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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산개 - Poongsan
영화
평점 :
상영종료
풍산은 남자다.
인옥은 여자다.
위 두 문장을 화학 반응식으로 정리해 보자면, 둘은 사랑에 빠진다...일테고,
옛날 이야기 식으로 정리해 보자면, 둘은 행복하게 오래오래 살았습니다...일 것이다.
영화 '풍산개'버젼으로 얘기하자면, '음, 음, 음 ,음, 음, 음~'인데...스포일러가 될까봐 생략~!
잔뜩 습기를 머금은 날들의 연속이다.
내가 마치 비가 새는 천장처럼 느껴져 그대로 있다가는 무게를 견디지 못해 '푸~욱'하고 내려앉을 것만 같았다.
천장에 비가 샐때는 한쪽 귀퉁이에 구멍을 뚫어 물길을 내주면 된다고 누가 가르쳐 주었건만,
난 비가 새는 천장의 추억을 간직하고 싶지 않았는지,
'물 먹는 하마'라는 전혀 되지도 않는 처방을 했고,
그도 여의치 않아 택한 영화였다.
누군가 이 영화를 '레옹'같은 영화라며 two thumb up 했었는데,
글쎄, 그렇게 아슴아슴 눈물나는 영화는 아니었다.
가슴에 구멍을 숭숭 뚫어 바람이 거리낌없이 드나들도록 하는 쓸쓸한 영화였다.
결국 소가 뒷걸음질 치다가 파리라도 잡은 격이다.
하지만, 사람이 쓸쓸하다고 해서 울고 싶어지지는 않더라...
오히려 '김훈'의 '너는 어느쪽이냐고 묻는 말들에 대하여'가 생각났다.
"정부에 섭섭한 북파공작원이냐, 공작금이 끊긴 남파간첩이냐?"
"넌 어디야? 북조선이야 남조선이야? "
하고 물어대는 이들에게 김훈의 이 문장을 들이대고 싶었다.
"이쪽이냐 저쪽이냐를 묻는다면 나는 우습고 꼴같지 않아서 대답하지 못한다. 웃을 수밖에 없는 것이 나의 지성이다. 제발 이러지들 말라."
이 영화를 어떻게 얘기해야 할까?
로맨스영화에다, 19 금 빨간 딱지가 붙고, 노출...뭐, 이쯤 되면 엉뚱한 상상을 하는 사람들도 있을텐데...
난 '19금' 딱지가 왜 붙었는지 모르겠고,
진흙덤벅을 한 그것은 노출이라고 하기 민망한 수준이었다.
누군가는 로맨스 영화로 분류했던데, 나는 판타지 영화로 분류하고 싶다.
로맨스 영화가 되려면 둘의 사랑에 대한 언급이 있어야 할텐데...
여자 인옥은 "동무 피에선 이상하게 피 비린내가 나지 않아요." 가 고작이고,
남자 풍산은 그것도 못해 짐승처럼 포효하며 피눈물을 흘리는게 전부이다.
이들의 로맨스라인 보다는 풍산의 서울과 평양을 3시간만에 주파하는 축지법이 맘에 들었다.
풍산은 인옥을 만나기 전까진 남과 북을 넘나들며 죽음을 목전에 둔 사람들의 회한을 배달하는 배달부에 지나지 않았다.
죽음을 목전에 둔 사람들이다 보니, 촌각을 다투어야 할테고, 그래서 그의 배달은 3시간만에 이루어진다.
영화 속의 사람들은 하나 같이 낮은 목소리로,'미안하다, 사랑한다, 고맙다'라고 하는데...
내가 본 현실에서의 죽음은 긴 혼수상태와 의식불명 끝에 맞닥들이게 되는 그런 것이었다.
내가 보기에 판타지 영화가 될 수밖에 없는 또 하나 이유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영화가 인상적이었던 이유를 꼽으라면, 말하지 않고 말을 하는 풍산을 빼놓을 수 없다.
김기덕의 전작을 본 사람들이라면,
나도 하루종일 말을 많이 한 날은 조가비처럼 입을 닫아 거니, 낯설지 않은 설정이었는데 말이다.
사람의 목소리는 경험되지 않은 것들에 대한 추억을 끌어당겨 준다. 사람의 목소리에는 생명의 지문이 찍혀 있다. 이 지문은 떨림의 방식으로 몸에서 몸으로 직접 건너오는데, 이 건너옴을 관능이라고 말해도 무방하다. 그러므로 내가 너의 목소리를 들을 때, 나는 너를 경험하는 것이다.
김훈의 '너는 어느쪽이냐고 묻는 말들에 대하여'의 이런 구절이 이해가 되는 순간이었다.
배우들의 연기는 훌륭했지만...
김기덕 감독의 작품이 아니라고 했다면 나는 그래도 이 영화를 봤을까는 미지수이다.
그걸 전재홍 감독은 이렇게 얘기하고 있다.
그건 보통 사람이라면 불가능해요. 우리는 살면서 타협하게 마련이잖아요. 타협하지 않으면 굶어 죽거나 외톨이가 되거나 뒤처지는데, 그걸 다 감수하고라도 표현하려는 분이니까. 그 분의 작품에 참여했다는 것만으로도 저는 정말 영광입니다.
말이 아니어도, 말하지 않고도 소통을 할 수 있는 방법이 아직은 있다고 생각하고 살고 싶다.
부처님이 웃으면 가섭이 웃는다는 염화시중까지는 아니어도 말이다.
처음의 두문장을 염화시중 버젼으로 옮겨보자면,
'창공은 온통 그대들의 것이다.' 정도가 되지 않을까?
영화 <풍산개>버젼이라고 해야 하나?
아니다, 김기덕 버젼이라고 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