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트록의 귀환
핍 본 휴스 지음, 공보경 옮김 / 문학수첩 / 2009년 10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시작은 이렇다.

술은 마술사.그래서 술에 취한 사람은 어느 순간 자기 눈앞에 마법이 펼쳐져 있는 것 같은 착각에 빠지기도 한다.거친 사암 재질의 다리에 기대어 시커먼 강물을 내려다보면서,마음만 먹으면 이 황량한 계곡에서 고향의 따스한 강둑으로 순간 이동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상상을 했다.반달과 보름달 사이의 어중간한 달이 내 어깨 위로 떠올라 물의 원기를 빨아들이고 있었다.하지만 눈을 질끈 감는 순간,이미 기회를 놓쳤음을 알았다.마법이 사라져 버린 것이다.시기를 잘 맞춰야 순간 이동도 가능한데,늘 이렇게 기회를 놓치고 만다.

눈에 띄지 않는 겉표지를 보고 그저 그렇겠거니 하고 책을 집어들었던 나로서는,이 책의 첫문단을 읽고는 책을 고쳐 잡았다.
'오홀~재밌겠는걸...문장이 딱딱 떨어지잖아!'
이 책은 열아홉살 먹은 풋내기 수도사 페트록의 성장기라고 할 수 있다.
좀 더 정확히 얘기하면 풋내기 수도사가 유물 도둑과 살인자로 몰리는 바람에,
영국 데몬에서 그린랜드까지의 여정을 거치면서 해적으로 변해가는 과정을 입체감있게 표현해 내고 있다.

이 책이 재미있는 건...흡입력 있는 문장력도 문장력이지만,
이런 류의 소설이 가지고 있었던 종교적 색채와 선입견을 철저히 배제하고 있다는 데 있다.
20쪽의 '나는 세속의 남정네 같은 음탕한 목소리를 내지 않으려고 애쓰며 더듬더듬 말했다.'에서 짐작할 수 있겠지만,우리의 '페트록'이 청년은 수도사라고는 하지만 적당히 세속적이다.
이야기의 전반에 걸쳐 이런 당위성과 현실 사이에서 적당히 고민하는 모습-즉 '수도'하는 과정,수도원 밖에서도 '수도'할 수 있음을 보여준다.

친한 친구 윌과의 대화에서도 이런 페트록의 속내는 잘 드러난다.

"밤엔 잘 잤어,페트록 형제?"
"너도 알다시피 마음이 깨끗한 자는 꿈도 안 꾸고 잘 자."
거짓말이었다.나는 밤새도록 정신 사나운 꿈에 시달렸다...(28쪽)

도입부의,풋내기 수도사가 성물을 훔치고 사람을 죽였다는 누명을 쓰는 것도 적당히 반듯한 페트록이니까 가능한 일처럼 보였지만,

애드릭신부는하느님께 가까이 가기 위해서라거나 속죄를 하기 위해서가 아니라,그저 책과 지식의 보고를 곁에 두기 위해 성직자가 된 듯했다.(88쪽)
책을 좋아하고,책 속에 숨은 역사와 유물을 탐구하기 좋아하는 페트릭과 애드릭 신부와의 연관은 정말 그럴듯한 얼개로 작용한다.

또 한가지 이 책이 맘에 들었던 점은,
어떤 책에서는 템플 기사단을 영웅시하고 있던데,이 책에서는 악독하고 타락한 기사단원으로 묘사했다는 점이다.
이건,내가 뭐 템플기사단에게 악감정을 가지고 있어서라기보다는...
내 알량한 소견으론,세상을 통틀어 절대적인 선이나 절대적인 악은 없는 것 같다.
13세기에 그토록 수도원이 부패되었는데,좋은 뜻과 결의로 뭉친 템플기사단이어도 타락했을 수도 있는 것이고,
유물을 훔쳐내고,가짜 유물을 만들어내고 약탈을 일삼는 해적들도 대의와 명분에 따라 움직인다면,의적이 될 수 있는 것이니까 말이다.

이 책에 겉으로 드러나지 않지만,작가가 얘기하는 대의명분은 하층민이 주인이 되는 세상이다.
다시말해 배안의 수많은 다른 인종과 이교도를 배척하지 않고 하나로 뭉뚱그려 간다.
거기에 비잔틴의 공주였던 안나를 등장시켜 뱃사람들로 하여금 남녀차별과 신분 차별을 깨뜨려 준다.

다시말해,당위성을 가지고 도덕적인 척 하는 정형화된 모습이 아니라,
고민하는 모습을 그대로 보여주고 있는데...
열아홉살의 청년 수도사의 이런 고뇌가 충분히 타당하고,
그의 여정에 응원하고 힘을 보태고 박수를 쳐주고 싶은 마음이 들기 때문이다.
여기에 비잔틴의 공주였다는 안나 공주와의 로맨스를 엿보는 것도 내겐 솔솔한 재미였다.

한가지 아쉬운 점이 있다면,
처음 그렇게 죽은 줄 알았던 친구 윌이 다시 나타나고 다시 죽는 과정인데,
친구 윌이 나타나 안나 공주와의 로맨스에 연적이 등장하고 삼각구도가 되는 것은 재미있었지만,
악당 템플기사단 '휴'경의 노예가 되어 나타났다는 설정은 좀 그랬다.

열아홉의 그들이 겪어낼 수 있는 삶과 지혜의 무게,
애드릭 신부나,몽탈락 선장이 겪여낼 수 있는 사람과 지혜와 연륜의 무게를 적절하게 배치하고 있다.

몽탈락과 페트록의 대화는 어쩜 이렇게 단순하지만 멋질 수 있는 것인지, 몽탈락의 연륜이 돋보였던 부분이고,

"좋아.그거면 됐네.오네포드 사람 페트록,자네 가슴은 텅비지 않았어.가득 채워지고 더욱 강해졌지.거짓된의식의 그을음으로 영혼이 더러워졌지만 언젠가 다시 깨끗해져서 빛을 낸 걸세.이제 자넨 우리와 하나가 되었어.자네 말대로 우린 다른 이름을 두고 맹세를 하진 않아.자네가 자유 의지로 우리와 함께하게 되었으니 언제든 가고 싶을 때 떠나도 좋다는 뜻일세."195쪽

페트록의 성찰도 멋져보여,가슴 속에서 되내여 보게 된다.

*'어제 길든 짧든 새로운 길로 발을 내디뎌야 할 때였다.앞으로 걸어가는 것 외에 내겐 달리 선택  의 여지가 없었다.'(130쪽)
*"그자가 마음에 들던데요.거짓말쟁이 사기꾼은 아닌것 같아서요."(249쪽)
*내가 남에게 가한 칼질이 내 영혼에 그만큼의 상처를 남긴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지만,(327쪽)
*"그때 울지말았어야 했어 분노했어야 했어."(393쪽)

'살람 알레이쿰(당신에게 평화가 깃들기를)'에,'와알레이쿰 살람(당신에게도 그러하기를)(160쪽)' 이라고 대답하는 페트록의 모습에서,
수도사라고 하여 자신의 종교에 안주하지 않고,다른 사람의 종교를 존중해 주고 열린마음으로 받아들이는 것 같아 참 맘에 들었다.

배 위 생활을 하면서 괴혈병으로 시달리는 일면을 리얼하게 그려내고 있는데,
아무리 그래도 우리의 안나공주를 앞니 빠진 중강새로 만들어버리는 건...좀 심했다.ㅋ~
아프거나 다친 사람을 치료하면서 기도라는 대책없는 방법을 사용하는게 아니라,약초나 민간요법 등을 적절히 사용하는 것도 좋았다.
좀 더 자세히 설명되어 있었어도 재밌었을 것 같다.

인물들이 다소 거리감 있었는데,
'숱많은 잿빛머리카락,다소 가운데로 몰린 진회색 눈동자,매부리코,얇은 입술',이라고 묘사하는데서 난 '시라노'의 '제라르 드빠르디유'가 떠올렸고 그때부터 인물들도 입체적으로 살아 움직였다.

어찌되었건 결말이 못내 아쉬운 나로서는,<The vault of bones><Painted in blood>로 이어지는 페트록의 다음 활약이 기다려진다.




 







댓글(2) 먼댓글(0) 좋아요(6)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마녀고양이 2010-05-22 20:48   좋아요 1 | URL
저도 첫 문장이 맘에 들긴 하는데...
이 소설이 판타지나 SF 인가요? 첨 보는 소설이예요... ^^

sslmo 2010-05-23 11:53   좋아요 1 | URL
제가 장르를 나누기 쉽지 않을 때,뭉뚱그려 하는 말이 있죠~
"장르소설"입니다.^^

이 소설,재밌는 소재이고 번역도 훌륭하고...참 괜찮은데,
표지도 그저그렇고,'문학수첩'이란 출판사에서 별로 광고도 하지 않았나 봐요.
 

백번 양보하여 아무리 후하게 점수를 줄려고 해도,오늘 같은 날 <방아타령>은 영 '꽝'인 선곡이다.
<님을 위한 행진곡>으로 말할 것 같으면,
'백기완' 선생의 시<묏 비나리>를, 

작가 '황석영'이 일부 발췌 개작하였고,당시 전남대 학생이던 '김종률'이 곡을 붙였다고 한다.

 

 

   












  

 

<님을 위한 행진곡>

사-랑도 명-예도 이름도 남김없이
한평생 싸우 자던 뜨-거-운 맹세
동-지는 간데 없고 깃-발만 나부껴
새날이 올때까지 흔들리지 말자
세월은 흘러가도 산천은 안다
깨어나서 외치는 끝없는 함성
앞-서서 나가자 산-자여 따르라
앞-서서 나가자 산자여 따르라
 

 <방아타령>

노자 좋구나 오초동남 너른 물에 오고가는 상고선은
순풍에 돛을 달고 북을 두리둥실 울리면서 어기여차 닻감는 소리
원포귀범이 에헤라이 아니란 말인가
에헤에헤~ 에헤야~ 어라 우겨라 방아로구나
반 넘어 늙었으니 다시 젊기는 꽃잎이 앵도라졌다
 

 

                               


말러:교향곡2번,부활(2cd) 
말러(Gustav mahler)작곡 
텐슈테트(Klaus Tennstedt)지휘 

 


  



 

말러:교향곡2번,부활(2cd) 
말러(Gustav mahler)작곡 
솔티(Georg solti)지휘


난 '말러'나 들어야겠다.

  

그러다가 생각난 만화책,'강풀'의<26년> 

 

 

 


 

 


 

 

 

 
 

그리고 영화 한편,<화려한 휴가> 




 


 

 

"

 

 

 

날씨 따위에는 구애받지 않고 살려고 했는데,오늘은 비가 내려주어서 다행이다.
“자기 등만 따스면 썩습니다.” 

백기완 선생의 한마디가 떠올라 눈가가 자꾸만 촉촉해지는데, 

비 덕분에 들키지 않고 맘껏 되내일 수 있겠다.

 

 

여보게, 거 왜 알지 않는가

춤꾼은 원래가
자기 장단을 타고난다는 눈짓 말일세
그렇지
싸우는 현장의 장단소리에 맞추어

벗이여, 알통이 벌떡이는
노동자의 팔뚝에 신부처럼 안기시라
바로 거기선 자기를 놓아야 한다네

사랑도 명예도 이름도 남김없이
온몸이 한 줌의 땀방울이 되어
저 해방의 강물 속에 티도 없이 사라져야
한 춤꾼은 비로소 구비치는 자기 춤을 얻나니

벗이여
저 비록 이름없는 병사들이지만
그들과 함께 어깨를 쳐
거대한 도리깨처럼
저 가진자들의 거짓된 껍줄을 털어라
이세상 껍줄을 털면서 자기를 털고
빠듯이 익어가는 알맹이, 해방의 세상
그렇지 바로 그것을 빚어내야 한다네

승리의 세계지
그렇지, 지기는 누가 졌단 말인가
우리 쓰러졌어도 이기고 있는 민중의 아우성 젊은 춤꾼이여
오, 우리굿의 맨마루, 절정 인류최초의 맘판을 일으키시라

온몸으로 디리대는 자만이 맛보는
승리의 절정 맘판과의
짜릿한 교감의 주인공이여

저 폐허 위에 너무나 원통해
모두가 발을 구르는 저 폐허위에
희대를 학살자를 몰아치는
몸부림의 극치 아, 신바람 신바람을 일으키시라

이 썩어 문드러진 놈의 세상
하늘과 땅을 맷돌처럼 벅,벅,
네 허리 네 팔뚝으로 역사를 돌리다
마지막 심지까지 꼬꾸라진다 해도
언땅의 어영차 지고 일어서는
대지의 새싹 나네처럼

젊은 춤꾼이여
딱 한발띠기에 일생을 걸어라
 

                  백기완 시 <젊은 날 >중에서- 


댓글(6) 먼댓글(0) 좋아요(2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쟈니 2010-05-18 12:50   좋아요 0 | URL
참 속상한 하루입니다. 어떻게 방아 타령을 틀 생각을 하는지..
이러다 이 정권 말기에는 5.18 기념식 자체가 아예 시민들만으로 진행될 수 있을거 같습니다. 차라리, 이런 정권이라면, 시민들의 기념식이 더 의미있겠죠. 광주에서는 말러의 부할을 연주했다고 들었습니다.
“자기 등만 따스면 썩습니다.” ... 저도 제 등만 생각하며 사는 것같아 맘이 좋지 않습니다.

sslmo 2010-05-18 16:44   좋아요 0 | URL
자기 등만 따스면 썩지만,자기 등을 배제하면 '사상누각'이 될 것 같습니다.
그걸 깨닫게 해주셔서 '쟈니'님의 페이퍼가 제겐 남달랐습니다~

마녀고양이 2010-05-18 13:14   좋아요 0 | URL
사랑도 명예도 이름도 남김없이... 이 음절을 들으면 자동적으로 눈물이 팽 돕니다.
꿈섬님 글에도 남겼습니다만... 차라리 뉴스를 보지 말걸 그랬습니다.
518... 맘이 아픕니다. 다들 각자의 셈을 하는 꼴을 보려니.

sslmo 2010-05-18 17:00   좋아요 0 | URL
그쵸?자동적으로 눈시울 글썽,두주먹 불끈 하게 돼죠~
기념식장에서 우리의 국무총리께서'노자 좋구나...'하며 어깨를 들썩일 수 있었는지 어땠는지 궁금할 따름입니다.ㅠ.ㅠ

2010-05-21 15:52   URL
비밀 댓글입니다.

sslmo 2010-05-22 15:51   좋아요 0 | URL
서울 촌놈인 저는 88년도에 광주를 처음 갔었지요.
그때 목포 유달산에 올라...태산을 보며 호연지기를 노래했던 두보를 흉내내고자 포부를 가졌었던 것도 같습니다.
결국 유달산에 올라,'야호'소리도 못 지르고 눈물만 흘리고 내려왔습니다.
산이 높지 않아서가 아니라,
세상 물정 모르는 제게도,산이 높지 않아서...한참은 낙후된 동네의 모습이 한눈에 들어왔기 때문이었습니다.
때문에 518을 별개로 하고도 제게는 가슴 저린 아픔입니다~
 
우행록 블랙 앤 화이트 시리즈 22
누쿠이 도쿠로 지음, 이기웅 옮김 / 비채 / 2010년 4월
평점 :
구판절판


아들을 둔 한 여자가 있었다. 
그 여자는 어느 날 아들이 다니는 학원에서 전화를 받는다. 
요는 아들이 공부 못하고 장난꾸러기인 친구들과 어울려 다니느라고 공부를 소홀히 하니,
그 친구들을 멀리하도록 아들을 단속하시라는 일종의 충고같은 것이었다.
그때 여자는 이렇게 대답을 했던 것 같다.
"전,아들이 행복했으면 좋겠어요." 
"어머니,행복도요,공부를 잘 해야 행복할 수 있는 거예요."  
지금 생각해 보니,학원은 자상하게도 엄마가 전혀 신경 못 쓰는 아들의 스펙까지 관리해 주고 있었던 듯 하다.

난 한 작가에게 필이 꽂히면,그 작가에 대한 관심이 쭉 이어지는 지라, 
이 책 <우행록>은 어찌어찌하여 읽게된 <통곡>이 너무 좋아서 집어들게 되었다. 

책 표지에 '압도적인 반전,정교한 구성'이라고 적혀있는데... 
정교한 구성이라는 덴 공감하지만, 
압도적인 반전이라고 하기엔 '통곡'에 미치지 못하는 것 같아 아쉬웠다. 

책의 첫장 '3세 여아 영양실조 사망 모친 체포,유아 방기혐의'라는 기사 속의 '다나카 미쓰코'라는 이름을 잘 기억해 뒀던 나는,이 책을 따라 읽어가면서 누가 범인인지 금방 알아 차릴 수 있었기 때문이다. 

일가족 살인사건이 일어난지 1년이 지난 어느날,르포라이터처럼 보이는 이가 일가족 주변을 인터뷰하는 형식으로 이 책은 시작한다.

첫 시작부터 인터뷰라기보단 이웃집 아줌마의 이런 저런 수다라고 생각되는 얘기들을 읽다가, 
이 아줌마가 너무 미워졌었다. 

어떻게 이사온지 석달 밖에 안된 사람들에 대해,
'아마~','~카더라'식의 수다를 늘어놓을 수가 있는것인지,원.  
이건 친절을 가장한 독선이다 싶어...세상이,사람들이 무서워지는 순간이었다. 

사실 인터뷰 내용 중에 '다나카'라는 이름이 등장하기 전까지는,이 르포라이터가 범인이라고 짐작했었다. 

이 인터뷰어가 인터뷰이들로부터 이끌어내는 대답이 '범인이 누구'에 촛점이 맞춰졌다기보다는,
인터뷰이들을 적당히 부추기고 질문에서 대답을 유도하는 품으로 미루어 '왜 살인되었나?'에 촛점이 맞춰져 있는 것처럼 느껴졌다. 
다시말해,이웃들,대학동창,회사동료 등 인터뷰이를 통해서,'죽을 만하다'는 대답을 유도해 냈다는 생각이 들었었다. 
자기가 죽이고 주변의 용인을 통하여 일종의 면죄부를 얻으려 한 것인 줄 알았다. 

책을 읽어 갈수록,'끼리끼리 만난다'는 말이 생각나는데,
자신을 높이기 위해서...이웃을,대학동창을,회사동료를 깎아내리는 사람들을 보면서,
바다 건너 일본에서 씌여진 책이라고 하기엔 너무 많은 부분들이 우리와 흡사해 섬뜩하였다.

'인간이란 말이죠,항상 자신과 주위를 비교하면서 누가 위인지 아래인지를 졸렬하리만치 의식하고 판단하는 생물이니까요.자기보다 위에 선 인간이 있으면 재수없어하고,자기보다 밑에 있는 인간은 무시하는 것,그게 인간이죠. (91쪽)'

'연애라는 게 참 어려워요.마음의 추가 서로 평행을 이루면 좋겠는데 그게 좀처럼 쉽지 않으니까요.서로 아무리 좋아한다고 해도 어느 한쪽으로 추가 기울기 마련이죠.감정의 무게가 덜한 쪽은 결국엔 상대방에 질리기 시작할 수 밖에 없어요.함께 대화를 나누고 거리를 걷는 게 귀찮게 느껴지는 거죠.그런 온도차를 서로의 노력으로 메워나가면서 연애를 이어나가는 건데,젊을 때는 그것만큼 어려운 일도 없어요.그러다 결국 헤어질 수밖에 없죠.(161쪽)'

'섬세하다고 할까,사소한 영역에서 마음이 안 맞으면 결국 피로를 느끼게 되기 마련입니다.(277쪽)'

'상대의 눈을 바라보면서 얘기를 들어요.말하는 사람이 창피하지 않을 만큼 절묘하게 말이예요.이렇게 지그시 바라보며 고개를 끄덕이죠.전 남의 얘기에 그렇게 진지하게 귀기울여주는 사람은 처음 봤습니다.(278쪽)'

책을 다 읽고,나는 이 인터뷰어가 나중에서야 안됐다고 생각됐는데, 
아기를 키우느라 페밀리 레스토랑에서 만나자고 한 그 여인네를 보면서... 
자신을 충분히 돌이켜볼 수 있었을테니 말이다. 

'무언가에 대해 말할 때,인간은 결국 자신이라는 필터를 통해 그것을 보게 된다.그리고 자신이라는 편견을 씌운 평가 밖에 못한다.그 속에서 도드라지는 것은 평가하는 이의 성격과 사고방식이다.타인에 대해 말한다는 것은 양날의 검이다.(326쪽)'

책 뒤 서평의 한구절을 들먹이지 않더라도,친구와 이웃과 동료는 자기 자신을 투영하는 거울이다. 
거울을 보듯...이웃,친구,동료의 모습을 보며 자신을 다잡아 나가는 수 밖에 없다. 

*사실,이 책의 겉표지랑 관련하여 이 책의 제목을 愚行錄이 아니라,淚行錄이라고 알고 있었다. 
 어리석은 얘기라기 보다는 눈물나게 슬픈 얘기이다.


댓글(4) 먼댓글(0) 좋아요(1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비로그인 2010-05-17 17:10   좋아요 0 | URL
어리석어서 눈물나게 슬픈 얘기인가 봅니다.

sslmo 2010-05-18 11:35   좋아요 0 | URL
이 책이 눈물나게 슬픈 이유는,
어리석은 행동을 하는 사람이...
나와는 다른 사람이 아닌 내 주변의 또 다른 나라는 사실 때문입니다~

마녀고양이 2010-05-17 17:17   좋아요 0 | URL
저 이 책 장바구니에 넣어놨는데.... 읽으셨네요.
비채 출판사의 블랙앤화이트 시리즈 책이 괜찮더라구요.
양철나무꾼 님의 리뷰를 읽으니 꼭 사서 읽어봐야겠습니다~

sslmo 2010-05-18 11:39   좋아요 0 | URL
ㅎ,ㅎ...저는 장르소설 매니아이긴 하지만,일본 것은 잘 안 읽는데...
'누쿠이 도쿠로'는 챙겨 읽게 되더라구요~^^
 

세상에는 태양이나 별처럼 자체발광하는 것도 있지만,달처럼 태양빛을 받아야 빛을 낼 수 있는 것도 있다. 

















난 <이 구르믈 벗어난 달처럼>을 책으로 먼저 알았다.<내파란  세이버>에 필이 꽂혀 그의 전작을 찾아 읽었었고,'박흥용'이 분의 내공을 익히 알고 있었던 터라 영화도 그 연장선 상에 있을 것으로 짐작했었다. 

그러나,결론부터 말하면 영화,<구르믈 벗어난 달처럼>은  전혀 다른 버젼이다.
이준익감독이 그의 시각을 가지고 새롭게 해석해냈다. 

박흥용의 원작에 대한 인상이 깊어서 그런지,거기서 헤어나오지 못했던 나는 영화가 재미없었다.  

난 영화를 보기 전부터 황정민 분 황정학에 관심이 많았었다. 
언젠가 만화책을 보았을 때 황정학을 놓고 , 
'사암스님이다.','아니다,서산 사명대사다.'해가며 침 튀기는 논쟁을 벌였던 적이 있었다. 
때문에 그런 내공있는 역할을 누가 제대로 할 수 있을 까 우려도 했었고, 
그런 역할을 황정민이 한다고 했을 때 내심 안심했었다. 

영화 속에서 황정민은 천연덕스럽게 황정학을 제대로 연기해 냈지만, 
그로 인해 이 영화는 실패한 영화가 되고 말았다.
황정민의 돋보임 속에서 다른 이들은 하나의 배경 이상의 역활은 해내지 못하고 있다. 
이준익 감독은 황정민의 두드러짐을 느끼지 못했을까?
그렇지 않다면 황정민에 감정이입을 해 황정민 주연의 <구르믈 벗어난 달처럼>을 만들고 싶었을까? 

영화라는 건 한컷 한컷,한장면 한장면이 돋보이면 그만인 스틸사진은 아니다. 
그들과 잘 어울리고 버무려져 한편의 영화를 만들었다면 더 좋았을 걸 하는 아쉬움이 있다.

영화가 재미없었던 또 하나의 이유는, 
등장인물들이 캐릭터 분석에 실패했거나,
아님 캐릭터에 맞게 배역설정이 되지 못했었다.
(내 생각으로는,황정민을 제외하곤 적절하지 않다.) 

처음 한견주 역할의 백성현을 보았을 때부터 난 불안했다.
저렇게 뽀얀 얼굴에 말알간 눈빛으로 한견주를 연기해 낼 수 있을까? 
망나니 역할일때는 그렇다치더라도,칼을 쓰게 되면서 그의 눈빛이 바뀔 수 있을까?
한견주가 보여주어야 하는 내면적인 갈등과 고뇌들을 그는 표현해 낼 수 있을까? 
내 예상처럼 그는 영화 전반에 걸쳐서 눈에 힘주는 것 하나로 밀어붙인다. 
백성현은 아직도 더 많이 배우고 노력해야겠구나 싶었던 건,
배에 칼을 맞고 사경을 해매다가 살아나,계단을 내려오는 장면에서 였다. 
자세히 본 사람들은 알겠지만,그는 배가 아프고 땡겨서 걸음을 못 걷는게 아니고 다리를 다쳐서 못걷는 행세를 한다.
'저건 아니데...'하는 마음에,그의 배를 향하여 힘차게 주먹질이라도 한번 해줄까 싶었었다. 

차승원은 표정에서는 그럭저럭 따라가주는데,그의 눈빛도 한가지 표정만을 담고있다.
(혹자는 덧니를 드러내고 묘한 웃음을 날리는 그 장면을 압권이라고 표현하더구만...)
칼잡이의 눈빛을 본 적이 있는가?
칼잡이가 보여주어야 할 그런 매서운 눈빛,연인을 바라볼 때 보여주었어야 하는 그런 그윽한 눈빛이 없다. 

영화에서는<구르믈 벗어난 달처럼>의 심오한 뜻을 다 보여주지 못하고,그냥 칼부림이 난무하는 복수극으로 끝나고 말지만,
책은 견자라는 한 인간의 성장기이다. 
적어도 이몽학과 한견주 사이에 힘의 균형은 보여주었어야,<구르믈 버어난 달처럼>의 심오한 뜻을 짐작할 수 있을텐데 말이다.

서로를 통해 자신을 투영하고 되돌아보고 반성하고,그렇기 때문에 발전하고 빛날 수 있는 것이다. 
태양이 없다면 달은 빛날 수 없는 것이니까 말이다. 

책의 한구절을 옮겨본다.

   
 

하루살이라도 다 같은 하루살이는 아니다.하루살이가 아무리 날아봐야 하룻길이지만,천리마에 붙어있으면 하루에 천리를 간다.

 
   

시대상과 서자 출신이라는 점에서 생각난 책,
'김탁환'의<방각본 살인사건><열녀문의 비밀><열하광인> 


댓글(6) 먼댓글(0) 좋아요(1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비로그인 2010-05-16 15:31   좋아요 0 | URL
크~~원작을 읽은 사람이 쓰는 리뷰라...
역할이 제격인지의 여부도 보시는군요?

갑자기 쌩뚱맞은 얘기지만....양철나무꾼님....
생각의 깊이가 많이 깊으십니다.
ㅎㅎ좋은 이웃 생겨서 기뻐요^^

sslmo 2010-05-17 17:01   좋아요 0 | URL
요 위의 '우행록'리뷰랑 관련하여,
좋은 이웃이라고 해주셔서...제가 더 기뻐요~^^

마녀고양이 2010-05-17 15:38   좋아요 0 | URL
아 그렇군요. 원작은 견자의 성장기가 초점인가요?
영화는 영 다른 시선인데.. 저런. 영화에서는 견자가 성장하다 말고 죽어버렸네요. ㅡㅡ;;;

sslmo 2010-05-17 17:05   좋아요 0 | URL
네,책에서는 견주(=견자) 아버지에 의해 황정학에게 보내졌었을 걸요.

책의 마지막,한견주와 이몽학이 20합을 겨누어도 승패가 판가름나지 않는 그 팽팽함이 압권인데 말이죠~ㅠ.ㅠ

다이조부 2010-12-31 21:48   좋아요 0 | URL

영화를 먼저 봤는데, 영화를 보고 나서 아 이건 정말 별로 라고 생각했거든요~

책도 영 구리구리 하네요~

한 해를 마무리 하는 책으로 꼽기에는 선택을 잘못 한듯해요 흑

sslmo 2011-01-05 02:55   좋아요 0 | URL
왜요?^^
전 박흥룡 형님 '쫌' 애정해서 책으로는 괜찮았는데요~

떡국 드셨어요?^^
 
아불류 시불류 - 이외수의 비상법
이외수 지음, 정태련 그림 / 해냄 / 2010년 4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언제부턴가 '이외수'의 책들을 멀리했었다. 

한때 그의 소설을 전작으로 찾아 읽고 다녔으니,그의 안티는 아닐 것 같고...
일종의 식상함 때문이었던 것 같다. 

이외수 특유의 재치있는 문체와 독특한 사고방식에 매료되어 책을 읽다보면,
나오는 등장인물이나 줄거리,전개방식은 다 다른데,같은 책을 읽은 듯한 느낌이 들곤 했다. 
그것이...내용이나 표현방식은 다 다르지만, 
그안에서 그가 얘기하고 싶어하는 것은 하나로 귀결되기 때문이라는 걸,좀 늦게 깨달았다. 
'변하지 않는 것'을 '진리'라고 한다는 것을 너무 늦게 깨달았다. 

그런 의미에서,<我不流 時不流>이 책은 참신하다. 
트위터의 글들로 엮여져 단출한 것도 그렇고,
책에 향기나는 책갈피를 끼워넣어 책향기가 나는 것도 그렇다. 
개인적으론,'정태련'의 그림과 책 뒷부분 그림들에 관한 짧은 코맨트들이 제일 맘에 들었다. 
 
"사랑이 현재진행형일 때는 서로가 상대에게 애인으로 존재하게 되지만, 과거완료형일 때는 서로가 상대에게 죄인으로 존재하게 된다. 하지만 어쩌랴. 죄인이 되는 것이 겁나서 이 흐린 세상을 사랑도 없이 살아갈 수는 없지 않은가"

"...파리가 먼지에게 물었다.넌 날개도 없는데 어쩜 힘 하나 안 들이고 그토록 우아하게 날 수가 있니?먼지가 대답했다.다 버리고 점 하나로 남으면 돼..." 

이게 이책의 '부제'인 '이외수'의 '비상법'이리라~ 

"고수는 머릿 속이 한가지 생각으로 가득 차 있고, 
 하수는 머릿 속이 만가지 생각으로 가득 차 있다."
 

이 부분에 대한 나의 생각은 살짝 다른데, 
고수는 머릿 속을 말갛게 비워내,아무것도-번뇌 따위는 없는 사람을 이르는 말이 아닐까?



댓글(5)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마녀고양이 2010-05-13 12:57   좋아요 0 | URL
저도 어느 순간부터 이외수님을 멀리하게 되더라구요.
흙벽 집에 들어가고, 조금 이상한 행동을 하시는 순간부터.. ㅡㅡ;;;
그런데 요즘 TV에서 나오는 모습을 보니, 다시 좋아졌어요...
머랄까, 참 멋지게 늙으신 분 이예요. 저도 저렇게 나이먹고 싶다 라는 생각을 합니다.

스크랩 글귀 참 좋습니다.. 저도 한번 읽어봐야겠어요.

sslmo 2010-05-14 11:15   좋아요 0 | URL
이외수님이 멋지게 늙으실 수 있도록 사모님의 보이지 않는 내조가 한몫 했다죠~^^
저도 요즘은 앞에 나서는 삶 말고,
누군가의 배경이 되는 삶을 살고 싶다는 생각을 종종 합니다~

비로그인 2010-05-15 13:18   좋아요 0 | URL
누군가의 배경이 되는 삶은 일백번 고쳐죽어도 자신없는게 솔직한 심정이구요...대신, 나서지만 않으면 다행이다 싶습니다.ㅋㅋ

sslmo 2010-05-16 12:11   좋아요 0 | URL
후,후,마기님~
각자 위치 할 수 있는 곳에서 역할을 다 하면 그것으로 족한 거 아닐까요?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건 있어야 할 게 제자리에 있는 거다'란 '어떤날'의 노래가사처럼요.
제가 나이를 먹고,제가 나이를 먹는 만큼 아이가 크고 하는 것을 보면서...
이제는 내가 그들의 배경이 되어주어도 좋겠구나 하는 생각을 종종 합니다.
우리의 부모님이 우리를 향하여 그렇게 했던 것 처럼요~

비로그인 2010-05-16 15:34   좋아요 0 | URL
ㅎㅎ진짜 자신없지만...그렇게 해야하는 거라는거...잘 알고있죠.
얼른 홀로서기를 시켜야한다...이러믄서 게으름 피우고 있지만...아이들의 든든한 빽이 되어주는 부모라는 자리...
평생 수양해도 모자른 그 자리.
노력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