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Conquering Tide: War in the Pacific Islands, 1942-1944 (Hardcover)
Ian W. Toll / W W Norton & Co Inc / 2015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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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2년 8월 미군의 과달카날 공격부터 1944년 6월~7월 마리아나 제도(사이판, 티니안, 괌) 점령까지를 다룬다. 1943년으로 들어가며 미국의 군수 시스템이 작동, 압도적 물량으로 일본군을 밀어부치게 되지만, 결코 일본군이 만만한 것은 아니었고 미군으로서도 많은 희생을 치러야 했다. 


수세에 몰린 일본 해군이 했던 생각(함대 결전)과, 절대방어선이라는 사이판이 결국 함락되며 이제 협상을 통한 평화를 희망(망상)하기 시작한 일본 내부 사정을 엿볼 수 있다.


전쟁은 정치의 연장선이라는 말이 있지만, 엄청난 인명의 희생을 몰고 오는 현대전에서, 당연하겠지만, 전쟁은 반드시 피해야 한다. 특히, 이념이 전쟁에 개입하면, 끝내야 할 전쟁을 끝내지 못하고 의미 없는 희생만 늘어감을 일본의 경우를 보면 알 수 있다. 일본인들은 자신들이 '하늘이 내린 민족'이라고 믿으며 자신들의 전쟁을 '성전'이라고 불렀다. 패배가 명확해진 전투에서 '텐노헤이카 반자이'를 외치며 돌진하여 몰살 당했다. 이들은 이러한 죽음을 '옥쇄玉碎'라고 미화하여 불렀다. '옥이 부서지는' 것처럼 '아름답게' 죽었다는 뜻이다.


수많은 병사들이 죽음을 바친 히로히토는 전후 책임을 면제 받으며 천황으로서의 지위를 유지할 수 있었다. 하지만 정치적 면죄부가 도덕적 면죄부가 될 수는 없을 것이다. 히로히토는 사이판이 가망 없다는 보고를 받고도 어떻게든 지키라고 군부에게 명령을 내리기도 했다. 전범으로 처단당한 총리대신 도조가 직권으로 이 작전을 취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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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르덴 대공세 1944 - 히틀러의 마지막 도박과 제2차 세계대전의 종막
앤터니 비버 지음, 이광준 옮김, 권성욱 감수 / 글항아리 / 2021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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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부터 읽다가 이게 무슨 얘기인가 싶어서 원문을 찾아보며 십여 페이지를 봤는데, 번역이 맘에 안 든다. 일단 과거와 대과거를 구분 없이 번역해서 시점이 헷갈린다. 책의 제일 앞에 나오는 내용이 아이젠하워와 드골의 만남을 기술하며 전날 있었던 드골의 파리 행진 때 일을 언급하는 것인데, 시점이 섞여 이해가 잘 되지 않는다. 


... 하지만 파리 탈환 작전 내내 게로의 지시를 한 귀로 흘렸던 르클레르는 당일 파리 북쪽 생드니 인근에서 독일군과 대치 중이던 휘하 부대 일부를 행사에 참가시켰다.

  독일군이 퇴각하면서 움직일 수 있는 차량을 모두 가져가버렸기 때문에 파리의 거리는 텅 비어 있었다. (14 페이지)


위를 얼핏 보면 행사[드골의 파리 행진]에 르클레르의 부대가 참석했고, 파리의 거리가 텅 비어 있었다는 것이 그냥 연결되어 보인다. 행사에 사람이 별로 없었나? 헷갈리는 것이다. 원문은 이렇다.


... Leclerc had ignored Gerow throughout the liberation of the capital, but that morning he had sent part of his division north out of the city against German positions around Saint-Denis.

  The streets of Paris were empty because the retreating Germans had seized almost every vehicle that could move. 


원문은 행진 때 일과 아이젠하워의 다음 날 파리 방문을 대과거와 과거로 명확히 구분하고 있다. 거리가 텅 빈 것은 행진 다음 날인 것이다. 모든 것을 구별 없이 번역하면 원문에서 중간 중간 섞어 나오는 대과거 구절들이 완전히 혼동된다. 우리 말에는 대과거와 과거의 구분이 없지만, 불명확할 경우 시점을 명시하는 말을 넣어서라도 명확히 할 필요가 있다고 본다. 르클레르가 한 일에 대한 번역("독일군과 대치 중이던 휘하 부대 일부를 행사에 참가시켰다")도 오역의 혐의가 있다.


계속하여, 같은 문단에 (미군이) '"독일 놈들보다 더 나쁜 놈들이야"라는 불만을 터트리기 시작했다'는데, 아니 해방군인 미군에게 왜 독일 놈들보다 더 나쁘다고 했냐는 의문이 든다. 원문은 "it would not be long before the Parisians started muttering 'Pire que les boches' -- 'worse than the Boches'"이다. '독일 놈들보다 더 나쁜 놈들'이라기보다는 '독일 놈들 보다 더 나쁘다'가 맞을 것이다. 파리의 전력 사정이 좋지 않기 때문이다.


같은 문단에 "'빛의 도시'라고 불리던 파리가 이제는 암시장에서 구할 수 있는 촛불 정도로 쇠락했다."는 문장이 있다. 원문은 "the so-called 'City of Light' was reduced to candles bought on the black market."이다. 이 말은 '빛의 도시'라고 일컬어졌던 파리가 암시장에서 산 초에 의존하는 처지가 됐다는 의미이다. 전력 사정이 안 좋기 때문이다. 앞에 전력 사정이 안 좋아 전차 운행이 불안정하다는 문장 다음에 오는 것이라서 실제적 의미인데 상징적 의미로 바꿔 버렸다.


23페이지에서는 연합군 최고사령관인 아이젠하워를 지칭하며 "군사 지휘관이라기보다는 정치군인에 가까운"이라고 번역한다. 우리 말의 '정치군인'은 정치에 개입하는 군인이다. 완전한 오역이라고 본다. 원문은 'a military statesman rather than a warlord'이다. '최고 군사 지휘관이라기보다는 군사 정치가'라고 하는 것이 낫겠다.


이런 식의 번역이라 읽다가 포기하기로 했다. 일단 잘 안 읽힌다. 나만의 문제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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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cott 2021-09-03 12:0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책 제가 왜 읽다 포기 해 버렸는지 욘더님 분석 읽고 알게 되었네요
전문가가 감수 해도 이런 오류를,,,,

욘더님 오늘 날씨 청명 화창!! 행복한 금요일 보내세요 ^.^

blueyonder 2021-09-03 20:06   좋아요 1 | URL
네 오늘 정말 날씨가 청명 화창하더군요. 파란 하늘을 보니 저절로 기분이 좋아졌습니다. scott님도 행복한 금요일 보내세요~ ^^

케로로 2022-05-09 01:40   좋아요 0 | URL
이 책 감수한 양반이 감수한 또다른 책 <미드웨이> 보셨나요? 보시면 장난 아닙니다... 쩝.

blueyonder 2022-05-31 11:36   좋아요 0 | URL
<미드웨이> 조금 살펴봤습니다. 감수란 것도 이름만 걸지 말고 실제 내용을 봐주면 좋겠는데요...
 


조국 독립을 위해 애를 쓰시다가 이역만리에서 눈을 감으셨던 홍범도 장군. 이렇게 우리나라 공군기의 호위를 받으며 귀환하시는 모습을 보니 눈물이 핑 돌지 않을 수 없다...


호위를 위해 우리나라 공군이 운용하는 모든 종류의 전투기가 다 떴다. F-35까지... 혼백이 계시다면 매우 감격하셨을 것 같다. 


조국 땅에서 이제 편안히 쉬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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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08-25 17:31   URL
비밀 댓글입니다.

붕붕툐툐 2021-08-25 21:4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편히 쉬시길..🙏
 















이언 톨의 태평양전쟁 3부작의 제2권으로서, 1942년 8월 7일의 과달카날 침공에 대한 얘기부터 시작한다. 이 책의 특징이 장chapter마다 제목이 있지 않고 그냥 1장, 2장, ... 으로 되어 있는데, 그냥 저자가 제시하는 흐름에 맞기며 즐기면 된다는 생각이 든다.


8장까지 과달카날 전투와 그 이후 미군의 남태평양에서의 작전에 대해 기술한 후, 한숨 돌리며 맞게 되는 9장은 샌프란시스코의 해군 기지로서의 역할에 대해 설명한다. 특히, 샌프란시스코 만 북동쪽에 위치한 매어 아일랜드 해군 공창Mare Island Navy Yard은 미국 서해안에서 가장 오래된 해군 조선소였는데, 여기서 건조한 게이토Gato 급 잠수함 와후Wahoo에 대해 설명하면서, 태평양 전쟁에서 잠수함 전에 대한 논의를 진행한다.


10장은 하와이의 진주만에 대한 얘기로 시작한다. 전쟁을 거치며 군인들로 득실대는 오아후의 분위기를 느낄 수 있다. 그러면서 태평양함대 사령부의 니미츠와 그의 참모들에 대한 얘기를 거쳐, 1943년 6월 1일 진주만에 도착하는 27,100톤(만재시 36,380톤)의 신형 항공모함 에섹스Essex(CV-9)에 대해 설명한다. 그리고는 비슷한 시기, F4F 와일드캣 전투기를 대체하는 F6F 헬캣과, SBD 돈틀리스 급강하 폭격기를 대체하는 SB2C 헬다이버에 대해 논의하고 있다.


... In 1942 (a frustrating year for the American submarine force, as we have seen), the Japanese lost just four tankers. In 1943, the figure rose to 23; in 1944, it was 132; and in the first eight months of 1945, the Allies destroyed 103 Japanese tankers. In 1942, 40 percent of East Indies crude oil production safely reached Japan. In 1943, that proportion declined to 15 percent; in 1944, it fell to 5 percent; and after March 1945, not a single drop arrived on Japanese shores. Crude oil reserves, having peaked at twenty million barrels in early 1941, diminished to fewer than a million in the forth quarter of 1944. The Japanese met the crisis with a crash tanker-building program, and by converting ordinary merchant ships to carry oil. But shipbuilding required steel, while the reverse was equally true--the steel mills required coking coal and iron ore that must be imported by sea. From a 1943 peak of 7.8 million tons, ingot steel production plummeted to a per-annum production rate of about 1.5 million tons in 1945, or about 15 percent of the industry's production capacity. As the aerial bombing campaign reached its zenith in 1945, devastating Japan's transport systems and industrial areas, the nation's war production had already been hollowed out by the interdiction and destruction of its sea communications.

  By the war's end, the Pacific submarine force would sink more than 1,100 marus, amounting to more aggregate tonnage than Japan had possessed on December 7, 1941. With fewer than 2 percent of all naval personnel, the submarines could claim credit for more than half of all Japanese ships sunk during the war, and 60 percent of the aggregate tonnage. Although their primary strategic purpose was to destroy the enemy's seaborne commerce, the submarines also sent 201 Japanese warships to the bottom, with a combined tonnage of 540,192. (p. 285) 


일본군은 미군이 잠수함의 혹독한 근무환경을 견뎌내지 못할 것이라 기대했다고 한다(259 페이지). 하지만 미군은 게이토 급 잠수함에 에어컨 뿐만 아니라 세탁기와 민물 샤워 시설까지 설치하여 근무 환경을 개선했다. 자신들의 보급선을 지키는 일이 중요함을 알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일본 해군은 공격만을 중시했으며, 수송선 호송과 대잠 작전을 소홀히 하여 자신들의 무덤을 팠다(282 페이지). 이후 일본 해군은 원유가 있는 유전 근처(보르네오, 수마트라)에 함대를 묶어둘 수밖에 없게 되는 지경에 이르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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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cific Crucible: War at Sea in the Pacific, 1941-1942 (Hardcover)
Ian W. Toll / W W Norton & Co Inc / 2011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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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주만 기습에서 미드웨이 해전까지 다룬다. 다양한 증언을 통해 당시 상황을 생생하게 전한다. 어떨 때는 전쟁사 책을 읽은 후 복잡한 전황과 숫자만 읽었다는 느낌만 남는 경우가 있는데, 이 책은 전혀 그렇지 않다. 다른 전쟁사 통사에서는 잘 접하지 못했던 참전자의 생생한 증언을 읽을 수 있다. 어찌 보면 당연하겠지만, 클라이맥스인 미드웨이 해전의 기술은 다른 미드웨이 해전만을 다룬 책만큼 자세하지 않아 살짝 아쉽다. 하지만 다른 책에서는 잘 보지 못했던 해전 이후의 상황도 다루고 있어 좋다. 책에 전혀 오류가 없지는 않은데(예: 시간 표기 잘못), 혹여 있을 사소한 단점을 장점이 100배 상쇄한다.


미드웨이에서의 패전으로 인해, 일본은 태평양 전쟁에서의 주도권을 상실하고 공세에서 수세로 전환하게 된다. 이후는 인명과 물량의 긴 소모전이었다. 일본은 자신들의 정신이 미국의 물량을 압도할 수 있으리라 믿었다--또는 희망했다. 잔인한 소모전이 계속되면 나약한 미국민은 전의를 상실하리라 생각했다. 역사가 보여주듯이 그 희망은 부질없었다. 일본 연합함대 사령관인 야마모토가 개전 전에 예측했듯이, 일본의 돌격은 6개월 만에 끝나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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