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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르덴 대공세 1944 - 히틀러의 마지막 도박과 제2차 세계대전의 종막
앤터니 비버 지음, 이광준 옮김, 권성욱 감수 / 글항아리 / 2021년 4월
평점 :
처음부터 읽다가 이게 무슨 얘기인가 싶어서 원문을 찾아보며 십여 페이지를 봤는데, 번역이 맘에 안 든다. 일단 과거와 대과거를 구분 없이 번역해서 시점이 헷갈린다. 책의 제일 앞에 나오는 내용이 아이젠하워와 드골의 만남을 기술하며 전날 있었던 드골의 파리 행진 때 일을 언급하는 것인데, 시점이 섞여 이해가 잘 되지 않는다.
... 하지만 파리 탈환 작전 내내 게로의 지시를 한 귀로 흘렸던 르클레르는 당일 파리 북쪽 생드니 인근에서 독일군과 대치 중이던 휘하 부대 일부를 행사에 참가시켰다.
독일군이 퇴각하면서 움직일 수 있는 차량을 모두 가져가버렸기 때문에 파리의 거리는 텅 비어 있었다. (14 페이지)
위를 얼핏 보면 행사[드골의 파리 행진]에 르클레르의 부대가 참석했고, 파리의 거리가 텅 비어 있었다는 것이 그냥 연결되어 보인다. 행사에 사람이 별로 없었나? 헷갈리는 것이다. 원문은 이렇다.
... Leclerc had ignored Gerow throughout the liberation of the capital, but that morning he had sent part of his division north out of the city against German positions around Saint-Denis.
The streets of Paris were empty because the retreating Germans had seized almost every vehicle that could move.
원문은 행진 때 일과 아이젠하워의 다음 날 파리 방문을 대과거와 과거로 명확히 구분하고 있다. 거리가 텅 빈 것은 행진 다음 날인 것이다. 모든 것을 구별 없이 번역하면 원문에서 중간 중간 섞어 나오는 대과거 구절들이 완전히 혼동된다. 우리 말에는 대과거와 과거의 구분이 없지만, 불명확할 경우 시점을 명시하는 말을 넣어서라도 명확히 할 필요가 있다고 본다. 르클레르가 한 일에 대한 번역("독일군과 대치 중이던 휘하 부대 일부를 행사에 참가시켰다")도 오역의 혐의가 있다.
계속하여, 같은 문단에 (미군이) '"독일 놈들보다 더 나쁜 놈들이야"라는 불만을 터트리기 시작했다'는데, 아니 해방군인 미군에게 왜 독일 놈들보다 더 나쁘다고 했냐는 의문이 든다. 원문은 "it would not be long before the Parisians started muttering 'Pire que les boches' -- 'worse than the Boches'"이다. '독일 놈들보다 더 나쁜 놈들'이라기보다는 '독일 놈들 때보다 더 나쁘다'가 맞을 것이다. 파리의 전력 사정이 좋지 않기 때문이다.
같은 문단에 "'빛의 도시'라고 불리던 파리가 이제는 암시장에서 구할 수 있는 촛불 정도로 쇠락했다."는 문장이 있다. 원문은 "the so-called 'City of Light' was reduced to candles bought on the black market."이다. 이 말은 '빛의 도시'라고 일컬어졌던 파리가 암시장에서 산 초에 의존하는 처지가 됐다는 의미이다. 전력 사정이 안 좋기 때문이다. 앞에 전력 사정이 안 좋아 전차 운행이 불안정하다는 문장 다음에 오는 것이라서 실제적 의미인데 상징적 의미로 바꿔 버렸다.
23페이지에서는 연합군 최고사령관인 아이젠하워를 지칭하며 "군사 지휘관이라기보다는 정치군인에 가까운"이라고 번역한다. 우리 말의 '정치군인'은 정치에 개입하는 군인이다. 완전한 오역이라고 본다. 원문은 'a military statesman rather than a warlord'이다. '최고 군사 지휘관이라기보다는 군사 정치가'라고 하는 것이 낫겠다.
이런 식의 번역이라 읽다가 포기하기로 했다. 일단 잘 안 읽힌다. 나만의 문제인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