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도 손석희의 시선 집중을 들으며 아침을 먹었다.

며칠째 이명박 정부 4년 평가 논객 토론이란 걸 하고 있는데, 오늘은 '사회ㆍ문화 분야'였다.

여간해선 주파수 고정인데,

아침에 만나면 밥맛이어서 주파수를 바꾸고 마는 몇 안되는 이 중 하나가 논객으로 나와 주파수를 바꾸려는데,

반대편 논객이 내가 흥미로워 하는 이였다.

(손석희 시선집중,이명박 정부 4년 평가 논객 토론 - '사회ㆍ문화 분야')

 

디지털 진화, SNS(social network service) 관련 그들의 토론을 듣고 있다 보니,

예전에 그가 100분 토론에 나와 영화 아바타 관련 혹평을 했던게 떠올랐다.

 

요즘 내주된 관심사가 '시뮬라크르 시뮬라시옹'이어서 그런지 모르지만...그런 얘기만 당나귀 귀가 돼서 들리는 것이다, ㅋ~.

'시뮬라크르, 시뮬라시옹'의 개념을 알고는 있었지만, 체화하지 못하여 와닿지 않았었는데...

서동욱의 '철학연습'을 읽으면서, 이 부분의 개념을 다시 잡았다고 해야 하나?

 

 

 

 

 

 

 

 

 

 철학 연습
 서동욱 지음 / 반비 /

 2011년 4월

 

 

사실 이 책은 구한지 좀 되었는데, 이 책의 저자 서동욱은 시인이기도 해서 그런지...

책의 처음 '책을 펴내며'를 읽다가 그만 그의 화려한 수사에 질려 길을 잃고 접어 던졌었다.

그런데, 처음만 참고 견디면... 이책의 제목'철학 연습'에 걸맞게,

현대철학이론들을 현대적 삶의 측면(돈, 사랑, 외모, 스마트폰 시대의 책읽기와 글쓰기 등)에서 바라보고 적용할 수 있도록 돕는다.

 

시뮬라크르에 대한 몰두의 이면에는 기원적인 것, 원본적인 것에 대한 추구가 오히려 더 큰 위험을 간직할수 있다는 경계가 담겨 있을 것이다. ㆍㆍㆍㆍㆍㆍ우리 삶과 멀리 떨어진 형이상학적 주제로만 보이는 기원의 신화는 실은 우리 삶의 가장 가까운 곳에서 다음과 같은 문답을 주고받으며 우리삶을 위협할 수 있다. 원형적인 순수한 인종은 누구인가?그것은 백인이다. 원형적인 성, 보다 우월한 성은 부엇인가? 그것은 남성이다ㆍㆍㆍㆍㆍㆍ.그리고 이러한 기원이 누리는 영광의 배후엔 늘 기원보다 열등한 주변부가 영광의 그늘로 자리잡는다. 순수한 원천에 대한 향수와 자만심으로부터 등을 돌리면 거기엔, 순수하지 못한 것이 섞여든 우색인종들, 혼혈아들, 불법이민자들이 있다. 시뮬라크르에 대한 긍정은 바로 순수한 원형적 모범의 기준을 벗어나는 이 모든 것에 대한 환대를 담고 있는 것이다.

그러니 나의 가짜 인생이여, 복제와 인용으로 가득 찬 삼이여! 나는 너를 사랑할 수밖에 없구나. 그런데 '나의 가짜 인생'은 좀 어폐가 있는 표현 아닌지? 가짜와 진짜를 구별할 수 없는데, 다른 것들과 구별되는, 독자적인 '나'라고 불리는 순수한 것이 있겠는가? 삶은 이렇게 오리지널리티를 지니는 '자아'가 사라진 익명성의 터널로 들어간다. 어떤 사람들은 이 사태를 '주체의 죽음'이라 부르기도 했다. 주체가 죽은 시대에, 이 모범도 원본도 없는 복제물들의 파편을 가지고서 어떤 삶을 꾸며나갈 수 있을까? 인터넷과 스마트폰과 아바타와 RPG게임이라는 시뮬라크르의 놀라운 생산자들 속에서 표류하는 우리가 오늘날 던져야 하는 윤리적ㆍ정치적 물음이란 이런 것이다.(259쪽)

 

예를 들면 '시뮬라크르, 시뮬라시옹'관련 나의 고민은 이런 것이었다.

인터넷에서의 나는 실제에서의 나보다 조금 더 솔직하고 대담한 구석이 있다.

실제에서라면 죽었다 깨어나도 그렇지 못할 정도로 대담무쌍하다.

그건 인터넷 세상이 가상이어서가 아니라, 인터넷 세상이 주는 익명성과 모호함에 나를 함께 묻어버는것이다.

어느때보다 더 나의 본능에 가깝지만, 다만 일상에서의 도덕적이고 사회적인 나답지 못할 따름이다.

진짜와 가짜를 나누는 기준이 '일상에서의 나'가 될 수 있을까?

이 논리대로라면, 일상에서의 도덕적이고 사회적인 나는 진짜가 되는 것이고,

어느때보다 나의 본능에 가까운, 솔직하고 대담한 나는 가짜가 되고 마는 것이다.

 

이런 고민은, 꼬리에 꼬리를 물고 디지털 진화에 따른 개인화, 개인적 고립 문제로 이어졌다.

흔히 책 속에 모든 것이 있다고들 얘기하고, 책을 많이 읽으면 지혜로워져 독선에서 벗어날 수 있다고들 생각하지만...

장르소설을 읽다보면...아무리 책을 많이 읽어도 독선과 아집에 빠진 사람을 만나게 된다.

그랑제의 소설 '검은선'에도, 내가 좋아하는 프레드 바르가스의 '죽은자들여, 일어나라'에도 등장한다.

 

그리스인들에게 지혜는 어느 날 하늘에서 뚝 떨어지는 것이 아니며, 지혜에 접근하기 위해선 자신이 가진 유일한 생각함의 도구인 이성이 '일하도록'해야 한다. 그리고 이성은 모든 사람이 나누어 가진 '보편적인 것'이기때문에, 이성은 자신이 생각한 것이 정말 '보편성'에 위배되지 않는지 끊임없이 자신에게, 그리고 다른사람에게 깃든 이성에게 묻고 교정받아야 한다. 이것이 바로 이성이 노동하는 방식으로서의 '대화'이다. 그러니 당연스럽게도 철학은 '의견'을 내놓고, 그 의견을 교정하기 위해 논쟁을 하고, 교정되어 보다 나은 의견을 다시 내놓는 그런 생각함의 과정을 가지는 것이다.

 이렇게 철학은 '의견'을 지닌 자들의 전쟁터다. 옆집 아저씨의 인생 철학도, 사장님의 경영 철학도, 철학관을 운영하는 점쟁이의 신묘한 철학도 혼자 방 안에 있을 땐 철학이 아니다. 그것은 개인적인 몽상이며, 나아가 "이거 맞지? 이거 맞는 얘기잖아!"라고 다짜고짜 옆사람에게 강요될 때는 사람을 피곤케하는 독선과 폭력이 된다. 그러나 개인들이 지닌 그런 다양한 생각들이 모든 사람들이 공유하는 이성의 전쟁터에서 생존을 시험받게 될 때 그것들은 이미 철학의 반지를 손에 넣기 위한 모험을 시작한 것이다.(22~23쪽)

 

결국 사회와 문화가 발달하고, 그리하여 디지털이 진화한다고 해도,

인간은 보편적 이성을 지닌 존재이고, 자신의 이성이라는 것이 '보편성'에 위배되지 않는지 알아보는 유일한 방식은 다른 사람과의 대화를 통해서이다.

그러니 개인의 그것이 몽상과 아집, 독선과 폭력에 빠지지 않기 위하여 필요한 것은 끊임없는 관계와 소통 뿐이다.

 

지인에게 비슷한 얘기를 했던 적이 있다.

좋은 뜻으로 한 얘기였는데, 지인은 '통의동에서 책을 짓다'를 들먹여가며 정색을 했었다.

 

 

 

 

 

 

 

 

    통의동에서 책을 짓다 
    홍지웅 지음 / 열린책들 /

    2009년 3월

 

 

 모든 사람들은 누구나 자기 식으로, 자기가 해온 방식으로, 우물 속에 앉아 하늘 쳐다보는 (座井觀天) 식으로 세상을 바라보는 거 아닌가? 아마도 부지불식간에 나조차 모든 것을 내 방식대로 대응할 것이다ㆍㆍㆍㆍㆍㆍ그래서 사람마다 스타일이 생기는 거고ㆍㆍㆍㆍㆍㆍ언젠가 김인호 사장이 나더러 <홍선배는 굉장한 스타일리스트>라고 한 적이 있는데, 그때 나는 <스타일리스트>라는 말이 자신만의 스타일이 있어서 좋아 보인다는 것인지(아마도 김인호 사장은 내가 만들어 온 책들을 토대로 그런 말을 한 것 같은데), 아니면 너무 스타일이 고정되어 있어서, 혹은 그것을 너무 금과옥조처럼 고집하고 있어서 융통성이 없다는 말인지, 잠시 생각한 적이 있었다. 세계적인 디자이너 필립 스탁 Philippe Starck은 인터뷰때 기자가 <당신은 스탁 스타일Starck Style이라는 말이 있을 정도로 일정한 스타일이 있는데>라고 묻자, <나는 스타일이라는 말을 싫어한다. STYLE 대신 PHILOSOPHY라는 말로 불리고 싶다>고 한적이 있다!!(82쪽)

 

더불어 또 한가지, 서동욱의 '철학연습'을 통하여 생각을 달리한게 있는데...다음과 관련해서이다.

난 관상이나 골상이나 별자리나 사주에 의해 인간의 운명이 결정되는건 아니어도, '경우의수'정도로 생각하고 예방하고 미연에 방지하자는 주의였다.

그런데 서동욱은 인간의 운명을 좌우할 수 있는 건, 의지와 행위뿐이라고 얘기한다.

운명을 바꾸고 싶으면, 관상이나 골상이나 별자리나 사주를 볼게 아니라...의지를 가지고 열심히 노력해야 한다는 얘기리라.

인간의 운명은 의지와 행위를 통해 개척되는 것이지, 관상이나 골상이나 별자리나 사주에 의해 결정되지는 않는다는 말이다. 얼굴이나 손금이 살아가면서 변한다고 하는, 우리가 종종 듣는 견해는 바로 인간은 정해진 운명을 통해서가 아니라 그의 행위를 통해서 자신의 운명을 완성해나간다는 이런 진리를 얼마간 표현하고 있는 것이 아닐까?ㆍㆍㆍㆍㆍㆍ사정이 이렇다면, 즉 우리의 운명은 지금 해나가는 행위에 달려 있다면, 우리는 왜 덧없이 관상을 보고 점을 치면서, 정해진 우리의 운명을 엿보려고 하는 것일까? 바로 '공포' 때문이다.ㆍㆍㆍㆍㆍㆍ행위가 운명을 만들어가야 할 시점에, 공포가 발목을 붙잡고서 미리 정해진 운명이 있지 않은지 찾아볼 것을 권하는 것이다.

그러니 적어도 이 정도는 이야기해야겠다. 결혼 못한 딸들이여, 엄마가 데려온 점쟁이가 네 남자의 관상이 나쁘다고 혼인을 반대하면 그르 헤겔이 제안하 행위 지침에 따라 대하라. 취직 못한 아들들이여, 면접에서 떨어진 이유가 혹시 관상이 나빠서였다면 그 회사를 향해 코웃음 쳐라. 한 인간의 운명은 머리 한 군데의 평평한 공터에 모여 있는 눈,코, 입, 귀의 생김새, 그리고 머리통의 모양이 겨정하지 않는다. 사람은 타고난 운명의 행운 때문에 황제가 되고 부자가 되고 출세를 하며 좋은 짝을 만나는 것이 아니다. 그의 운명은 오로지 세상을 만들어나가는 그의 행위 속에서만 확인되 수 있다. (307쪽)

 

헤겔의 '정신현상학'과 관련된 한대목이다.

철학은 접근 불가능한 어려운 학문이라고 생각했었는데, 이쯤되면 찬찬히 공부해 보고 싶은 욕심이 생긴다.

'정신현상학'관련 '헤겔'이 흥미로워 찾아보니, '헤겔,아이티, 보편사'라는 책이 새로 나왔다.

 

 

 

 

 

 

 

 

 

  헤겔, 아이티, 보편사 
  수전 벅모스 지음, 김성호 옮김 /

  문학동네 / 2012년 1월

 

 

 

 

철학에 'ㅊ'자도 모르면서...너무 철학 얘기만 머리가 아프지만,

분위기를 몰아서 오늘 일기도 철학적으로 한번 써봐야겠다.

 

어쩌면,

한참동안 말을 잃어버릴것 같다.
제길, 뭐 어떻게 침이라도 한방 맞아 봐야 할지

탕약이라도 한제 달여 먹어야 할지

모를

이상한 병에 걸린 것 같다.
얼굴엔 우울을 클리닝 집 꼬리표처럼 달고
어슬렁 어슬렁 정해진 길을 걷다가
훌쩍 2월이 가고
훌쩍 눈물도 좀 나고
훌쩍훌쩍 콧물도 좀 나고
하루 한번은 이곳에 들어와 앉았었지만,
아무 글도 눈에 들어오지 않고
아무런 댓글도 떠오르지 않아
성질 나쁜 고양이처럼 손톱을 세워
마우스만 딸깍 딸깍 긁어대다

오늘은 손톱을 찰칵찰칵 깎아야지
오랫만에 손수건을 꺼내 자판을 닦아야지.
아무래도 난 좀 어리석은 것 같다.
그리 힘든 일도 아닌데,

왜 밍기적거리고 앉아 훌쩍이고만 있는건지.

생각해 보니까,

2월이 간다는 건 3월이 온다는 얘기다.
아니, 1월이 가버렸다는 얘긴가?
지난 날들이 그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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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녀고양이 2012-02-24 00:1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프지 마라...

세실 2012-02-24 09:0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힘내세요. 양철나무꾼님.....
봄앓이가 시작된 걸까요?
저두 서동욱처럼 인간의 운명은 스스로의 노력에 의해 바뀌는것 이라고 믿고 싶어요.

하늘바람 2012-02-24 12:1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힘내셔요 님
제게 힘을 주셨었는데 저도님께 힘을 드려야 하는데
진짜 봄이 되어 황사 바람 불 즈음에 제가 향긋한 봄 바람 보내드릴게요
힘내셔요

2012-02-24 21:59   URL
비밀 댓글입니다.

cyrus 2012-02-24 22:2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시뮬라크르,,, 의미가 어려울뿐더러 발음도 어렵네요, 종종 '시뮬라르크'랑 혼동하기도 해요 ^^;;
지나간 날이 한순간에 지나가버려서 아쉬움도 있겠지만 그러한 시간의 경과가 있어야
좋은 일도 온답니다. 겨울이 채 가시지 않는 날씨 속에 감기 조심하시고 즐거운 주말 보내세요 ^^

2012-02-24 22:4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우울증 꼬리표를 얼굴에 달고 어슬렁거리고, 하루 한 번 이곳에 들어오지만 아무런 댓글도 써지지 않고, 눈물도 훌쩍, 콧물도 훌쩍, 2월이 갔고 3월이 오는데 1월을 생각하는, 양철님. 왠지 멋지셔요. (힘드신데 죄송..) 여튼 잠을 못 주무신단 말은 늘 걱정스럽습니다. 불면증의 고통을 아니까요..

페크pek0501 2012-02-25 14:5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우울? 불면증? 으음~~ 생각이 많고 깊으신 분 같군요.
세상은 그냥 대충 살아야 편히 살 수 있는 것 같아요.
심각하게 생각하는 문제도 각도를 달리 해서 보면 별 것 아닐 수 있잖아요.
제가 이런 말씀 드릴 주제는 못 되지만...ㅋㅋ 제 삶을 꾸려 가는 것도 힘들어 하는 주제에...ㅋ

아휴, 나나 잘 해, 라고 생각하며 물러납니다. ㅋ 어쨌든 양철나무꾼님 파이팅!!!!!!!!!!!!!!!

잘잘라 2012-02-25 19:3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요며칠 푹 풀린 날씨 탓이기도 하고
이웃님들 서재에서 불어오는 봄기운 탓도 있고
마음이 가라앉는 느낌이예요.
(봄 타는 메리포핀스ㅡ.ㅡ;;)

아까 낮에 냉이를 한봉지 사다가 청양고추,풋고추,빨간고추 이렇게 세가지 고추를 넣고 된장국을 끓여 먹었어요. 맛이 끝내줬어요.ㅋㅋ 기분이 한결 나아졌어요.

저녁은 드셨나요? 말이나 글은 걸러도 밥은 거르지 마세욧!!!

같은하늘 2012-02-27 02:1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전 아주 오랜시간 댓글들과 멀리 지낸걸요.
몸도 마음도 지치고 힘든 시간들...
아프지 말고 힘내세요~~

북극곰 2012-02-27 10:0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너무 생각하지 마시고, 마음을 그냥 내버려두면... 안 되는 일이에요?
나무꾼님 힘내요! ^__^



2012-02-27 14:15   URL
비밀 댓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