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비가 내리고 꽃이 졌다.
바람에 졌을지, 아님 질 때가 되어 떨어졌을지도 모르겠다.
목련 꽃잎이 떨어져 뒹구는 길을 따라 걸었다.
꽃이 져야 열매 맺는 이치를 이미 안다지만 꽃이 지는 게 참 서럽다.
달밤에 홀로 술을 마신다는 이백을 좇아, 비 내리고 꽃 지는 저녁을 홀로 맞는다.
2.
그 여자가 싫어하는 사람이 있다.
딱 꼬집어 누가, 어떤 사람이 싫은 게 아니라 어떤 행동을 하는 사람이 싫었다.
자리에 앉을 때 손바닥으로 의자를 쓰윽 한번 문지르고 앉는 사람,
창틀에 먼지가 앉았나 손가락으로 검사하고 다니는 사람,
식당에서 컵의 물은 숟가락 설거지 용으로 사용하는 사람,
대중이 함께 사용해야 하는 시설물은 무균실에 들어가야 하는 사람마냥 스치기도 싫어하는 사람,
암튼 그런 사람이 남자라면 더 ,더, 더, 더~우~욱 질색이었다.
그 여자가 출근하는 길에 제법 큰 건물이 있다.
근데,그 건물 외부의 청소를 하는 남자의 행태가 꼭 그러했다.
구경하는 사람들이 지루해할까봐 하루하루 레파토리를 바꿔가며 청소를 하는데, 생각나는 것만 옮겨보면 이렇다.
첫번째,커다란 통유리 되시겠다, 좌우 비뚤어짐 없이 간격맞춰 닦는 것은 기본이다.
계단을 빗자루질 할때 빗자루가 미치지 못하는 구석은 작은 붓을 이용한다.
보도블럭 틈에 내려앉은 검불들도 집개를 이용하여 제거하고,
작은 돌멩이가 깔린 화단에 떨어진 작은 잎들도 예외가 아니다.
그 여자는 화단에 나무가 사철나무 류의 관목인 것에, 화단 옆 가로수가 은행나무인 것에 감사하는 수 밖에 없다.
만약 단풍나무였으면 어땠을까?
단풍나무에서 떨어진 깨같은 가루 잎들을 진공청소기를 내와 말끔히 빨아들이겠다고 하지는 않았을까?
그여자는 남자의 행태를 보지않으려고,멀리 ㄷ자로 돌아서 출근을 하기도 한다.
어제 그녀는 술도 먹지 않고 그녀의 남자와 한 판의 육탄전을 끝낸 후,
맨 정신이어서 더 고감도였어, 이래가며 룰루거리며 샤워를 하고 나오다가 그 행태를 목격하였다.
그녀의 남자는 하얀 살결을 자랑하려는지 맨몸으로 앉아 침대 메트리스 위의 머리카락이며 검불들을 휴지로 떼어내고 있었다.
"꺄아아악~"
그녀에게 필요한 건 '사랑의 묘약'이라 불리우는 포도주 따위는 아닐까?
한 여자가 한남자를 만나서 사랑하는 일이, 한사람의 일상을 온전히 사랑하는 일이, 이다지도 힘든걸까?


3.
청소가 과한 걸 갖고는 툴툴거리면서, 글씨는 이렇게 단정한게 좋다. 하정우의 글씨체.
하정우, 느낌 있다
하정우 지음 / 문학동네 / 2011년 5월
내 대본을 보면 대사 옆에 날짜와 바를 정正 자가 적혀 있다. 리딩을 연습한 날짜와 횟수를 기록해둔 것이다. 여기 소개하는 대본들은 연극을 하던 때의 대본이다. 특히 <두번째 사랑>을 촬영할 때에는 영어로 대사를 해야 했기 때문에 바를 정 자를 빼곡하게 적었다. 맡은 역할이 불법체류자였으므로 그에 맞는 느낌을 만들어내야 했다. 또 내 영어 실력이 유창하지 않았으므로 연습을 통해 극복하는 수밖에 없었다. (……) 공부와 연습, 조율의 과정을 모두 끝내고 나면 촬영에 들어간다. 이때 연기는 ‘재생’과 같다. 재생 버튼, 즉 플레이 버튼을 누르면 이제까지 연습한 것이 바로 나온다는 의미에서이다. 촬영중에 필이 온다면 좋겠지만 항상 그럴 수는 없지 않은가. 더도 말고 덜도 말고 내가 준비한 그대로 연기할 뿐이다. _「제가 무당입니까? 빙의가 되고 필을 받게……」 중에서
4.
또 한권, <번역에 살고 죽고>라는 책이 나왔다.
<번역에 살고 죽고>의 저자 권남희 님은 번역 경력 20년차에 접어든 일본문학 전문 번역가다.
일본문학은 나의 주된 관심사는 아니지만, 권남희님의 글은 참 좋아한다.
이 분의 '무학자無學者도 읽을 수 있는 글쓰기' 라는 모토에 전적으로 동의한다.
이 분의 재미있고 쉽게 읽히는 글쓰기를 나도 닮고 싶다.
나를 술푸고 싶게 만든 건, 연봉 1000만원으로 만족할 수 있는가 하는 부분이었다.
자리를 잡은 내 또래의 전문직의 경우 월급이 될 수도 있는 액수다.
(적어도 경제적으로는 매력적이지 않은 직업이란 것.)
아무리 좋아하는 일을 한다고 하더라도 배 고파하면서 하기는 쉽지 않으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