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   숙   
                      -김사인-

헌 신문지 같은 옷가지들 벗기고
눅눅한 요위에 너를 날것으로 뉘고 내려다본다
생기 잃고 옹이 진 손과 발이며
가는 팔다리 갈비뼈 자리들이 지쳐보이는구나
미안하다
너를 부려 먹이를 얻고
여자를 안아 집을 이루었으나
남은 것은 진땀과 악몽의 길뿐이다
또다시 낯선 땅 후미진 구석에
순한 너를 뉘었으니
어찌하랴
좋던 날도 아주 없지는 않았다만
네 노고의 헐한 삯마저 치를 길 아득하다
차라리 이대로 너를 재워둔 채
가만히 떠날까도 싶어 네게 묻는다
어떤가 몸이여

아침부터 김사인 시집 <가만히 좋아하는>을 읽다가, 시집의 이 시 '노숙'을 읽다가 눈물을 흘렸다.
옛날에 읽었지만, 그냥 지나쳤던 시가 다가오는 걸 보면...봄을 제대로 타나 보다.
시인의 관조를 미루어 내 자신을 관조한다. 

주말에 화원에 다녀왔다. 
참 많은 꽃들이 있었는데, 내 맘에 들었던 건 수선화, 
수선화도 종류가 참 여러가지인데, 내가 좋아하는 건 노란 입술연지 수선화이지만...암튼,,, 

채 봉오리가 벌어지기 전에 업어왔는데...따뜻한 집안에 이틀 있더니 활짝 피다 못해 흐드러졌다.
어제 퇴근 길 화원을 지나다 보니...밖에 나와 있는 애들은 아직 수줍게 오므리고 있는데 말이다.
왜 '화무십일홍'이 생각나는 건지 모르겠다.   

골목에 꽃이 피네
 정외영 지음 / 이매진 / 2011년 2월

 이 봄 참 잘 어울리는 예쁜 책 한권을 만났다.
이런 사람들이 있어서 꽃샘추위 쯤은 두렵지 않은건지도 모르겠다.
'꽃밭을 만들랬더니 스스로 꽃이 되버린 사람들'이란 추천사 제목도 너무 예쁘다.   

내가 먼저 손내밀고 다가갈 생각은 하지도 못하고, 꽃이라고 착각하고 산건 아니었나 되돌아 본다.
알아주는 사람이 없다고 툴툴거리며, 파분난화하고 산으로 돌아갈 궁리나 하고 있었으니 말이다. 
 

시를 읽다가 따뜻한 차가 생각났다.
어떤때는 차보다 노래 한곡이 더 따뜻한 위로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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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창 2011-03-09 14:16   좋아요 0 | URL
저는 얼마 전에 죽은 화분을 정리했어요.
화분을 돌보면서 죽게 만든 적은 한번도 없었는데
요번 겨울에는 뭐에 정신이 팔렸는지 두 개나 그리 되고 말았어요.
모종삽으로 흙을 뜨다가 손가락도 조금 다치고.
둥둥 떠다니기도 하고 어디 있는지 모르겠기도 하고... 제맘이 요즘 그래요.

양철나무꾼 2011-03-10 22:54   좋아요 0 | URL
봄은 그야말로 여러 사람을 둥둥 떠다니기도 하고 어디 있는지 모르겠기도 하게...만드는 것이 마법사 같아요.

저는 한번에 여러가지를 못 키우겠더라구요.
골고루 나눠주는게 잘 안 돼요.
수선화도 벌써 지고 있어요~ㅠ.ㅠ

차좋아 2011-03-09 18:16   좋아요 0 | URL
주말에 프레지아를 샀었어요. 노란 수선화를 보니 생각나네요. 인사동 거리에서 샀어요. 한단에 천원이라서 한 단 주세요, 했더이 두 단부터 팔아요, 라고 하길래 두 단 사서 집에 들고 갔어요. 아내에게 주니까 좋다 말다 별 말없이 가만히 좋아하는 모습, 너무 이뻤어요^^
피아노 위에 예쁘게 있는 프레지아가 생각나네요^^

양철나무꾼 2011-03-10 22:57   좋아요 0 | URL
노란색이 사진 찍으면 젤 예쁘게 나온다고 해서, 졸업 사진 찍을 때...노란 프레지아랑 안개랑 잔뜩 섞어서 꽃다발 만들었던게 기억나네요.

실은 저는 무슨 날이라고 꽃다발 선물 주면 툴툴거렸어요.
그랬더니 남편은 작은 화분을 하나씩 사오더라구요~^^

글샘 2011-03-09 20:58   좋아요 0 | URL
알아주는 이 없어도 화내지 않아야 군자라고...
그러기 전에, 공부하고 책읽고 때때로 리뷰쓰고 이러면 기쁘다고,
양철님 글을 읽고 좋아하는 사람들을 만나면 그러면 즐겁다고...

어떤 책에서 열심히 말했잖아요. ㅎㅎ
유자차도, 수선화도 참 예쁘잖아요.

전 이즈음 워낙 바쁘단 말을 입에 달고 다녀서...
묵은 허브 가지를 빈화분 몇 개에 잘라 놓고는 향내맡으며 삽니다.
꽃은 엄두를 못내겠어서요.
멋진 난 화분 하나 얻어다 뒀는데, 꽃대가 3개나 올라와 있습니다.
다드음 주면 새초롬한 꽃이 피겠지요.

어떤가 몸이여~ 이랬는데 눈물이 주루룩 흐르셨다면,
봄타는 게 아니라 몸이 많이 힘들어 하는 거 같은데요. ^^
유자차나 한 잔 드시고... ^^ 기분 푸시길...

양철나무꾼 2011-03-10 23:03   좋아요 0 | URL
저런 군자의 덕목은 공자나 맹자가 하는 말이구요,ㅋ~.
'나는 나니까'하고 살라시던 분이 말이죠.

네, 요즘은 유자차도, 수선화도, 글샘님도 참 예쁘네요.
감사합니다~^^

느린산책 2011-03-09 21:18   좋아요 0 | URL
얼마전 지나다가 노란 프리지아가 눈에 확 들어오던데 ㅎㅎ
순간 살까말까 고민,,,
노래만큼 맘 풀어주는 약은 없는 거 같아욤


^^

양철나무꾼 2011-03-10 23:06   좋아요 0 | URL
맞아요, 노래만큼 맘 풀어주는, 돈 안드는 약은 없는 거 같아요.

근데요, 님 궁금한게 있어요.
김창완이랑, 이상은 들으시잖아요.
근데 왜 저녁엔 배철수를 들으신데요?
주파수 고정인줄 알았더니만...^^

느린산책 2011-03-11 09:08   좋아요 0 | URL
제가 챙겨듣는 라됴는 딱 그 셋이여요~
sbs김창완, mbc이상은 배철수 ㅎㅎ

양철나무꾼 2011-03-11 11:33   좋아요 0 | URL
아~이상은도 MBC군요.
전 님이 SBS에 주파수 고정인 줄 알았다는~^^

잘잘라 2011-03-10 00:06   좋아요 0 | URL
시,가 너무.. 애잔해요.
수선화,는 참 명랑하구요.
골목에 꽃이 피네,는 기쁨이 알록달록 ^ ^
유자차,를 한 잔 마셔야겠어요. 저도..

양철나무꾼 2011-03-10 23:08   좋아요 0 | URL
댓글이 한편의 시 같아요.
아~좋아요.

저도 유자청 많이 넣어서 유자차 마실래요.
유자차 들으면서요~^^

cyrus 2011-03-10 09:55   좋아요 0 | URL
노란 수선화 정말 이쁘네요. 캠퍼스에도 얼른 봄 기운이 찾아와서
이쁜 꽃들이 피우면 좋겠는데 말이죠. 오늘도 여전히 날씨가 춥네요^^;;
오늘 같은 날에 집에서 따뜻한 유자차 한 잔 마시면 참 좋을거 같네요 ^^

양철나무꾼 2011-03-10 23:11   좋아요 0 | URL
요즘 대학 캠퍼스는 좁고 삭막한 곳도 제법 있던데...
님 다니시는 곳은 캠퍼스가 예쁜가 보네요.

옛날에 학교 자판기에 보면 유자차라고 해서...레몬 가루 같은 거 풀어놓은 차가 있었는데 말이죠.
어떠세요, 학교 생활 몹시 바쁘시죠?^^

마녀고양이 2011-03-10 11:19   좋아요 0 | URL
오호? 나두 주말에 화원 가서 빨간 꽃이 가득 핀 화분 샀어요.
추운 봄날에 그 꽃 보면서 손을 호호거리는 중.

노숙이라... 어제 아침에 워낙 슬프고도 끔찍한 노숙자 뉴스가 있었지. ㅠㅠ
시가 그걸 연상시키네. 아흑.

양철나무꾼 2011-03-10 23:13   좋아요 0 | URL
빨간 꽃 가득 핀 화분 이름이 뭐예요?
난 빨간 열매 같은 게 달린 화분을 샀는데 이름이 '천리향'이라던가 그랬던거 같아요.

내가 탐낸던 화분은 '앵초'인데, 원래는 '바이올렛'이라고 불리우는 거래요~^^

그쵸, 저도 그 뉴스 보다가 또 후두둑이었어요~ㅠ.ㅠ

꿈꾸는섬 2011-03-10 14:44   좋아요 0 | URL
봄인가 싶은데 아직도 추워요.
노란 수선화가 정말 예쁘네요.

양철나무꾼 2011-03-10 23:16   좋아요 0 | URL
입춘도 지나고 경칩도 지났으니, 봄은 봄인데...아직 춥네요.
님은 많이 바쁘신가 보죠?
바쁘시더라도 건강 챙기시구요.
제가 종종 그리워하고 궁금해해요~^^

세실 2011-03-11 00:13   좋아요 0 | URL
노오란 수선화가 봄을 느끼게 해주네요.
요즘 봄옷 입고 달달 떨면서 다녀요. 더 춥게 느껴지네요.
전 자료실을 화원으로 만들고 있습니다.
햇살 가득한 창가에 난이랑, 다육이랑, 스킨다비스 쪼로록 놓아두고는 물 주면서 행복해 합니다. 물당번 자청했어요^*^

양철나무꾼 2011-03-11 01:17   좋아요 0 | URL
저도 다른 해엔 3월만 되면 겨울 옷 세탁소로 보내버리고 달달 떨면서 다녔는데, 올해는 게으름을 부려 볼려구요.
님이 계시는 곳, 님이 지나시는 곳은 환하고 따뜻할 거 같애요.
저도 배우고 싶어요~^^

아이리시스 2011-03-11 02:00   좋아요 0 | URL
꽃놀이 가는 사람 되게 냉소적으로 보는 편인데 꽃이 예쁜 건 숨길 수 없네요.
화원......... 말만 들어도 설레요.
오렌지색, 노란색 자켓이 너무 예뻐보이고, 그거 입고 수목원에 가고 싶어요.
구질구질한 냄새나는 곳 말고 산뜻한 향기가 나는 세상으로~ 고~고~

양철나무꾼 2011-03-11 02:09   좋아요 0 | URL
님은 꽃을 향하여 얼마든지 냉소적이셔도 돼죠~
님 자체가 한송이 꽃이니까요~^^

전, 제가 키우는 건 자신 없구요.
(제 자신 하나 간수하기도 버거운지라~^^)
꽃구경 가는 건 참 좋아해요.
허브박물관, 식물원, 이딴 데 가끔 가요.

참, 봄 되면 할머니 할아버지 산소에 꽃 사다 심는 건...꼭 해요~

감은빛 2011-03-11 15:07   좋아요 0 | URL
시도 좋고, 꽃도 좋고, 음악도 좋네요.
봄이 되면(지금 같은 가짜 봄 말고, 진짜 봄!)
시를 자주 읽어야 겠어요.

양철나무꾼 2011-03-15 22:24   좋아요 0 | URL
김사인도 좋지만, 골목에 꽃이 피네도 좋더군요.
진짜 봄이 되면 시를 읽지 말고, 직접 시를 써보세요.
진짜 봄이 되면 님 서재 더 자주 들락거려야 겠는걸요, 어떤 시집을 끼고 다니실까요?^^

따라쟁이 2011-03-14 13:15   좋아요 0 | URL
봄은, 여기저기를 빠쁘게도. 그리고 제법 영향력 있게 돌아다니고 있네요

양철나무꾼 2011-03-15 22:28   좋아요 0 | URL
님의 댓글을 보다가...마지막 잎새 생각이 났어요.
폐렴을 의인화하여 영향력 있게 돌아다니고 있다고 했던게 생각났어요.
님의 봄은 바쁘군요?^^
제 봄은 아직이예요~ㅠ.ㅠ