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언 톨의 태평양전쟁 3부작의 제2권으로서, 1942년 8월 7일의 과달카날 침공에 대한 얘기부터 시작한다. 이 책의 특징이 장chapter마다 제목이 있지 않고 그냥 1장, 2장, ... 으로 되어 있는데, 그냥 저자가 제시하는 흐름에 맞기며 즐기면 된다는 생각이 든다.
8장까지 과달카날 전투와 그 이후 미군의 남태평양에서의 작전에 대해 기술한 후, 한숨 돌리며 맞게 되는 9장은 샌프란시스코의 해군 기지로서의 역할에 대해 설명한다. 특히, 샌프란시스코 만 북동쪽에 위치한 매어 아일랜드 해군 공창Mare Island Navy Yard은 미국 서해안에서 가장 오래된 해군 조선소였는데, 여기서 건조한 게이토Gato 급 잠수함 와후Wahoo에 대해 설명하면서, 태평양 전쟁에서 잠수함 전에 대한 논의를 진행한다.
10장은 하와이의 진주만에 대한 얘기로 시작한다. 전쟁을 거치며 군인들로 득실대는 오아후의 분위기를 느낄 수 있다. 그러면서 태평양함대 사령부의 니미츠와 그의 참모들에 대한 얘기를 거쳐, 1943년 6월 1일 진주만에 도착하는 27,100톤(만재시 36,380톤)의 신형 항공모함 에섹스Essex(CV-9)에 대해 설명한다. 그리고는 비슷한 시기, F4F 와일드캣 전투기를 대체하는 F6F 헬캣과, SBD 돈틀리스 급강하 폭격기를 대체하는 SB2C 헬다이버에 대해 논의하고 있다.
... In 1942 (a frustrating year for the American submarine force, as we have seen), the Japanese lost just four tankers. In 1943, the figure rose to 23; in 1944, it was 132; and in the first eight months of 1945, the Allies destroyed 103 Japanese tankers. In 1942, 40 percent of East Indies crude oil production safely reached Japan. In 1943, that proportion declined to 15 percent; in 1944, it fell to 5 percent; and after March 1945, not a single drop arrived on Japanese shores. Crude oil reserves, having peaked at twenty million barrels in early 1941, diminished to fewer than a million in the forth quarter of 1944. The Japanese met the crisis with a crash tanker-building program, and by converting ordinary merchant ships to carry oil. But shipbuilding required steel, while the reverse was equally true--the steel mills required coking coal and iron ore that must be imported by sea. From a 1943 peak of 7.8 million tons, ingot steel production plummeted to a per-annum production rate of about 1.5 million tons in 1945, or about 15 percent of the industry's production capacity. As the aerial bombing campaign reached its zenith in 1945, devastating Japan's transport systems and industrial areas, the nation's war production had already been hollowed out by the interdiction and destruction of its sea communications.
By the war's end, the Pacific submarine force would sink more than 1,100 marus, amounting to more aggregate tonnage than Japan had possessed on December 7, 1941. With fewer than 2 percent of all naval personnel, the submarines could claim credit for more than half of all Japanese ships sunk during the war, and 60 percent of the aggregate tonnage. Although their primary strategic purpose was to destroy the enemy's seaborne commerce, the submarines also sent 201 Japanese warships to the bottom, with a combined tonnage of 540,192. (p. 285)
일본군은 미군이 잠수함의 혹독한 근무환경을 견뎌내지 못할 것이라 기대했다고 한다(259 페이지). 하지만 미군은 게이토 급 잠수함에 에어컨 뿐만 아니라 세탁기와 민물 샤워 시설까지 설치하여 근무 환경을 개선했다. 자신들의 보급선을 지키는 일이 중요함을 알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일본 해군은 공격만을 중시했으며, 수송선 호송과 대잠 작전을 소홀히 하여 자신들의 무덤을 팠다(282 페이지). 이후 일본 해군은 원유가 있는 유전 근처(보르네오, 수마트라)에 함대를 묶어둘 수밖에 없게 되는 지경에 이르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