 Context 안에서 앞뒤가 맞으려면
절대로 Mortality 와 헷갈리 수 없을텐데 저리 자신만만하게 필멸성!
번역 감수나 교정 안 하나봅니다.
Kant 의 Supreme Moral Philosophy 에 대한
reference 라고 생각하며 읽은 부분이고 제 기억으로는
bibliography 에도 Kant 언급되어 있을텐데요.

제가 읽은 책이랑 겹치는게 반가워서 이 구절 포함한 문단,
읽기쉽게 제 맘대로 끊어서 적어 봅니다.
한 마디로 댓글 폭탄 테러.
이미 읽으셨을지도 모르지만
The Trouble with Physics: The Rise of String Theory, the Fall of a Science,
and What Comes Next 도 추천합니다.

There’s a paradox inherent in how we think about time.
We perceive ourselves as living in time, yet we often imagine
that the better aspects of our world and ourselves transcend it.

What makes something really true, we believe,
is not that it is true now but that it always was
and always will be true.

What makes a principle of morality absolute is
that it holds in every time and every circumstance.

We seem to have an ingrained idea that if something is valuable,
it exists outside time.
We yearn for “eternal love.”
We speak of “truth” and “justice” as timeless.

Whatever we most admire and look up to—God,
the truths of mathematics, the laws of nature
—is endowed with an existence that transcends time.
We act inside time but judge our actions by timeless standards.


blueyonder 2022-11-05 15:16   좋아요 1 | URL
댓글 감사합니다. ^^ <The Trouble with Physics>는 제가 처음 읽은 스몰린의 책인데요, 이후 스몰린에게 매료됐습니다. 그의 책을 읽고 나서야 입자물리학의 주류인 초끈 이론에 대한 비판적인 관점이 생겼습니다.
스몰린은 뭔가 rebel의 느낌이 강한, 도인 같은 풍모가 있습니다. 여러모로 존경스럽습니다.

Jeremy 2022-11-05 15:49   좋아요 1 | URL
제가 한 번 꽂히면 쟁이는 습관이 있어서
Lee Smolin 책도 댑다 많이 사긴했는데
한 3-4권 정도만 즐기면서 읽은 것 같습니다.

소설은 괜찮은데 수학.물리.화학.생물 포함 자연계,
역사.철학 등 사회학 계열의 인문학책은
한국어로는 용어 Terminology 를 잘 몰라서
읽어도 이해도 안 되고 잘 와닿지 않을 것 같습니다.

이렇게 불리는군요, 초끈이론!

blueyonder 2022-11-05 17:42   좋아요 1 | URL
Jeremy 님께서 올리신 글들을 봐서 대단한 컬렉터이신 줄 알고 있습니다. ^^

우리말 용어는 번역서를 읽으면 알게 되시겠지만, 번역서에 오역이 종종 있기 때문에 영어로 읽으신다면 굳이 번역서를 읽지 않으셔도 될 것 같네요.

위에서 지적하셨지만, 과학 번역서를 읽다 보면 편집자는 뭐 하나 하는 생각이 들 때가 있습니다. 번역가도 사람인지라 실수할 수 있겠지만, 꼼꼼히 번역문을 살피는 사람이 있으면 이런 경우가 줄어들겠지요. 오역되어 문맥에 안 맞거나 이해가 안 가는 문장은 걸러져야 합니다.
 














아인슈타인이 그처럼 받아들이기 싫어했던 양자역학의 반실재론적 특성을 어떻게 실재론적으로 되살릴 수 있는지에 대한 스몰린의 제안을 제시한 책이다. 실재론, 반실재론--또는 실재주의, 반실재주의--가 책에서 논의하는 중요한 개념으로서, 영어 단어는 realism, anti-realism이다. 역자는 이 단어를 "현실주의", "반현실주의"로 번역했는데, 잘못된 선택이라고 본다. 여기서의 realism은 철학 용어로서, 관찰자의 외부에 객관적인 실재(reality)가 존재한다는 주장을 말한다. 이를 "현실주의"라고 번역하는 것은 일상생활에서 사용하는 "이상주의"의 반대말의 뜻으로 잘못 전달할 우려가 있다.


일찍이 역자는 <퀀텀스토리>에서 realist를 "실존주의자"로 번역한 적이 있다. "현실주의자"는 "실존주의자"보다는 낫지만 그래도 정확한 번역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실재론자" 또는 "실재주의자"가 정확하다고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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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 스몰린Lee Smolin은 미국의 이론 물리학자로 캐나다 페리미터 연구소Perimeter Institute의 교수이다. 양자중력 이론의 하나인 고리양자중력 이론의 발전에 기여했으며 현재 입자물리학의 주류인 초끈 이론에 매우 비판적이다. 초끈 이론이 별다른 실험적 예측 결과를 내놓지 못하며 거의 무한 개에 육박하는 우주가 가능하다는 '우주의 풍경' 개념을 제시하자, 과학의 의미에 대해 되짚어 보자는 주장을 하며 초끈 이론과 대척점에 서 있다. 현대 입자물리학과 우주론이 맞닥뜨린 문제의 실험적 해결이 요원해 보이는 현 상황에서, 여러 도발적이며 획기적인 주장을 통해 새로운 관점을 제시하고 있다. 그의 친구인 카를로 로벨리의 책은 이미 국내에 여러 권 소개됐지만, 최근 스몰린의 책도 번역, 소개되고 있어 반갑다.


가장 먼저 번역되어 소개된 책은 <양자 중력의 세 가지 길>이다.
















최근에 번역되어 나온 책은 다음의 2권이다. 원서는 <Time Reborn>이 먼저 나왔고 그 다음에 <Einstein's Unfinished Revolution>이 나왔는데, 국내에서는 그 순서가 반대로 2021년, 2022년에 연달아 출간됐다.






























2006년 출간되어 화제가 됐던 <The Trouble with Physics>는 아직 번역이 되지 않았다.

















우주의 진화를 다룬 <The Life of the Cosmos>도 번역되지 않았다.
















스몰린은 철학자 로베르토 망가베이라 웅거Roberto Mangabeira Unger와 시간의 실재성이 우주론에 던지는 의미에 대해 생각해 보는 <The Singular Universe and the Reality of Time>을 썼는데, 이 책도 번역되지 않았다.
















가장 도발적이고 독창적인 현대 물리학의 '반역자' 중 하나라고 할 스몰린의 책이 좀 더 국내에 소개되기를 바란다. 특히 <The Trouble with Physics>는 중요한 책이라고 할 수 있는데, 초끈 이론과 입자물리학의 현재를 매우 비판적으로 바라보기 때문에 과연 번역이 될지는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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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cott 2022-10-01 14:4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욘더님 덕분에 이리 훌륭한 과학책 알게 되네요 캄솨 ^^

blueyonder 2022-10-01 15:35   좋아요 0 | URL
^^ 독서와 함께 즐거운 주말 보내세요~
 
About Time: Cosmology and Culture at the Twilight of the Big Bang (Paperback)
Adam Frank / Simon & Schuster / 2012년 9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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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덤 프랭크Adam Frank는 미국 로체스터 대학의 천체물리학 교수이다. 그는 우주론에 대한 그의 교양 강의에서의 당혹스러움으로 책을 시작한다. 현대의 표준 우주모형인 '빅뱅' 이전에 무엇이 있었느냐는 질문이 꼭 나온다는 것이다. 그는 '빅뱅 이전'이 제대로 탐구되지 않은 영역이지만 현재 맞닥뜨린 여러 문제점에 대한 새로운 제안들로 인해 이제 새로운 우주모형이 나올 가능성을 언급하며 책을 시작한다. 


그가 책에서 의도하는 바는 크게 2가지이다. 첫 번째, 인류의 시간에 대한 개념이 구석기 시대부터 현대에 이르기까지 어떻게 변화해 왔는지 설명하는 것이다. 시간 개념에는 당대의 우주론이 반영될 수밖에 없으므로 시간에 대한 문화사와 더불어 과학사가 덧붙여진다. 이 두 역사의 기저에는 당대의 물질적 조건이 공통으로 작용하고 있으므로, '인류의 시간'과 '우주의 시간'은 분리될 수 없는 밀접한 관계를 갖는다.


이러한 역사에 대한 고찰은 저자의 두 번째 의도인 다음과 같은 결론을 낳는다. '시간'과 '우주'는 인류가 만드는 것이다. 물리학이 밝힌 우주의 모습이 '객관적 진리'라는 여러 물리학자들의 생각과 달리, 저자는 우리의 우주론이 실제 우주의 '일면'일 뿐이라고 지적한다. 이는 현대 입자물리학과 우주론이 당면한 여러 근원적 문제들의 영향이며, 물리학이 이제 어느 정도 한계를 자각하고 있다는 의미이다.


저자는, 이제 새롭게 제기되는 순환 우주를 포함한 새로운 우주론이 우리에게 새로운 시간 개념을 제시할 수 있으며, 반대로 우리의 물질적 조건이 우리에게 필요한 새로운 우주론을 낳을 수 있다는 희망을 드러내고 있다. 기후 변화와 자원 고갈 등 현대 인류가 맞닥뜨린 문제가 새로운 문화와 체계를 필요로 하며, 이러한 시대적 필요와 물질적 조건이 우주론과 밀접한 영향을 주고 받아 새로운 전망이 나타나기를 기대하는 것이다.


인상 깊은 것은, 현대 우주론에 의해 우주의 중심에서 우주 주변의 먼지와 같은 존재로 격하된 인류의 존재 의미를 다시 찾자는 저자의 주장이다. '우주'란 인류가 만들어 내는 것이므로, 우리 자신을 차가운 우주의 주변부로 격하할 필요 없이, 우주를 관측하고 만들어내는 우리 자신에게 중요한 의미를 부여할 수 있다. 인간이란 우주에 비하면 크기와 수명과 힘에서 하찮은 존재이지만, 그 보잘 것 없는 머리에서 우주의 비밀을 조금이라도 알아냈고 이제 그 신비를 음미할 수 있으니 나름 자랑스러워할 만도 하다.


전신(telegraph)이 어떻게 전지구적으로 동시성을 확립하는 계기가 되는지, 미국의 철도 보급이 어떻게 지역별로 시간대를 정하도록 촉진하는지 등 여러 흥미로운 역사적 사실을 알 수 있었다. 책이 좀 추상적이고 모호한 점이 있어서 별 하나를 뺄까 했지만 이처럼 흥미로운 내용은 별 다섯을 주게 한다.


   Time after time, we have never been anything other than collaborators with the universe. Always and again we have been the co-creators of a time and a cosmos that exist together with us. That is what makes our story anything but insignificant and makes our universes anything but meaningless. We have always been weaving the fabric of our experience into a culturally shared time and, in the process, have become ever more intimate with a universe that has always invited our participation. With each step we gain a deeper sense of the awe and beauty that suffuse the universe's essential mystery. If we can trace our steps from the past and see our way clearly into the future, then certainly there is time enough for that great effort to continue with renewed clarity and purpose. (p. 337)

---

* 이 책의 번역서는 2015년 출간된 <시간 연대기>이다. 원서는 2011년에 출간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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